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소식이었다. 한때 감동적인 순애보의 주인공이었던 이들이 험악하게 등을 돌렸다니 그간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4월 중순 어느 늦은 밤 기자와 만난 정미애씨는 3시간에 걸쳐 이혼 소송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주었다.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오래 갈등하고 망설였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조용하게 끝내고 싶었지만 지난 2004년 5월 27일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1년 가까이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정을 털어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예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아무리 미워도 우리 효정(딸·5)이 아빠잖아요. 그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난 일들 모두 없었던 셈치고 잘 살아보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처음 만나 나에게 결혼해달라고 쫓아다니며 구애할 때부터 의도적이었어요. 일부러 작정하고 그랬던 게 분명해요. 연봉 10억 버는 보험왕이니까…. 결혼생활 6년 동안 나는 고급 가정부에 불과했어요. 열심히 내조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면서 돈까지 갖다 바쳤으니 너무 어리석었죠.”
정씨가 god 손호영의 아버지 손모씨(교수 겸 사업가·63)와 결혼한 것은 지난 2001년 8월이었다. 딸 효정이를 낳고 동거 2년 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 당시에 손호영이 소속된 god는 최고의 인기 그룹이었고 정미애씨 역시 삼성생명의 모든 판매왕을 석권한 세일즈의 귀재로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식은 단연 화제였다. 게다가 24년의 나이차를 극복한 러브스토리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손호영이 네 살 때 이혼한 후 줄곧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았던 손씨와 젊고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세일즈의 여왕이 부부의 인연을 맺기까지 넘어야 했을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생활설계사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98년에 어느 교수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에요.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날부터 연락을 자주 하더라구요. 얼마 후쯤부터는 같이 살자, 결혼하자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매달렸어요. 딱히 그한테 마음이 끌렸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연민을 느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수절하면서 아이들 키우느라 청춘을 다 보냈다고 하니 안쓰러울 수밖에요. 세상에 이렇게 착한 남자도 있구나, 가슴이 짠해졌죠. 그때 호영이와 정민(리포터 겸 vj)이는 연예계 진출을 준비 중이었어요.”
손씨의 끈질긴 구애에 그녀도 반쯤은 넘어갔다. 서른한 살, 한창 좋은 나이였지만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 그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를 막무가내로 뿌리칠 재주는 없었다. 그러다 동거에 들어간 것은 99년 가을이었다. 손씨가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그녀의 손을 끌고 집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실상 결혼생활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좋은 새엄마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콩쥐팥쥐,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 말고 정말 친엄마 못지않은 사랑을 베푸는 새엄마도 있다는 걸 보여주리라 마음을 먹었죠.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잘하려고 애썼고 호영이와 정민이도 처음 얼마간은 깍듯했어요. 정민이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친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이쪽으로 보내졌는데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제가 운영하던 연예 기획사 골드맥스 프로덕션과 계약을 맺어서 경비를 포함한 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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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현모양처 꿈꿨으나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을 뿐
집안의 가장은 사실상 그녀였다. 손씨가 운영하던 에너지 관련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남편은 신용 불량자가 될 정도로 경제력이 바닥이었다고 한다. 집안 살림에 들어가는 일체의 비용은 물론이고 남편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을 겪지 않도록 용돈과 품위 유지비를 때마다 댔다. 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이므로 형편에 따라 주머니 사정이 좋은 사람이 살림을 책임지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남편과 함께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소중한 생명도 얻었다.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만삭 때였어요. god가 그 해(2000년) 가수상을 받고 새해 첫날 스페셜 방송을 했는데 화면에 아이들 친엄마가 보이는 거예요. 호영이가 유명해진 다음부터 부쩍 연락을 자주 하는 것 같더라구요. 남편까지 네 사람이 만나기도 하고, 급기야는 방송 스태프들과의 식사 자리에 자기가 호영이, 정민이 친엄마라고 하면서 같이 어울렸죠. 나는 그들에게 배려의 대상이 아니더군요. 점점 나만 고립되는 기분이랄까요. 출산을 앞두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혼인신고하지 말고 그냥 싱글맘으로 사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러나 효정이를 아빠가 없는 아이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이나 아이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지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운했던 감정이 풀렸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만들었고, 아이들도 자기들이 진심으로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엄마라며 애틋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다. 완벽한 현모양처의 삶이 곧 손에 닿을 듯했다.
“결혼하고, 호영이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식구들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어느 순간 남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야!’로 바뀌었더군요. 심지어는 손찌검까지…. 2001년 8월에 남편이 용산경찰서에서 폭력으로 조사도 받았어요. 그때 받은 경고장 지금도 갖고 있잖아요. 굉장히 신사답고 유순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밖에서는 주로 골프 치러 다니고 사람들과 사교하는 데 시간을 보내구요. 대학 교수라고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화학과 교양 과목 가르치는 정도였어요. 한 달에 월급이라고 몇 십만원 가져왔는데, 나는 그게 내가 한 달에 버는 1억보다 값지게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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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재산 문제로 신뢰 상실, 그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그녀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가 바뀌고 또 바뀌면서 그녀와 다른 식구들과의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다. 2003년 7월 정씨가 뜻하지 않았던 사기 사건에 연루되자 남편 손씨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했고 아이들의 태도도 180도 돌변했다. 지난해 연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정미애씨. 당시 그 사건을 보도한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god 한 멤버의 어머니 a씨는 지난해 6월 1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피해자 s모씨(44)에게 “god의 출판물에 관한 저작권과 기획권 등을 독점적으로 확보해 5년 동안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계약을 god의 소속사 사이더스hq와 2주 내에 체결해주겠다”고 약속, 출판 계약에 따른 홍보 마케팅 비용 명목으로 6600만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계약서에 사인 많이 한 사람도 드물 텐데 사인 한 번 잘못했다가 완전히 사기범으로 몰렸죠. s씨가 남편과도 잘 아는 사람이라 믿고 출판물이 나오면 홍보만 책임지는 조건으로 신문 광고 비용을 받은 것뿐인데 s씨가 내 뒤통수를 치고 일을 그렇게 만들고 말았어요. 그걸 해결하느라 지난 2년 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웠죠.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나를 오해하는 고객들도 있었고, 최고 vip로 대접받던 은행에서도 찬밥 신세가 됐죠. 가장 나를 절망하게 했던 건, 가족들이었어요. 특히 남편은 내가 그 고생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골프 치고 여자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남편에게 이용만 당하는 느낌이었다. 손씨가 미국에 있는 그녀 여동생의 이름을 도용해 건설 관련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물론 사전에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여동생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최근에야 대표이사 명의를 바꾸긴 했지만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는 것. 그래도 모든 것을 용서하려고 했었다. 효정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기만 한다면 바람을 피워도 재산을 몰래 빼돌려도 넘어갈 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이었다.
“참 바보 같은 짓 하고 살았어요. 생일날 외제 스포츠카 선물해달라고 해서 그것도 사주고,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건너간 돈만 5억원이에요. 그땐 어리석게도 그게 남편에 대한 도리라고 믿었죠. 그런데 참으려고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구요. 아이들과 한통속이 돼서 나를 내쫓을 궁리를 하잖아요. 정민이가 나랑 전화로 언성을 높이다 화가 나서 자해 소동을 벌인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바로 남편이 달려와 이혼을 요구했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죠. 재산 분할 문제나 위자료 등의 문제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소송할 이유도 없었을 거예요. 한푼도 안 주겠다는 작정이니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사실 치사해서 안 받고 싶지만 지난 6년 동안 내가 쏟은 정성과 노력이 억울해서라도 받아야겠어요. 그쪽에선 내가 돈을 포기하면 효정이를 주겠다네요.”
정씨는 현재 재산 분할 7억원에 위자료 2억원, 양육비 월 100만원을 신청한 상태. 사기 사건과 남편과의 갈등으로 고통을 받았던 지난 몇 년은 그녀의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오죽이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여섯 번이나 반포대교에 올라가 투신하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그때마다 딸 효정이의 얼굴이 떠올라 정신을 차려야지,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정미애씨.
그녀는 요즘 절에 다니며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있다고 전한다. 하루 빨리 이혼 소송을 마무리짓고 딸 효정이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간절하다. 한편 정미애씨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남편 손씨측의 입장을 들으려고 했으나 손씨의 법률 대리인 조모 변호사는 답변을 일절 거부했다.
[정미애씨] 여성중앙에서 취재한 손호영 엄마 1년째 소송중 기사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오래 갈등하고 망설였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조용하게 끝내고 싶었지만 지난 2004년 5월 27일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1년 가까이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정을 털어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예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아무리 미워도 우리 효정(딸·5)이 아빠잖아요. 그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난 일들 모두 없었던 셈치고 잘 살아보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처음 만나 나에게 결혼해달라고 쫓아다니며 구애할 때부터 의도적이었어요. 일부러 작정하고 그랬던 게 분명해요. 연봉 10억 버는 보험왕이니까…. 결혼생활 6년 동안 나는 고급 가정부에 불과했어요. 열심히 내조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면서 돈까지 갖다 바쳤으니 너무 어리석었죠.”
정씨가 god 손호영의 아버지 손모씨(교수 겸 사업가·63)와 결혼한 것은 지난 2001년 8월이었다. 딸 효정이를 낳고 동거 2년 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 당시에 손호영이 소속된 god는 최고의 인기 그룹이었고 정미애씨 역시 삼성생명의 모든 판매왕을 석권한 세일즈의 귀재로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식은 단연 화제였다. 게다가 24년의 나이차를 극복한 러브스토리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손호영이 네 살 때 이혼한 후 줄곧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았던 손씨와 젊고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세일즈의 여왕이 부부의 인연을 맺기까지 넘어야 했을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생활설계사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98년에 어느 교수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에요.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날부터 연락을 자주 하더라구요. 얼마 후쯤부터는 같이 살자, 결혼하자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매달렸어요. 딱히 그한테 마음이 끌렸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연민을 느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수절하면서 아이들 키우느라 청춘을 다 보냈다고 하니 안쓰러울 수밖에요. 세상에 이렇게 착한 남자도 있구나, 가슴이 짠해졌죠. 그때 호영이와 정민(리포터 겸 vj)이는 연예계 진출을 준비 중이었어요.”
손씨의 끈질긴 구애에 그녀도 반쯤은 넘어갔다. 서른한 살, 한창 좋은 나이였지만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 그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를 막무가내로 뿌리칠 재주는 없었다. 그러다 동거에 들어간 것은 99년 가을이었다. 손씨가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그녀의 손을 끌고 집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실상 결혼생활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좋은 새엄마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콩쥐팥쥐,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 말고 정말 친엄마 못지않은 사랑을 베푸는 새엄마도 있다는 걸 보여주리라 마음을 먹었죠.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잘하려고 애썼고 호영이와 정민이도 처음 얼마간은 깍듯했어요. 정민이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친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이쪽으로 보내졌는데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제가 운영하던 연예 기획사 골드맥스 프로덕션과 계약을 맺어서 경비를 포함한 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기도 했죠.” // 완벽한 현모양처 꿈꿨으나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을 뿐
집안의 가장은 사실상 그녀였다. 손씨가 운영하던 에너지 관련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남편은 신용 불량자가 될 정도로 경제력이 바닥이었다고 한다. 집안 살림에 들어가는 일체의 비용은 물론이고 남편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을 겪지 않도록 용돈과 품위 유지비를 때마다 댔다. 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이므로 형편에 따라 주머니 사정이 좋은 사람이 살림을 책임지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남편과 함께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소중한 생명도 얻었다.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만삭 때였어요. god가 그 해(2000년) 가수상을 받고 새해 첫날 스페셜 방송을 했는데 화면에 아이들 친엄마가 보이는 거예요. 호영이가 유명해진 다음부터 부쩍 연락을 자주 하는 것 같더라구요. 남편까지 네 사람이 만나기도 하고, 급기야는 방송 스태프들과의 식사 자리에 자기가 호영이, 정민이 친엄마라고 하면서 같이 어울렸죠. 나는 그들에게 배려의 대상이 아니더군요. 점점 나만 고립되는 기분이랄까요. 출산을 앞두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혼인신고하지 말고 그냥 싱글맘으로 사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러나 효정이를 아빠가 없는 아이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이나 아이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지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운했던 감정이 풀렸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만들었고, 아이들도 자기들이 진심으로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엄마라며 애틋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다. 완벽한 현모양처의 삶이 곧 손에 닿을 듯했다.
“결혼하고, 호영이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식구들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어느 순간 남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야!’로 바뀌었더군요. 심지어는 손찌검까지…. 2001년 8월에 남편이 용산경찰서에서 폭력으로 조사도 받았어요. 그때 받은 경고장 지금도 갖고 있잖아요. 굉장히 신사답고 유순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밖에서는 주로 골프 치러 다니고 사람들과 사교하는 데 시간을 보내구요. 대학 교수라고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화학과 교양 과목 가르치는 정도였어요. 한 달에 월급이라고 몇 십만원 가져왔는데, 나는 그게 내가 한 달에 버는 1억보다 값지게 받았죠.” // “여자와 재산 문제로 신뢰 상실, 그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그녀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가 바뀌고 또 바뀌면서 그녀와 다른 식구들과의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다. 2003년 7월 정씨가 뜻하지 않았던 사기 사건에 연루되자 남편 손씨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했고 아이들의 태도도 180도 돌변했다. 지난해 연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정미애씨. 당시 그 사건을 보도한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god 한 멤버의 어머니 a씨는 지난해 6월 1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피해자 s모씨(44)에게 “god의 출판물에 관한 저작권과 기획권 등을 독점적으로 확보해 5년 동안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계약을 god의 소속사 사이더스hq와 2주 내에 체결해주겠다”고 약속, 출판 계약에 따른 홍보 마케팅 비용 명목으로 6600만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계약서에 사인 많이 한 사람도 드물 텐데 사인 한 번 잘못했다가 완전히 사기범으로 몰렸죠. s씨가 남편과도 잘 아는 사람이라 믿고 출판물이 나오면 홍보만 책임지는 조건으로 신문 광고 비용을 받은 것뿐인데 s씨가 내 뒤통수를 치고 일을 그렇게 만들고 말았어요. 그걸 해결하느라 지난 2년 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웠죠.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나를 오해하는 고객들도 있었고, 최고 vip로 대접받던 은행에서도 찬밥 신세가 됐죠. 가장 나를 절망하게 했던 건, 가족들이었어요. 특히 남편은 내가 그 고생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골프 치고 여자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남편에게 이용만 당하는 느낌이었다. 손씨가 미국에 있는 그녀 여동생의 이름을 도용해 건설 관련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물론 사전에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여동생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최근에야 대표이사 명의를 바꾸긴 했지만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는 것. 그래도 모든 것을 용서하려고 했었다. 효정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기만 한다면 바람을 피워도 재산을 몰래 빼돌려도 넘어갈 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이었다.
“참 바보 같은 짓 하고 살았어요. 생일날 외제 스포츠카 선물해달라고 해서 그것도 사주고,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건너간 돈만 5억원이에요. 그땐 어리석게도 그게 남편에 대한 도리라고 믿었죠. 그런데 참으려고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구요. 아이들과 한통속이 돼서 나를 내쫓을 궁리를 하잖아요. 정민이가 나랑 전화로 언성을 높이다 화가 나서 자해 소동을 벌인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바로 남편이 달려와 이혼을 요구했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죠. 재산 분할 문제나 위자료 등의 문제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소송할 이유도 없었을 거예요. 한푼도 안 주겠다는 작정이니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사실 치사해서 안 받고 싶지만 지난 6년 동안 내가 쏟은 정성과 노력이 억울해서라도 받아야겠어요. 그쪽에선 내가 돈을 포기하면 효정이를 주겠다네요.”
정씨는 현재 재산 분할 7억원에 위자료 2억원, 양육비 월 100만원을 신청한 상태. 사기 사건과 남편과의 갈등으로 고통을 받았던 지난 몇 년은 그녀의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오죽이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여섯 번이나 반포대교에 올라가 투신하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그때마다 딸 효정이의 얼굴이 떠올라 정신을 차려야지,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정미애씨.
그녀는 요즘 절에 다니며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있다고 전한다. 하루 빨리 이혼 소송을 마무리짓고 딸 효정이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간절하다. 한편 정미애씨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남편 손씨측의 입장을 들으려고 했으나 손씨의 법률 대리인 조모 변호사는 답변을 일절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