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무원이었던 남편과 전업주부였던 나는 남매를 키워 출가시켜놓고는 "이제 숙제 다 했다" 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니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며느리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닌, 동양적인 미인이었습니다. 긴 머리에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는 사람이라 어디든 눈에 띄었고 동네 사람들은 전업주부치고는 너무 요란하다며 수근거리곤 했습니다. 비록 한 집에서 살았지만 며느리로부터 시모의 잔소리, 간섭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산다는 말 듣기 싫어, 저 하고 싶은데로 하게 내버려두었고그런 며느리가 자신을 닮은 아들까지 낳았을 때 우린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손자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무렵 아들이 고혈압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졌지요. 아들이 떠나고 4개월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집을 증축하기로 했습니다.오래되기도 했고, 기분 전환도 필요했고요.손자의 여름 방학을 택해 공사를 시작하기로 해 그 동안 두 모자를 외가에 가 있게 했습니다.방학이 끝난 후 손자만 돌아왔습니다. 임시 살림방 하나에 우리 세 사람이 기거했거든요.두 달 후 집이 완성되어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어이없게도 재혼했으니 더 이상 찾지 말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알고보니 사돈은 일찌감치 며느리를 종용해 맞선을 보게 했고, 그 중 한 남자와 눈이 맞아 진작 임신까지 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상대 남자가 며느리에게 자식과의 인연을 끊으라고 해,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자는 제 어미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채 지내오고 있습니다. 멋진 2층 집에, 볕이 잘 드는 널찍한 방을 손자의 방으로 잡아놓고우리 내외는 아낌없이 손자에게 뭐든 해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시집간 딸도 손자를 수시로 불러 자기네 애들하고 같이 어울리도록 하고 있고요. 하지만 평균 한달에 한번, 집안에서는 대형 소동이 벌어집니다.오늘도 손자가 울고불며 악을 씁니다."내가 나중에 재판관 돼 자식버리고 시집간 여자들 모조리 사형시켜버릴거야" 이럴 때면 할아버지의 매도 소용 없습니다.할아버지가 아빠 노릇까지 하려니 매를 드는 건데요. 저는 그때마다 손자가 불쌍해 눈물만 흘립니다. 정말 며느리가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이젠 며느리도 아닙니다만..마땅한 호칭을 못 찾겠네요.가겠다고 하면 안 보내줄까봐서? 우리도 젊은 며느리가 평생 수절과부로 살길 바랬겠습니까? 지 새끼한테 이렇게 모질게 해야만 했을까요?하루 아침에 아빠, 엄마와 생이별을 해버린 제 손자...저 아이 가슴에 켜켜이 쌓인 응어리, 저거 어쩐데요? 93
하루 아침에 손자가 고아가 됐어요.
남매를 키워 출가시켜놓고는 "이제 숙제 다 했다"
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니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며느리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닌,
동양적인 미인이었습니다.
긴 머리에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는 사람이라
어디든 눈에 띄었고 동네 사람들은 전업주부치고는
너무 요란하다며 수근거리곤 했습니다.
비록 한 집에서 살았지만
며느리로부터 시모의 잔소리, 간섭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산다는 말 듣기 싫어, 저 하고 싶은데로 하게 내버려두었고그런 며느리가 자신을 닮은 아들까지 낳았을 때 우린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손자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무렵
아들이 고혈압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졌지요.
아들이 떠나고 4개월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집을 증축하기로 했습니다.오래되기도 했고, 기분 전환도 필요했고요.
손자의 여름 방학을 택해 공사를 시작하기로 해
그 동안 두 모자를 외가에 가 있게 했습니다.
방학이 끝난 후 손자만 돌아왔습니다.
임시 살림방 하나에 우리 세 사람이 기거했거든요.
두 달 후 집이 완성되어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어이없게도 재혼했으니 더 이상 찾지 말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알고보니 사돈은 일찌감치 며느리를 종용해 맞선을 보게 했고,
그 중 한 남자와 눈이 맞아 진작 임신까지 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상대 남자가 며느리에게 자식과의 인연을 끊으라고 해,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자는
제 어미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채 지내오고 있습니다.
멋진 2층 집에, 볕이 잘 드는 널찍한 방을 손자의 방으로 잡아놓고우리 내외는 아낌없이 손자에게 뭐든 해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시집간 딸도 손자를 수시로 불러
자기네 애들하고 같이 어울리도록 하고 있고요.
하지만 평균 한달에 한번, 집안에서는 대형 소동이 벌어집니다.
오늘도 손자가 울고불며 악을 씁니다.
"내가 나중에 재판관 돼 자식버리고 시집간 여자들 모조리 사형시켜버릴거야"
이럴 때면 할아버지의 매도 소용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빠 노릇까지 하려니 매를 드는 건데요.
저는 그때마다 손자가 불쌍해 눈물만 흘립니다.
정말 며느리가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이젠 며느리도 아닙니다만..마땅한 호칭을 못 찾겠네요.
가겠다고 하면 안 보내줄까봐서?
우리도 젊은 며느리가 평생 수절과부로 살길 바랬겠습니까?
지 새끼한테 이렇게 모질게 해야만 했을까요?
하루 아침에 아빠, 엄마와 생이별을 해버린 제 손자...저 아이 가슴에 켜켜이 쌓인 응어리, 저거 어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