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 margin: 5px 0px } 5.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지기전에 이미7공수가 광주에 내려와 있었다.그 당시 광주에서 시민들이 참가하게 된것은7공수가 광주에서 대검으로 잔인하게 진압을 한후다.그때가 5.18이였는데..그때 시민들은 비무장이였지만..공수부대는 도망가는자는 끝까지 추적하면서 까지잔인하게 대검으로 난자를 하였다.5.19일에는 11공수까지 투입이 되어서 무자비한 학살이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어서 광주는 생지옥으로 변한다.이미 광주의 모든 도로가 차단이 되었고..전화도 끓어져서....완전히 고립이 된 상태라..개미새끼 한마리 들고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그리고 철저한 언론통제로 대한민국 국민들은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전혀 알수가 없었다.20일부터는 공수부대가 화염방사기까지 사용하는등사격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자 시민들도 도저히 안되겠기에경찰서 예비군 무기로 무장을 하게 된것이다.그런데 북한군 1개대대면 약 450명정도가 될텐데..이많은 인원이 한국군과 미군의 육해공의 삼엄한 경계을 뚫고서해변도시도 아닌 내륙지방인 광주로 진입을 한다는게 가능하였을까..?그리고 이동수단은...어떻게 해결하였을까...?또한 북한군 특수부대 1개대대면 그화력이나..전투력이일당백으로 막강하였을 텐데...광주항쟁시 진압군의 전사자는 총 23명이였다.그 중에서 13명은 진압군 끼리의 오인사격으로 사망을 하였고..2명은 장갑차에 치여서 사망하였으니..시민군과의 교전으로 인한 사망은 8명정도 밖에는 안된다.막강한 전투력의 북한군이 450여명이나 내려와서작전중에 3분의2가 전사를 하였다는데...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그리고 그 당시 도청에서 간첩으로 의심이된(나중에는 위장한 진압군으로 밝혀졌지만...)사람을 잡아서 군부대에 인계할 정도로 시민군들이 빨갱이문제에 대해서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그당시 전두환이 빨갱이들이 폭동을 사주하였다고광주지역 상공에서 헬기를 이요해서 방송과 삐라로쉬지않고 선전선동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시민군측에서도 각별할수 밖에는 없었다.또한 북한군이 4,5백명이나 광주에 있었다면외모는 물론이고..사투리에서도 금방 탄로가 났을 것이다.광주항쟁은 전두환이 5.17일에 갑자기 비상계엄을 발동하면서야기된 상황이였으니..북한에서도 전혀 예측할수도 없었을 것이니..언제 충분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연습을 시킬수가 있었겠는가...!같은 남한인들 끼리도 사투리를 익히려면 최소한몇개월은 걸리는데....^^끝으로 갈수록 삼엄하게 포위가 된 광주시를 살아남은북한군 특수부대가 어떻게 빠져 나갈수가 있었을까..?북한군은 투명인간이라도 된다는 말인가..?맘대로 들어오고 맘대로 나갈수가 있게...ㅉㅉㅉ~그리고 그당시 광주항쟁이 종료가 된후에도 전두환은광주와 공산당을 엮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 하였다.그런데도 북한군 특수부대는 단 한번의 언급도 되지가 않았다.단 1%의 가능성만 있었어도 전두환은 철저하게 이용을 하였을 것이다.도대체가 말이되는 짓거리들을 하여야지..!광주항쟁시 잔인하게 학살을 당한 수많은원혼들에게 죄송하지도 않은가...?
광주항쟁때 북한군특수부대가 내려왔다고 하는 유언비어에 대해서
7공수가 광주에 내려와 있었다.
그 당시 광주에서 시민들이 참가하게 된것은
7공수가 광주에서 대검으로 잔인하게 진압을 한후다.
그때가 5.18이였는데..그때 시민들은 비무장이였지만..
공수부대는 도망가는자는 끝까지 추적하면서 까지
잔인하게 대검으로 난자를 하였다.
5.19일에는 11공수까지 투입이 되어서 무자비한 학살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어서 광주는 생지옥으로 변한다.
이미 광주의 모든 도로가 차단이 되었고..
전화도 끓어져서....완전히 고립이 된 상태라..
개미새끼 한마리 들고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철저한 언론통제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전혀 알수가 없었다.
20일부터는 공수부대가 화염방사기까지 사용하는등
사격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자 시민들도 도저히 안되겠기에
경찰서 예비군 무기로 무장을 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북한군 1개대대면 약 450명정도가 될텐데..
이많은 인원이 한국군과 미군의 육해공의 삼엄한 경계을 뚫고서
해변도시도 아닌 내륙지방인 광주로 진입을 한다는게 가능하였을까..?
그리고 이동수단은...어떻게 해결하였을까...?
또한 북한군 특수부대 1개대대면 그화력이나..전투력이
일당백으로 막강하였을 텐데...
광주항쟁시 진압군의 전사자는 총 23명이였다.
그 중에서 13명은 진압군 끼리의 오인사격으로 사망을 하였고..
2명은 장갑차에 치여서 사망하였으니..
시민군과의 교전으로 인한 사망은 8명정도 밖에는 안된다.
막강한 전투력의 북한군이 450여명이나 내려와서
작전중에 3분의2가 전사를 하였다는데...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당시 도청에서 간첩으로 의심이된
(나중에는 위장한 진압군으로 밝혀졌지만...)
사람을 잡아서 군부대에 인계할 정도로 시민군들이 빨갱이
문제에 대해서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당시 전두환이 빨갱이들이 폭동을 사주하였다고
광주지역 상공에서 헬기를 이요해서 방송과 삐라로
쉬지않고 선전선동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군측에서도 각별할수 밖에는 없었다.
또한 북한군이 4,5백명이나 광주에 있었다면
외모는 물론이고..사투리에서도 금방 탄로가 났을 것이다.
광주항쟁은 전두환이 5.17일에 갑자기 비상계엄을 발동하면서
야기된 상황이였으니..북한에서도 전혀 예측할수도 없었을 것이니..
언제 충분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연습을 시킬수가 있었겠는가...!
같은 남한인들 끼리도 사투리를 익히려면 최소한
몇개월은 걸리는데....^^
끝으로 갈수록 삼엄하게 포위가 된 광주시를 살아남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어떻게 빠져 나갈수가 있었을까..?
북한군은 투명인간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맘대로 들어오고 맘대로 나갈수가 있게...ㅉㅉㅉ~
그리고 그당시 광주항쟁이 종료가 된후에도 전두환은
광주와 공산당을 엮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 하였다.
그런데도 북한군 특수부대는 단 한번의 언급도 되지가 않았다.
단 1%의 가능성만 있었어도 전두환은 철저하게 이용을 하였을 것이다.
도대체가 말이되는 짓거리들을 하여야지..!
광주항쟁시 잔인하게 학살을 당한 수많은
원혼들에게 죄송하지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