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임 하 후기 쓸까말까 고민함후기 쓰는 이유는 날 이해해주고 공감하는사람들이 나에게 어디서 가짢은 충고 댓글 보면서 본인 일인것 처럼 막 화내고, 계속 날 안쓰러워 하는것 때문에 후기 씀근데 난 상종가치가 없는건 무시함 첫단어부터 비난하는거 아예 안읽었음 다 스킵 님들도 감정이입해서 화내지 않으셔도 되요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배우자같지도 않는 인간들이나 애새끼들한테 평생 피뽑혀가며 죽지못해 살며이혼도 못하는 젊은친구들에게 나처럼 행복 찾아서 떠나라고 이야기해준거임행복하라고 말씀하신 분들 복 받으십시오 난 이제 괜찮습니다전처럼 풍족하지 못하지만 한국사회를 벗어나 먼 타국으로 떠나날 위해 살수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Part.1 제목 그대로임. 24의 이른나이에 첫사랑과 대학교 재학중 결혼함. 연애결혼 해서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함. 결혼 일찍해버리니 한창 창창한 나이에 많은걸 포기해야 했음. 내 인생이 곤두박질 하게 된 시기가 바로 결혼하고 나부터임. 사귈땐 몰랐는데 같이 사니 너무 차이가심함. 먹지도 않을 음식 잔득 사서 버리는게 일수였음. 이걸로 거의 매일 싸우면서 결혼 시작부터 지쳐감. 육아방식이나 소비습관이 안맞음. 내가 야근이 많은데 두 딸들은 커가면서 일찍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함. 사기업에서 경쟁이 참 치열한데 6시 딱 칼퇴근하기 어렵다는걸 딸들이 어찌 알겠음? 주말에라도 놀아주려고 하면 딸들은 엄마한테 달라붙어서 날 외면함.
Part.2 맞벌인데도 내돈으로만 값비싼 것들 많이 사주니 어린 딸들은 엄마만 따름. 고등학생도 아닌데 불필요한 사교육 너무 시키니 돈 모으기가 힘들었음. 생활패턴이나 습관도 안맞은데 이걸로 자주 싸움. 애들한테 돈 다 써버리면 우리 노후 어쩌냐 적당히해라 이게 내입장이었음. 회사에서 칼퇴가 힘들고 매일 밤 10~11시까지 야근해서 애들과 소통도 안됌. 회사 팀 분위기를 혼자 거스를수 없음. 애들은 뭐든 다 사주고 하고싶은거 다 하게 해주는 부인만 부모로 생각함. 애들이 커가면서 날 따돌리는게 느껴짐. 주말에도 가끔 일하고 해외로도 자주출장자주가는 나는 그냥 옆집 아저씨 취급당함.
Part.3 애들이 커지면서 나중엔 내가 퇴근해도 나한테 인사도 안함. 부인과 의견차이가 커지니 매일 싸우고 애들은 전부 엄마편에 붙음. 내가 번 돈으로 가족이 생활하는데 내가 그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왕따를 당함. 그 비참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음. 특히 애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때쯤 나 들리라는 식으로 욕하고 이야기좀 하려하면 방문잠가서 소통단절. 부모님이 너무생각남. 나도 부모님과 동생이랑 함께 살던 시절엔 행복했었음. 내가 잘못할때는 따끔하게 혼내지만 사랑으로 감싸주던 가족들이 있었음. 딸들 눈치보고 아내와 자주 싸우는 힘겨운 삶이었음. 발레, 무용, 영어과외, 첼로, 피아노, 비싼옷 이런거 너무 많이 쓰니까내가 그걸 자제하려고 했던거임.
Part.4 내가 아빠로서 다른걸 안해준게 아님. 애들 애기때 다 내가 씻기고 기저귀 갈고 키웠고 딸들한테 편지도 쓰고 외식도 자주함. 허나 부인과 성향이 너무다르니 자주싸우고 다해주는 엄마와 적당히 시키는 아빠 사이에서 딸들은 아빠를 철저히 외면하게됌. 결정적으로 주말에 내 생일날 큰애가 엄마한테 내 욕 하고 있는걸 들음. 아빠새끼 없어지면 좋겠다고 나 자고있다가 깼는데 아직 자는줄알고 험담하는걸 듣게됌. 이때 모든 정이 떨어지고 더이상 애새끼들도 꼴도보기 싫어짐.
Part.5 이혼 요구함.내 돈으로 온갖 호사 누리고 딸들도 원하는거 다 하고사니 거부당함. 난 더이상 사랑이 애정이 전혀 남지 않았음. 편안해야 할 가정이 나한테 가시방석이었음. 집에 들어가면 고통 그 자체였음. 회의감이 들었음. 내가 이렇게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음. 난 잘 다니던 회사 그길로 퇴사함. 이혼이 너무 하고싶었고 간절함. 이혼할 최후의 방법은 결국 퇴사였음. 한순간에 백수가 되서 몇달 집에서 노니 이혼당함. 이혼하는날 그들과 어떤 대화도 없었음. 난 말없이 떠남. 속이 후련했음.
Part.6 여동생은 비혼족이라 부모님이랑 계속 쭉 같이 살았음.백수에 돈 조금 들고나온 나는 다시 10 여년이 넘어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감. 부모님은 나더러 이랬음. 그러게 그때 결혼 성급하게 하지 말지 그랬냐 30대쯤 되서 신중히 하지그랬냐라고 하면서도 따뜻하게 받아줌. 우리 부모님이 원래 결혼 결사반대했었음. 내 전자식들은 아빠욕을 그렇게 하고 따 시키는데 부모님은 백수가되고 이혼당한 날 다시 품어줌. 내 생각 눈꼽만큼도 안하는 애들 낳지말고 동생처럼 부모님한테 차라리 효도할걸 하는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옴. 부모님집에서 몇달 신세지다가 한국을 떠야겟다고 결심함. 난 한국에 미련이 없었음. 회사일도 버겁고 더이상 거지같은 결혼따위도 생각 없었음. 딱 한가지 부모님이 가장 걸림.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을 볼때마다 미칠거같았음. 하지만 여동생이 결혼을 안하기로 하고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했음.
Part.7 동생하나 믿고 난 결국 한국을 떠남. 지금 먼 나라에서 잘 살고 있음. 처음에 고생 엄청했는데 지금 자리잡어가며 홀로 잘 살고있음. 대기업다니면서 벌때보단 비교도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먹고사는데 지장 없음. 영주권 따는게 목표임. 한국에서 아무리 잘나가도 해외에선 쩌리는 당연지사니 그냥 그걸 받아들이면됨. 난 상관없음. 여기서 삶을 말해봄. 지금 홈스테이에서 살고있음. 애있는 젊은 한인부부가 운영하는 주택임. 1층에 부부랑 한인여자 한명 삼. 2층에 나랑 외국인 2명 해서 총 3명이 각자 방에서 살고있음. 방 하나씩 사용하고 부엌에서 각자 음식 해서먹음. 처음엔 주인집에서 밥해주는거 돈주고 먹다가 이젠 내 입맛에 맞게 해먹음. 아침에 일어나면 빵에 우유먹고 내가 먹을 점심은 도시락만들어서 싸감. 직장에서 동료들이랑 같이 공원이나 잔디밭에서 먹음. 한화 월 250정도 범.
Part.8 5시쯤 보통 퇴근하면 혼자 쇼핑하러 싸돌아다님. 딱히 하는건 없음. 벤치에 앉아서 하늘 바라보고 음악들으면서 조용한 동네 돌아다님. 다운타운이랑 멀리 떨어져있음. 집 주변이 진짜 고요함. 사람들도 다둘 온순하고 친절함. 모임같은것도 가끔 나감. 주로 현지인이나 유학생들임. 보드게임하거나 피크닉가고 피자먹음. 소소한 축제같은거 있으면 찾아다님. 나 이혼남인지 관심도 없음. 연령 별로 안따지고 다같이 재밌게 놈. 지금 격투기도장도 다님. 나 한국살때 취미활동 꿈도 못꿈. 체육관 사람들이랑 맥주도마시고 놀러도감. 사람들이 디게 순수하고 소박함. 가끔 한인들 마주칠때가 있음. 친한 사람 몇몇 있음. 하지만 깊게는 안사귐. 한국인들 너무 서로 과거 털려고 함.
Part.9 난 23살부터 24살까지 연애 1번한게 평생 전부임. 여기와서 비혼주의 한인 한명 사겨봤고 지금 유럽출신 여자 만나고 있음. 그냥 좋아하는 감정 그대로만 만남. 누구아빠 누구남편으로가 아니라 그냥 나란 인간 그 자체인게 좋음. 여기서 자리잡느라 죽을고생했는데 돈 많이는 못벌어도 모을수 있어서 좋음. 희망이라는게 있어서 행복함. 한국서 좋은 아파트에서 차가있고번듯한 직장이 있어도 부인과 피터지게싸우고 애들한테 눈치보고 살때보다 가난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지금이 진심 행복함. 난 부모님과 동생이 자주 생각남. 그게 날 이따금 힘들게 함.
Part.10 내 평생 후회되는게 2가지 있음. 1. 영국유학 포기하고 결혼한거임. 2. 한시라도 빨리 이혼 안하고 10년넘게 버틴거임. 내 평생 잘했다고 생각하는거 2가지임. 1. 이혼 2. 한국 떠난거임 나같은 전직 가장이거나 배우자의 외도나 시댁문제가 있어도 이혼못하고 그냥 참고사는 사람들 걍 새출발 했음 좋겠음. 나도 돈 다뜯기고 나왔음. 서로 죽을때까지 배우자랑 싸우고 홧병나서 암걸리느니그냥 이혼하는게 나음. 나이 50 60되서는 이혼도 못함. 난 10년이상 차고다닌 족쇄 풀어서 홀가분함. 결혼에 절대 목매지말고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라고 말해주고 픔. 하고싶은 일이 있음 그냥 해야함. 그냥 내가 원하는거 하는게 최고임. 난 그래서 지금이 행복함. 이혼못했으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대기업 명함에 고급수트 입으면 뭐함. 해외에서 청바지에 빵모자 쓰고다니는 지금이 백배 행복함.
-후기- 대기업 퇴사하고 이혼당한 후 행복하게 살고있음
후기임 하 후기 쓸까말까 고민함후기 쓰는 이유는 날 이해해주고 공감하는사람들이 나에게 어디서 가짢은 충고 댓글 보면서 본인 일인것 처럼 막 화내고, 계속 날 안쓰러워 하는것 때문에 후기 씀근데 난 상종가치가 없는건 무시함 첫단어부터 비난하는거 아예 안읽었음 다 스킵 님들도 감정이입해서 화내지 않으셔도 되요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배우자같지도 않는 인간들이나 애새끼들한테 평생 피뽑혀가며 죽지못해 살며이혼도 못하는 젊은친구들에게 나처럼 행복 찾아서 떠나라고 이야기해준거임행복하라고 말씀하신 분들 복 받으십시오 난 이제 괜찮습니다전처럼 풍족하지 못하지만 한국사회를 벗어나 먼 타국으로 떠나날 위해 살수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Part.1
제목 그대로임. 24의 이른나이에 첫사랑과 대학교 재학중 결혼함. 연애결혼 해서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함. 결혼 일찍해버리니 한창 창창한 나이에 많은걸 포기해야 했음. 내 인생이 곤두박질 하게 된 시기가 바로 결혼하고 나부터임. 사귈땐 몰랐는데 같이 사니 너무 차이가심함. 먹지도 않을 음식 잔득 사서 버리는게 일수였음. 이걸로 거의 매일 싸우면서 결혼 시작부터 지쳐감. 육아방식이나 소비습관이 안맞음. 내가 야근이 많은데 두 딸들은 커가면서 일찍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함. 사기업에서 경쟁이 참 치열한데 6시 딱 칼퇴근하기 어렵다는걸 딸들이 어찌 알겠음? 주말에라도 놀아주려고 하면 딸들은 엄마한테 달라붙어서 날 외면함.
Part.2
맞벌인데도 내돈으로만 값비싼 것들 많이 사주니 어린 딸들은 엄마만 따름. 고등학생도 아닌데 불필요한 사교육 너무 시키니 돈 모으기가 힘들었음. 생활패턴이나 습관도 안맞은데 이걸로 자주 싸움. 애들한테 돈 다 써버리면 우리 노후 어쩌냐 적당히해라 이게 내입장이었음. 회사에서 칼퇴가 힘들고 매일 밤 10~11시까지 야근해서 애들과 소통도 안됌. 회사 팀 분위기를 혼자 거스를수 없음. 애들은 뭐든 다 사주고 하고싶은거 다 하게 해주는 부인만 부모로 생각함. 애들이 커가면서 날 따돌리는게 느껴짐. 주말에도 가끔 일하고 해외로도 자주출장자주가는 나는 그냥 옆집 아저씨 취급당함.
Part.3
애들이 커지면서 나중엔 내가 퇴근해도 나한테 인사도 안함. 부인과 의견차이가 커지니 매일 싸우고 애들은 전부 엄마편에 붙음. 내가 번 돈으로 가족이 생활하는데 내가 그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왕따를 당함. 그 비참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음. 특히 애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때쯤 나 들리라는 식으로 욕하고 이야기좀 하려하면 방문잠가서 소통단절. 부모님이 너무생각남. 나도 부모님과 동생이랑 함께 살던 시절엔 행복했었음. 내가 잘못할때는 따끔하게 혼내지만 사랑으로 감싸주던 가족들이 있었음. 딸들 눈치보고 아내와 자주 싸우는 힘겨운 삶이었음. 발레, 무용, 영어과외, 첼로, 피아노, 비싼옷 이런거 너무 많이 쓰니까내가 그걸 자제하려고 했던거임.
Part.4
내가 아빠로서 다른걸 안해준게 아님. 애들 애기때 다 내가 씻기고 기저귀 갈고 키웠고 딸들한테 편지도 쓰고 외식도 자주함. 허나 부인과 성향이 너무다르니 자주싸우고 다해주는 엄마와 적당히 시키는 아빠 사이에서 딸들은 아빠를 철저히 외면하게됌. 결정적으로 주말에 내 생일날 큰애가 엄마한테 내 욕 하고 있는걸 들음. 아빠새끼 없어지면 좋겠다고 나 자고있다가 깼는데 아직 자는줄알고 험담하는걸 듣게됌. 이때 모든 정이 떨어지고 더이상 애새끼들도 꼴도보기 싫어짐.
Part.5
이혼 요구함.내 돈으로 온갖 호사 누리고 딸들도 원하는거 다 하고사니 거부당함. 난 더이상 사랑이 애정이 전혀 남지 않았음. 편안해야 할 가정이 나한테 가시방석이었음. 집에 들어가면 고통 그 자체였음. 회의감이 들었음. 내가 이렇게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음. 난 잘 다니던 회사 그길로 퇴사함. 이혼이 너무 하고싶었고 간절함. 이혼할 최후의 방법은 결국 퇴사였음. 한순간에 백수가 되서 몇달 집에서 노니 이혼당함. 이혼하는날 그들과 어떤 대화도 없었음. 난 말없이 떠남. 속이 후련했음.
Part.6
여동생은 비혼족이라 부모님이랑 계속 쭉 같이 살았음.백수에 돈 조금 들고나온 나는 다시 10 여년이 넘어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감. 부모님은 나더러 이랬음. 그러게 그때 결혼 성급하게 하지 말지 그랬냐 30대쯤 되서 신중히 하지그랬냐라고 하면서도 따뜻하게 받아줌. 우리 부모님이 원래 결혼 결사반대했었음. 내 전자식들은 아빠욕을 그렇게 하고 따 시키는데 부모님은 백수가되고 이혼당한 날 다시 품어줌. 내 생각 눈꼽만큼도 안하는 애들 낳지말고 동생처럼 부모님한테 차라리 효도할걸 하는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옴. 부모님집에서 몇달 신세지다가 한국을 떠야겟다고 결심함. 난 한국에 미련이 없었음. 회사일도 버겁고 더이상 거지같은 결혼따위도 생각 없었음. 딱 한가지 부모님이 가장 걸림.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을 볼때마다 미칠거같았음. 하지만 여동생이 결혼을 안하기로 하고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했음.
Part.7
동생하나 믿고 난 결국 한국을 떠남. 지금 먼 나라에서 잘 살고 있음. 처음에 고생 엄청했는데 지금 자리잡어가며 홀로 잘 살고있음. 대기업다니면서 벌때보단 비교도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먹고사는데 지장 없음. 영주권 따는게 목표임. 한국에서 아무리 잘나가도 해외에선 쩌리는 당연지사니 그냥 그걸 받아들이면됨. 난 상관없음. 여기서 삶을 말해봄. 지금 홈스테이에서 살고있음. 애있는 젊은 한인부부가 운영하는 주택임. 1층에 부부랑 한인여자 한명 삼. 2층에 나랑 외국인 2명 해서 총 3명이 각자 방에서 살고있음. 방 하나씩 사용하고 부엌에서 각자 음식 해서먹음. 처음엔 주인집에서 밥해주는거 돈주고 먹다가 이젠 내 입맛에 맞게 해먹음. 아침에 일어나면 빵에 우유먹고 내가 먹을 점심은 도시락만들어서 싸감. 직장에서 동료들이랑 같이 공원이나 잔디밭에서 먹음. 한화 월 250정도 범.
Part.8
5시쯤 보통 퇴근하면 혼자 쇼핑하러 싸돌아다님. 딱히 하는건 없음. 벤치에 앉아서 하늘 바라보고 음악들으면서 조용한 동네 돌아다님. 다운타운이랑 멀리 떨어져있음. 집 주변이 진짜 고요함. 사람들도 다둘 온순하고 친절함. 모임같은것도 가끔 나감. 주로 현지인이나 유학생들임. 보드게임하거나 피크닉가고 피자먹음. 소소한 축제같은거 있으면 찾아다님. 나 이혼남인지 관심도 없음. 연령 별로 안따지고 다같이 재밌게 놈. 지금 격투기도장도 다님. 나 한국살때 취미활동 꿈도 못꿈. 체육관 사람들이랑 맥주도마시고 놀러도감. 사람들이 디게 순수하고 소박함. 가끔 한인들 마주칠때가 있음. 친한 사람 몇몇 있음. 하지만 깊게는 안사귐. 한국인들 너무 서로 과거 털려고 함.
Part.9
난 23살부터 24살까지 연애 1번한게 평생 전부임. 여기와서 비혼주의 한인 한명 사겨봤고 지금 유럽출신 여자 만나고 있음. 그냥 좋아하는 감정 그대로만 만남. 누구아빠 누구남편으로가 아니라 그냥 나란 인간 그 자체인게 좋음. 여기서 자리잡느라 죽을고생했는데 돈 많이는 못벌어도 모을수 있어서 좋음. 희망이라는게 있어서 행복함. 한국서 좋은 아파트에서 차가있고번듯한 직장이 있어도 부인과 피터지게싸우고 애들한테 눈치보고 살때보다 가난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지금이 진심 행복함. 난 부모님과 동생이 자주 생각남. 그게 날 이따금 힘들게 함.
Part.10
내 평생 후회되는게 2가지 있음. 1. 영국유학 포기하고 결혼한거임. 2. 한시라도 빨리 이혼 안하고 10년넘게 버틴거임. 내 평생 잘했다고 생각하는거 2가지임. 1. 이혼 2. 한국 떠난거임 나같은 전직 가장이거나 배우자의 외도나 시댁문제가 있어도 이혼못하고 그냥 참고사는 사람들 걍 새출발 했음 좋겠음. 나도 돈 다뜯기고 나왔음. 서로 죽을때까지 배우자랑 싸우고 홧병나서 암걸리느니그냥 이혼하는게 나음. 나이 50 60되서는 이혼도 못함. 난 10년이상 차고다닌 족쇄 풀어서 홀가분함. 결혼에 절대 목매지말고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라고 말해주고 픔. 하고싶은 일이 있음 그냥 해야함. 그냥 내가 원하는거 하는게 최고임. 난 그래서 지금이 행복함. 이혼못했으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대기업 명함에 고급수트 입으면 뭐함. 해외에서 청바지에 빵모자 쓰고다니는 지금이 백배 행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