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많은 사람 중에 널 좋아했을까

허브20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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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짝사랑이라는 걸 처음 경험했다. 짝사랑의 대상도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그 사람과 나는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인데. 그것도 오랜 친구 사이라 전혀 이렇게 될 거라 상상하지 못했는데. 처음엔 착각이라 생각했다.

 

그냥 종종 이야기를 하는 사이인데 그날따라 깊은 이야기가 오가서 그랬나보다.. 원래 그전부터 좋은 친구라 생각은 하고 있어서 그 감정이 일시적으로 혼동되나보다..

 

근데 그게 두 번, 세 번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부터 난 네 생각을 하고 있더라.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되다니. 그 친구는 내 이런 감정을 절대 모를텐데. 알면 얼마나 황당할까. 하지만 얄궂게도 부정할수록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널 좋아하는 내 감정을.  

 

막상 인정하니 무섭기도 했다. 이대로 친구로만 지내도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내 한순간의 감정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가 무너지는 건 아닐지. 그런데도 그걸 무시하고 난 맨날 너에게 연락하고 있더라. 그때 알았다. 나 진짜 생전 안해본 짝사랑을 시작해버렸구나. 그리고 그 대상이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너구나.

 

감정에 솔직해진 뒤로 그 친구에게 연락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오늘은 무슨 주제로 너에게 이야기를 꺼낼까 생각하는 시간조차도 즐거웠다. 그리고 내가 꺼낸 주제마다 넌 흥미롭게 반응했다. 가끔 내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넌 진심으로 날 응원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양극단의 마음은 진해져만 갔다. 내 진심을 전했을 때 잘 안됐을 경우, 그 친구를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좋아한단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 그 두 감정을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운명은 너에게 진심을 전하는 방향으로 갔다. 무슨 자신감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난 뒤에 내린 결정이라 잘 안된다 하더라도 후회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넌 잠시 당황하더니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을 했다. 여기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런 모호한 말을 한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아무튼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착각했다. 아, 아니면 시간을 훨씬 충분히 두고 너에게 다시 이야기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난 열흘 정도 만에 그 친구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길 원했고, 그때 그 친구의 답은 거절이었다. 그 친구와의 마지막 통화. 이대로 당신을 놓치면 나 어떡하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구질구질한 말까지 해버렸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도 마음이 좋지 않을텐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잘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막상 거절의 말을 들으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친구를 잃었고, 짝사랑의 아픔도 뒤늦게야 알게 됐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고 얼마전 다른 친구를 통해 소개팅 제의를 덥석 받았다. 그런데 어느새 사람을 보는 기준이 너가 됐더라. 너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너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이대로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한동안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그때 너에게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 너무 후회가 되면서도 안되기도 해.

 

최근에 너의 SNS를 들어가보니 너도 그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겨놨더라. 하지만 그때 너의 뜻은 분명했기에, 두 번 다시 너에게 부담될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익명의 힘을 빌려 이거 하나만 이야기하려 한다.

 

좋아하는 마음에 널 과대평가한 게 아니야. 넌 이미 그런 평가를 받을만한 멋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구였음에도 그 수많은 사람 중 널 좋아하게 된 거야.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언젠간 너의 말처럼 이 모든 감정이 풀렸을 때 서로 좋은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