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에서는 교과 과정의 중반 쯤 되면 필수적으로 학교 외부의 업체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것도 그냥 잠깐 일 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14주 동안 풀타임으로 일해야 하지요.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요리사를 장래 직업으로 희망하고 있으니 일 할 레스토랑 찾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푸드 미디어 쪽을 전공하려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가능한 곳이라면 음식 관련 잡지, 방송국 푸드 채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다행히도 학교 협력업체 중에서 푸드 컨설팅 회사에서 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딱 제가 하고 싶을 일들을 다 하고 있더라구요.
음식 사진 및 영상 작업, 광고 기획, 푸드 소셜 미디어 등을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대형 식품업체들의 의뢰를 받아 제품 활용법을 고안하거나 레스토랑 메뉴 개발, 리조트 식단 검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재미있는 일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버터 케이크 개발 역시 이런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컨설팅 회사의 주 고객 중 하나가 마르스(Mars)인데, 미국 초콜렛 시장을 허쉬와 함께 양분하고 있는 초거대 기업이지요.
엠앤엠즈나 스키틀즈, 트윅스 등이 모두 이 회사의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달다구리들을 활용할만한 레시피를 찾아내고 실제로 만들어 보며 최적의 배합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그 전에 기본 레시피를 따라 아무것도 넣지 않은 버터 케이크를 먼저 만들어야 하지요. 만드는 방법 자체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실온에 놔둔 버터가 말랑해지면 설탕과 섞어서 크림화하고, 밀가루와 베이킹 파우더를 섞은 가루를 크림에 넣고 섞다가 바닐라 에센스를 넣은 버터밀크를 섞어주면 반죽 준비가 끝나니까요.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주방이라 그런지 실수 연발.
반죽을 섞을 때는 반죽용 날개를 붙여야 하는데 거품기용 날개를 붙이고 돌린다거나,
레시피에 나와있는 오븐 온도를 맞추고 적혀있는 시간대로 구웠더니 새카맣게 태웠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차라리 집에서 구웠더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텐데요.
물론 요리 전공 학생이라 아직 제과제빵에 대해 배운 건 거의 없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실패는 실패.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팀장이 CIA 제과제빵 전공 출신입니다. 반죽기에 거품용 날개 붙이고 신나게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래서 요리 전공하는 놈들은 안된다니까 케헹헹”이라고 놀려대더군요.
그래도 이런 컨설팅 회사의 주방이 좋은 점은 이게 거의 실험실에 가까운 분위기라 실패하고 또 그 실패를 극복하는 게 일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숯덩이가 되어버린 밀가루 반죽은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다시 시도하면 되니까요.
재빨리 반죽을 다시 만들고 짤주머니에 담아 번트팬이라고 불리는 케이크 틀에 짜넣어 줍니다.
번트(Bundt) 케이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약간 높다란 반지 모양의 외형에 있습니다.
독일의 구겔호프와도 비슷한 모양이지만 번트 케이크는 레시피와는 상관없이 도넛 비슷하게 생긴 모양의 틀에 넣어 굽기만 하면 다 번트 케이크라고 인정받지요.
반죽을 만들어서 짤주머니에 담고, 나중에 부풀어 오를 것을 감안해서 틀의 4분의 1 정도만 채워서 구워냅니다.
다 구워진 번트 케이크는 식힘망에 식힙니다.
맛은 카스테라나 제누아즈 (스펀지 케이크)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강력한 버터 풍미와 이에 지지 않는 달달함이 이 케이크만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이 갖고 있던 예쁜 모양과 무늬가 잘 살아있습니다.
주방용품을 만들던 독일계 유태인이 “독일에서 만들어 먹던 구겔호프를 만들 수 있게 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1940년대에 무겁고 불편한 무쇠틀 대신 알루미늄 틀을 만들어 판 것이 시작이지요.
이 회사가 오늘날까지도 럭셔리 베이킹 용품으로 유명한 노르딕웨어입니다. 원래는 Bund 케이크라고 부르던 것을 상표 등록을 하기 위해 일부러 t를 붙여 Bundt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지만 초반에는 그닥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한 제빵사가 이 틀을 이용해서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에서 요리가 끝나지만, 오늘의 최종 목표는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초콜렛 제품을 활용한 새로운 레시피를 찾는 것.
기본 반죽을 다시 만들어서 틀에 붓고, 기본 버터케이크의 맛을 바탕으로 어울릴만한 초콜렛 제품들을 시도 해 봅니다.
M&M’s와 스키틀즈는 그대로 섞어넣고, 삼총사(3 Musketeers), 은하수(Milky Way), 트윅스와 같은 초코바는 얼린 후 잘게 다져서 넣습니다.
초콜렛이 반죽에 잘 섞이도록 저은 후 다시 굽습니다.
초콜렛 제품들을 추가해서 구운 결과물. 어떤 것은 넣으나 마나 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안 넣으니만 못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전혀 다른 맛이 나면서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것도 있으니, 이번에는 스키틀즈가 활약했네요.
초콜렛 제품군은 그냥 초코칩을 넣은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스키틀즈는 그 특유의 과일향이 더해지면서 느끼할 수도 있는 버터의 풍미를 상큼하게 끌어올려줍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무거운 스키틀즈 특성 상, 다들 아래로 가라앉아서 녹았는데 그 덕에 나중에 뒤집어 보니 케이크 윗면에 소스 뿌린 것 마냥 케이크가 설탕에 살짝 녹으면서 다양한 색깔로 물든 것도 특색있네요.
무엇보다도 마냥 부드럽기만 하던 케이크의 식감에 쫀득쫀득하게 반쯤 녹은 스키틀즈가 섞이면서 씹는 재미도 있다는 게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스키틀즈의 양을 다르게 해서 또 다시 구워봅니다.
이미 존재하는 레시피에 부재료 하나 더 얹는 것인데도 온 몸이 버터 냄새에 찌들 정도로 주구장창 케이크를 구워야 합니다.
취미로 요리 할 때와 진지한 업무로서의 요리 할 때가 이렇게 다르네요.
최종 버전의 케이크를 굽다보니 만들기 쉽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도 그렇고 주변에 나눠주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사를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 이웃에 떡 돌리듯, 미국에서도 새로 이사 온 이웃에게 간단하게 구운 쿠키나 머핀 등을 가져다주며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거든요.
조그만 빵조각이 사람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간혹 마주치는 생일 파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불이 꺼지고, 어딘가에서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퍼지면 ‘아, 누가 생일인가보다’라고 별 감흥없이 생각하다가도 식당의 손님들 모두에게 케이크 조각이라도 하나씩 돌리면 왠지 나도 그 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이 드니까요.
케이크라고 해봤자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느끼한 크림 케이크 한 조각이지만, 그 맛과는 별개로 누군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일 케이크 나눠 먹기 이벤트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여섯 살 먹은 딸내미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유치원, 유아원에 해당하는 프리 스쿨(Pre-School)에 다니면서 생일이 뭔지는 몰라도 생일파티가 뭔지는 감을 잡아가기 시작했거든요.
미국의 학교에서는 생일을 맞이한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컵케이크나 조각 케이크 등을 대접하고 조그만 봉투에 사탕이나 조그만 장난감 등을 넣은 구디백(Goodie Bag)을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더라구요.
그래서 방과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종종 눈이 똥그래진 상태로 흥분해서 “오늘 친구 생일이라서 컵케이크 먹었어요! 그리고 구디백도 받았어요!”라고 자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단순히 얻어먹는 재미보다도 ‘내가 VIP가 되는 날은 언제 오나’에 관심을 갖더군요.
쪼그만 녀석이 벌써부터 감투 욕심이 있어서 아이들 줄 맞춰 갈 때 맨 앞에서 걷는 줄반장 (Line leader)만 해도 신나서 자랑하는 마당이니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생일 때는 동네 베이커리에서 고민해가며 컵케이크도 고르고, 인터넷으로 보물상자 모양의 종이박스도 주문해서 초콜렛 금화와 보석 사탕을 나름 컨셉 잡고 구디백을 만들기도 했지요.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콧구멍 벌름거리며 흐뭇해하는 걸 보니 앞으로도 생일 대충 넘기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키틀즈 버터 케이크의 최종 완성본을 보니 좋은 레시피 하나 건졌다는 안도감이 가득합니다. 맛도 달달하고, 크기도 적당하고, 색깔도 알록달록한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케이크니까요.
선물로 나눠먹기 좋은 스키틀즈 버터케이크
CIA에서는 교과 과정의 중반 쯤 되면 필수적으로 학교 외부의 업체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것도 그냥 잠깐 일 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14주 동안 풀타임으로 일해야 하지요.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요리사를 장래 직업으로 희망하고 있으니 일 할 레스토랑 찾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푸드 미디어 쪽을 전공하려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가능한 곳이라면 음식 관련 잡지, 방송국 푸드 채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다행히도 학교 협력업체 중에서 푸드 컨설팅 회사에서 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딱 제가 하고 싶을 일들을 다 하고 있더라구요.
음식 사진 및 영상 작업, 광고 기획, 푸드 소셜 미디어 등을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대형 식품업체들의 의뢰를 받아 제품 활용법을 고안하거나 레스토랑 메뉴 개발, 리조트 식단 검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재미있는 일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버터 케이크 개발 역시 이런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컨설팅 회사의 주 고객 중 하나가 마르스(Mars)인데, 미국 초콜렛 시장을 허쉬와 함께 양분하고 있는 초거대 기업이지요.
엠앤엠즈나 스키틀즈, 트윅스 등이 모두 이 회사의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달다구리들을 활용할만한 레시피를 찾아내고 실제로 만들어 보며 최적의 배합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그 전에 기본 레시피를 따라 아무것도 넣지 않은 버터 케이크를 먼저 만들어야 하지요. 만드는 방법 자체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실온에 놔둔 버터가 말랑해지면 설탕과 섞어서 크림화하고, 밀가루와 베이킹 파우더를 섞은 가루를 크림에 넣고 섞다가 바닐라 에센스를 넣은 버터밀크를 섞어주면 반죽 준비가 끝나니까요.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주방이라 그런지 실수 연발.
반죽을 섞을 때는 반죽용 날개를 붙여야 하는데 거품기용 날개를 붙이고 돌린다거나,
레시피에 나와있는 오븐 온도를 맞추고 적혀있는 시간대로 구웠더니 새카맣게 태웠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차라리 집에서 구웠더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텐데요.
물론 요리 전공 학생이라 아직 제과제빵에 대해 배운 건 거의 없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실패는 실패.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팀장이 CIA 제과제빵 전공 출신입니다. 반죽기에 거품용 날개 붙이고 신나게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래서 요리 전공하는 놈들은 안된다니까 케헹헹”이라고 놀려대더군요.
그래도 이런 컨설팅 회사의 주방이 좋은 점은 이게 거의 실험실에 가까운 분위기라 실패하고 또 그 실패를 극복하는 게 일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숯덩이가 되어버린 밀가루 반죽은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다시 시도하면 되니까요.
재빨리 반죽을 다시 만들고 짤주머니에 담아 번트팬이라고 불리는 케이크 틀에 짜넣어 줍니다.
번트(Bundt) 케이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약간 높다란 반지 모양의 외형에 있습니다.
독일의 구겔호프와도 비슷한 모양이지만 번트 케이크는 레시피와는 상관없이 도넛 비슷하게 생긴 모양의 틀에 넣어 굽기만 하면 다 번트 케이크라고 인정받지요.
반죽을 만들어서 짤주머니에 담고, 나중에 부풀어 오를 것을 감안해서 틀의 4분의 1 정도만 채워서 구워냅니다.
다 구워진 번트 케이크는 식힘망에 식힙니다.
맛은 카스테라나 제누아즈 (스펀지 케이크)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강력한 버터 풍미와 이에 지지 않는 달달함이 이 케이크만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이 갖고 있던 예쁜 모양과 무늬가 잘 살아있습니다.
주방용품을 만들던 독일계 유태인이 “독일에서 만들어 먹던 구겔호프를 만들 수 있게 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1940년대에 무겁고 불편한 무쇠틀 대신 알루미늄 틀을 만들어 판 것이 시작이지요.
이 회사가 오늘날까지도 럭셔리 베이킹 용품으로 유명한 노르딕웨어입니다. 원래는 Bund 케이크라고 부르던 것을 상표 등록을 하기 위해 일부러 t를 붙여 Bundt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지만 초반에는 그닥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한 제빵사가 이 틀을 이용해서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에서 요리가 끝나지만, 오늘의 최종 목표는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초콜렛 제품을 활용한 새로운 레시피를 찾는 것.
기본 반죽을 다시 만들어서 틀에 붓고, 기본 버터케이크의 맛을 바탕으로 어울릴만한 초콜렛 제품들을 시도 해 봅니다.
M&M’s와 스키틀즈는 그대로 섞어넣고, 삼총사(3 Musketeers), 은하수(Milky Way), 트윅스와 같은 초코바는 얼린 후 잘게 다져서 넣습니다.
초콜렛이 반죽에 잘 섞이도록 저은 후 다시 굽습니다.
초콜렛 제품들을 추가해서 구운 결과물. 어떤 것은 넣으나 마나 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안 넣으니만 못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전혀 다른 맛이 나면서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것도 있으니, 이번에는 스키틀즈가 활약했네요.
초콜렛 제품군은 그냥 초코칩을 넣은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스키틀즈는 그 특유의 과일향이 더해지면서 느끼할 수도 있는 버터의 풍미를 상큼하게 끌어올려줍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무거운 스키틀즈 특성 상, 다들 아래로 가라앉아서 녹았는데 그 덕에 나중에 뒤집어 보니 케이크 윗면에 소스 뿌린 것 마냥 케이크가 설탕에 살짝 녹으면서 다양한 색깔로 물든 것도 특색있네요.
무엇보다도 마냥 부드럽기만 하던 케이크의 식감에 쫀득쫀득하게 반쯤 녹은 스키틀즈가 섞이면서 씹는 재미도 있다는 게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스키틀즈의 양을 다르게 해서 또 다시 구워봅니다.
이미 존재하는 레시피에 부재료 하나 더 얹는 것인데도 온 몸이 버터 냄새에 찌들 정도로 주구장창 케이크를 구워야 합니다.
취미로 요리 할 때와 진지한 업무로서의 요리 할 때가 이렇게 다르네요.
최종 버전의 케이크를 굽다보니 만들기 쉽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도 그렇고 주변에 나눠주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사를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 이웃에 떡 돌리듯, 미국에서도 새로 이사 온 이웃에게 간단하게 구운 쿠키나 머핀 등을 가져다주며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거든요.
조그만 빵조각이 사람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간혹 마주치는 생일 파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불이 꺼지고, 어딘가에서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퍼지면 ‘아, 누가 생일인가보다’라고 별 감흥없이 생각하다가도 식당의 손님들 모두에게 케이크 조각이라도 하나씩 돌리면 왠지 나도 그 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이 드니까요.
케이크라고 해봤자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느끼한 크림 케이크 한 조각이지만, 그 맛과는 별개로 누군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일 케이크 나눠 먹기 이벤트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여섯 살 먹은 딸내미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유치원, 유아원에 해당하는 프리 스쿨(Pre-School)에 다니면서 생일이 뭔지는 몰라도 생일파티가 뭔지는 감을 잡아가기 시작했거든요.
미국의 학교에서는 생일을 맞이한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컵케이크나 조각 케이크 등을 대접하고 조그만 봉투에 사탕이나 조그만 장난감 등을 넣은 구디백(Goodie Bag)을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더라구요.
그래서 방과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종종 눈이 똥그래진 상태로 흥분해서 “오늘 친구 생일이라서 컵케이크 먹었어요! 그리고 구디백도 받았어요!”라고 자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단순히 얻어먹는 재미보다도 ‘내가 VIP가 되는 날은 언제 오나’에 관심을 갖더군요.
쪼그만 녀석이 벌써부터 감투 욕심이 있어서 아이들 줄 맞춰 갈 때 맨 앞에서 걷는 줄반장 (Line leader)만 해도 신나서 자랑하는 마당이니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생일 때는 동네 베이커리에서 고민해가며 컵케이크도 고르고, 인터넷으로 보물상자 모양의 종이박스도 주문해서 초콜렛 금화와 보석 사탕을 나름 컨셉 잡고 구디백을 만들기도 했지요.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콧구멍 벌름거리며 흐뭇해하는 걸 보니 앞으로도 생일 대충 넘기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키틀즈 버터 케이크의 최종 완성본을 보니 좋은 레시피 하나 건졌다는 안도감이 가득합니다. 맛도 달달하고, 크기도 적당하고, 색깔도 알록달록한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케이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