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설민석 강사와 민족 대표 33인

ㅇㅇ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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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8483
자료출처 : http://orumi.egloos.com/m/2243623

길어서 세 줄 요약
1. 룸살롱에서 술 먹고 잡혀간거라는 설민석의 주장과 달리 민족대표들이 술 취해 자수한 것은 아니다.
2. 한명 빼고 모두 변절했다는 설민석의 주장과 달리 민족대표들의 대부분은 변절하지 않았다.
3. 민족대표들을 폄하하는 설민석의 주장과 달리 민족대표들의 의거에는 큰 의의가 있다.












1. 손병희 : 1861-1922 (천도교, 59세)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동학혁명 가담. 1897년 동학 3세 교주가 됨. 1907년 천도교로 개칭. 천도교를 대표하여 서명. 3.1운동으로 3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감후 사망. - 일제 때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면 밖에 나와서 죽게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도산 안창호도 풀려난 지 얼마 안되어 죽었지요. 심산 김창숙의 경우에는 극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풀어주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남기도 했습니다.

2. 길선주 : 1869-1935 (기독교, 51세)
1907년 목사가 된 한국최초 목사중 한 명. 기독교계 장로교파를 대표하여 두번째로 서명함. 평양 장대현교회 설립.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고 기독교인이 됨. 태화관에는 서울 도착이 늦어 불참. 3.1운동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으나 무죄로 풀려났음. 33인 중 유일하게 무죄를 선고받음. 이후 전국을 돌며 전도에 힘씀. 1927년 <말세론>을 저술. 평남 고창 교회에서 뇌일혈로 사망


3. 이필주 : 1869-1942 (기독교, 51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목사. 서울 출생. 기독교 감리교파를 대표하여 세번째로 서명함. 3.1운동으로 2년 복역. 이후 교육 사업에 힘씀. 신사참배 거부하는 등 일제에 항거

4. 백용성 : 1865-1940 (불교, 56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전북 장수 출생. 해인사 승려. 불교계를 대표해서 네번째로 서명함. 3.1운동으로 1년 6개월 복역. 이후 일본의 대처승 정책에 반발하여 불교계 정화를 위해 노력. 대각사 창건. 태평양 전쟁 소식을 듣고 피를 토한 뒤 열반.

5. 김완규 : 1876-1949 (천도교, 44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서울 출생. 여수통신주사, 한성부주사 역임.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출옥 후 천도교 도사가 되어 종교활동과 민족운동을 계속함. 해방후 국민회재정부장 역임

6. 김병조 : 1877-1948 (기독교, 44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목사. 평북 정주 출생. 태화관 모임에는 참석치 못함. 3.1운동을 선천에서 지휘. 상해로 망명하여 임정에 가담함. 1924년 만주에서 저술 활동 및 후진 양성에 힘씀. [한국독립운동사략] [대동역사] [독립혈사] 등 간행. 해방 후 조만식과 함께 조선민주당 창당. 1946년 광복회라는 비밀결사 결성하여 지하운동을 펼치다가 소련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사망

7. 김창준 : 1889-1956 (기독교, 31세)
민족대표 중 가장 어리다. 숭실중, 숭실전문대를 거쳐 일본 유학도 했다. 독립선언서를 선천에 보내는 임무도 수행했다. 3.1운동 후 1925년 함경북도 영성 주재소 습격사건을 일으킴. 뒤에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신의주 형무소에서 복역. 해방 후 사회주의 기독교 운동을 벌이다가 월북. 1948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이 되었다. 1950년에 서울에서 남조선기독교도 연맹 위원장을 역임. 더 이상의 기록이 없음.

8. 권동진 : 1861-1947 (천도교, 59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서울 출생. 함안 군수, 육군참령 역임. 임오군란(1882) 때 일본 망명. 1906년 귀국하여 대한협회부회장으로 계몽운동에 힘씀. 3.1운동으로 3년간 복역. 신간회 부회장. 광주학생운동에 연루되어 다시 1년간 옥고. 해방 후 신한민족당 당수, 민의원 등 역임.

9. 권병덕 : 1867-1944 (천도교, 53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청주 출생. 동학혁명 가담. 손병희 밑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천도교 안에서 전제관장, 금융관장 등을 역임.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소파 방정환의 아버지 방경수와 의형제. 방정환이 손병희의 셋째 사위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0. 나용환 : 1864-1936 (천도교, 56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평남 성천 출생. 동학 혁명 참가.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11. 나인협 : 1872-1951 (천도교, 49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평남 성천 출생. 동학 혁명 참가.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해방 후 간암으로 사망. 아내는 보따리 장수로 아이들을 키우고 손자 나명재는 평택에서 산부인과 원장 (시사인 49호 보도)

12. 양전백 : 1869-1933 (기독교, 51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목사. 평북 의주 출생. 최초의 장로교 목사 7인 중 하나. 1892년 김관근의 전도로 서울 도사경회에 참석하고 기독교에 입문. 구성신시교회를 창설. 1894년 마펫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음. 1896년 휘트모어 의료사가 되었고 선천 선교부의 개설과 함께 선천읍교회를 시작. 1907년 최초의 7인 목사로 안수를 받았고 1909년 선천읍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1911년 105인 사건으로 6년형 선고받고 2년간 복역. 각 학교 및 양로원, 고아원을 세우며 사회운동에 헌신. 3.1운동으로 3년간 복역. 예수교 장로회총회장이 되어 신앙운동과 애국운동에 헌신, 저술 활동에 전념하던 중 별세.

13. 양한묵 : 1862-1919 (천도교, 58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전남 화순 출생. 1905년 헌정동지회 결성. 3.1운동으로 체포되어 그해 여름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

14. 유여대 : 1878-1937 (기독교, 42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목사. 평북 의주 출생. 의주에서 3.1운동을 지휘했음. 이때문에 서울에 늦게 도착해서 태화관 모임에는 참석 못함.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1931년 병석에서도 민족계몽을 위한 저술활동을 계속. 증손 유창근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의료 혜택이 중단되어 노모의 병원비를 위해 아르바이트 중 (시사인 49호 보도)

15. 이갑성 : 1889-1981 (기독교, 31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경북 대구 출생. 3.1운동때 학생시위운동 조직 및 전단 살포 등 중요임무 수행. 2년 6개월 복역. 1933년 신간회에 관여하다가 상해로 망명. 1940년 귀국했다가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 복역.
이갑성에 대해서는 그가 일제의 밀정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갑성은 '이와모토 쇼이치'(岩本正一)로 창씨개명하기도 했다. 훈장이 삭탈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이 의혹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작년에 SBS는 특별취재를 통해 이 부분의 의혹을 밝혀보려 했다. 그러나 친일 의혹의 구체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좀더 신중하게 조사해야 할 문제다.

16. 이명룡 : 1872-1956 (기독교, 47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평북 정주 출생. 1911년 105인 사건으로 3년 복역.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종교, 산업, 교육 분야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미국으로 망명. 1945년 조만식과 함께 조선민주당 창당. 고문 취임.북한 정권의 탄압으로 월남

17. 이승훈 : 1864-1930 (기독교, 56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목사. 평북 정주 출생. 1911년 신민회 사건, 105인 사건으로 연달아 체포. 4년 2개월 옥고. 3.1운동으로 3년형 선고받고 복역중 가출옥. 1924년 동아일보 사장. 물산장려운동. 1926년 오산학교 이사장 재임.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를 가르치다가 사망. 종손자에 역사학자 이기백 교수가 있음. 5대손 이기대는 지하 셋방에 살며 포장마차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 (시사인 49호 보도)

18. 이종훈 : 1858-1931 (천도교, 65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경기도 광주 출생.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 동학 혁명 참가. 손병희와 사돈. 3.1운동으로 2년 복역. 1922년 고려혁명위원회 고문으로 추대. 만주에서 독립운동 중 고문후유증으로 병사. 아들 이관영(손병희의 맏사위)은 1905년 이완용의 집을 방화하고 1907년 경기도 용문산에서 의병으로 일본군과 전투 중 사망했으며 손자 이태운도 보성전문학교에 재학하던 스무살에 3.1운동에 가담했다.

19. 이종일 : 1858-1925 (천도교, 62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중추원의관 역임. 제국신문, 황성신문 사장 역임. 보성사 인쇄소 사장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 3년형을 받고 2년 반 옥고. 고문후유증으로 1925년 별세.

20. 임예환 : 1865-1949 (천도교, 55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평남 중화 출생. 평안도 지방에서 동학 혁명 참여. 천도교 도사가 되어 평양에서 민중 계몽과 포교에 힘썼다.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출옥후 계속 독립운동

21. 박준승 : 1866-1921 (천도교, 54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전북 임실 출생. 장성, 남원, 임실 등 각지 궐기를 지휘.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중 사망

22. 박희도 : 1889-1951 (기독교, 31세)
변절
황해도 해주 출생. YMCA 간사로 3.1운동 참여. 본래 3.1운동과 별개로 기독학생 중심의 전민족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었음. 기독교 측의 운동자금 출납 담당. 2년 복역. 이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또 2년간 옥고. 1927년 신간회 본부간사. 그러나 1931년 [동양지광] 창간 후 주간으로 있으면서 친일 행위. 조선자치를 위해서 단체를 결성하려고 노력하기도 함. 1943년 학병 독려 강연회 가짐.1948년 반민특위에 체포됨.

23. 박동완 : 1885-1941 (기독교, 35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경기 양평 출생. 3.1운동으로 2년 복역. 신간회 상임간사 역임. 1931년 만보산 사건 때 재만동포옹호연맹 재무부장으로 현지 시찰. 1932년 하와이로 망명한후 흥업구락부와 연락하며 국내 독립운동을 지원 중 병사.

24. 신홍식 : 1872-1937 (기독교, 48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목사. 충북 청주 출생.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출옥후 인천, 원주 등지에서 신앙운동과 독립운동을 계속. 신사참배 거부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됨 . (이 분의 이름을 신흥식으로 잘못 쓰는 것을 종종 본다. 한자로 申洪植이라 쓴다. 이름조차 틀리다니 너무 하지 않은가?) 손자 신덕수는 가세의 몰락으로 젊은 시절부터 막노동판을 전전함 (시사인 49호 보도)

25. 신석구 : 1875-1950 (기독교, 45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3)
목사. 충북 청주 출생. 1908년 기독교인이 됨. 1917년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 수표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 3.1운동에 참여.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신사참배, 전승기원예배 등 거부로 여러번 투옥됨. 1946년 3.1절 기념방송 사건으로 구금. 1949년 기독교민주당 비밀결사 고문으로 추대되었다는 혐의로 북한정권으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고 한국전쟁 때 총살됨.

26. 오세창 : 1864-1953 (천도교, 56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서울 출생. 농상공부참의, 우정국 통신국장, 만세보 사장, 대한협회 부회장, 대한민보 사장 등 역임. 3.1운동으로 3년간 복역. 서예가로 유명

27. 오화영 : 1880-1962 (기독교, 40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89)
서울 출생. 3.1운동으로 2년 6개월 복역. 1927년 신간회 간부.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 체포. 1939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6개월 구금됨. 해방 후 과도정부 입법의원 역임. 한국전쟁 때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납북됨.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치. 1996년 국립묘지에 위패 안장.

28. 정춘수 : 1875-1951 (기독교, 45세)
변절
충북 청주 출생. 3.1운동 때 남감리교회 목사로 참여. 태화관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함. 1년 6개월 복역. 1927년 신간회 본부 간사. 1937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105일간 고문을 당함. 1938년 친일단체인 경성기독교연합회 부위원장이 됨. 1941년 국민총력연맹 가입. 조선임전보국단 참여. 그러나 적극적인 행위는 하지 않았다 함. 창씨개명함.

29. 최성모 : 1874-1937 (기독교, 47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목사. 서울 출생. 3.1운동으로 2년 복역. 출옥후 만주로 망명. 봉천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사망.

30. 최린 : 1878-1958 (천도교, 42세)
변절
함남 함흥 출생. 최남선을 보호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자기가 썼다고 주장했다.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 3.1운동으로 3년 선고 받고 1921년 12월 22일 가출옥. 가출옥 당시 일제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간 것으로 보임. 이후 자치운동에 힘을 기울이다가 전면적 친일로 넘어감. 1931년 4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매일신보 사장, 조선임전보국단 단장 역임. 한국전쟁 때 납북됨. 창씨개명함.

31. 한용운 : 1879-1944 (불교, 41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충남 홍성 출생. 3.1운동으로 3년 복역. 1925년 [님의 침묵] 발간. 1926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1931년 조선불교청년동맹 주도. 1937년 만당 사건으로 체포.

32. 홍병기 : 1869-1949 (천도교, 51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경기 여주 출생. 3.1운동으로 2년 복역 후 만주로 망명. 만주에서 고려혁명당 고문이 되었다가 신의주에서 체포. 다시 2년간 옥고. 출옥 후 천도교 장로로 교세 확장과 민족 운동에 힘씀. 손자 홍재웅은 닭튀김 장사를 하다가 사업에 실패한 후 아내가 동사무소 공공근로를 나가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 (시사인 49호 보도)

33. 홍기조 : 1865-1938 (천도교, 60세)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평남 용강 출생. 3.1운동으로 2년간 복역. 출옥 후 고향에서 청년들을 지도하던 중 병사



내 결론 : 나는 설민석 강사가 좀 더 전문가로서의 기본적 지식을 갖춘 뒤에 전문가 행세를 했으면 좋겠다. 역사학자로서의 학문적 깊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역사계통 교육종사자로서 최소한 사실 관계는 왜곡하지 말아야지. 사실을 틀리게 우기며 가르치는 역사교사는 그냥 장사꾼에 불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