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아 사랑해 -2-

시간공작소2004.02.06
조회294

-2-

"아니 회사 안갈거야?"

"가야지..."

"그러면 빨리 준비하고 가"

"그런데 나 이 상태로 가면 전철타러 가는도중에 길에서 쓰러져서 죽을지도 몰라.
배고파서.."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라면이라도 끓여먹고 가겠다는거지."

"아침부터 무슨 라면이야? 그리고 지금 끓여서 언제 먹고 출근하냐?
내가 돈줄테니깐 그냥 출근해서 회사근처에서 적당히 사먹어."

민우는 단호하게
"싫어. 지금 배고파..끓여먹고 갈거야."
집요한 녀석..

"난몰라 마음대로해..나도 출근준비해야하니깐..."

"알았어..내가 끓여먹을거야.."

하면서 싱크대를 뒤적뒤적하더니 밥통만한 냄비에 물을 끊이고 라면세개를 툭 집어넣고
식탁의자에 앉아서 젓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면서

"끓어라~ 끓어라 팔팔 얼릉얼릉 끓어라~"

하면서 가스렌지위에 올려진 냄비에게 응원가를 보내고 앉아있는 민우를 보면서
한편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여든살 먹어서 식탁에 앉아서 젓가락 두드리면서 응원가를 보내고 있을 민우를 상상해보고
세영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야호~ 다 끓었다..자 먹자"

민우는 냄비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면발을 휙휙젓더니
한젓가락 뭉툭 집어서 후르륵 한입에 가득 입안에 넣고 뜨거운지
입을 벌려서 호호거리면서 먹기 시작했다.

세영이 출근준비를 끝내고 식탁으로 왔을때는 민우는 냄비를 들어서 라면국물을
꿀꺽꿀꺽하면서 목젖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열심히 마시다가

"휴~ 이제야 살것같네" 하면서 냄비를 식탁에 탁 내려놓았다.

"땀이나 닦아라~ "

그러자 민우는 팔뚝으로 이마의 땀을 스윽 닦으면서 씨익 웃었다.
뭐 솔직히 내남편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정말 잘생겼다.
짙은눈썹에 오똑한 콧날
웃을때 눈이 먼저 웃는 매력적인 눈웃음
그리고 립라인이 선명한 입술
거기다가 매일 운동하니깐 몸매는 더 말할필요도 없고

세영은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면서
"자기야~ 나 먼저 출근할께. 그냥 두면 냄새배니깐 설겆이까지 부탁해."

"알았어...나도 곧갈거야...잘갔다와 빠빠이~"

"아참~ 자기야 뭐 잊은것 없어?"

"뭐?"

달콤한 모닝키스를 기대하면서 입을 앞으로 쭈욱 내밀고 눈을 감고 서있는데
꺼어억~ 하고 지축을 흔드는 민우의 트럼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뜨고
세영은 핸드백을 뒤지는척하면서

"아~ 내가 열쇠를 챙겼나?"

"그런것은 미리미리 챙겨야지.."
하여간 무드깨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놈이라니깐...

"정말 간다."

"그래 잘가"

세영은 문고리를 열고 나가는 동시에 문앞에 있던 사람과 얼굴이 쾅 부딪혔다.

"아얏~ 아니 앞을 보고...헉~ 시엄마 아니 시어머니 아니 어머니..괜.괜찮으세요?."

세영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민우도 식탁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엄마"

세상은 내손안에 있소이다 하고
허리에 손을 탁얹고 껄껄 웃는 세영에게도 천적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민우엄마인 시어머니였다.

세영이 머리에 박힌 시어머니는 휘청하면서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세영이 머리가 어디 보통머리인가?

예전에 세영이가 대학교 다닐때

"세영아 오늘 시간되냐? 미팅 나가기로 한 선미가
못나가게 될것같다고 대타가 필요한데 시간되지?"

"미팅?"

"어..우리 선혁오빠 친구들인데 사울대 법학과 킹카들이야."
오~ 명문 사울대...거기다가 법대생..
잘만 고르면 미래에 판검사부인으로 모피코트입고 기사가 딸린 커다란 승용차에
내려서 백화점을 휩쓸고다니고 사람들은 90도로 절하면서 사모님 사모님하겠지.
아~ 행복하여라.
세영의 상상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야~ 세영아 뭘 혼자서 기분나쁘게 히죽히죽 웃어? 갈거야? 말거야?"

"글쎄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바쁘니?"
그럼 바쁘지..어제 센 천장무늬가 998개가 맞는지 검수작업 할려면...

"그래 알았다..다른 애 찾아볼께."
어어~ 뭐야 한번더 물어봐줘야되는것 아니야? 여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세영은 갈려는 친구를 황급히 잡으면서
"아니 내가 바쁘지만 친구 좋다는게 뭐겠니? 친구가 어려울때 도와야지..
그래 어디서 하는데.."

"어..장소는..."

퀸카는 항상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나와서 모든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켜야 된다는
어디서 들은 풍월대로 세영이는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미팅장소로 나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헉~"

세영은 나온 남자들을 쭈욱보고
아니 이건 뭐야. 요즈음은 외계인들도 미팅하나?
지뢰밭이 아니라 거름밭이네...
순간 집에 세다만 천장무늬가 간절히 세영이를 부르는듯한 환청이 들렸다.
그냥 아이고 잘못찾아왔군요. 여기가 아닌데 수고하세요.하하하 웃고 나올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주선자인 친구의 간절한 눈빛과 나의 찬란한 미모에 빠져서 몽롱해져버린
저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서 다만 몇시간을 할애하는것이 진정한 희생정신이 아닐까?
불연듯 나병환자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테레사수녀님이 떠올랐다.

여자네명 남자네명...
4:4라... 스타크 팀플전하기 딱 좋을숫자로군.

남자들은 세영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이 쏠려서 질문을 해대는데
세영은 건성건성으로 대답했다.
남자들 관심은 세영에게로 쏠리고 나온 여자들의 질시도 세영에게 쏠리고
어이~ 애들아 나도 이런 관심 절대 안반가워..
그런 눈으로 보지마...가질려면 뭉탱이로 너희들이나 다가져.
난 거저줘도 싫단다...

남자들은 어떻게 할려면 잘보이려고
최신유머라고해서 이것알아요하면서 하는데...
오~ 이래서 사람들이 살인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어기...죄송한데요..제가 하루종일 바뻐서 점심도 못먹었는데
식사주문해도 될까요?"
미팅주선한 친구는 세영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점심시간에 아줌마 여기 공기밥 추가요라고 씩씩하게 외치던 그 현장에 있던 증인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옆자리에서 보고 있는데 어디서 그런 거짓부렁을...

세영이가 이렇게 말하자 세영이의 대각선에 있던 남자놈이

"여기요.. 메뉴판 주세요... 세영씨 드시고 싶은것 있으시면 마음대로 시키세요.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녀석은 제가라는 말에 강하게 악센트를 주었다.
오호~ 그래?
세영은 메뉴판을 받자
음... 어디보자 이집에서 제일 비싼게 뭐더라...

식사가 나오고 세영은 대략 민망했다.
다들 커피나 쥬스 앞에 두고 꼴짝이고 있는데 옆에서 혼자만 랍스터 뜯어먹는다게...
애들아~ 세상에서 가장 추잡한게 먹을때 쳐다보고 있는것이란다.
매너있게 알아서 눈깔아라.

오늘의 지상목표를 저녁식사 해결로 진로수정한 세영은 후식까지 먹고
배가 든든하자 가슴까지 뿌듯했다.
집에 쌀도 절약하고 엄마 저녁짓는 수고도 덜어주고
이 어찌 효녀가 아닐수 있는가?
노벨평화상 아니 노벨효녀상이라도 줘야한다니깐..

아까부터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세영 바로 앞에 있는 남자가 신경에 거스렸다.
한눈에 딱보니깐 복학생아저씨처럼 보이는데
경로우대하는 우리나라 현정책에 맞추어서 그냥 넘어갈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아까부터 계속 신경이 쓰여서 그런데요.그 달그락거리는것 좀 안하시면 안되나요?"

"아하~ 이것말입니깐?"
하면서 보여준것은 호두였다.

"이것을 이렇게 손안에서 돌리면 지압이 되서 건강에 좋죠."
아니 이놈이 건강에는 관심있고 목숨에는 관심없냐?

또 그 복학생은 너죽거리는 웃음을 띄면서
"호두가 남자 그것랑 비슷하게 생겼죠..흐흐.."

세영은 그 복학생을 잠시 노려보다가 손안에 있는 호두를 확 빼앗아서
탁자위에 올려놓고 머리로 쾅 찧었다.

쾅하는 소리가 까페에 울려퍼지고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세영이쪽으로 집중됐다.
산산이 부서진 호두
산산이 부서진 세영의 이미지.
그리고 세영에게 학창시절 내내 더이상의 미팅은 없었다.

까페에 있던 사람들은 느닷없이 벌어진 차력쇼에 박수를 보내면서
한번더~ 한번더하고 외치자
세영은 쪽팔려하면서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세영은 집으로 돌아오는길 내내 혼잣말로

'참아야했는데...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참았어야하는건데...
이놈의 성질머리하곤...'

세영의 옆테이블에서 미팅을 하고 있던 민우는
호두를 머리로 뽀개는 세영의 모습을 보고 혼잣말로

'오오~ 저여자 멋지다.'


그런 머리에 부딪히고 살아남았다면 명당에 묘자리를 점지해주신 지관에게
깊은 감사를 해야한다.

"어머니 들어오세요."

시어머니는 순간 혼미했던 정신을 차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민우는
"엄마 왠일이야? 전화도 안하고.."

"근처에 볼일이 있고...밑반찬이랑 니가 좋아하는 간장게장도 가져왔다."

"정말정말 간장게장도 있어? 이거야?"
하면서 시어머니가 들고있는 보따리를 받아들고 식탁위에 올려놓고

"엄마 어느게 간장게장이야?"

"이것" 하면서 시어머니가 여러용기중에서 한용기의 뚜껑을 열자
민우는 안색이 화사하게 변하면서
게다리를 하나를 손으로 뚝 떼어서 오도독오도독 씹어먹는다.

"으음...그래 이맛이야...짜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에서 짜라는 말이 뜨끔하게 세영의 폐부를 뚫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