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쓰는글-필요한 죄책감에 대하여

믿음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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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너무나 되고싶었던 어렸을 때의 나와는 다르게, 어른이 되버린 나의 현재는 꿈꾸던 환상과는 많이 달랐다. 사실, 지금 상황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세상을 바꾸는 꿈이 꿈이라던 당당했던 어린 나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많이 소박해져 있었다. 돈 때문에, 현실 때문에, 사회 때문에,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래, 이것도 괜찮아..' 하며 타협해가는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시간이 화살같이 느껴질 거라는 어른들의 말에 공감을 못하던 내가, 어느새 그런 말을 피부로, 온몸으로 느끼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한 질문에 문득 나를 타격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었던건데?".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싶다는 나의 소망과는 다르게, 나는 나만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그들을 모두 도와주다가는 내가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같잖은 핑계로 나는 그들의 눈빛을, 그들의 도움을 거절해왔다. 그렇게 거절해오다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어릴 때 지하철의 노숙자를 단 한번도 그냥 못보냈던 내가, 지금은 그들의 도움의 청하는 간절한 목소리를 피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졸린 척을 하며 아무런 죄책감이 느끼지 않을 정도에까지 와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노숙자가 돈 달라고 한 걸 피한게 죄책감을 느껴야 할 정도인거야?" 하고 물을 수 있지만, 어릴 때 나와 비교했을 때, 그것은 매우 큰 차이였다.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제서야 새삼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오만했던 꿈에 대해 반성하며 내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했다. 항상 큰 목표만 세우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나중에..나중에..'를 외쳐왔던 것부터 고쳐보자. '지금.오늘.' 그래서 당장 마트에 가서 약 10인분의 점심거리를 무작정 샀다. 좋은 재료들을 다샀지만, 그래도 2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내가 10명의 노숙자들에게 1끼의 음식을 제공하는데 1인당 2천원정도가 드는 것이다. 모두를 돕지 못한다면 한명이라도 돕는게 무슨 소용이냐는 방자한 생각을 버리고, 한명이라도 돕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써두고 샌드위치와 작은 과자 그리고 물을 준비했다. 
일요일 오후,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가방에 음식들을 챙겨 거리로 나섰다. 노숙자들을 평소에 많이 봤던 지하철 역 근처, 거리 근처로 갔다. 처음 노숙자를 발견 한 순간, '이걸 어떻게 나눠주지' '무례하게 생각하진 않으실까' 걱정이 되었다. 따뜻한 인사말과 함께 건네주고 싶었던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두손에 음식을 들고 "좋은 하루 되세요!" 하고 튈 뿐이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분들은 너무 고맙다며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음식을 가져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뿌듯하고 내 자신이 장하다라는 생각이 들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음식이 비워져 갈수록, 노숙자들을 마주할 수록, 나는 마음이 무거워져만 갔다.
왜 마음이 무거웠을까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그것은 아마 죄책감이었던 것같다. 그들이 현재 하는 생활에 비교하여 내가 살고있는 환경은 너무나 쾌적하고 좋은 환경인데, 그것에 불평 불만하며 감사해하지 못하던 삶에 대해서 부끄러워 졌다. 그리고, 내가 잠시나마 내가 그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던 내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하며 이뤄진것이며 그것에 대하며 조금이나마 자부심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너무나 사소한 일에 대하며, 그리고 해야만 하는 작은 노력에 대하여 눈과 귀를 막아왔으며, 나도 그저 그런 어른 중 하나가 되어버렸구나 하고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인, '어렸을 때 그 때의 나는 어디에 갔을까..' 어디서 온 구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구절을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허전하고 그리워진다. 어렸을 때 오백원하나로 마음이 가득 행복으로 차오르던 감사함과,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으며, 지금처럼 시시한 고민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때의 내가 그립다. 
물론, 어릴 때의 나로 돌아가서 무책임해지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저 가끔 내가 증오하던 어른 중 하나의 모습이 닮아가는 것이 두렵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의 나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다. 어릴 때의 나는 순수했지만 이기적이었고, 무지한 배려와 질투가 강한 아이였다. 그 모든 것이 아애 사라진 것은 아니나,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는 것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지금은 필요한 후회와 죄책감이 있다고 본다. 그것들을 느껴야만 좋은 어른이 된다고 생각이 된다. 물론, 언제나 느껴도 유쾌한 감정은 아니지만, 필요한 감정이다. 마치 봄이 오기위해선 겨울을 버텨야 하듯이.. 아직 좋은 어른은 아니지만, 이러한 깨달음을 통하여 좋은 어른으로 커가길 기대하며 나이를 먹는 것이 즐거워졌으면 좋겠다.
2019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