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수놓은 꽃>

JTBBA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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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큰 소리와 함께 밝은 불꽃이 공중에서 터지고 멀리 퍼져나갔다.
꽃무늬를 연상시키는 불꽃의 모양에 사람들은 홀린 듯 창문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한 표정으로 구경하다가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니 괜히 울컥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불꽃은 굉장히 예뻤지만 그 예쁨에 대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놀라움보다는 슬픔이 너무 크게 와닿았던 것 같기도.​


3년을 좋아했던 여자에게 연락 금지 선언을 받고, 기껏 예약해둔 레스토랑에서 보기 좋게 차였다.
날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이젠 불꽃에 정신이 팔려 각자 탄성을 내지르는 걸 보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문을 하기도 전에 다이렉트로 차인 덕분에 돈 쓸 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다.
의자를 넣고 나가려는 내 앞에 흰 에이프런을 허리 춤에 두른 건장한 남자가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접시에는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보기 좋게 세팅되어 있었고 그 남자는 내려놓은 접시에 시선을 돌려 날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이 매우 강렬해서 되려 움찔하니 이내 피식하며 웃음을 흘려보내곤 손을 등 뒤로 돌렸다.


"저.. 이거 안 시켰는데요?"​

"제가 드리는 겁니다."​

"네?"​

"위로 용이라 치시죠."


자기 할 말만 하고 휙- 돌아서는 남자를 보며 멍하니 서있자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내가 차이는 장면을 본 건가 싶어 괜한 자존심이 앞섰지만 향긋하고 달짝지근한 냄새에 이끌려 도로 자리에 앉게 돼버렸다.
슬쩍 주방 쪽을 보곤 입에 음식을 넣자 소리 없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톡 쏘는 신맛과 달콤한 맛이 어우러진 샐러드는 마치 터진 불꽃처럼 다가왔다.
오늘의 불꽃놀이를 위해 잡았던 레스토랑에서 보기 좋게 차인 내 처지가 생각나는 맛이어서 그런지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울면서 드시면 체합니다."​


접시를 가져다주었던 남자가 내 맞은편 의자를 끌어다 앉더니 턱을 괴고는 감상하듯 나른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불쾌하진 않았지만 어딘가 따뜻해서 위로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맛은 괜찮습니까?"​

"아.. 네."​

"그거 서비스로 드리는 거니깐 남기시면 안 됩니다."​

"서비스요?"​


"네. 그쪽이 제 취향이라 드리는 건데, 이렇게 울면서 드시면 제 마음이 아프지 않겠어요?"​




여자한테나 건네는 작업 멘트에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눈가를 반달처럼 휘며 웃는 남자의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음식을 씹던 입을 멈추고 눈물방울을 매단 채 쳐다보다 남자는 큭큭 거리며 손으로 내 눈가를 닦아주었다.


"드세요. 식기 전에."


웃음기가 남아있는 눈으로 접시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권유에 포크로 샐러드를 한 움큼씩 입에 집어넣자 여전히 톡 쏘는 달달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잠깐의 울음으로 메인 목 때문에 잘 넘어가진 않았지만 평소 먹어보지 못한 신비하고 황홀한 맛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목 안으로 넘기자 남자가 내게 물 잔을 건넸다.


"진짜 체할 것 같은데요. 마시면서 드시죠."​

"감.. 감사합니다."


이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날 보며 무뚝뚝해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미소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싫진 않았지만 어딘가 쓰려 보였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좋아서요."​

"네?"​

"그쪽이 차였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남자의 말에 놀라 먹는 것을 멈추고 남자를 쳐다보자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남자가 이젠 얄미워 보였다.
내겐 3년이라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를 쏟아부은 자리에서 거절당한 내 심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당혹스러움과 어이없는 마음을 합쳐 따져보려 입을 열려 하자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젠 저한테 기회가 넘어온 것 같으니까요."​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더욱 깊게 턱을 괴는 남자의 모습에 건조한 기침이 새어 나왔다.
냅킨을 들어 내 입가를 닦은 남자가 다시 눈가를 접으며 웃었다.


"뭐 초면에 이런 말 하는 게 참 신빙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반했어요, 첫눈에. 그러니 당신이 차였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거침없이 다가오는 남자의 존재감에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그가 이를 보이며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입 벌리고 있는 게 참 키스하기 좋아 보여요."




재빨리 입술을 앙다물자 농담이라며 손바닥을 절레절레 흔들어보이더니 이내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원래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인가 싶을 정로 남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어때요? 바로 고백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먼저 다가갈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기회라뇨?"​

"그쪽에 대해서 알아갈 기회요. 조금 있으면 마감시간인데 그때까지 기다려주신다면 오케이로 받겠습니다."​

"그전에.. 가면요?"​

"뭐 어쩔 수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찾아내는 수밖에요."​



가까운 시선에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해하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기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저 남자가 날 놀리려는 건지, 아니면 진심인 건지 헷갈렸다.
내가 속이기 쉽게 생겼다는 친구들의 말이 떠올랐고 좋아하던 그녀에게 차이자마자 다른 사람, 그것도 남자를 마음에 새긴다는 게 굉장히 신경 쓰였다.
그것도 남자라니.
하지만, 남자의 고백을 받고 나서부터 주체할 수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느끼며 내가 미친 건가 싶기도하고 기대한다는 남자의 말 끝으로 위로받는 것 같던 시선에 보답하고 싶기도 했다.
혼란스럽고 설레었다.
무섭지만 기대고 싶었다.
복잡한 생각에 어쩔까 고민하던 사이, 마감이라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눈에 보였다.

불꽃놀이처럼 갑자기 터지고 퍼져버린 존재에 갈등하며 점점 마음을 굳히던 중, 마감 시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가게 내부에 울려 퍼졌다.


돌이킬 수 없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