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의 허와 실

돈키호테200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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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실록에는 장금이가 수랏간에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문정왕후 윤씨와 대비 앞에서 요리 솜씨를 벌였다는 말은 더더욱 없다?

이게 왠 말인가!!드라마에선 만능 엔터테이너먼트인 장금이가?장금이의 허와 실

 

Who? 

문정왕후가 궁으로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장금이는 이미 의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으흑 왠일.


 

조선 왕조실록

 

문정왕후 들어오기 2년 전에 장경왕후가 세자를 생산하고 6일만에 죽는 상황에서

(장금이는 세자의 생산을 도운 공로가 컸으며, 또 산모 관리를 잘못하여 왕후를 죽게 했으니 그 죄 또한 컸다라는 기록도 보입니다.)

이때 사간원에서 의녀 장금이의 죄를 물어 곤장을 쳐야 한다고 하였으나 장금이를 좋게 보고 있던 중종이  “왕비 해산을 도운 공로와 그 나중의 죄과를 서로 합산하여 곤장만은 면해 주도록 하라”그 다음날 사간원에서 또 벌 주자고 같은 말을 했으나 중종은 답도 안 했다고 합니다.

그 때 중종 나이 28세에 장경왕후 나이가 25세였고 이 때 의녀 장금의 나이는 아마도 20세 전후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의녀에 필요한 소정의 교육을 받고 시험도 통과되어야 하니까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

 

2년 후에 들어 온 문정왕후보다는 적어도 다섯 살은 정도 장금이가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드라마에서는 장금이가 아직도 의녀가 아닌데다 나이도 문정왕후보다 어린 것으로 되어 있지만?

장금이가 대장금으로 나오는 것은 중종 19년, 서기 1524년에 기록이 보입니다.

중종 17년만 해도 그냥 장금이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장금이라는 칭호는 1523-4년 사이에 이루진것으로 봐야 되겠지요,,그러나 공식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고 중종 임금이 이름을 불러 줄 때에만 “대장금”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원래 의녀  의복은 “서울과 지방 기생”  똑같은 옷을 착용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끔은 중요한 외국 손님이 오면 의녀가 연회석상에서 춤도 추고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녀를 약방(藥房)기생과 상의원(尙衣院)의 침선비(針饍婢)인 상방(尙房)기생이라고 하여 따로 고전무용을 배우곤 했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천민이기 때문에 의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씨도 없었습니다.(지금 드라마에서는 서씨 성을 붙여서 서장금) 장금이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갖고 있는 중종 임금이 장금이의 이름 앞에 큰 "대" 자를 붙여 주어 "대장금" 이라고 불렀던 그 정도 수준이 임금이 장금이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때에(중종 19년 1524년)
"대장금을 견습 의녀가 아닌 궁궐 전속 의녀로 승격시키라" 지시하는 기록도 함께 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천민의 신분에서 보통 평민의 수준으로 등급도 하나 올려 주지 않았나 생각되어 집니다.

임금님 숙소에 출입하는 의녀들은 가끔 면천(免賤/천민을 면하는 것)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록에는 궁궐 식구들이 크고 작은 병들을 앓고 또 치료가 될 때마다 관련자들의 벼슬을 올려 준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상을 내리는데 천민 수준이었던 의녀(간혹 면천된 의녀도 있어서 '거의'라는 표현을 썼음)는 올라 갈 자리도 관직도 없어 항상 쌀 몇 섬, 옷감 몇 필 주는 것으로 상을 대신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중종 39년에 중종이 57세로 죽는 순간까지 항상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대장금이었고 거의 주치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중종실록’ 39년 10월 신묘(26일) 조에 보면 중종이 대변이 불 통하여 내의원들이 약제를 상의하고 있는데 중종 자신이 전교하 는 말이 나온다: “내 증세는 여의 장금이 안다.”(予證, 女醫知之.) 중종은 바로 이해 11월 15일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여의 장금은 중종 10년부터 ‘실록’에 등장한다. 그것도 9차례 나. 그러니까 그녀는 내의원들 누구보다도 더 중종의 신임을 얻은 의녀로서 근 30년간 중종의 건강을 지켰다.

 

그 때까지 기생 옷을 입어야 했던 대장금에게 정식으로 “어의”라는 관직을 주었다는 기록은 유감스럽게도 전혀 안 보입니다.


당시에 보통 의원도 양반 신분이 아닌 중인 계급에 불과했고, 그 의원 중에서 누군가가 '어의'로 지명되면 그 사람은 양반 계급으로 승격이 되었는데... 과거시험 잡과 중의 의과 부문에 정식으로 합격하여 몇 단계를 거쳐야 어의가 되는데 정식 의원도 아닌 일개 의녀가 어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상에서는 대장금을 어의로 승진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이는 '어의'의 개념을 "임금을 치료하는 데에 참가한 사람들 전부"라는 정도로 확대해야만 성립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중종이 죽은 뒤에 대장금의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대장금도 마지막에는 중종 임금의 건강을 잘못 관리하여 죽게 한 셈이니까 그 죄로 아마도 궁밖으로 쫓겨 나가 모처럼 자유의 몸이 되지 않았나 ?아마 궁녀 신분이 아니라 기생 신분이라서 궁 밖으로 나오는 것 하나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 드릴 것은 적어도 2003년 12월 방송분까지는 모두 역사에 없는 이야기란 것입니다.


또한 100년 뒤에나 중국 청나라에서 만들어질 예정인 '만한전석' 요리가 우리 나라에서 먼저 선을 보이고.(대장금의 시대는 중국으로 치면 명나라 시절임)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웠을 때에 청나라 황실에서 만주족 음식과 본토 한족 음식을 전부 내 놓는다는 것이 만한전석었습니다.이 요리는 3-4일간 계속 먹어 주어야 하는 음식인데 드라마에서는 100년이나 먼저 나타나서 간단한 상 하나만 등장하더라구요,,,!!

 

드라마는 가상 현실이니 더 지켜 봐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