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Anchorage 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앵커리지는 1914년 세계 2차대전 당시 전략적기지로 떠오르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이되었습니다.. Anchorage 다운타운에 있는 지금의 기차역 옆에있는 Ship Creek에 수많은 텐트 촌이 건설이 되면서본격적인 개발이 되었는데, 당시 골드 러쉬로 수많은사람들이 알래스카로 몰려 오는 시기와 맞물려떠 오르는 황금의 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습니다..그 당시 텐트 하나만 잘 쳐 놨어도 지금은 후손들이 배를두들기며 잘 먹고 잘 사는 계기가 되었을겁니다.그럼 앵커리지 다운타운으로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여기는 다운 타운 4번가에 있는 구 시청 건물인데 , 늘 문을 닫아 걸어 놔서 들어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정말 궁금하던 곳이었습니다...그런데, 마침 오늘 기회가 되어 들어 갈 수 있어 들어 가 보았습니다.앵커리지 다운타운 초창기 사진들이 있었습니다.저기다 조상님이 텐트 하나만 잘 쳐 놨어도 지금은 떵떵 거리며 잘 살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ㅎㅎ..역시, 알래스카를 상징하는 연어 조형물이 있었습니다...초창기에는 종교단체, 선교사,골드러쉬와 전쟁에 관계된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앵커리지에 정착을 하며 도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 하였습니다.특히, 2차대전 군 시설을 대폭 건설하면서 많은 사람들이알래스카로 몰려 들면서 급격한 인구 증가를 가져 왔습니다...1867년 미 국무장관인 윌리엄 스워드가 총 720만불, 알래스카를에이커당 2센트에 사들여 미국으로 편입을 하였습니다.급격한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주로 승격을 하자고 매년 건의를 했지만 무시되었습니다.720만불도 다 준 게 아니고 , 절반은 남아도는 밀로 지불을했으니 , 러시아가 땅을 치며 후회를 할만 합니다...앵커리지 시 청사 앞에 그려진 알래스카의 역사도 입니다.알래스카 역사를 한번에 이해가 가능합니다.알래스카 역사는 아주 단순합니다...앵커리지 시청입니다.출입구 앞에 632 라고 쓰여 있는데 이 건물이 다운타운 6번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단순하게 붙여진 주소입니다...저 건물은 개스 이익 배당금을 신청하는 주 청사 건물입니다.시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매년 1월 2일 부터 배당금을 직접 신청을 해도 되고, 인터넷을 이용해신청을 해도 됩니다.배당금 신청 자격은 1월1일 부터 12월 31일까지 일년을 살면신청 자격이 주어집니다...다른 맥주보다 저 알래스칸 맥주는 가격이 다소 비쌉니다.마셔보면 금방 느낄 수 있을텐데 맨 왼쪽 붉은 상표 맥주를 한번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보리 향이 아주 강합니다...알래스카의 주도는 " 주노" 에 있습니다.저 건물은 주 정부 사무실이 있는 건물입니다.주 정부 관계 부처들은 저 건물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알래스카 눈사람은 3 단입니다.왜냐하면 맨 밑 1단은 계속 내리는 눈으로 파 묻히기 때문입니다. 1867년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사들였지만 정식으로인수 인계가 된 해는 1912년 부터였습니다...1951년 12월 10일 앵커리지 국제공항이 개항이 되기 전까지다운타운 4번가인 이 곳이 공항 역활을 하였습니다...옛날에는 알래스카에 주민들을 정착 시키기 위해 많은 땅을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 그 후손들이 배를 두들기며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대표적인 예로 마타누스카 빙하를 공짜로 받는 사람은지금도 입장료중 일부를 배당 받고 있으며, 매표소,기념품샵도 그 땅 주인이 운영을 하고 , 이제는 숙박 시설과 식당까지 차려 대대손손빙하가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롱라이플 레스토랑) 앞으로100여년은 무난하게 잘 살 것 같습니다..알래스카의 농작물 자급자족율은 2.5% 에 불과 합니다.그래서, 농사 짓는 이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제도가 있어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다소 도움을 주고 있지만 농사란 게 쉽지 않아농장들이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농사 짓지 않아도 먹고 살만하니 굳이, 힘든 농사를 짓지않으려고들 합니다.. .다운타운에 오면 저런 주차장 전용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최초 1시간 무료이니 , 되도록이면 주차장 건물에 주차하는 게좋습니다.자리가 아주 널럴합니다.가격도 아주 저렴합니다.한시간당 1불 50센트인가 하던 것같습니다.카드로 내니, 요금이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다운타운을 걸어 다니는데 정말 추웠습니다.5분만 걸어도 귓 볼이 얼더군요.앵커리지 인구가 1940년에 3천명이었는데 , 1951년에 47,000명으로 늘어 났으니, 해마다 늘어가는 주민 수가 엄청 났습니다.이 당시 땅을 무상으로 마구 나누어 주었는데, 담당자와 아는 사이에는 더 많은 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그 때, 땅을 무상으로 불하 받은 주민들은 지금 세금 대신 땅으로 납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미국도 학연,혈연,지연 이런 거 다 있습니다.. .호텔 앞인데, 행여 호텔 앞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져다치면 문제가 생기니 저렇게 CCtv 를 가로등에 설치해 사고 유무를 확실하게 체크 업 하고 있습니다.미국은 고소 한번 잘 못 당하면, 회사를 팔아야 할 정도로징벌적 배상을 하기 때문에 이런 건 아주 필수 입니다...다운타운에 있는 초창기 러시아 정교회입니다.빌딩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 저는 저런 건물이 참 보기 좋습니다...스키를 이용해 트리를 만들었습니다.어떤가요?..알래스카에 최초의 TV 방송국은 KTVA 인데, 1953년 개국이 되었습니다...자욱한 안개로 인해 달 모양이 신비롭기만 합니다..1959년 1월 3일 주로 승격이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더욱 증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알래스카 전체 인구는 약, 73만명이며, 그중 40% 가량이앵커리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인 전체 인구는 약, 6천여명에 달합니다.I.M.F 전만 하더라도 한인 인구는 8천명 정도였지만 이제는오히려 줄어 든 경향이 있습니다.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직항이 I.M.F 로 폐쇄가 되면서많은 회사들이 철수를 하였습니다..그나마 다행인 건, 알래스카에 영사 업무를 보는 나라는불과 세 나라인데 그중,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한 자리를차지하고 있습니다.문제는 아무도 한인 회장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 거의 강제로 추천을 해서 매 회기를 이어 나간다는 겁니다.이런 점은 참 아쉽습니다.저도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한인이 회사를운영하는 이가 거의 전무합니다.호텔들은 대부분 시애틀에 거주지를 둔 이들이 하고 있고,거의가 노년 층이라 노인회만 두 개가 운영을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마 미국에서 이런 주는 거의 보기 힘들겁니다..다른 주는 서로 회장 하겠다고 싸움들이 대단하더군요.한인회가 거의 30여년을 이어 오고 있는데, 인적 자원이 정말 없습니다.인재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알래스카 " 앵커리지의 역사 "
알래스카 Anchorage 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앵커리지는 1914년 세계 2차대전 당시 전략적
기지로 떠오르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
Anchorage 다운타운에 있는 지금의 기차역 옆에
있는 Ship Creek에 수많은 텐트 촌이 건설이 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되었는데, 당시 골드 러쉬로 수많은
사람들이 알래스카로 몰려 오는 시기와 맞물려
떠 오르는 황금의 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습니다.
.
그 당시 텐트 하나만 잘 쳐 놨어도 지금은 후손들이 배를
두들기며 잘 먹고 잘 사는 계기가 되었을겁니다.
그럼 앵커리지 다운타운으로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
여기는 다운 타운 4번가에 있는 구 시청 건물인데 , 늘 문을
닫아 걸어 놔서 들어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정말 궁금하던 곳이었습니다.
.
.
그런데, 마침 오늘 기회가 되어 들어 갈 수 있어
들어 가 보았습니다.
앵커리지 다운타운 초창기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저기다 조상님이 텐트 하나만 잘 쳐 놨어도 지금은 떵떵 거리며
잘 살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ㅎㅎ
.
.
역시, 알래스카를 상징하는 연어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
.
초창기에는 종교단체, 선교사,골드러쉬와 전쟁에 관계된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앵커리지에 정착을 하며 도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
하였습니다.
특히, 2차대전 군 시설을 대폭 건설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래스카로 몰려 들면서 급격한 인구 증가를 가져 왔습니다.
.
.
1867년 미 국무장관인 윌리엄 스워드가 총 720만불, 알래스카를
에이커당 2센트에 사들여 미국으로 편입을 하였습니다.
급격한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주로 승격을 하자고 매년 건의를
했지만 무시되었습니다.
720만불도 다 준 게 아니고 , 절반은 남아도는 밀로 지불을
했으니 , 러시아가 땅을 치며 후회를 할만 합니다.
.
.
앵커리지 시 청사 앞에 그려진 알래스카의 역사도 입니다.
알래스카 역사를 한번에 이해가 가능합니다.
알래스카 역사는 아주 단순합니다.
.
.
앵커리지 시청입니다.
출입구 앞에 632 라고 쓰여 있는데 이 건물이 다운타운 6번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단순하게 붙여진 주소입니다.
.
.
저 건물은 개스 이익 배당금을 신청하는 주 청사 건물입니다.
시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매년 1월 2일 부터 배당금을 직접 신청을 해도 되고, 인터넷을 이용해
신청을 해도 됩니다.
배당금 신청 자격은 1월1일 부터 12월 31일까지 일년을 살면
신청 자격이 주어집니다.
.
.
다른 맥주보다 저 알래스칸 맥주는 가격이 다소 비쌉니다.
마셔보면 금방 느낄 수 있을텐데 맨 왼쪽 붉은 상표 맥주를
한번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보리 향이 아주 강합니다.
.
.
알래스카의 주도는 " 주노" 에 있습니다.
저 건물은 주 정부 사무실이 있는 건물입니다.
주 정부 관계 부처들은 저 건물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
.
알래스카 눈사람은 3 단입니다.
왜냐하면 맨 밑 1단은 계속 내리는 눈으로 파 묻히기
때문입니다.
1867년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사들였지만 정식으로
인수 인계가 된 해는 1912년 부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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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2월 10일 앵커리지 국제공항이 개항이 되기 전까지
다운타운 4번가인 이 곳이 공항 역활을 하였습니다.
.
.
옛날에는 알래스카에 주민들을 정착 시키기 위해 많은 땅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 그 후손들이 배를 두들기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마타누스카 빙하를 공짜로 받는 사람은
지금도 입장료중 일부를 배당 받고 있으며, 매표소,기념품샵도 그 땅
주인이 운영을 하고 , 이제는 숙박 시설과 식당까지 차려 대대손손
빙하가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롱라이플 레스토랑) 앞으로
100여년은 무난하게 잘 살 것 같습니다.
.
알래스카의 농작물 자급자족율은 2.5% 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농사 짓는 이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제도가 있어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다소 도움을 주고 있지만 농사란 게 쉽지 않아
농장들이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농사 짓지 않아도 먹고 살만하니 굳이, 힘든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들 합니다.
.
.
다운타운에 오면 저런 주차장 전용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초 1시간 무료이니 , 되도록이면 주차장 건물에 주차하는 게
좋습니다.
자리가 아주 널럴합니다.
가격도 아주 저렴합니다.한시간당 1불 50센트인가 하던 것
같습니다.
카드로 내니, 요금이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
.
다운타운을 걸어 다니는데 정말 추웠습니다.
5분만 걸어도 귓 볼이 얼더군요.
앵커리지 인구가 1940년에 3천명이었는데 , 1951년에
47,000명으로 늘어 났으니, 해마다 늘어가는 주민 수가
엄청 났습니다.
이 당시 땅을 무상으로 마구 나누어 주었는데, 담당자와
아는 사이에는 더 많은 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땅을 무상으로 불하 받은 주민들은 지금 세금 대신
땅으로 납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도 학연,혈연,지연 이런 거 다 있습니다.
.
.
호텔 앞인데, 행여 호텔 앞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져
다치면 문제가 생기니 저렇게 CCtv 를 가로등에 설치해
사고 유무를 확실하게 체크 업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고소 한번 잘 못 당하면, 회사를 팔아야 할 정도로
징벌적 배상을 하기 때문에 이런 건 아주 필수 입니다.
.
.
다운타운에 있는 초창기 러시아 정교회입니다.
빌딩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 저는 저런 건물이 참 보기
좋습니다.
.
.
스키를 이용해 트리를 만들었습니다.
어떤가요?
.
.
알래스카에 최초의 TV 방송국은 KTVA 인데, 1953년 개국이
되었습니다.
.
.
자욱한 안개로 인해 달 모양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
1959년 1월 3일 주로 승격이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더욱 증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알래스카 전체 인구는 약, 73만명이며, 그중 40% 가량이
앵커리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인 전체 인구는
약, 6천여명에 달합니다.
I.M.F 전만 하더라도 한인 인구는 8천명 정도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줄어 든 경향이 있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직항이 I.M.F 로 폐쇄가 되면서
많은 회사들이 철수를 하였습니다.
.
그나마 다행인 건, 알래스카에 영사 업무를 보는 나라는
불과 세 나라인데 그중,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도 한인 회장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 거의 강제로
추천을 해서 매 회기를 이어 나간다는 겁니다.
이런 점은 참 아쉽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한인이 회사를
운영하는 이가 거의 전무합니다.
호텔들은 대부분 시애틀에 거주지를 둔 이들이 하고 있고,
거의가 노년 층이라 노인회만 두 개가 운영을 하고 있을 정도
입니다.
아마 미국에서 이런 주는 거의 보기 힘들겁니다.
.
다른 주는 서로 회장 하겠다고 싸움들이 대단하더군요.
한인회가 거의 30여년을 이어 오고 있는데, 인적 자원이
정말 없습니다.
인재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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