몸이 불편한 남편과 시아버지와 같이살아요.

유진엄마2018.11.08
조회11,210

 

저는 4살 딸을 둔 40살 주부입니다. 사는게 정말 힘이드네요. 착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저희 두부부는 살았는데 왜 현실은 계속 이럴까요? 아픈남편과 시아버지 사는 것이 너무힘드네요.

 

15년전 저희 부부는 처음부터 형편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와 신랑은 골프장에서 근무를 하였어요. 저는 캐디일을 하였고, 남편은 회사직원이었죠. 남편은 심성이 착하고 고왔어요. 언제나 늘 저를 먼저 생각해주었고 저를 위해 열심히 밤낮으로 일을했어요. 저도 캐디라는 전문직 일을 하면서 일반 직장인 여자들 보다는 1.5배 많은 고수익을 벌었어요. 저희는 연애할때부터 차근차근 돈을 모았고 모은돈에 은행대출 8000만원을 보태서 결혼할때 함께 살아갈 28평 아파트 1억6천만원에 장만하였죠.

 

그땐 정말 사는 보람도 느꼈고 행복감도 많이 느꼈어요. 착한 남편은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일잘하기로 소문나 좋은 골프장으로 스카웃되며 진급도하였구요. 집에서도 1등 신랑이었어요. 쉬는 날이면 집안청소며 살림을 다하고 맏벌이하는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어디서나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추운 어느겨울 남편이 발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고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추운겨울 너무 몸을 혹사시켰는지 다리의 동맥이 막혀버렸고 발은 하얗게 피가 통하지 않은 상태로 되어버렸더군요. 병원에서는 의아해서 더 세부적인 진찰을 하였는데 희귀성 난치병인 버거시라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버거시라는 병은 혈관이 좁아지는 병으로 방치하면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결국 남편은 수술을 하였고 장기간 회사를 비운 탓에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당했습니다. 수술을하고 남편은 평생을 혈관 팽창제와 혈액응고 방지제를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죠. 이병은 난치병으로 고칠 수가 없었거든요.

 

몇 달간을 병원에 임원해있는 남편을 위해 직장을 다니며 남편 병간호를 했어요. 저는 정말 힘들었지만 남편을 너무 사랑했어요. 포기할 수 없었어요. 3개월 정도 남편은 입원 치료를 잘마치고 병원에서 퇴원하였고 다시 복직을 원해서 이곳저곳 자신의 능력,경력을 믿고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고칠수없는 난치병을 앓고있는 남편을 더이상 어떤 회사에서도 받아주질 않더라구요. 하지만 남편은 강했어요. 포기하지 않았죠.

 

용기를 내서 다른일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태어날때부터 그림을 잘그리고 글을 잘썼던 남편은 웹툰작가가되고자 열심히 그림공부를 하였구요. 저도 뒷바리지를 하였습니다. 

 

저는 남편을 믿었습니다. 저희남편은 한다고 믿고 노력하면 항상 이뤄냈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혼자서는 생활비를 버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조금씩 소액대출도 하다보니 빚과 생활비의 합이 월 200만원 정도 늘어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도 허리띠 졸라 매면서 제가 버는 수입으로 사는데 지장없이 잘 버틸수있었지만 그때 만들려고 힘들게 노력할때는 안생기던 아이가 갑자기 뱃속에 생겼죠.

 

 캐디일은 몸을 혹사시키는 일이라 태아에 문제가 생길까봐 저도 일을 그만둘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벌어서 모아놓은 적금을 해지하고 조금만 버텨보자는 심장으로 남편이 정식작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기다리고 기다렸죠. 시간이 지나면서 적금을 해지한 돈은 전부 다 생활비와 빚을 갚는데 써버린 상황이되었고 생활고의 스트레스를 점점 압박하기 시작하던 중 저희 남편은 짬툰이라는 회사의 정식작가 되었어요. 남편은 너무 기뻐하였고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 나갔어요. 초반에는 첫작품치고 인기가 많은 편이었어요.

 

그리고 제 뱃속에서 어여쁜 여자아이가 태어났죠.

하지만 아이를 갖은 기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남편의 첫작품의 수입은 월 200정도 집대출금과 나머지 생활비를 내면 적자의 연속이었죠.

 

 

남자들은 모르지만 임신하고 첫아이를 출산하고 난 뒤 저는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어요. . 빚은 점차적으로 조금씩 늘어났고 힘들게 장만한 집을 팔아야할 위기에 놓였죠. 남편에게 우울증이 심해져 스트레스에 저도 모르게 하지못할 말들을 하기 시작했고, 남편과의 사이마저 나빠졌었죠. 그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아버님의 간이 좋지 않아져서 간이식수술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겨났고, 그런 주변환경이 남편의 작품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남편의 작가생활은 결국 연재완결도 못하고 실패로 돌아섯습니다.

 

일단 먹고사는게 정말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했구요. 결국 심성이 착한 남판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고향에 부모님을 모시기로 결정했어요.

 

물론 시아버님의 간이식은 남편의 누나인 저의 형님이 간을 이식하게 되었구요. 간이식수술비는 무려 1억원정도 보험이 단 1도 없던 시아버지께 어쩔수 없이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 보태주었죠.

<뭐~! 상관은 없지만 주작이라고 하실까봐 수술하셨을때 시아버지 사진도 올려보아요.>

 

결국 빈털털이가 된채로 시부모님을 모시러 강원도 삼척이라는 곳까지 가게 되었네요.

 

사는게 뭔지... 남편과 저는 신용불량자에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시부모님까지 모셔야되고

아이까지 키우면서 살아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혼자 지금은 패스트 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면서 살고있네요.

물론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낮에 일이 끝나면

자격증 취득을 위해 야간에 심리상담사 공부를 열심히다니고 있구요. 남편과의 사이가

개선되면서 남편도 용기를 내서 다시 웹툰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저희를 기다려주지 않네요.

 

내일이면 핸드폰 요금도 내지 못해서 핸드폰마져 정지될 처지에 있고 남편은 약을 사먹어야하는데 원주병원까지 갈 기름값과 비싼 약값때문에 부담되서 약도 몇일째 안먹고 있네요. 저러다 병이 또 재발될까 저는 너무 걱정이네요.

 

이런이야기를 누구에게 할 곳이 없어서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아픈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우리예쁜 딸과 어떻게든 살아보아야 하는 제가 이런글을 쓸시간은 여기까지내요.

 

태어나 이렇게 힘든 경우는 정말 처음이네요.

누가 좀 도와줬으면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처음이구요.

어떻게 해야 이런 현실을 이겨낼수 있을지...너무 벅차네요.

 

그저 저의 소원은 좋은집과 차 비싼옷들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약값 걱정없이 살고 아이가 목이 마를때 좋아하는 뽀로로 음료수 사주고 싶은것이 저의 희망인데... 더이상 빚을 지는 것 너무 치가 떨리고... 하긴 대출을 하려고 해도 신용불량자라 대출도 안되네요... 악한맘 없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환경은 도와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