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학교 애들은 착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고등학교에 와 보니 뼈 저리게 느껴진다. 대부분이 유치원, 초등학생 때 부터 알아온 애들인지라, 심지어 소위 날라리라 불리는 애들과도 어릴 때 한 번 쯤은 친하게 지냈던 경험이 있었다. 남자 애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 애들은 정말 착했다. 수업 시간에 수업을 방해하거나 자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3년 내내 반배정이 잘 됐다. 친한 친구와 3년 내내같은 반이었다. 새학기가 두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도, 지금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편하게 학교생활 한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나는 중학생 때 공부를 꽤 잘했다. 처음부터 잘 한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올려서 3학년 땐 최상위권이었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선생님들은 나를 이뻐하셨고, 부모님도 나를 대견하게 여기셨고, 친구들도 나를 칭찬했고, 나아가 그들의 은근한 질투와 시기를 즐기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너무 행복하게 중학교를 다녔다. 물론 힘든 일도 참 많았다. 친구 무리 문제, 학업 스트레스, 수행평가 무임승차, 부모님과의 갈등, 학원 문제 등등... 하지만 추억은 미화 된다는 말이 맞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니까, 나는 복에 겨운 인간이었다. 3년 동안 꿀 빨면서 학교에 다녔다.
나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한심하게도 나는 중3 겨울 방학을 거의 날렸다. 공부를 해야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음에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매일 네이트판에 고등학교 현실에 대하여 찾아보고 직시했는데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했어야 하는건데 왜 그러지 못 했을까.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내 머리를 너무 믿었던 내가 너무 안일했다. 하지만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에, 나중에 놀고 싶은 생각이 들면 "넌 이미 실컷 놀았으니까 안돼."라고 채찍질 할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단지 앞 당겨서 놀고 쉰 거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나선 반배치고사를 봤고, 모의고사를 봤고, 한우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 처럼 나에게도 등급이 매겨졌다. 공부 안 한 만큼 나왔다. 내 수준은, 위치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구나. 예상은 했다만 생각보다 더 씁쓸했다. 중학생 땐 10번 중에 7번은 10등 안에 들던 나였는데 나는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뿐 이었다. 말 그대로 충격적인 점수였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인문계 여고를 선택하고도 장학금도, 면학반도, 좋은 첫인상도 전부 놓쳤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께서 정신 안 차리면 성적 못 올릴거라고 말씀하셨다. 진짜 이런 말은 모욕이고 상처다. 미치겠다.
일단 이게 좀 견디기 힘들다. 중학생 때는 내가 잘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공부 쪽로 차별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확실히 달랐다. 방송으로 공부 잘하는 애들만 불러서 교무실로 오라고 하고, 과목 부장도 성적순으로 뽑고, 동아리도 면접보다 성적이다. 모든게 성적과 관련되어 있다. 공부를 못 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면학반 애들을 발표하는 날엔 가슴이 꽉 막히고 자존심이 상해서 죽을 뻔 했다. 근데 이제 됐다. 내가 공부를 죽어라 했는데도 안 나온거면 몰라도 펑펑 놀고 딱 그 수준의 등급을 받은 건데왜 나는 계속 속상해 하고 부정하려는걸까? 내가 우습다. 그래서 그만둘거다. 대신에 지금부터 진짜 열심히 해서 중간고사 때 혜성처럼 나타날 것이다. 정말 혜성처럼 나타나서 모두를 놀라게 할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이미 해봤는데 못 할 이유가 왜 있겠어?
또 하나, 기가 센 아이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중학교 때와는 사뭇 다른 게 아닌 많이 다른 아이들이 아직도 낯설다. 그냥 이유없이 째려보는 애들도 있고 껄렁껄렁 거리면서 낄낄낄 쪼개는 애들도 있다. 개학 전날과 첫날에는 인싸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너무 설렜었다. 입학식을 하고 온갖 유머러스한 말과 미소를 뽐내면서 다른 중학교 출신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서 무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첫날부터 지쳐서 힘들게 만든 무리에서 나오고 친구와 단둘이 다니고 있다. 반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 때 마다 초조해진다.
현타와서 글 적는다
우리 중학교 애들은 착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고등학교에 와 보니 뼈 저리게 느껴진다. 대부분이 유치원, 초등학생 때 부터 알아온 애들인지라, 심지어 소위 날라리라 불리는 애들과도 어릴 때 한 번 쯤은 친하게 지냈던 경험이 있었다. 남자 애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 애들은 정말 착했다. 수업 시간에 수업을 방해하거나 자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3년 내내 반배정이 잘 됐다. 친한 친구와 3년 내내같은 반이었다. 새학기가 두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도, 지금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편하게 학교생활 한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나는 중학생 때 공부를 꽤 잘했다. 처음부터 잘 한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올려서 3학년 땐 최상위권이었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선생님들은 나를 이뻐하셨고, 부모님도 나를 대견하게 여기셨고, 친구들도 나를 칭찬했고, 나아가 그들의 은근한 질투와 시기를 즐기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너무 행복하게 중학교를 다녔다. 물론 힘든 일도 참 많았다. 친구 무리 문제, 학업 스트레스, 수행평가 무임승차, 부모님과의 갈등, 학원 문제 등등... 하지만 추억은 미화 된다는 말이 맞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니까, 나는 복에 겨운 인간이었다. 3년 동안 꿀 빨면서 학교에 다녔다.
나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한심하게도 나는 중3 겨울 방학을 거의 날렸다. 공부를 해야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음에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매일 네이트판에 고등학교 현실에 대하여 찾아보고 직시했는데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했어야 하는건데 왜 그러지 못 했을까.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내 머리를 너무 믿었던 내가 너무 안일했다. 하지만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에, 나중에 놀고 싶은 생각이 들면 "넌 이미 실컷 놀았으니까 안돼."라고 채찍질 할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단지 앞 당겨서 놀고 쉰 거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나선 반배치고사를 봤고, 모의고사를 봤고, 한우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 처럼 나에게도 등급이 매겨졌다. 공부 안 한 만큼 나왔다. 내 수준은, 위치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구나. 예상은 했다만 생각보다 더 씁쓸했다. 중학생 땐 10번 중에 7번은 10등 안에 들던 나였는데 나는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뿐 이었다. 말 그대로 충격적인 점수였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인문계 여고를 선택하고도 장학금도, 면학반도, 좋은 첫인상도 전부 놓쳤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께서 정신 안 차리면 성적 못 올릴거라고 말씀하셨다. 진짜 이런 말은 모욕이고 상처다. 미치겠다.
일단 이게 좀 견디기 힘들다. 중학생 때는 내가 잘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공부 쪽로 차별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확실히 달랐다. 방송으로 공부 잘하는 애들만 불러서 교무실로 오라고 하고, 과목 부장도 성적순으로 뽑고, 동아리도 면접보다 성적이다. 모든게 성적과 관련되어 있다. 공부를 못 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면학반 애들을 발표하는 날엔 가슴이 꽉 막히고 자존심이 상해서 죽을 뻔 했다. 근데 이제 됐다. 내가 공부를 죽어라 했는데도 안 나온거면 몰라도 펑펑 놀고 딱 그 수준의 등급을 받은 건데왜 나는 계속 속상해 하고 부정하려는걸까? 내가 우습다. 그래서 그만둘거다. 대신에 지금부터 진짜 열심히 해서 중간고사 때 혜성처럼 나타날 것이다. 정말 혜성처럼 나타나서 모두를 놀라게 할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이미 해봤는데 못 할 이유가 왜 있겠어?
또 하나, 기가 센 아이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중학교 때와는 사뭇 다른 게 아닌 많이 다른 아이들이 아직도 낯설다. 그냥 이유없이 째려보는 애들도 있고 껄렁껄렁 거리면서 낄낄낄 쪼개는 애들도 있다. 개학 전날과 첫날에는 인싸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너무 설렜었다. 입학식을 하고 온갖 유머러스한 말과 미소를 뽐내면서 다른 중학교 출신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서 무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첫날부터 지쳐서 힘들게 만든 무리에서 나오고 친구와 단둘이 다니고 있다. 반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 때 마다 초조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