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왕따,내 어린시절..

JJmtt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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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인생 한탄할 곳이 없어서 글 적어봅니다. 새벽술감성으로...





둘째에 소심한 성격,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싸가지없는 딸, 그리고 첫째 같지 않은 첫째언니 때문에 첫째 취급을 받는 나.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


부모님의 기대는 나에게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이 몸에 배여왔고, 실패할 적마다 날아오는 건 모진 구타와 욕설이었다.
구구단을 욀 적에 틀린 문제당 몇대 씩 매를 맞았고, 어쩌다 통금을 어긴 날에는 바로 어머니의 모진 매타작을 받았다. 우리집 매는 세가지였다. 종류도 가지가지 였다는게 생각해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첫째는 아버지가 소싯적 쓰시던 검도용 목검, 둘째는 천장에 커텐을 고정하는 고정바, 셋째는 손가락 굵기의 길고 단단한 대나무 매였다. 이것 말고도 맞을 때는 손에 잡히는 대로 맞았고, 때리는 대로 맞았다.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게 어머니 신조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매를 맞아 엉덩이가 멍이 들어 의자에 앉지 못해서 학교에서 쿠션을 들고 다녔고, 여름에는 반팔 반바지를 꺼려했다.


9살 즈음, 놀이터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다. 20대 초중반정도 되어보이는. 같이 쓰레기 줍는 봉사활동을 하자는 얘기를 했다. 마침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고, 당시 그런 착한(?) 일을 좋아했던 나는 남자를 따라 뒷뜰 아파트 단지 골목으로 갔다. 그런데 그 남자는 쓰레기를 몇 번 줍는 척을 하다가 미리 챙겨온 밧줄로 내 손을 나무에 묶었다. 그리고 자기가 제안을 할테니 고르라고 했다. "1번, 오빠꺼를 빤다, 2번, 오빠꺼를 넣는다, 3번, 오빠꺼는 손으로 해준다, 4번, 그냥 간다" 그 상황에서 9살짜리 여자아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두려움에 떨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말들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알 길도 없었다. 그렇게 30초가량 묻던 남자는 나같으면 4번을 하겠다면서 나무에서 풀어주고 바닥에 눕게한 다음, 다시 손을 묶었다. 속옷을 벗기고 그곳을 벌리라고 한 다음 오빠 사랑해요 오빠 너무 좋아요 라고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 입에 무엇인가 이상한 맛이 나는 것을 밀어넣었다. 삼키라고 했지만 삼킬 수 없어 뱉었다. 그리고 나를 보내주며 속옷은 자기가 가져간다며 사라졌다. 이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성교육 한번 받아본 적 없었던 나는 그렇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집에 가서 통금을 어겨 매를 맞으며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밀어넣은 후 방에서 숨죽여 울었다. 엄마는 나에게 버팀목이 되지 못할 것이니까.


그렇게 6학년이 되었고, 항상 밝고 신나게 지냈던 나는 한명의 여자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키가 크고 춤을 잘 춰서 인기가 많은 그 아이는 소위 말하던 날라리였다. 하지만 어떤 잘못으로 인해(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 둘이 놀이터에서 보자고 문자가 왔었다. 나는 무서운 마음에 당시 같이 놀던 친언니와 친언니의 친구 한명을 데려갔고, 놀이터로 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당시 같은 반이었던 모든 여자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언어폭력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내 팔목을 잡으며 머리를 후려치는 그 여자아이를 나는 이길 수 없었다. 나보다 덩치도 크고 키도 크고, 힘도 셌으니까. 그렇게 실컷 당하는 도중에 놀이터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빠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 없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빠,쟤네가 나 괴롭혀. 알아주길 바랬지만 갑자기 아빠는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왜 학원에 가지않고 여기 있느냐고. 거기서 큰 충격을 받은 나는 아직까지도 아버지와 얘기가 서툴다. 잘 하지 않게된다. 그 이후로 왕따가 된 나는 매일 그 여자아이에게 책상을 발로 차이고, 찐따한테 닿으면 더럽다면서 내가 낸 핸드폰이나 내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하고, 나를 스치기만 해도 욕을 먹고 양갈래를 했다며 풀으라고 맞고, 내 사물함에 썩은 우유를 넣기도 했다. 그 전 까지 나와 놀았던 친구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의지할 곳이 없던 와중에 한 친구를 만나 여태까지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너무 고마운 친구다. 나와 같이 그 여자아이에게 왕따를 당해봤던 아이. 항상 그아이가 했던 짓을 편지에 써서 담임선생님께 보냈고, 학교에 나가기 싫어 어머니와 이 문제에 대해 상담해 본다는 핑계로 학교를 쨌다. 그렇게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가 걸려서 어머니에게 머리를 쥐어뜯기고 만신창이로 학교이 간적도 있다. 왕따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어머니는 나를 초등학교 시절 양아치라고 한다. 서운하다. 나를 왕따시키고 내 평생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그 여자아이, 걸그룹으로 데뷔했던데 꼭 망했으면 좋겠다. 다른 멤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그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인 A에게 배신을 당한다. 나와는 다른 학교였는데, 내 초등학교 당시 앨범을 보면 그 아이와 같이 있지 않는 사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걸 함께했었다. 배신한 이유는 '왕따인걸 숨겨서' 였다. 날라리가 되고 싶어 언제나 교회 날라리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그 교회 날라리들이 바로 날 왕따시킨 아이의 친구였던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첫날이 되자마자 우리 교실 문을 열고 OOO가 누구냐면서 니가 우리 A괴롭혔냐며 욕을 들었다.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당장 A한테 허리숙여 90도 인사를 하라했다. 복도 지나다닐 때 마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라 했다. 수치스러웠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를 했지만 조치는 없었고 그저 같은 반이 되지 않게만 해준다 했다. 중학교 2학년 쯤, BJ라는 것이 시작 될 즈음, 당시 카카오스토리로 나도 비제이를 한다고 올렸었는데, 그걸 발견한 반 남자애들은 나를 도가 지나칠 정도로 괴롭혔다. 니까짓게 무슨 비제이냐, 비제이QQQ(당시 닉네임) 대들려 들면 때리려하고 이런 날이 반복되어서 남자애들이 무서워하는 체육선생님께 말했다. 남자애들이 놀릴 때마다 말했다. 결국 그 아이들은 나를 다신 건들지 않았다.

중3, 첫 가출을 했다. 성적으로 부모님이 나를 방으로 따로 불러 매타작과 함께 이 성적이 내가 조작하지 않은 성적인지 확인하겠다며 밤중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하는 찰나에 그대로 뛰쳐 나왔다. 친구집 근처를 돌다가 근처 세차장에서 아빠에게 붙잡혀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다음부터 나가면 그대로 우리집 딸이 아니라 했다.


적어놓고 보니 내 어린 시절이 정말 힘들대로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술을 먹긴 먹었구나 하는 생각도ㅋㅋ 이런거 올릴 용기가 없을 텐데. 적다가 너무 많아 힘들어서 고등학교때는 올릴 엄두도 안난다. 내가 힘들게 살았구나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