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페미에 빠진건 2016년, 프랑스 교환학생을 가서 사회주의를 공부하던 때 급진적 페미니즘을 접했고 한국에 돌아와 내가 선구자인 마냥 친구들에게 페미니즘을 전파시켰고, 친구들은 떠났어요. 제 무리한 사상주입에 지쳤던 거겠죠. 2017년, 학교 안에 비밀 여성연대를 만들고 마음 맞는 여대생들과 연대하여 각종 시위 참가, 그리고 비밀스럽게 공공장소에 연대 할 페미니스트를 구하는 전단을 붙이고... 내가 무슨 레지스탕스, 혁명군 그런건 줄 알았나봅니다. 2018년, 숏컷 결심.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네, 정말 못났더군요. 그렇지만 이 또한 외모지상주의에 내가 억압되어 그런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종 사이트에 남성 비하 발언부터... 그러던 2018년 가을, 아버지 사업이 휘청이며 더이상 자취할 수도 없게 되고 용돈도 못 받게 되고. 아버지의 등. 눈물 보이신 적 없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울며 미안하다고 사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면서. 내가 그렇게 욕하던 아버지. 나를 위해 용돈 등록금 대주고 여자는 좋은 곳에 살아야 한다며 안전한 곳에 자취방을 해준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저는 한 사이트에 6범죄를 왜 여자가 피해야 돼? 울 X충 한X이다9 이딴 글을 쓴 나 자신. 아버지 눈에서는 가족에 대한 사랑, 헌신, 노력이 쏟아져 내리더라구요. 나의 페미니즘이 틀렸을까 흔들릴 때 저와 함께 여러 운동에 참여했던 친구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카톡 프로필에 남자친구랑 여행 가서 찍은 행복하게 웃는 사진을 찍은 내 친구. 일찌감치 페미니즘 코르셋을 던지고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산다더군요. 지난 제 과거를 회상해봤어요. 남자랑 데이트를 해본 기억도, 친구들 흔하게 따이던 번호를 따인적도 없어요. 한국남자 만날 바엔 서양남자를 만난다고 인터넷, 연대 사람들, 익명의 톡방에 그렇게 썼지만 거울을 보고 알았어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고, 나의 둔한 몸뚱아리에 대한 자기혐오는 사회가 만든게 아닌 나 자신의 게으름이 원인이었으며, 나는 지금까지 합리화를 한 것이라고. 사실 마음 속으로 더럽다는 클럽, 한번이라도 가보고 싶었고, 남자들의 눈맞춤을 받아보고 싶었고, 나도 예쁜 몸을 만들어 인스타에 내 노력을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버지 사업의 재개. 순탄히 흘러간다며 딸 때문이라며 딸이 공부를 잘하니까 아버지가 힘난다며 제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고기집에 데려가주셨어요. 남자한테 데여본 적도 없고 폭력을 당해본적도 없고 기껏해야 학창시절에 놀림이나 조금 당했던 저는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찬가지로 뚱뚱하고 못생긴 남학생을 저 또한 비하하며 놀렸어요. 저는 대체 무엇을 혐오하고 있던 걸까요. 사회의 문제가 만연한건 알겠는데 정말 나를 구렁텅이에 넣어야만 사회를 바꿀 수 있었던 걸까요? GCDA? 연애를 하고 싶다, 사랑을 받고 싶다, 누군가에게 각별히 사랑 받고, 사무치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나 혼자서는 못 해요. 나는 정말 멍청했던 것 같아요. 오늘부로 페미니스트를 그만 두려고 합니다. 나에 대한 모순 때문에 구역질이 나고 내가 해온 행동에 대한 수치심에 어디론가 숨고 싶어요. 그래도 중학생 때는 대쉬도 좀 받았는데... 그 시절의 코르셋은 나에게 자기만족감, 행복감, 높은 자존감을 줬어요.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려구요. 머리도 기르고 운동도 하고... 금요일인데 아무 약속도 없고 채팅은 혐오발언만 쏟아내는 단톡방 뿐이란 걸 알고 회의감에 글을 써봤어요. 읽어주신 분들 고마워요.12150
나의 페미니즘 그리고 회의감
한국에 돌아와 내가 선구자인 마냥 친구들에게 페미니즘을 전파시켰고, 친구들은 떠났어요.
제 무리한 사상주입에 지쳤던 거겠죠.
2017년, 학교 안에 비밀 여성연대를 만들고 마음 맞는 여대생들과 연대하여 각종 시위 참가, 그리고 비밀스럽게 공공장소에 연대 할 페미니스트를 구하는 전단을 붙이고...
내가 무슨 레지스탕스, 혁명군 그런건 줄 알았나봅니다.
2018년, 숏컷 결심.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네, 정말 못났더군요. 그렇지만 이 또한 외모지상주의에 내가 억압되어 그런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종 사이트에 남성 비하 발언부터...
그러던 2018년 가을, 아버지 사업이 휘청이며 더이상 자취할 수도 없게 되고 용돈도 못 받게 되고.
아버지의 등. 눈물 보이신 적 없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울며 미안하다고 사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면서.
내가 그렇게 욕하던 아버지. 나를 위해 용돈 등록금 대주고 여자는 좋은 곳에 살아야 한다며 안전한 곳에 자취방을 해준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저는 한 사이트에 6범죄를 왜 여자가 피해야 돼? 울 X충 한X이다9 이딴 글을 쓴 나 자신.
아버지 눈에서는 가족에 대한 사랑, 헌신, 노력이 쏟아져 내리더라구요.
나의 페미니즘이 틀렸을까 흔들릴 때 저와 함께 여러 운동에 참여했던 친구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카톡 프로필에 남자친구랑 여행 가서 찍은 행복하게 웃는 사진을 찍은 내 친구.
일찌감치 페미니즘 코르셋을 던지고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산다더군요.
지난 제 과거를 회상해봤어요.
남자랑 데이트를 해본 기억도, 친구들 흔하게 따이던 번호를 따인적도 없어요.
한국남자 만날 바엔 서양남자를 만난다고 인터넷, 연대 사람들, 익명의 톡방에 그렇게 썼지만 거울을 보고 알았어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고, 나의 둔한 몸뚱아리에 대한 자기혐오는 사회가 만든게 아닌 나 자신의 게으름이 원인이었으며, 나는 지금까지 합리화를 한 것이라고.
사실 마음 속으로 더럽다는 클럽, 한번이라도 가보고 싶었고, 남자들의 눈맞춤을 받아보고 싶었고, 나도 예쁜 몸을 만들어 인스타에 내 노력을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버지 사업의 재개.
순탄히 흘러간다며 딸 때문이라며 딸이 공부를 잘하니까 아버지가 힘난다며 제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고기집에 데려가주셨어요.
남자한테 데여본 적도 없고 폭력을 당해본적도 없고 기껏해야 학창시절에 놀림이나 조금 당했던 저는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찬가지로 뚱뚱하고 못생긴 남학생을 저 또한 비하하며 놀렸어요.
저는 대체 무엇을 혐오하고 있던 걸까요.
사회의 문제가 만연한건 알겠는데 정말 나를 구렁텅이에 넣어야만 사회를 바꿀 수 있었던 걸까요?
GCDA?
연애를 하고 싶다, 사랑을 받고 싶다, 누군가에게 각별히 사랑 받고, 사무치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나 혼자서는 못 해요.
나는 정말 멍청했던 것 같아요.
오늘부로 페미니스트를 그만 두려고 합니다.
나에 대한 모순 때문에 구역질이 나고 내가 해온 행동에 대한 수치심에 어디론가 숨고 싶어요.
그래도 중학생 때는 대쉬도 좀 받았는데...
그 시절의 코르셋은 나에게 자기만족감, 행복감, 높은 자존감을 줬어요.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려구요. 머리도 기르고 운동도 하고...
금요일인데 아무 약속도 없고 채팅은 혐오발언만 쏟아내는 단톡방 뿐이란 걸 알고 회의감에 글을 써봤어요.
읽어주신 분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