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삶

ㅇㅇ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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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난한사람들도 많은데 유별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는게 너무 힘들어 푸념이라도 하고싶어서 글을 씁니다
마음을 다잡고싶어 질책섞인 조언이라도 부탁드립니다



부모님 두분 합쳐서 200만원정도 그것이 동생까지 4인가족 생활비였다

작은 금액이 아니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엄마의 가난타령에 나는 평생 갖고싶은 옷 한벌 사달라고 말하는게 무서웠다
배우고싶었던 피아노는 초등학생일때 한달 다니고 학원비때문에 그만뒀고
다니던 종합학원은 중학생때 학원비가 부담스러우니 그만 다니면 안되겠냐는 어머니말씀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다닐 학원비는 없어도 한달에 몇십만원씩 들어가는 술값은 어디서 나오는지 술취한 아버지는 항상 내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어려서는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 사람이 되는줄알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다 알만한 대학에 들어갔다
등록금은 국가장학금이 나왔지만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왜이리 비싼지 반절정도는 부모님이 내주셔야했다

고등학생때까지만 해도 교통비면 충분했는데 대학생이 되니 돈들어갈 일들이 많아졌다
용돈이라고는 한 푼 받아본적 없는 나는 수업이 끝나면 알바를 갔야했다
그 돈은 가끔 옷을 사고 친구를 만나는데 썼다
그리고 남은 돈은 저금했다가 아버지 수술비나 어머니가 생활비가 모지란다는 말에 부모님께 드려야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연애를 할려면 돈이 필요했다
2년을 사귀고 도저히 데이트비를 감당할수 없을때 헤어지자고 말했다
돈이 없다는 아쉬운 소리도 한두번이지 더는 말하고싶지않았다
이 이후 고백을 받아도 돈이 무서워 거절했다

2학기 등록금부터는 국가장학금에 학자금 대출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모인 대출이 천만원을 넘어섰을때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휴학을 하고 공립대학으로 편입을 준비했다
휴학기간 동안 모은 돈은 학자금 대출일부를 갚았다

면접때 면접관이 왜 같은 과인데 다른학교로 편입을 하냐고 물었다
그전학교도 좋은학교였지 않냐고 말했다
차마 등록금때문이라고 말은 못하고 비전이니 뭐니 이상한 말을 대답했다
나는 공립학교로의 편입에 합격했다

공립대학으로 옮기자 통학시간이 생겼다
편도 2시간씩 왕복4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뺏기게했다
과 특성상 밤샘작업이 많았는데 집에가는 시간이 아까워 학교에서 3일정도 숙식해결하는 건 기본이었다

어느날 발표중간에 쓰러졌다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었다
5일을 밤샘작업을 했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밤9시에 학교에 가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화요일 발표중간에 쓰러진 것이었다

이후 자취를 시작했다
통학에 쓰던 시간만이라도 잠자는데 쓰고싶었다
자취하니 월세와 생활비를 부담해야했다
보증금의 일부는 부모님이 도와주셨고 일부는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
월세는 근로장학생으로 뽑힌 학기는 다행이었지만
아니었던 학기에는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부족해 생활비 대출을 더 받아야했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일부러 편입한 학교였는데 다시 대출빚이 쌓였다

이무렵부터는 가끔만나던 친구를 만날때 써야하는 돈마저도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졸업을 했고 취업을 하면서 씀씀이가 달라졌다
오천원 짜리 안주에 2천원짜리 소주를 마시던 친구들이
3만원짜리 안주를 시켰을때 그 만남이 부담스러워졌다
자주 만나지못하니 연락도 소원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를 만나도 힘들다는 말을 하면 어색한사이가 됐다

마지막 학기 신청했던 교환학생에 합격했다
그나마 생활비 정도는 장학금이 나온다는 말에 갈 수 있었다
보증금을 빼서 기숙사비로 쓰고 부모님이 빌려주신돈은 돌려드렸다
욕심인걸 알았지만 포기하고 싶지않았다

생활비는 아껴쓰니 장학금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가끔 돈이 부족한 달에는 아르바이트로 모아놓았던 돈을 썼다
가끔 맛있는 것도 먹었고 다른 도시로 친구들과 여행도갔다
내 평생 가장 사치스러운 학기였다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학기 더 있고싶었지만 기숙사비를 낼돈이 없었다

교환학생때문에 당장 졸업을 할수없었다
한학기를 기다려야했다

취업을 해야했지만 진로에 고민이 생겼다
전공대로 취업을 하면 내 월급은 200만원을 넘기 힘들었다
공무원을 준비하자니 몇년간 공부한 세월이 아쉬웠다

사실 그보다는 대학원을 가고싶었다
돈만있으면 유학을 가고싶었다
교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싶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흙수저인 나에게는 불가능한 꿈을 알고있었다
학자금 대출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정년을 앞둔 부모님이 계셨다
취업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인터넷을 둘러보다보니 결혼자금에 대해 적힌 글을 보았다
빚을 갚을 기간과 결혼자금을 모을 시간을 생각했다
아 나는 결혼을 할 수 없겠구나
하긴 내 자식이 나처럼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니
차라리 안낳는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아이도 날 얼마나 원망하겠는가

아버지가 취업은 언제하냐며 넌지시말했다
목끝까지 나 더 공부하고싶어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

어머니가 이제 좀 나가살아 성인인데 따로 살때가된거같아 라고 말씀하셨다
돈이있어야하지 보증금만 좀 보태줘봐 나도 나가살고싶어
내가 돈이 어딨니 성인인데 알아서 해야지

차마 할말이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어느새 난 이십대 후반이었고 어머니의 돈없다는 소리는 내가 기억도 안나는 옛날부터 알고있던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순간 너무 원망스러워 뭐라 말해야할지 막막했다

항상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다
집에서 월세와 용돈도 준다고 말하던 친구가 말하던 술자리는 아르바이트때문에 거절했고
전학교 친구는 뉴욕으로 이민을 준비하며 유학을갔다
나도 저렇게 살고싶었다

나는 한순간도 쉽게산적이없었다
그 어릴적 피아노 공부을 포기한 순간부터 사랑까지 많은걸 포기해야했다
20살 그 순간부터 아르바이트는 당연한거였고 휴학한 기간동안은 토익학원비까지 버느라 하루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그마저도 장학금을 받고싶어 아둥바둥 공부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줄알았던 내 미래는 그냥 가진거 없는 백수였다
나는 꿈을 가질수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가고싶은 과가 아니라 대기업에 입사할수있는 과를 선택해야했다
나는 헛똑똑이였다

차마 부모님께 말하지는 못하고 밖으로 나섰다
편의점에서 복권한장과 소주 한병을 샀다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친구에게 연락할지 한참을 고민했다가 포기했다
퇴근한 평일 오랜만에 연락에 싫은소리 하기가 미안했다
취준생 대출을 몇번 검색하다가 우울증을 검색했다
혼자 소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난이 무서운건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기때문이라는 글이 문득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