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열정 언론인 손석희

짱이20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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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아나운서와 차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개 아나운서나 앵커는 권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며, 대본을 읽는 역할에만 충실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극단적으로 ‘아나운서가 똑똑할 필요가 뭐가 있어?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나와서 원고만 잘 읽으면 되지’라고 말한다. 물론 자신이 그 내용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의 차이는 대중들에 대한 전달력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다.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는 ‘그건 마치 음악성 자체를 중시하는 조용필과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를 중시하는 정태춘의 차이 같은 것이다. 그는 후자 쪽이다’고 평했는데 그는 메시지를 존중하는 정태춘의 방식을 통해 조용필 같은 대중성과 영향력까지 획득했다.

정혜신 박사의 이 같은 평에 대해 손석희는 “제가 방송사에 들어왔던 것이 84년이니까 그때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엄혹했던 시절이고 방송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속에서 방송을 앞장서서 한다고 하는 사람의 갈등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들이 없을 수 없었고요,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데, 그러한 갈등을 잊고 지내느냐, 내부적으로 키우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인데, 성격상 잊고 지낼 수는 없는 성격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뭐랄까 순수하게 방송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보다는 방송을 둘러싼 환경을 고민한 시간이 더 많았고요. 그래서 아마도 정혜신 박사가 그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방송을 통해서 표출이 되었기 때문에 그랬겠죠.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늘 태평성대와 같은 시기는 없는 거니까.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려면 할 수 있는 거구요. 물론 종류는 다를 수도 있어요. 과거처럼 정치적 압박이 방송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이 더 압력 단체로부터 압력을 받을 수 있는 문제는 있는 것 아니겠어요? 과거처럼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익단체는 존재하는 것이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미디어를 통해 반영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과연 공정 방송이 무엇이냐에 대한 화두는 아직까지도 똑같이 살아 있다고 봐야 된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지금도 그런 고민은 있을 수 있고,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고민들을 잊고 지내느냐, 내부적으로 키워서 표출을 하느냐’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인데, 제가 지금 신입사원이 돼서 똑같이 방송을 시작하더라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는 ‘고대 나와서 기자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해서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주류 대부분의 속마음일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손석희 아나운서는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방송을 하시면서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셨던 적은 없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그 부분을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것을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못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바깥에서 그런 부분들을 ‘아, 이 사람이 그것 때문에 고민했을 것이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럴만한 겨를이 없어요. 그럴만한 겨를을 가졌다면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죠.”라고 답한다.

명쾌한 답이 아닐 수 없다. ‘난 콤플렉스 없어’하면 ‘사실은 있잖아’라고 할 거고 ‘난 콤플렉스 있어’라고 하면 ‘역시 넌 그게 한계야’라고 말할 게 뻔한 상황에서 그들의 입을 막는 방법은 실력 밖에 없다. 콤플렉스를 신경 쓰면 쓸수록 일은 더 꼬이고 일이 꼬이면 꼬일수록 원망만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소위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인생을 늦깍이 인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 대학, 사회 진출, 결혼 등 모든 것이 남보다 최소한 1년에서 3~4년씩 늦었고,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는 마흔이 넘은 해인 1997년 안정된 방송활동을 중단하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네소타 대학원 저널리즘 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왔다. 타이틀 같은 것에 전혀 욕심이 없을 것 같은 그가 뒤늦게 유학을 갔다 온 이유는 현장에서 소진되는 느낌이 싫었고 이론적 토대를 보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절실함이 있으면 지각 인생을 살아도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라고 얘기한다. 그 절실함이라는 것은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라 이것이 내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인가, 내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의 절박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