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해외거주 중인 30대 중반 여자입니다. 제목처럼 엄마와 연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제가 고 1 때 이혼 하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 4살 차이가 나는 오빠가 있습니다. 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편애가 심한 엄마 밑에서 자랐는데요, 집에 돈이 있다보니 먹는 거 입는거 같은걸로 차별 받은 적은 없었어요. 학원이나 과외도 다 시켜주셨구요.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한다고 기숙학원 들어가기 전 까지 거의 맨날 맞고 자랐어요. 4살 차이가 나다 보니 전 반격도 못하고 진짜 맞기만 했습니다. 어릴 땐 엄마한테 가서 오빠가 이유없이 때린다, 내 물건 다 뒤진다, 괴롭힌다 말했었는데 그럴 때 마다 항상 이유없이 왜 때리겠냐며 너가 잘못을 했겠지, 엄마 바쁜데 귀찮게 하지말고 오빠 말 좀 잘 들어라 하셔서 어느 순간 부터 포기하고 맞았습니다. 아빠는 이혼 전에도 집에 오시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셔서 집에서 뭔 일이 나던 관심이 없으셨을거 같네요. 그리고 엄마는 제가 무슨 말을 할 때 마다 너는 말을 참 재미없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사회생활 나중에 어떻게 할래? 이가 친구는 있냐?는 식으로 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발언을 수시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바쁘신 분이 오빠랑 같은 반 친구 친하든 안 친하든 이름을 다 아셨고, 어머니회에도 열성적으로 참석하셨지만, 저랑 초중고 다 같이 나온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 뿐더러, 초등학교 졸업식 이 후로 아무런 행사에 오시지 않으셨죠. 입학식, 졸업식 때 마다 꽃 들고 부모님이랑 사진 찍는 애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제가 친 딸이 아닐거라고 생각한 적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봐도 엄마랑 저랑 좀 심하게 닮아서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오빠는 저렇게 사랑하면서 나랑은 말도 섞기 싫어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본인이 스스로를 싫어하셔서 본인이랑 꼭 닮음 제가 싫었던 거 같네요.
오빠에게 맞을때는 억울은 했어도 참을 수 있었는데 엄마가 말로써 상처를 주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저는 점점 더 조용한 아이가 되었고 음침해졌고, 친구도 점점 없어지고,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며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수능은 평소대로 봐서 문과 전교 11등 이였고, 그 당시엔 수시가 약간 시작 단계라 대부분 정시로 대학을 갔었고, 서울 상위권 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3개다 추가 번호 받고 떨어졌습니다.
자만감이였는지 솔직히 3개 다 붙을 줄 알았는데 충격이 컸습니다. 2월 말까지 추가합격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어요. 오빠는 공부 못했고 지방대 3개 썼다가 하나 불었었는데 자기는 서울 가고 싶다며 재수시켜 달라고 할 때 엄마가 ‘우리 아들이 이제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하려는구나’, 하시며 한 달에 이백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기숙학원을 보냈었는데 성적이 더 떨어져서 이름 한번 못 들어본 대학에 겨우 들어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근처 광역시에 있는 수학 단과 학원만 보내 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니가 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떨어진 건데 운을 탓하지 말라며, 한 번 떨어진 거 담에는 또 안 떨어질 거 같냐고, 그리고 이제 성인이니까 너 밥 값은 알아서 하라고. 그 말 듣고 이 주는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밥도 거의 안 먹고 있는데 볼 때 마다 비아냥 대시더라구요. 밥은 넘어가냐, 백수 꼴 보기 싫다, 천지에 쓸 데가 없다 이런 식으로요. 그 때 이 집을 나가야 내가 산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 1 이 후로 뵌 적이 없는 아빠를 찾아가서 돈 좀 달라고 빌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실 때 모든 재산을 엄마가 가지시는 대신 아빠는 양육권을 보내지 않는 걸로 합의를 보셨었어요.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으셔서 재혼을 하셨습니다. 아빠가 이야기를 들으시고 참 황당해 하시더라고요. 그리곤 전적으로 도와주고 싶지만 새 가정도 있으시니까 한달에 50만원 씩 보내 줄테니 고시원 같은 곳에 살면서 알바 해가며 공부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감사하다 하고 그 날로 짐 싸서 엄마한테 이 세상 욕을 다 먹으며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평생 등 따시게 살다가 눈곱만한 고시원에서 공동 화장실 샤워실 쓰면서 눈물은 나는데 더 이상 날 멸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 후련했어요. 다행히 카페 알바를 빨리 구해서 낮에는 알바 가고 저녁에 일주일에 세번 수학 단과학원 다니다가 7월에 갑자기 아빠가 돈을 안 보내 주시더라고요. 전화를 며칠 안 받으시다가 문자로 미안하다고 새부인이 돈을 보내는 걸 알게 되었다고, 이제부터 엄마한테 받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엄마한테 이제 시간이 좀 지났으니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였어요. 모아둔 돈으로 9월 까진 근근이 살 수 있을것 같긴 했는데 불안해져서 주말 편의점 알바를 구했습니다. 그리곤 수능 전날까지 알바를 하다 봤는데 망했었어요. 공부 할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 그래도 수리는 1등급이 나 온 걸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단과학원비 값은 한거 같아서요. 원서를 쓰려고 보니 고 3때 썼던 것들은 쳐다도 못 보겠더라구요. 나한텐 공부밖에 없었었는데 참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어쩌다 대학등록금도 내가 벌어야 할테고 별로인 대학에 갈 바에 그냥 쓰지 말까? 하고 몇 날 며칠을 고민을 하던 중에 엄마가 오빠 제대 기념으로 차를 사 준걸 알게 되었습니다. 외제차를요.
그 때의 분노는 정말.. 알바 중에도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점장님이 따로 불러서 주의를 줬는데도 정말 제어를 할 수 가 없었어요. 그때 한 9개월 정도 일 했어서 다행히 잘리지는 않았어요. 위 에 깜빡하고 안 적었는데 재수하는 내내 엄마가 이틀에 한 번씩 전화 하셨습니다. 어떨 때는 일 얘기, 어떨 때는 제 욕, 아빠 욕, 또 제 욕. 오빠 차 얘기도 엄마가 참 해 맑게 얘기 하시더라고요. 오빠가 참 보는 눈이 높아서 독일 차만 차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 당시 돈 때문에 속이 문드러졌는데. 아무튼 그 때 집만 떠난다고 벗어날 수 있는데 아니구나, 한국을 아예 떠야겠다고 마음먹고 일년 동안 알바 미친 듯이 해서 돈 모아서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왔어요.
여기 오고 나서 부터는 운이 정말 좋았어요. 첨에 카페에서 일하다가 매일 오는 손님이 어디가도 일 잘하겠다고 회사 리셉션에서 일하다가 회사에서 비자 제공해줘서 몇년 일 하다가 영주권 따고, 또 시민권 따고, 대학가서 공부하고, 정말 착한 남편 만나고, 시댁 식구들이 저 가족이 여기 없다고 정말 잘해주시고, 생일이면 시할머니까지 전화 주시고, 시누이들이랑은 완전 친한 친구같고,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가족애를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엄마한테는 생사확인 차 삼개월에 한 번씩 전화드리구요.
제가 결혼 준비 할 때 결혼식 날짜 잡는 것 때문에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자기는 8월 말곤 휴가 못 낸다 하셔서 좋은 날씨는 포기하고 맞춰서 날짜를 잡았는데 결혼식 일주일 전에 못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해 봄에 오빠 부인이 둘째를 낳았는데 산후조리 도와준다고 한 달 휴가쓰셨다데요? 왜 빨리 얘기 안 해줬내고 물으니까 깜빡하셨답니다. 서운할 게 남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하긴 결혼 당시 제가 여기에 온지 10년이 되었었는데 그 동안 여름마다 유럽이다 동남아다 이 곳 저 곳 놀러다니시면서 단 한번도 빈 말이라도 보러오시겠다고 하신적이 없으셨지요. 뭘 바랬었던지.
결혼식 이 후 정말 마음을 백프로 비웠고 지난 몇 년 꽤 평화롭게 지냈어요. 그러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어제 어쩐 일인지 전화를 하셔서 제가 어떻게 사는 지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그러냐니까 가족이 시민권자면 이민이 쉽다고 하시더라구요? 이게 뭔 소린가 해서 뭔 말이냐니까 본인이 정년퇴직을 하면 (환갑이 넘으셨는데 출생신고가 꽤 늦게되셔서 아직 이년이 남으셨다 하십니다) 여기에 와서 집 짓고 여유롭게 같이 살고 싶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영어도 하나도 못 하시는 분이 환갑이 넘으셔서 편한 자기 나라 놔두고 굳이 여기에 오는 이유가 뭐냐니깐 손주들 키우는거 도와주고 싶데요. 전 자식이 없는데. 본인이 이민을 안 오신다쳐도 오빠가 어차피 조카들을 (첫 째가 이제 초등학생) 보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제가 힘들테니깐 아주 넓은 아량으로 본인을 희생해가며 이민까지 해서 ‘저’를 도와주실거래요. 정말 욕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제가 계속 부정적인 대답을 하니 외국에 오래 살아서 제가 한국 정서를 잊었다네요? 키워준 은혜를 잊고 배은망덕하다고 욕을 한 십분 정도 먹었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는 연락할 일 없을 거라 하고 전화 끊고 곧 번호 변경할 계획입니다.
후련 찝집 합니다. 혹시 부모님과 연을 끊고 나중에 후회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후회는 안 할 거 같은데 나중에 돌아가시면 죄책감이 크지 않을까 싶고... 아무튼 어딘가 하소연 하고파서 글 남겨봅니다. 스마트폰이라 오타가 상당할듯. 철자 자동고침이 이렇게 짜증나는 기능인지를 한글로 글을 써보고 알았네요.
엄마랑 연을 끊으려 합니다
저는 해외거주 중인 30대 중반 여자입니다. 제목처럼 엄마와 연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제가 고 1 때 이혼 하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 4살 차이가 나는 오빠가 있습니다. 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편애가 심한 엄마 밑에서 자랐는데요, 집에 돈이 있다보니 먹는 거 입는거 같은걸로 차별 받은 적은 없었어요. 학원이나 과외도 다 시켜주셨구요.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한다고 기숙학원 들어가기 전 까지 거의 맨날 맞고 자랐어요. 4살 차이가 나다 보니 전 반격도 못하고 진짜 맞기만 했습니다. 어릴 땐 엄마한테 가서 오빠가 이유없이 때린다, 내 물건 다 뒤진다, 괴롭힌다 말했었는데 그럴 때 마다 항상 이유없이 왜 때리겠냐며 너가 잘못을 했겠지, 엄마 바쁜데 귀찮게 하지말고 오빠 말 좀 잘 들어라 하셔서 어느 순간 부터 포기하고 맞았습니다. 아빠는 이혼 전에도 집에 오시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셔서 집에서 뭔 일이 나던 관심이 없으셨을거 같네요. 그리고 엄마는 제가 무슨 말을 할 때 마다 너는 말을 참 재미없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사회생활 나중에 어떻게 할래? 이가 친구는 있냐?는 식으로 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발언을 수시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바쁘신 분이 오빠랑 같은 반 친구 친하든 안 친하든 이름을 다 아셨고, 어머니회에도 열성적으로 참석하셨지만, 저랑 초중고 다 같이 나온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 뿐더러, 초등학교 졸업식 이 후로 아무런 행사에 오시지 않으셨죠. 입학식, 졸업식 때 마다 꽃 들고 부모님이랑 사진 찍는 애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제가 친 딸이 아닐거라고 생각한 적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봐도 엄마랑 저랑 좀 심하게 닮아서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오빠는 저렇게 사랑하면서 나랑은 말도 섞기 싫어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본인이 스스로를 싫어하셔서 본인이랑 꼭 닮음 제가 싫었던 거 같네요.
오빠에게 맞을때는 억울은 했어도 참을 수 있었는데 엄마가 말로써 상처를 주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저는 점점 더 조용한 아이가 되었고 음침해졌고, 친구도 점점 없어지고,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며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수능은 평소대로 봐서 문과 전교 11등 이였고, 그 당시엔 수시가 약간 시작 단계라 대부분 정시로 대학을 갔었고, 서울 상위권 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3개다 추가 번호 받고 떨어졌습니다.
자만감이였는지 솔직히 3개 다 붙을 줄 알았는데 충격이 컸습니다. 2월 말까지 추가합격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어요. 오빠는 공부 못했고 지방대 3개 썼다가 하나 불었었는데 자기는 서울 가고 싶다며 재수시켜 달라고 할 때 엄마가 ‘우리 아들이 이제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하려는구나’, 하시며 한 달에 이백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기숙학원을 보냈었는데 성적이 더 떨어져서 이름 한번 못 들어본 대학에 겨우 들어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근처 광역시에 있는 수학 단과 학원만 보내 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니가 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떨어진 건데 운을 탓하지 말라며, 한 번 떨어진 거 담에는 또 안 떨어질 거 같냐고, 그리고 이제 성인이니까 너 밥 값은 알아서 하라고. 그 말 듣고 이 주는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밥도 거의 안 먹고 있는데 볼 때 마다 비아냥 대시더라구요. 밥은 넘어가냐, 백수 꼴 보기 싫다, 천지에 쓸 데가 없다 이런 식으로요. 그 때 이 집을 나가야 내가 산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 1 이 후로 뵌 적이 없는 아빠를 찾아가서 돈 좀 달라고 빌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실 때 모든 재산을 엄마가 가지시는 대신 아빠는 양육권을 보내지 않는 걸로 합의를 보셨었어요.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으셔서 재혼을 하셨습니다. 아빠가 이야기를 들으시고 참 황당해 하시더라고요. 그리곤 전적으로 도와주고 싶지만 새 가정도 있으시니까 한달에 50만원 씩 보내 줄테니 고시원 같은 곳에 살면서 알바 해가며 공부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감사하다 하고 그 날로 짐 싸서 엄마한테 이 세상 욕을 다 먹으며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평생 등 따시게 살다가 눈곱만한 고시원에서 공동 화장실 샤워실 쓰면서 눈물은 나는데 더 이상 날 멸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 후련했어요. 다행히 카페 알바를 빨리 구해서 낮에는 알바 가고 저녁에 일주일에 세번 수학 단과학원 다니다가 7월에 갑자기 아빠가 돈을 안 보내 주시더라고요. 전화를 며칠 안 받으시다가 문자로 미안하다고 새부인이 돈을 보내는 걸 알게 되었다고, 이제부터 엄마한테 받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엄마한테 이제 시간이 좀 지났으니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였어요. 모아둔 돈으로 9월 까진 근근이 살 수 있을것 같긴 했는데 불안해져서 주말 편의점 알바를 구했습니다. 그리곤 수능 전날까지 알바를 하다 봤는데 망했었어요. 공부 할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 그래도 수리는 1등급이 나 온 걸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단과학원비 값은 한거 같아서요. 원서를 쓰려고 보니 고 3때 썼던 것들은 쳐다도 못 보겠더라구요. 나한텐 공부밖에 없었었는데 참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어쩌다 대학등록금도 내가 벌어야 할테고 별로인 대학에 갈 바에 그냥 쓰지 말까? 하고 몇 날 며칠을 고민을 하던 중에 엄마가 오빠 제대 기념으로 차를 사 준걸 알게 되었습니다. 외제차를요.
그 때의 분노는 정말.. 알바 중에도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점장님이 따로 불러서 주의를 줬는데도 정말 제어를 할 수 가 없었어요. 그때 한 9개월 정도 일 했어서 다행히 잘리지는 않았어요. 위 에 깜빡하고 안 적었는데 재수하는 내내 엄마가 이틀에 한 번씩 전화 하셨습니다. 어떨 때는 일 얘기, 어떨 때는 제 욕, 아빠 욕, 또 제 욕. 오빠 차 얘기도 엄마가 참 해 맑게 얘기 하시더라고요. 오빠가 참 보는 눈이 높아서 독일 차만 차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 당시 돈 때문에 속이 문드러졌는데. 아무튼 그 때 집만 떠난다고 벗어날 수 있는데 아니구나, 한국을 아예 떠야겠다고 마음먹고 일년 동안 알바 미친 듯이 해서 돈 모아서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왔어요.
여기 오고 나서 부터는 운이 정말 좋았어요. 첨에 카페에서 일하다가 매일 오는 손님이 어디가도 일 잘하겠다고 회사 리셉션에서 일하다가 회사에서 비자 제공해줘서 몇년 일 하다가 영주권 따고, 또 시민권 따고, 대학가서 공부하고, 정말 착한 남편 만나고, 시댁 식구들이 저 가족이 여기 없다고 정말 잘해주시고, 생일이면 시할머니까지 전화 주시고, 시누이들이랑은 완전 친한 친구같고,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가족애를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엄마한테는 생사확인 차 삼개월에 한 번씩 전화드리구요.
제가 결혼 준비 할 때 결혼식 날짜 잡는 것 때문에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자기는 8월 말곤 휴가 못 낸다 하셔서 좋은 날씨는 포기하고 맞춰서 날짜를 잡았는데 결혼식 일주일 전에 못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해 봄에 오빠 부인이 둘째를 낳았는데 산후조리 도와준다고 한 달 휴가쓰셨다데요? 왜 빨리 얘기 안 해줬내고 물으니까 깜빡하셨답니다. 서운할 게 남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하긴 결혼 당시 제가 여기에 온지 10년이 되었었는데 그 동안 여름마다 유럽이다 동남아다 이 곳 저 곳 놀러다니시면서 단 한번도 빈 말이라도 보러오시겠다고 하신적이 없으셨지요. 뭘 바랬었던지.
결혼식 이 후 정말 마음을 백프로 비웠고 지난 몇 년 꽤 평화롭게 지냈어요. 그러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어제 어쩐 일인지 전화를 하셔서 제가 어떻게 사는 지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그러냐니까 가족이 시민권자면 이민이 쉽다고 하시더라구요? 이게 뭔 소린가 해서 뭔 말이냐니까 본인이 정년퇴직을 하면 (환갑이 넘으셨는데 출생신고가 꽤 늦게되셔서 아직 이년이 남으셨다 하십니다) 여기에 와서 집 짓고 여유롭게 같이 살고 싶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영어도 하나도 못 하시는 분이 환갑이 넘으셔서 편한 자기 나라 놔두고 굳이 여기에 오는 이유가 뭐냐니깐 손주들 키우는거 도와주고 싶데요. 전 자식이 없는데. 본인이 이민을 안 오신다쳐도 오빠가 어차피 조카들을 (첫 째가 이제 초등학생) 보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제가 힘들테니깐 아주 넓은 아량으로 본인을 희생해가며 이민까지 해서 ‘저’를 도와주실거래요. 정말 욕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제가 계속 부정적인 대답을 하니 외국에 오래 살아서 제가 한국 정서를 잊었다네요? 키워준 은혜를 잊고 배은망덕하다고 욕을 한 십분 정도 먹었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는 연락할 일 없을 거라 하고 전화 끊고 곧 번호 변경할 계획입니다.
후련 찝집 합니다. 혹시 부모님과 연을 끊고 나중에 후회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후회는 안 할 거 같은데 나중에 돌아가시면 죄책감이 크지 않을까 싶고... 아무튼 어딘가 하소연 하고파서 글 남겨봅니다. 스마트폰이라 오타가 상당할듯. 철자 자동고침이 이렇게 짜증나는 기능인지를 한글로 글을 써보고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