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열정, 정치인 노회찬

정의로운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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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4.15 총선은 당시로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탄핵 열풍을 맞은 민주당이 몰락하고 한나라당은 제1당을 빼앗기면서 열린 우리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었다. 그리고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좌파 정당이 10석을 얻어 50년 만에 처음으로 원내에 입성했다. 여기에는 지난 대선에서 TV토론을 통해 맹활약하면서 민주노동당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4.15 총선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맹활약을 한 노회찬이 큰 힘이 됐다. '50년을 쓰던 고기판에 삼겹살을 구우면 새까매진다. 이젠 판을 갈아야 한다'는 판갈이론은 총선 기간 내내 최고의 어룩으로 화재를 모았고, 10명의 의원을 배출해 제3당이 됨으로써 민주노동당에 대한 진보개혁 세력의 기대는 커졌다. 게다가 극적이였던 점은 민주노동당이 정당지지 13.1%를 얻었고, 자민련은 2.9%에 그쳐 정당지지 3%를 넘지 못함으로써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당시 자민련 총재였던 김종필이 40년 이상을 활약한 정치 무대에서 탈락하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이였던 노회찬이 턱걸이로 국회의원이 된 것은 시대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2004년 초 한겨레신문이 뽑은 '미래 한국을 열어갈 100인'중 정치분야 11인에 선정된 노회찬은 "꿈은 이뤄집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복지국가, 모든 차별과 억압이 철폐되는 평등한 사회, 외세로부터 독립한 당당한 자국국가, 분야 단체가 종식된 하나의 코리아, 모든 국민이 악기 한쯤은 다룰 수 있는 문화국가, 우리가 묻힐 조국의 모습입니다."라는 선정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그람시가 그랬다. 모든 사람은 지식인이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하는 것은 나이라고, 계몽시대는 지났다. 이제 머리보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에 머리가 움직이는 그런 시대가 됐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사회를 진보시킬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렸다. 늘 투쟁으로 일관해왔던 386시대들은 정치적인 감각만 뛰어나지 문화적인 힘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문화적인 힘은 당장 눈에 뛰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진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언젠가 김동춘 교수는 자신의 책 [전쟁과 시회]를 10만이 보면 대한민국이 변할 것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회과학서적을 만 명에게 읽히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이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효과가 있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김동춘 교수의 책 등을 참고하고 김동춘 교수가 자문 위원으로 참여한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우익들의 학살이라는 장면을 정면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보릿쌀 한 뒷박을 얻어먹고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학살당한 이은주가 나온 그 한 장면 때문에 친일파가 친밀파가 되고 그들이 군대와 경찰을 장악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던 우리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쉬워졌다. '너, 태극기 휘날리며는 봤어? 거기서 말이지......'로 시작하면 우리 역사에 무지한 그들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면 최소한 아무런 생각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그런 사실은 없었다거나 빨갱이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울면서 우리 가족들을 왜 죽었어? 라고 하는 호소에 대해 니들도 빨갱이지, 니들도 죽어라 라는 식으로 그 한을 억압해 왔던 사회가 아니었던가?

이 얘기는 운동과 연구 같은 것을 무시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진지한 운동과 연구, 너무나 중요한 거다. 하지만 대중에게 설득되어지지 않은 운동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지금은 우리가 똑같이 한 표를 가진 그런 시대고, 누구나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시대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자. 어떤 이는 박찬욱에 대해 계급적인 한계를 얘기하기도 하고, 나이브한 사회의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 영화가 500만 명에게 보여 지지 않았다면 '북한 사람들도 우리 동포구나'하는 진한 감정을 갖는데 더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붕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승리해서 역사를 거꾸로 끌어갔을지도 모른다. 어째든 그런 영화들이 나옴으로 해서 사람들은 '아, 이제는 저런 소재를 써도 되는구나, 저렇게 표현해도 되는구나'하는 확인을 시켜줌으로써 용기 있게 그런 표현을 하게 함과 동시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설득하는 효과가 있다.

조금 생각이 있다는 사람들은 흔히 '왜 사람들은 말장난만 하는 연예인들의 토크쇼에 열광할까? 주말엔 아무 생각 없는 연예인들이 나와서 짝짓기나 하고, 게임만 하는 프로그램에 열광 할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들을 시간 날 때 가만히 생각 없이 보다 가보면 시간도 잘 가고, 때론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건 이미 상수로 봐야 한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거다. 젊은 친구들이 정치의식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 사회는 정체되고,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정치가 재미있다는 걸 보여줘야 된다. 늘 관심 있는 사람들만 보는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서 ‘이겼네, 졌네’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대중들에게 정치가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도 일정하게 엔터테이너 역할까지 같이 해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에 나가서 태생적으로 보수적이며, 사회적인 연대에 미숙한 사람들에게 사회구성원간의 연대가 왜 필요하며, 진보 세력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도 사회의 진보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왜 사람들이 연예인 토크쇼에 열광하느냐고 말하지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단어로, 사람들 눈높이의 언어로 좀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다. 그리고 그런 공급을 기다리는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고 믿는다.

내가 보기에 그런 수요에 가장 근접해 있고,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던 정치인은 (고)노회찬의원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