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上元日)◈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음력 정월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이 날이 설날만큼 의미가 있었다. 연간 약 2 백 가지인 우리 세시풍속 중 절반이 정월에 몰려 있고, 정월 세시풍속의 절반이 대보름과 관련이 있다. 달의 움직임에 따라 생활했기에 한 해의 첫 만월을 매우 중히 여긴 것이다. 설날부터 대보름날까지는 세시 풍속도 다양하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음력 정월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불렀다. 문일평(文一平)의 [호암전집 湖岩全集]에 다음과 같이 상원에 대한 일화가 나타나고 있다. 상원은 정월 십오 일이니, 이 날에 첫째 생각나는 것은 약밥이다. 전하는 말에는 신라 소지왕(炤智王)이 까마귀의 경고(警告)로 말미암아 금갑(琴匣)을 쏘아 위난(危難)에서 벗어난 날이 마침 이 상원이므로 이날로써 까마귀의 제일(祭日)을 삼아 약밥을 지어 무르추개질하던 것이 후세에 와서는 국속(國俗)을 이루어 마치 떡국이 원일(元日)의 시식(時食)이 되듯이 약밥이 상원의 시식이 되고 말았다. ◆ 어 원 ◆. 정월(正月)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 년의 운세를 점쳐보는 달이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 정월은 천지인(天地 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 "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인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을 한자어로는 " 상원 (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이 하나로, 삼원(10월 15일)을 말한다. 도가에서 이 날은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 원(元) "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통사회의 절일(절일)로서 정월 대보름(1월 15일), 7 월 백중(7월 15일), 8월 한가위(8월 15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명일은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들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태양을 " 양(陽) "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이에 반하여 달은 " 음(陰) "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보면 달 - 여신 - 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 매김 한다. ◆ 정월 대보름의 유래 ◆. 정월의 절일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태고적 풍속은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대보름을 8대 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정월(소정월)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보름의 풍속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대사회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겠다. '아홉 차례' 대보름 전날의 세시민속으로 '아홉 차례' 라는 것이 있었다. 이날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차례 읽어야 하고, 새끼를 꼬면 아홉 발을 꽈야 하고 나무를 하면 아홉 단을 해야 한다. 빨래를 하면 아홉 가지, 물을 길으면 아홉 동이, 매 맞으면 아홉 대를 맞아야 한다. 오곡밥도 아홉 번 먹었다. '9'라는 숫자는 길수(吉數)인 '3'이 세 번 곱해진 큰 길수이다. 그러나 '아홉(9)수'는 너무 지나치게 운수가 좋다보니 액운이 따를 수 있으므로 아홉수의 나이에는 혼인을 하지말라는 등의 속신도 있다. - [입춘], [삼짇날], [중양절] 참조 달이 뜨면 아이들은 뺑대쑥단에 자기 나이만큼 묶은 볏 짚 끈을 하나 씩 풀어 태우며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대보름 전야에 베푸는 호기놀이·오방놀이·지신밟기도 있다. 풍악을 치고 집집을 누비며 대청-큰방-우물-부엌-측간-곳간 등을 돌며 잡귀와 잡신을 공갈하여 내쫓아 주고 대가로서 술과 떡을 대접받고 곡식을 얻어 모은다. 모은 곡식으로 떡을 빚어 나누어 먹으면 연중 병귀가 가까이 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다. 볏가릿대 풍속 - 농가에서 정월 보름날 하루 전에 볏짚단의 밑 부분을 묶고 그 안에 벼·보리·조·기장·수수·콩·팥 등 갖가지 곡식을 이삭채 싸서 긴 장대 끝에 매달아 안채 한 귀퉁이나 외양간 옆에 높이 세운다. 이것을 볏가릿대라 하는데 곡식을 넣어 묶은 짚단 밑에 목화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목화를 매달기도 하고 또 새끼줄을 여러 개 늘어뜨려 놓기도 하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가지 많은 나무에 여러 곡식이삭과 목화송이를 장식하여 세우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새벽 일찍이 집안 아이들로 하여금 볏가릿대주위를 돌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를 해가 뜰 때까지 부르게 한다. 볏가릿대는 음력 2월 1일 농사를 시작하는 머슴날에 거두는데. 이때 짚단 안에 넣었던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 볏가릿대 풍속은 한강 이북에서는 볼 수 없고 한강 이남의 영호남 지방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우리민족의 고대 생활에서 유래된 고유의 풍속인 것을 알 수 있다. [보름 절식] 우정솥 - 밤이 이슥해지면 또래들은 밥과 나물을 훔쳐 비벼 먹곤 했다. 어머니들께서는 훔쳐갈 밥을 우정(友情) 솥 안에 넣어 두셨는데 가끔 토끼며 닭서리까지 하다가 경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보름절식(귀밝이술과 부럼, 사진1) 보름 새벽에는 오곡으로 밥을 지어먹고, 두부, 취나물, 콩나물 등을 먹는다. 아침에 찰밥을 지어 성주신에게 바치고, 이때 바쳤던 술을 '귀밝이술'(또는 명이주(明耳酒), 치롱주(癡聾酒))이라 하여 마셨다. 이 풍습도 아직 남아 있는데, 대보름날 새벽에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잘 들린다는 것이다. 이날 또, 호두 은행 잣 등을 깨물며 [올 한해 피부병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부럼 깨기」라고 한다. 부럼은 피부 부스럼에서 나온 말이다. 나이 수대로 깨뜨리기도 하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몇 개만 깬다. 달집태우기 - 낮에는 윷놀이 판이 벌어지고, 저녁이면 온 동네 사람이 마을 동산에 올라 동천에 뜨는 달을 맞이하며 "달 봤다"외치면서 절을 하며 한해 소원을 빌었다. 그런 후 장작, 볏짚, 솔가지, 댓가지로 높이 쌓아 만든 달집에 불을 사르기로 달맞이를 하며 그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달집태우기] 액연(厄鳶) 태우기 - 겨우내 날리며 놀던 연을 줄을 끊어 날려보내거나 달집에 넣어 태운다. 연에다 '액(厄)'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 혹은 '某家某生身厄消滅'이 라고 써서 띄우다가 해질 무렵에 그 연줄을 끊어버린다. 액운(厄 運)을 멀리하고 태우기 위함이다. 이날 이후 연을 날리면 상놈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남녀 줄다리기 - 달맞이가 끝나면 남정네와 여인네들이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 는데 여인네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남정네들은 슬그머니 져주기도 했다. 달은 여인이며 풍요의 대지이기 때문이다. 다리 밟기(踏橋) - 이밖에도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언덕에 올라가 달뜨는 것을 기다리는 영월(迎月), 일년간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양의 수표교(水標橋) 등을 밟는 행사와 지방에 따라 숱한 민속행사가 있었다. 쥐불놀이 - 요즘 대보름날 밤에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쥐불놀이는 원래 새해 첫 쥐날 상자일(上子日)) 민속이었다. 남자들이 논두렁에 불을 질러 쥐를 없앰으로써 그해 풍년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때 여자들은 빈 방아를 찧으며 쥐가 없어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먹거리 - 세시의 먹을거리로는 정초의 떡국·식혜·부침개·엿·조청·인절미 등이 있고, 대보름날은 부럼 외에 차조인절미·나박김치·고사리·시래기·호박·가지·취나물 등이 있었다. 또한 대보름을 대표하는 음식은 약밥이다. 대추·밤·꿀·잣 등을 섞은 찹쌀밥으로 신라 때부터 즐겨 먹고 있는데 이는 왕실의 위기를 구해준 까마귀 제사 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쌀에 콩·팥 등을 섞은 오곡밥도 해 먹는다. 오곡밥은 세 집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이웃과 나눠 먹는다. '굶는 개' - 사람들은 이것저것 잘 먹고 마셨지만 이날만큼은 개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보름날 개가 밥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끓는 등 발육이 좋지 않다는 속설 때문이라 하지만 크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밤새 짖어댈 개의 배를 미리 허기지게 하여 지쳐 짖지 못하게 할 필요 때문이다. 지금도 굶는 것을 "개, 보름 쇠 듯 한 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즐거이 지내야 할 명절을 특별한 음식도 없이 무미하게 지냄을 이르는 말이다. 대보름(上元) 대보름은 그해 맨먼저 보름이 되는 날로서 한자로는 상원(上元, 으뜸되는 밤)이라고 하며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 행사중 5분의 1이 넘는 행사가 집중될 만큼 중요한 날이다. 상원 (上元)이란 중원(中元, 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 음력 10월 15일)에 대칭되는 말이다. 음력 1월 15일(정월 보름날)을 대보름이라 하며, 음력 1월 14일을 작은 보름이라 한다. 민속 놀이와 세시 행사들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날이며, 마을 신에 대한 大同儀禮, 大同會議, 大同놀이 등이 이때 모두 이루어진다. 보름날 아침에 집집마다 약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다섯가지 이상의 곡식(쌀, 보리, 콩, 조, 기장)을 섞어 지은 밥을 나누어 먹었으며 세집 이상의 타성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아진다고 전해온다. 대보름 행사는 14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달맞이나 달집태우기를 했다. 밤에 들판으로 나가서, 새싹이 잘 자라게 하고 논밭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쥐불을 놓았다. 아이들은 연날리기, 바람개비돌리기, 실싸움, 돈치기 따위를 즐겼으며, 어른들은 다리밟기, 편싸움, 횃불싸움, 줄다리기, 동채싸움, 놋다리밟기 따위를 했다. 대보름날 밤에는 항상 온 마을이, 때로는 마을과 마을이 대항하는 경기를 집단적으로 즐겼다. 정월 대보름에는 여러 종류의 세시풍속 행사가 벌어졌다. 이는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민족이 대보름을 풍요의 원점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보름밤지키기: 정월 열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해서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아이가 있으면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놓는다. 부럼깨기: 밤, 잣, 호두, 은행 등을 소리나게 깨물어 먹으면 1년동안 이가 강해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를『부럼』이라 하며, 일 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져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귀밝이술(耳明酒): 새벽에 맑은 술, 청주(淸酒)를 데우지 않고 마시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지고 귓병이 생기지 않으며 일년내내 좋은 소식만 있고 귀가 밝아지고 눈이 잘 보인다고 한다. 어린이에게도 귀밝이술을 마시게 한다. 보름나물(묵은나물) : 호박고시, 무고시, 외고시, 가지나물, 버섯고사리 등 여름에 말려둔 나물을 삶아 먹는데 이를 진채식(陣菜食)이라고도 한다. 대보름날 이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음 다리밟기: 다리를 밟아 건강을 기원한다.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달맞이: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 농악대의 상쇠가 악기를 울리면 달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소망을 빌었다. 농점(農占) : 달집 태우기, 사발점, 그림자점, 달불이, 소밥주기 등으로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친다. 소밥주기: 대보름날 아침에 찰밥과 나물을 키에 담아 가지고 외양간에 가서 소에게 준다. 소가 밥과 나물 중 어느 것을 먼저 먹는가에 따라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달점: 달의 빛깔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붉으면 가뭄, 허옇게 비추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불놀이: 깡통 속에 솔방울이나 관솔을 넣어 불을 지핀 뒤 깡통을 빙빙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더위팔이 : 아침해가 뜨기전에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대합하면『내더위』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자기의 나이만큼 하고나면 더위를 팔아서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동제(洞祭): 마을 공동체의 신에게 제를 올린다. 제의(祭儀)와 놀이 : 지신밟기, 별신굿, 안택고사, 용궁맞이, 연띄우기, 연싸움, 줄다리기, 용잡이, 놀이, 윷놀이, 널뛰기, 걸궁(농악), 햇불놀이, 다리밟기 문학 속에 나타난 '정월 대보름' 농촌에서는 그렇지도 않겠지만, 도시에서는 지내 놓고 보니 어제가 정월 대보름이었구나 할 사람은 없을까. 이 날은 개가 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날이라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지만, 음력이 천대를 받는 요즈음 같아서는 사람이라고 별다른 대보름을 쇠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집안에 노인이라도 계시면 귀 밝으라는 귀밝이술, 부스럼 나지 말라는 부럼 깨물기라도 있음직하고, 유난스러운 집 같으면 오곡밥에 취로 복쌈을 싸 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하다못해 호박고지 무시래기를 삶아 진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 년 열두 달, 명절이 적지는 않지만, 정월 보름 전후 며칠도 어느 명절에 못지 않을 만큼은 세시(歲時)의 습속(習俗)이 많은 듯하며, 줄다리기, 연날리기, 더위팔기, 제웅치우기……누구나가 아득한 기억을 헤쳐 가면서 회상에 잠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신정에, 구정에 삼중 과세를 한다는 우리들이, 갈수록 이러한 아늑한 습속에 굶주려 가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천관우 千寬宇/신세시기(新歲時記) 겨울》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일 년을 단위로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속을 말한다. 밥훔쳐먹기 '달그락 달그락'달래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집에는 달맞이를 하고 먼저 돌아온 어머니와 달래 둘 뿐인데 아까부터 부엌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이던 달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소곤소곤 쑥덕쑥덕' 점점 더 커지는 그 소리는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어머니,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나요.""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러니?" 정초부터 입었던 한복을 손질하고 계신 어머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참, 분명 부엌에서 인기척이 난다니까요."재촉하는 달래를 쳐다보시며 어머니께서는 소리 없이 웃으실 뿐이었습니다."거기 누구냐!" 참다 못한 달래는 눈을 꾹 감고서 용기를 내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후다다닥' 재빠르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소리에 달래는 방문을 화들짝 열었습니다. 우르르 몰려 나가는 뒷모습이 낯익은 동네 아이들이었습니다."너희들 누구야!" 도망치는 아이들의 등뒤에 달래는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동네 아이들이에요!""놔 둬라!"방문을 닫은 달래는 아직도 뛰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듯한 어머니께서는 달래를 향해 빙긋이 웃어 보이셨습니다."정월 대보름날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훔쳐먹는 풍습이 있단다.""밥을 훔쳐먹어요?" "그렇단다. 각 집에서는 아이들이 쉽게 훔쳐갈 수 있게 일부러 눈에 잘 띄는 부뚜막에 밥을 놓아둔단다." "그래서 아까 밥 푸실 때 식구 수보다 밥을 많이 퍼 두셨군요. 아이들이 와서 가져가라고." "네 아버지도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밥훔쳐먹기를 하셨다고 하는구나.""아버지가요?""네 아버지 말씀이 보름날 친구들끼리 모여 밤늦은 시간까지 실컷 놀다보면 출출해진다는구나. 그러면 미리 준비해둔 큰 그릇을 가지고 몰래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서 오곡밥과 보름나물을 담아 나왔더란다. 그리고는 그 중 한 친구네 집에 모여 훔쳐간 밥과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놀다가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들 갔다고 하시더구나.""아버지도 장난꾸러기이셨나 봐요." 밥그릇을 들고 남의 집 부엌에서 뛰쳐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달래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달래의 놀란 가슴은 어느새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옮긴글 > 내일이 정월 대보름입니다. 옛 세시풍속들은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인터넷에서 대보름에 관한 이것 저것을 짜깁기 식으로 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중복된 것도 있을거구요. 저도 하루종일 묵은 나물을 다듬어 볶고 오곡밥을 지어서 야근을 나가는 남편과 함께 온가족이 모여서 저녁을 먹었답니다. 남편은 맛있는지 조금 더 달라고 밥그릇을 내미는데 두 녀석들은 오곡밥과 나물이 별로 입맛을 당기지 않나 봅니다. 아빠가 오늘은 묵은 나물을 먹어야 한다니까 마지못해 골고루 한번씩 젓가락은 갔지만 그 다음은 된장찌게에 넣은 두부와 구운김만 싸서 먹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야채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니 묵은 나물은 더 입에 맞을리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대보름에 관하여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해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두 녀석들은 벌써 베란다에 나가서 보름달을 보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소원을 빌었답니다...간절히 말이예요...^^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저도 마음속으로 같이 소원을 빌었답니다. 보름 하루 전 날인 14일 밤에 달보며 소원을 비는 거라지요..아마도... 녀석들은 내일 아침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빠한테 더위를 판다고 벼르고 있던데 아침이 되면 까맣게 잊지나 않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녀석들에게 아침에 부럼도 한개쯤 깨물게하고 아주 조금이지만 귀밝이술도 먹여보렵니다. 고운님들도 오곡밥에 묵은나물 드시고 부럼도 깨고 귀밝이술도 한 모금 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일년내내 아픈 곳 없이 건강하시고 가족이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오늘이 입춘<入春>이더군요. 그런데 지금 밖에는 겨울밤 같은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리네요. 이젠 추위가 오면 꽃샘추위라고 해야할까요.. 제주도엔 벌써 봄을 제일 먼저 알린다는 영춘화가 피었고 백매화,홍매화 등등... 봄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TV로 접했는데.. 아직은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성급한가 봅니다. 오늘밤은 왠지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럽게 귓전에 와 닿네요. 하지만 ...따뜻한 밤 편안한 밤 되세요. 내일은 몹시 춥다는군요. 출근길엔 따뜻하고 두툼한 겨울 외투를 준비하셔야겠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으려면 말이예요.....^^ 입춘(立春) 24절기 중의 첫번째 절기.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인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다.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한편,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옮긴글>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바람 - 시인과촌장 살구꽃지고 복사꽃피던날 - 안치환 ※흐르는 배경음악을 키보드의 ESC 버튼을 눌러정지시킨 후에 듣고 싶으신 곡의 재생버튼을 누르세요. 봄노래를 두 곡 올려보았지만 역시 너무 이르군요. 앞으로 일주일 넘게 찾아 뵙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우리집 녀석들이 개학이 며칠 앞으로 다가 왔거든요. 녀석들이 밀리지 않고 잘 하긴 했지만 .. 그래도 녀석들의 방학 과제물을 좀 마무리 지어야 할듯합니다. 마지막엔 늘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걸 느끼니까요. 고운님들 늘~~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제게 주셔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들국화*
살아가면서...(정월대보름의 유래와 세시풍속)
◈정월대보름(上元日)◈
음력 정월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이 날이 설날만큼 의미가 있었다.
연간 약 2 백 가지인 우리 세시풍속 중 절반이 정월에 몰려 있고,
정월 세시풍속의 절반이 대보름과 관련이 있다.
달의 움직임에 따라 생활했기에 한 해의 첫 만월을 매우 중히 여긴 것이다.
설날부터 대보름날까지는 세시 풍속도 다양하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음력 정월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불렀다.
문일평(文一平)의 [호암전집 湖岩全集]에
다음과 같이 상원에 대한 일화가 나타나고 있다.
상원은 정월 십오 일이니, 이 날에 첫째 생각나는 것은 약밥이다.
전하는 말에는 신라 소지왕(炤智王)이 까마귀의 경고(警告)로 말미암아
금갑(琴匣)을 쏘아 위난(危難)에서 벗어난 날이 마침 이 상원이므로
이날로써 까마귀의 제일(祭日)을 삼아 약밥을 지어 무르추개질하던 것이
후세에 와서는 국속(國俗)을 이루어 마치 떡국이 원일(元日)의 시식(時食)이
되듯이 약밥이 상원의 시식이 되고 말았다.
◆ 어 원 ◆.
정월(正月)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 년의 운세를 점쳐보는 달이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 정월은 천지인(天地 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 "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인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을 한자어로는 " 상원 (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이 하나로, 삼원(10월 15일)을 말한다.
도가에서 이 날은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 원(元) "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통사회의 절일(절일)로서 정월 대보름(1월 15일), 7
월 백중(7월 15일), 8월 한가위(8월 15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명일은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들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태양을 " 양(陽) "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이에 반하여 달은 " 음(陰) "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보면 달 - 여신 - 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 매김 한다.
◆ 정월 대보름의 유래 ◆.
정월의 절일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태고적 풍속은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대보름을 8대 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정월(소정월)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보름의 풍속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대사회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겠다.
'아홉 차례'
대보름 전날의 세시민속으로 '아홉 차례' 라는 것이 있었다.
이날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차례 읽어야 하고,
새끼를 꼬면 아홉 발을 꽈야 하고 나무를 하면 아홉 단을 해야 한다.
빨래를 하면 아홉 가지, 물을 길으면 아홉 동이, 매 맞으면 아홉 대를 맞아야 한다.
오곡밥도 아홉 번 먹었다. '9'라는 숫자는 길수(吉數)인 '3'이 세 번 곱해진 큰 길수이다.
그러나 '아홉(9)수'는 너무 지나치게 운수가 좋다보니 액운이 따를 수 있으므로
아홉수의 나이에는 혼인을 하지말라는 등의 속신도 있다. - [입춘], [삼짇날], [중양절] 참조
달이 뜨면 아이들은 뺑대쑥단에 자기 나이만큼 묶은 볏 짚 끈을 하나 씩 풀어 태우며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대보름 전야에 베푸는 호기놀이·오방놀이·지신밟기도 있다.
풍악을 치고 집집을 누비며 대청-큰방-우물-부엌-측간-곳간 등을 돌며
잡귀와 잡신을 공갈하여 내쫓아 주고 대가로서 술과 떡을 대접받고 곡식을 얻어 모은다.
모은 곡식으로 떡을 빚어 나누어 먹으면 연중 병귀가 가까이 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다.
볏가릿대 풍속 -
농가에서 정월 보름날 하루 전에 볏짚단의 밑 부분을 묶고
그 안에 벼·보리·조·기장·수수·콩·팥 등 갖가지 곡식을 이삭채 싸서 긴 장대 끝에 매달아
안채 한 귀퉁이나 외양간 옆에 높이 세운다.
이것을 볏가릿대라 하는데 곡식을 넣어 묶은
짚단 밑에 목화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목화를 매달기도 하고 또 새끼줄을
여러 개 늘어뜨려 놓기도 하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가지 많은 나무에 여러
곡식이삭과 목화송이를 장식하여 세우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새벽 일찍이 집안 아이들로 하여금 볏가릿대주위를 돌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를 해가 뜰 때까지 부르게 한다. 볏가릿대는 음력 2월 1일 농사를 시작하는
머슴날에 거두는데.
이때 짚단 안에 넣었던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 볏가릿대 풍속은 한강 이북에서는 볼 수 없고
한강 이남의 영호남 지방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우리민족의 고대 생활에서 유래된 고유의 풍속인 것을 알 수 있다.
[보름 절식]
우정솥 -
밤이 이슥해지면 또래들은 밥과 나물을 훔쳐 비벼 먹곤 했다.
어머니들께서는 훔쳐갈 밥을 우정(友情) 솥 안에 넣어 두셨는데
가끔 토끼며 닭서리까지 하다가 경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보름절식(귀밝이술과 부럼, 사진1)
보름 새벽에는 오곡으로 밥을 지어먹고, 두부, 취나물, 콩나물
등을 먹는다.
아침에 찰밥을 지어 성주신에게 바치고,
이때 바쳤던 술을 '귀밝이술'(또는 명이주(明耳酒), 치롱주(癡聾酒))이라 하여 마셨다.
이 풍습도 아직 남아 있는데, 대보름날 새벽에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잘 들린다는 것이다. 이날 또, 호두 은행 잣 등을 깨물며
[올 한해 피부병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부럼 깨기」라고 한다. 부럼은 피부 부스럼에서 나온 말이다. 나이 수대로 깨뜨리기도
하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몇 개만 깬다.
달집태우기 -
낮에는 윷놀이 판이 벌어지고, 저녁이면 온 동네 사람이 마을 동산에 올라 동천에
뜨는 달을 맞이하며 "달 봤다"외치면서 절을 하며 한해 소원을 빌었다.
그런 후 장작, 볏짚, 솔가지, 댓가지로 높이 쌓아 만든 달집에 불을 사르기로
달맞이를 하며 그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달집태우기]
액연(厄鳶) 태우기 -겨우내 날리며 놀던 연을 줄을 끊어 날려보내거나
달집에 넣어 태운다. 연에다 '액(厄)'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 혹은
'某家某生身厄消滅'이 라고 써서 띄우다가
해질 무렵에 그 연줄을 끊어버린다. 액운(厄 運)을
멀리하고 태우기 위함이다. 이날 이후 연을 날리면 상놈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남녀 줄다리기 -
달맞이가 끝나면 남정네와 여인네들이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
는데 여인네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남정네들은 슬그머니 져주기도 했다.
달은 여인이며 풍요의 대지이기 때문이다.
다리 밟기(踏橋) -
이밖에도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언덕에 올라가 달뜨는 것을 기다리는 영월(迎月),
일년간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양의 수표교(水標橋) 등을 밟는 행사와
지방에 따라 숱한 민속행사가 있었다.
쥐불놀이 -
요즘 대보름날 밤에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쥐불놀이는 원래 새해 첫 쥐날
상자일(上子日)) 민속이었다.
남자들이 논두렁에 불을 질러 쥐를 없앰으로써 그해 풍년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때 여자들은 빈 방아를 찧으며 쥐가 없어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먹거리 -
세시의 먹을거리로는 정초의 떡국·식혜·부침개·엿·조청·인절미 등이 있고,
대보름날은 부럼 외에 차조인절미·나박김치·고사리·시래기·호박·가지·취나물 등이 있었다.
또한 대보름을 대표하는 음식은 약밥이다.
대추·밤·꿀·잣 등을 섞은 찹쌀밥으로 신라 때부터 즐겨 먹고 있는데 이는
왕실의 위기를 구해준 까마귀 제사 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쌀에 콩·팥 등을 섞은 오곡밥도 해 먹는다. 오곡밥은 세 집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이웃과 나눠 먹는다.
'굶는 개' -
사람들은 이것저것 잘 먹고 마셨지만 이날만큼은 개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보름날 개가 밥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끓는 등 발육이 좋지 않다는
속설 때문이라 하지만 크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밤새 짖어댈
개의 배를 미리 허기지게 하여 지쳐 짖지 못하게 할 필요 때문이다.
지금도 굶는 것을 "개, 보름 쇠 듯 한 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즐거이 지내야 할 명절을 특별한 음식도 없이 무미하게 지냄을 이르는 말이다.
대보름(上元)
대보름은 그해 맨먼저 보름이 되는 날로서 한자로는 상원(上元, 으뜸되는 밤)이라고 하며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 행사중 5분의 1이 넘는 행사가 집중될 만큼 중요한 날이다. 상원
(上元)이란 중원(中元, 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 음력 10월 15일)에
대칭되는 말이다. 음력 1월 15일(정월 보름날)을 대보름이라 하며,
음력 1월 14일을 작은 보름이라 한다. 민속 놀이와 세시 행사들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날이며, 마을 신에 대한 大同儀禮, 大同會議, 大同놀이 등이
이때 모두 이루어진다.
보름날 아침에 집집마다 약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다섯가지 이상의 곡식(쌀, 보리, 콩, 조, 기장)을 섞어 지은 밥을 나누어
먹었으며 세집 이상의 타성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아진다고 전해온다.
대보름 행사는 14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달맞이나 달집태우기를 했다.
밤에 들판으로 나가서, 새싹이 잘 자라게 하고
논밭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쥐불을 놓았다.
아이들은 연날리기, 바람개비돌리기, 실싸움,
돈치기 따위를 즐겼으며, 어른들은 다리밟기, 편싸움, 횃불싸움,
줄다리기, 동채싸움, 놋다리밟기 따위를 했다. 대보름날 밤에는 항상 온
마을이, 때로는 마을과 마을이 대항하는 경기를 집단적으로 즐겼다.
정월 대보름에는 여러 종류의 세시풍속 행사가 벌어졌다.
이는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민족이 대보름을 풍요의
원점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보름밤지키기: 정월 열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해서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아이가 있으면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놓는다.
부럼깨기: 밤, 잣, 호두, 은행 등을 소리나게 깨물어 먹으면 1년동안 이가 강해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를『부럼』이라 하며,
일 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져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귀밝이술(耳明酒): 새벽에 맑은 술, 청주(淸酒)를 데우지 않고 마시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지고 귓병이 생기지 않으며 일년내내
좋은 소식만 있고
귀가 밝아지고 눈이 잘 보인다고 한다.
어린이에게도 귀밝이술을 마시게 한다.
보름나물(묵은나물) : 호박고시, 무고시, 외고시, 가지나물, 버섯고사리 등
여름에 말려둔 나물을 삶아 먹는데 이를
진채식(陣菜食)이라고도 한다.
대보름날 이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음
다리밟기: 다리를 밟아 건강을 기원한다.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달맞이: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 농악대의 상쇠가 악기를 울리면 달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소망을 빌었다.
농점(農占) : 달집 태우기, 사발점, 그림자점, 달불이, 소밥주기 등으로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친다.
소밥주기: 대보름날 아침에 찰밥과 나물을 키에 담아 가지고 외양간에 가서
소에게 준다. 소가 밥과 나물 중 어느 것을 먼저 먹는가에 따라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달점: 달의 빛깔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붉으면 가뭄,
허옇게 비추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불놀이: 깡통 속에 솔방울이나 관솔을 넣어 불을 지핀 뒤 깡통을
빙빙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더위팔이 : 아침해가 뜨기전에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대합하면『내더위』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자기의 나이만큼 하고나면 더위를 팔아서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동제(洞祭): 마을 공동체의 신에게 제를 올린다.
제의(祭儀)와 놀이 : 지신밟기, 별신굿, 안택고사, 용궁맞이, 연띄우기, 연싸움,
줄다리기, 용잡이, 놀이, 윷놀이, 널뛰기,
걸궁(농악), 햇불놀이, 다리밟기
농촌에서는 그렇지도 않겠지만, 도시에서는 지내 놓고 보니 어제가
정월 대보름이었구나 할 사람은 없을까.
이 날은 개가 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날이라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지만,
음력이 천대를 받는 요즈음 같아서는 사람이라고 별다른 대보름을 쇠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집안에 노인이라도 계시면 귀 밝으라는 귀밝이술,
부스럼 나지 말라는 부럼 깨물기라도 있음직하고, 유난스러운 집 같으면
오곡밥에 취로 복쌈을 싸 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하다못해 호박고지 무시래기를 삶아 진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 년 열두 달, 명절이 적지는 않지만, 정월 보름 전후 며칠도 어느 명절에
못지 않을 만큼은 세시(歲時)의 습속(習俗)이 많은 듯하며, 줄다리기, 연날리기,
더위팔기, 제웅치우기……누구나가 아득한 기억을 헤쳐 가면서 회상에
잠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신정에, 구정에 삼중 과세를
한다는 우리들이, 갈수록 이러한 아늑한 습속에 굶주려 가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천관우 千寬宇/신세시기(新歲時記) 겨울》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일 년을 단위로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속을 말한다.
밥훔쳐먹기
'달그락 달그락'
달래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집에는 달맞이를 하고 먼저 돌아온 어머니와 달래 둘 뿐인데
아까부터 부엌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이던 달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소곤소곤 쑥덕쑥덕' 점점 더 커지는 그 소리는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어머니,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나요."
"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러니?"
정초부터 입었던 한복을 손질하고 계신 어머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참, 분명 부엌에서 인기척이 난다니까요."
재촉하는 달래를 쳐다보시며 어머니께서는 소리 없이 웃으실 뿐이었습니다.
"거기 누구냐!"
참다 못한 달래는 눈을 꾹 감고서 용기를 내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후다다닥'
재빠르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소리에 달래는 방문을 화들짝 열었습니다.
우르르 몰려 나가는 뒷모습이 낯익은 동네 아이들이었습니다.
"너희들 누구야!"
도망치는 아이들의 등뒤에 달래는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동네 아이들이에요!"
"놔 둬라!"
방문을 닫은 달래는 아직도 뛰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듯한 어머니께서는 달래를 향해 빙긋이 웃어 보이셨습니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훔쳐먹는 풍습이 있단다."
"밥을 훔쳐먹어요?"
"그렇단다. 각 집에서는 아이들이 쉽게 훔쳐갈 수 있게 일부러
눈에 잘 띄는 부뚜막에 밥을 놓아둔단다."
"그래서 아까 밥 푸실 때 식구 수보다 밥을 많이 퍼 두셨군요.
아이들이 와서 가져가라고."
"네 아버지도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밥훔쳐먹기를 하셨다고 하는구나."
"아버지가요?"
"네 아버지 말씀이 보름날 친구들끼리 모여 밤늦은 시간까지
실컷 놀다보면 출출해진다는구나. 그러면 미리 준비해둔 큰 그릇을 가지고
몰래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서 오곡밥과 보름나물을 담아 나왔더란다.
그리고는 그 중 한 친구네 집에 모여 훔쳐간 밥과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놀다가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들 갔다고 하시더구나."
"아버지도 장난꾸러기이셨나 봐요."
밥그릇을 들고 남의 집 부엌에서 뛰쳐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달래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달래의 놀란 가슴은 어느새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옮긴글 >
내일이 정월 대보름입니다.
옛 세시풍속들은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인터넷에서 대보름에 관한 이것 저것을
짜깁기 식으로 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중복된 것도 있을거구요.
저도 하루종일 묵은 나물을 다듬어 볶고 오곡밥을 지어서 야근을 나가는 남편과 함께
온가족이 모여서 저녁을 먹었답니다.
남편은 맛있는지 조금 더 달라고 밥그릇을 내미는데 두 녀석들은 오곡밥과 나물이
별로 입맛을 당기지 않나 봅니다.
아빠가 오늘은 묵은 나물을 먹어야 한다니까 마지못해 골고루 한번씩 젓가락은 갔지만
그 다음은 된장찌게에 넣은 두부와 구운김만 싸서 먹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야채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니 묵은 나물은 더 입에 맞을리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대보름에 관하여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해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두 녀석들은 벌써 베란다에 나가서 보름달을 보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소원을 빌었답니다...간절히 말이예요...^^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저도 마음속으로 같이 소원을 빌었답니다.
보름 하루 전 날인 14일 밤에 달보며 소원을 비는 거라지요..아마도...
녀석들은 내일 아침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빠한테 더위를 판다고 벼르고 있던데
아침이 되면 까맣게 잊지나 않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녀석들에게 아침에 부럼도 한개쯤 깨물게하고 아주 조금이지만 귀밝이술도
먹여보렵니다.
고운님들도
오곡밥에 묵은나물 드시고 부럼도 깨고 귀밝이술도 한 모금 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일년내내 아픈 곳 없이 건강하시고 가족이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오늘이 입춘<入春>이더군요.
그런데 지금 밖에는 겨울밤 같은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리네요.
이젠 추위가 오면 꽃샘추위라고 해야할까요..
제주도엔 벌써 봄을 제일 먼저 알린다는 영춘화가 피었고 백매화,홍매화 등등...
봄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TV로 접했는데..
아직은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성급한가 봅니다.
오늘밤은 왠지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럽게 귓전에 와 닿네요.
하지만 ...따뜻한 밤 편안한 밤 되세요.
내일은 몹시 춥다는군요.
출근길엔 따뜻하고 두툼한 겨울 외투를 준비하셔야겠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으려면 말이예요.....^^
입춘(立春)
24절기 중의 첫번째 절기.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인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다.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한편,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옮긴글>
앞으로 일주일 넘게 찾아 뵙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우리집 녀석들이 개학이 며칠 앞으로 다가 왔거든요.
녀석들이 밀리지 않고 잘 하긴 했지만 ..
그래도 녀석들의 방학 과제물을 좀 마무리 지어야 할듯합니다.
마지막엔 늘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걸 느끼니까요.
고운님들
늘~~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제게 주셔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들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