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인가? 학생이니 백수겠죠 판에는 처음와보는데 익명이 되는 것 같아서
직장얘기라고 카테고리가 되어있으니까 여기 거의 다 언니오빠겠죠? 제가 집에서 맏이라 그런가 조금 어색하네요.
잠도 안오고 되는대로 적다가 팽개치려고요 푸념이에요 사람많은데다 막 적고 싶어요 별로 힘든 생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힘드네요
스물넷 대학교 4학년입니다. 휴학이 아니라 재수했었어요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요. 학점 조금 못 채워서 1년 더 다니게 되었고, 휴학생각중이에요.
모르겠어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뭐라도 하려고 하면서 되게 열정적이었는데 그게 다 어디갔는지 다 타서 사라졌는지...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고등학교때 공부는 그럭저럭 중상위권이었고, 학원도 과외도 없이 문제집 사는것도 없이 그 정도였으면 잘했지 않나 싶어요. 하튼, 그 당시에 대학이 아니라 교육원에 가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가 연끊길 뻔 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그저 교사 좋다고 교대에 가라고 무조건 우기셨어요. 실컷 수능보고 온 딸이 모의고사만큼은 나온 것 같다며 이런 곳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너 서울 보낼만큼 집안 넉넉지않다 국립대 가줘도 빠듯하다
이런 말만 하셨어도 저는 수긍하고 다른 길을 찾았을거에요. 그런 인간의 도리 못 하는 직업 왜 하려고 그러냐 여자는 교사가 최고다 차라리 공무원을 해라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상처 많이 받았어요. 겨울 내내 누워있었죠. 정시 원서접수날 지나서야 지난줄 알았어요. 집에 돈 없는거 뻔히 알았으니, 아마 저는 어머니가 저와 고민해주고 긍정해주길 원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 없어요 저 중학생때 바람난거 들키고, 고1때 집나가시고, 고등학교 2년동안 이혼소송 서로 눈치싸움 머리싸움 자식이용해가며 염탐 등 온갖 더러운꼴 다 보고 이용당할대로 이용당해서 이제 인간으로도 안보여요. 아버지가 아니라 그놈, 그자식, 아저씨로 불러야돼요.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저 재수하고 대학합격해서 장학금이랑 알바로 번 돈으로 등록금 때우고, 100만원도 안되는 기숙사비라도 지원해달라고 제가 회사에 찾아갔을 때 였어요. 양육비 소송을 해야 겨우 뱉어내듯 내놓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달라고 하면 주겠거니 하고요. 사장이었거든요, 중소기업.
결과요? 못 받았어요. 마침 갔던 그 날이 직원들이 없는 날이었고, 곤란한 표정으로 너 왜 여기까지 찾아왔느냐 묻는 그자식 낯짝은 볼만 했네요. 사무실에 들일만도 한데 절대 안들이고 회의실에서 얘기하자 하더라고요. 그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커서 생각하니까 투명하네요. 바람은 지능문제라던데 역시 머저리.
돈없다 박봉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멀쩡히 알바하던 저를 재수학원에 우겨넣던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가고싶던 곳 보내줄 돈은 없으면서 재수학원 보낼 돈, 다달이 100씩 들어가던 그 돈은 있으셨나봐요. 재미있죠. 너 반드시 교대가야한다 하면서.
그게 사랑이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하기 싫었어요. 그렇게 교대가 좋으면 어머니나 갈 것이지 애도 싫어하고 뭐 가르치는 것도 귀찮아하는 딸년 하고싶은것도 안물어보고 무작정 교대라니.
제 삶을 살고 싶지 어머니 삶을 살고 싶진 않았어요
집에서 빨리 독립하고 싶었어요. 안되면 기숙사에라도 들어가고 싶었고요.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돈돈돈 공부공부공부 성적성적성적 다시 돈돈돈
수능쳐보니 인서울 상위대학 가능했어요. 매번 집에 돈없다 소리를 하셨어서, 그거 곧이 곧대로 믿고 포기했어요. 어쩔 수 없지 뭐 하면서.
하향지원했어요. 원래 문과였는데 취직은 빨리하고 싶어서 고르고 골라 공대로 교차지원 가능하던 국립대로. 전액은 아니었지만 장학금이랑 국장 받으니까 다 되더라고요. 어머니는 공대라고 싫어하셨지만 내가 돈벌어 내고, 장학금받아 등록금 냈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배를 쨌더니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돈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어요. 국장 생활비 대출 받아서 기숙사 가고, 택배도 직접 싸서 부차고, 개강일 전날에 방에 들어가 짐을 전부 풀고 침대에 드러누운 날.
네 생각이 그렇다니 존중해주마 하고 다달이 30만원씩 보내주시기로 하셨고, 그 때까지만 해도 제 인생이 너무 잘 풀릴 것 같았어요.
전공이 안맞았어요.
아 세상에 고르고 골라 그나마 머리가 덜아플 것 같은 곳을 찾아들어갔는데 장난아니었어요. 1학년이 70명인데 10명만 여자고, 234학년은 더 심하고. 여자애들은 기업취직보다는 공무원준비를 하거나 연락이 끊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네가 오니 술자리가 빛이 난다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으면서.
그래도 재밌었어요. 기숙사 밥 먹으러 가면 원래 안그랬는데 1.8인분쯤 떠다 먹으면서도 제가 이상한줄 몰랐거든요. 집에는 한달에 한번씩만 가고, 어머니도 제가 멀어지니 싫은 소리 안하려고 하고. 동생은 공부잘하던 누나 돈때문에 엄마때문에 좋은 대학 못 가고 그런데서 썩는다고 화내고, 엄마는 지가 좋다고 갔다고 소리지르고, 둘이 싸우고. 나는 재밌고. 공부 못 하던 동생 대학같지도 않은 이상한 사립대에 들어가 자취비용이다 등록금이다 600씩 땡기고, 그 돈이면 나 인서울 하고도 남았을 거 생각하니 환멸감들고.
1학기 한참 많이 먹다가 2학기땐 편의점빵하고 라면으로만 때우고, 용돈 모아 노트북 사고. 게임도 실컷 해보고 유튜브도 원없이 보고 건강 망치고 무기력해지고
내가 왜이러지? 자꾸 힘이 없고 이상해, 괜히 우울하고, 버스 안에서 주책없이 울어. 내일은 괜찮겠지?
어, 오늘은 또 괜찮네. 어, 이번엔 아니네. 생리하려나? 아닌데 생리 안하는데. 그렇게 2년.
엄마 나 아무래도 정신병원 가봐야할 것 같아. 했더니 앞에선 그래 그러던가 해놓고 다음날
내가 보기엔 너는 정상인데 아는 수녀님 있다 상담하시는 분이니까 가보자.
이혼하고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 상담소인데 그거로 괜찮아졌으면 내가 이러진 않았을 것 같은데 하면서도 정상이라잖아 내가 심사숙고 해서 겨우 어렵게 말꺼낸건데 만 하루도 안되어서 저러는 거 보니 병원가도 ㅁㅊㄴ취급이나 할텐데
그냥 이러다 언젠가 죽겠지. 말라죽든 자살하든 기어이 몸 망치든.
그러다 도저히 못 견뎌서, 죽을 것 같은데 너무 살고 싶어서 정신과에 가본게 이번 여름. 아주 어릴때부터 어머니의 폭력에 노출되어서 복합적으로 우울증이 온 것 같다며 처방해주신 신경안정제 반알. 오래갈거라고, 평생 먹어야할수도 있다고.
그 동안의 학점은 죄다 망했고, 국장받을 수준도 안되어서 다 대출로 때웠어요. 약 두세달 잘 먹다가 갑자기 끊었어요. 그냥 먹기 싫어서.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랬더니 또 이래. 전처럼 죽고싶진 않은데 그래요.
병원 가야죠. 그런데 별로 하고 싶은게 없어요. 다른거 배워보려해도 집에 돈도 없어요. 엄마는 취직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보네요.
전공이랑 너무 안맞아요. 즐겁지가 않아요, 재능도 없고 잘 하지도 못 하고 그 동안 뭘 배웠는지도 모르겠어요. 동기 친구들은 연구실에 들어갔다 칼졸업한다 느긋하게 생각해볼거다 그러는데 나만 촉박한 것 같아요. 몇년을 내다 버린 것 같아요. 와중에 엄마는 아파요, 일 오래 못 할 것 같대요. 빨리 독립하래요 내년이라도 독립해서 집 나가래요. 잠도 안자고 이런거나 적고 있으려니까 눈물나요. 잠이 오는데 자고 싶지가 않아요. 시간이 가는게 너무 무서워요. 뭘 하고 싶은건지, 뭘 좋아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게 많았었는데
고등학교 내내 시달리고 재수하며 또 시달려서 다 타버렸나봐요. 기력도 열정도 다 옛날 일 같아요. 아직 스물넷밖에 안된건데 벌써 이래요. 잘 살 수 있을까요. 정말 잘 살고 싶은데.
휴학하면 돈벌어야해요. 자격증도 따야해요. 내 앞길 잘 헤쳐나갈 수 있게 길을 닦아둬야해요.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사실 너무 숨고 싶고 쉬고 싶어요. 그런데 하루종일 누워있어도 쉰것같지가 않아요. 쉴수록 내가 점점 내려가는 것 같고, 어딘가 파묻히는 것 같아서 괴로운데 쉴 수 밖에 없어요. 아 차라리 그냥 이대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기억 못 하게.
별로 좋은 생은 아니었거든요. 마늘찧는 절구로 맞아봤어요? 9살때요. 엉덩이랑 허벅지랑 종아리 위주로 맞았어요. 아직도 다리가 안좋아서 잘 넘어져요. 오래 서있는 일 못 해요. 다리가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에 사흘은 혼이 나고 이틀은 부부싸움, 이틀은 눈치보는 날. 잠옷바람으로 쫓겨나기 뭘 잘했다고 우냔 소리 듣기 말하라길래 했다가 어딜 말대답이냐고 더 맞기 매 부러져서 문방구 가서 지휘봉 사오기
좀 커서 이럴거면 나가 살라길래 침착하게 통장 지갑 노트북 챙겨서 신발 신으니까 진짜 나가냐고 나쁜ㄴ취급받기
약 먹든 안먹든 바뀌는 건 없고 병원은 너무 머네요. 그래도 가야죠.
이래도 살아야죠. 트루먼쇼 처럼 짜잔 네 삶이 자작이었습니다~! 하면 눈물나게 기쁠 것 같아요. 거짓말같이 괴로우니까.
잘 있어요.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시험.. 잘 치고 올게요. 이번학기는 유난히 일찍 치네요.
하고싶은 것도 없이 멍합니다
직장얘기라고 카테고리가 되어있으니까 여기 거의 다 언니오빠겠죠? 제가 집에서 맏이라 그런가 조금 어색하네요.
잠도 안오고 되는대로 적다가 팽개치려고요 푸념이에요 사람많은데다 막 적고 싶어요 별로 힘든 생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힘드네요
스물넷 대학교 4학년입니다. 휴학이 아니라 재수했었어요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요. 학점 조금 못 채워서 1년 더 다니게 되었고, 휴학생각중이에요.
모르겠어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뭐라도 하려고 하면서 되게 열정적이었는데 그게 다 어디갔는지 다 타서 사라졌는지...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고등학교때 공부는 그럭저럭 중상위권이었고, 학원도 과외도 없이 문제집 사는것도 없이 그 정도였으면 잘했지 않나 싶어요. 하튼, 그 당시에 대학이 아니라 교육원에 가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가 연끊길 뻔 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그저 교사 좋다고 교대에 가라고 무조건 우기셨어요. 실컷 수능보고 온 딸이 모의고사만큼은 나온 것 같다며 이런 곳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너 서울 보낼만큼 집안 넉넉지않다 국립대 가줘도 빠듯하다
이런 말만 하셨어도 저는 수긍하고 다른 길을 찾았을거에요. 그런 인간의 도리 못 하는 직업 왜 하려고 그러냐 여자는 교사가 최고다 차라리 공무원을 해라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상처 많이 받았어요. 겨울 내내 누워있었죠. 정시 원서접수날 지나서야 지난줄 알았어요. 집에 돈 없는거 뻔히 알았으니, 아마 저는 어머니가 저와 고민해주고 긍정해주길 원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 없어요 저 중학생때 바람난거 들키고, 고1때 집나가시고, 고등학교 2년동안 이혼소송 서로 눈치싸움 머리싸움 자식이용해가며 염탐 등 온갖 더러운꼴 다 보고 이용당할대로 이용당해서 이제 인간으로도 안보여요. 아버지가 아니라 그놈, 그자식, 아저씨로 불러야돼요.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저 재수하고 대학합격해서 장학금이랑 알바로 번 돈으로 등록금 때우고, 100만원도 안되는 기숙사비라도 지원해달라고 제가 회사에 찾아갔을 때 였어요. 양육비 소송을 해야 겨우 뱉어내듯 내놓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달라고 하면 주겠거니 하고요. 사장이었거든요, 중소기업.
결과요? 못 받았어요. 마침 갔던 그 날이 직원들이 없는 날이었고, 곤란한 표정으로 너 왜 여기까지 찾아왔느냐 묻는 그자식 낯짝은 볼만 했네요. 사무실에 들일만도 한데 절대 안들이고 회의실에서 얘기하자 하더라고요. 그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커서 생각하니까 투명하네요. 바람은 지능문제라던데 역시 머저리.
돈없다 박봉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멀쩡히 알바하던 저를 재수학원에 우겨넣던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가고싶던 곳 보내줄 돈은 없으면서 재수학원 보낼 돈, 다달이 100씩 들어가던 그 돈은 있으셨나봐요. 재미있죠. 너 반드시 교대가야한다 하면서.
그게 사랑이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하기 싫었어요. 그렇게 교대가 좋으면 어머니나 갈 것이지 애도 싫어하고 뭐 가르치는 것도 귀찮아하는 딸년 하고싶은것도 안물어보고 무작정 교대라니.
제 삶을 살고 싶지 어머니 삶을 살고 싶진 않았어요
집에서 빨리 독립하고 싶었어요. 안되면 기숙사에라도 들어가고 싶었고요.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돈돈돈 공부공부공부 성적성적성적 다시 돈돈돈
수능쳐보니 인서울 상위대학 가능했어요. 매번 집에 돈없다 소리를 하셨어서, 그거 곧이 곧대로 믿고 포기했어요. 어쩔 수 없지 뭐 하면서.
하향지원했어요. 원래 문과였는데 취직은 빨리하고 싶어서 고르고 골라 공대로 교차지원 가능하던 국립대로. 전액은 아니었지만 장학금이랑 국장 받으니까 다 되더라고요. 어머니는 공대라고 싫어하셨지만 내가 돈벌어 내고, 장학금받아 등록금 냈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배를 쨌더니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돈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어요. 국장 생활비 대출 받아서 기숙사 가고, 택배도 직접 싸서 부차고, 개강일 전날에 방에 들어가 짐을 전부 풀고 침대에 드러누운 날.
네 생각이 그렇다니 존중해주마 하고 다달이 30만원씩 보내주시기로 하셨고, 그 때까지만 해도 제 인생이 너무 잘 풀릴 것 같았어요.
전공이 안맞았어요.
아 세상에 고르고 골라 그나마 머리가 덜아플 것 같은 곳을 찾아들어갔는데 장난아니었어요. 1학년이 70명인데 10명만 여자고, 234학년은 더 심하고. 여자애들은 기업취직보다는 공무원준비를 하거나 연락이 끊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네가 오니 술자리가 빛이 난다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으면서.
그래도 재밌었어요. 기숙사 밥 먹으러 가면 원래 안그랬는데 1.8인분쯤 떠다 먹으면서도 제가 이상한줄 몰랐거든요. 집에는 한달에 한번씩만 가고, 어머니도 제가 멀어지니 싫은 소리 안하려고 하고. 동생은 공부잘하던 누나 돈때문에 엄마때문에 좋은 대학 못 가고 그런데서 썩는다고 화내고, 엄마는 지가 좋다고 갔다고 소리지르고, 둘이 싸우고. 나는 재밌고. 공부 못 하던 동생 대학같지도 않은 이상한 사립대에 들어가 자취비용이다 등록금이다 600씩 땡기고, 그 돈이면 나 인서울 하고도 남았을 거 생각하니 환멸감들고.
1학기 한참 많이 먹다가 2학기땐 편의점빵하고 라면으로만 때우고, 용돈 모아 노트북 사고. 게임도 실컷 해보고 유튜브도 원없이 보고 건강 망치고 무기력해지고
내가 왜이러지? 자꾸 힘이 없고 이상해, 괜히 우울하고, 버스 안에서 주책없이 울어. 내일은 괜찮겠지?
어, 오늘은 또 괜찮네. 어, 이번엔 아니네. 생리하려나? 아닌데 생리 안하는데. 그렇게 2년.
엄마 나 아무래도 정신병원 가봐야할 것 같아. 했더니 앞에선 그래 그러던가 해놓고 다음날
내가 보기엔 너는 정상인데 아는 수녀님 있다 상담하시는 분이니까 가보자.
이혼하고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 상담소인데 그거로 괜찮아졌으면 내가 이러진 않았을 것 같은데 하면서도 정상이라잖아 내가 심사숙고 해서 겨우 어렵게 말꺼낸건데 만 하루도 안되어서 저러는 거 보니 병원가도 ㅁㅊㄴ취급이나 할텐데
그냥 이러다 언젠가 죽겠지. 말라죽든 자살하든 기어이 몸 망치든.
그러다 도저히 못 견뎌서, 죽을 것 같은데 너무 살고 싶어서 정신과에 가본게 이번 여름. 아주 어릴때부터 어머니의 폭력에 노출되어서 복합적으로 우울증이 온 것 같다며 처방해주신 신경안정제 반알. 오래갈거라고, 평생 먹어야할수도 있다고.
그 동안의 학점은 죄다 망했고, 국장받을 수준도 안되어서 다 대출로 때웠어요. 약 두세달 잘 먹다가 갑자기 끊었어요. 그냥 먹기 싫어서.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랬더니 또 이래. 전처럼 죽고싶진 않은데 그래요.
병원 가야죠. 그런데 별로 하고 싶은게 없어요. 다른거 배워보려해도 집에 돈도 없어요. 엄마는 취직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보네요.
전공이랑 너무 안맞아요. 즐겁지가 않아요, 재능도 없고 잘 하지도 못 하고 그 동안 뭘 배웠는지도 모르겠어요. 동기 친구들은 연구실에 들어갔다 칼졸업한다 느긋하게 생각해볼거다 그러는데 나만 촉박한 것 같아요. 몇년을 내다 버린 것 같아요. 와중에 엄마는 아파요, 일 오래 못 할 것 같대요. 빨리 독립하래요 내년이라도 독립해서 집 나가래요. 잠도 안자고 이런거나 적고 있으려니까 눈물나요. 잠이 오는데 자고 싶지가 않아요. 시간이 가는게 너무 무서워요. 뭘 하고 싶은건지, 뭘 좋아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게 많았었는데
고등학교 내내 시달리고 재수하며 또 시달려서 다 타버렸나봐요. 기력도 열정도 다 옛날 일 같아요. 아직 스물넷밖에 안된건데 벌써 이래요. 잘 살 수 있을까요. 정말 잘 살고 싶은데.
휴학하면 돈벌어야해요. 자격증도 따야해요. 내 앞길 잘 헤쳐나갈 수 있게 길을 닦아둬야해요.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사실 너무 숨고 싶고 쉬고 싶어요. 그런데 하루종일 누워있어도 쉰것같지가 않아요. 쉴수록 내가 점점 내려가는 것 같고, 어딘가 파묻히는 것 같아서 괴로운데 쉴 수 밖에 없어요. 아 차라리 그냥 이대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기억 못 하게.
별로 좋은 생은 아니었거든요. 마늘찧는 절구로 맞아봤어요? 9살때요. 엉덩이랑 허벅지랑 종아리 위주로 맞았어요. 아직도 다리가 안좋아서 잘 넘어져요. 오래 서있는 일 못 해요. 다리가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에 사흘은 혼이 나고 이틀은 부부싸움, 이틀은 눈치보는 날. 잠옷바람으로 쫓겨나기 뭘 잘했다고 우냔 소리 듣기 말하라길래 했다가 어딜 말대답이냐고 더 맞기 매 부러져서 문방구 가서 지휘봉 사오기
좀 커서 이럴거면 나가 살라길래 침착하게 통장 지갑 노트북 챙겨서 신발 신으니까 진짜 나가냐고 나쁜ㄴ취급받기
약 먹든 안먹든 바뀌는 건 없고 병원은 너무 머네요. 그래도 가야죠.
이래도 살아야죠. 트루먼쇼 처럼 짜잔 네 삶이 자작이었습니다~! 하면 눈물나게 기쁠 것 같아요. 거짓말같이 괴로우니까.
잘 있어요.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시험.. 잘 치고 올게요. 이번학기는 유난히 일찍 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