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올해 30살이 된 남자로 고민도 많고 앞으로의 제 인생이 걱정 되어 조언을 얻고자 합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두 부모님께서 장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측 다리가 골수염으로 인해서 그때 당시 의료발전이 안되어 치료를 못하고 장애를 가지시게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어렸을적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한쪽팔을 무리하게 쓰시면 안되는 장애를 가지시게 되었습니다. 유년시절 할아버지께서는 성실히 돈을 모으셨고, 장남인 아버지의 아들인 저에게 모든 기대를 가지고 계셨었습니다. 여섯남매를 키우시던 할아버지께서 한명도 대학교를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손자인 저라도 대학교는 꼭 보내셔야 겠다고 저에게 공부 열심히하라시며 친가쪽에서는 모든 기대가 저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대학교를 나오지 못하시고, 건설업체에서 용접일을 하시다가 97년 IMF가 터지고,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직장을 잡아도 성질때문에 금방 그만 둬버리고, 경기 전남 광주 등 으로 여러번 이사를 다녔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아버지께서는 일용직일을 하시며, 저희 가족을 책임 지셨고, 어머니께서는 집안일을 하며 저희 가족을 돌보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회사를 그만둬버리고, 나라에서 지원을 받으며 살게되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어머니께서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공근로를 2년 정도 다니시며, 집에서 맨날 노는 아버지 대신 집안을 담당하셨었습니다. 다리가 아프셔도 일하시는 불쌍한 어머니를 보며 커서 효도 해야 겠다해야겠다 항상 생각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과음을 하시고 들어와서 일하시고 돌아온 어머니를 닦달하고, 집안 싸움이 잦았었습니다. 극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무서워 폭력을 쓰는 아버지를 보고도 무서워서 누나와 벌벌 떨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살기가 힘드셨었는지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종교적인 꼬임에 넘어가 대순진리회라는 종교를 믿기 시작하였고, 아버지는 종교때문에 자주 외박하는 어머니가 미쳤다며 자주 폭력을 휘드르곤 했습니다. 중학생이된 저는 그런 종교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찾아보며 알게 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서 많이 힘드시고 기댈데가 없으니 종교적인 믿음으로라도 기대시는 것을 바랬습니다. 아니면 어머니께서 모든걸 포기할 것만 같았습니다. 중학교 부터는 아버지께서 일용직을 다니시며 하루벌어 하루사는 가정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이 드시고, 치질비슷 한 병에 걸리셔서 혼자 살기가 힘들어져 저희 가족과 같이 살게되었고, 할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그동안 주택에 살던 저희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철이없던 아버지를 탐탁지 못한 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많이 기대셨고, 어머니는 공장에 다니시며, 일다니랴 종교 다니랴 할아버지 챙기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누나가 친구들을 잘못 만나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되었고, 가출을 하여,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 누나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저희집에 너무 싫었고, 학교에서도 나라에서 지원을 받고 다닌다는 프레임에 씌워져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구박하고, 못사는게 죄인것 마냥 벌을 세우고 하셨었습니다. 사춘기인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가난이 죄 인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걸 알게 되니 누나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누나가 가출을 하였지만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중학생인 저에게 용돈도 주고, 멀리서 자주 챙겨 주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고등학생이 되고, 아버지께서 또 술을 먹고 들어와 어머니와 싸우셨는데, 아파트 대출을 갚지 못할 것 같으니,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고, 어머니에게 집을 팔자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루벌어 하루살고, 저축이라는 것을 모르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아들딸에게 용돈 한푼 안주고, 옷 가방 한벌 안사주시고, 중학교때부터 아들딸을 아르바이트로 몰리게 하시던,,,아버지께서 바람을 피고, 할아버지께서 물려준 재산을 다 외간 여자에게 써버리고, 더이상 아파트 빚을 갚을수 없는 처지에 온 것이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중에 아파트를 제이름으로 하시라는 할아버지 말을 듣고, 절대 못팔겠다고 버티셨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일주일에 서너번을 어머니께 폭력을 휘둘르셨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안챙기고 맨날 종교를 간다, 더이상 집값을 갚을 능력이 안된다라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제 저도 못참겠어서, 누나와 엄마와 저와 상의를 해서 아버지와 이혼을 하시는게 어떻겠냐고 하였지만, 어머니께서는 안된다고 아버지가 아파트 못팔게 버텨야 된다시며,, 꿋꿋이 버티시다가 제가 군대를 간 2011년에 군대간 사이에 또 폭력을 휘둘러서 경찰이 오게 되고 누나에게 간 어머니를 보고 화가 난 누나가 이혼을 하시라고 하여, 2011년에 두분께서 이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작은아빠가 모시고 살겠다고 아버지와 크게 싸우시고 작은아빠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갔습니다. 그때 당시 4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이혼 즈음에 해서 정말 제 인생에 기댈곳이였던 여자친구를 떠나 보내게 된 저는 정말 이 세상에 남는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불쌍한 저희 어머니뿐이였습니다. 실업계에 다녔던 제가, 이런 제 인생에 불만을 가지고 공부도 잘 안하고, 시험날 학교도 안가버리고 많이 탈선을 저질렀었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이혼을 겪고, 사랑했던 여자친구도 떠나게 되자, 어머니와 저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는데, 이혼 당시 몸만 나오신 어머니께서 원룸에 살며, 아무 가구도 없고 식기도 없이 일을 다니시며 하나하나 장만 하셨습니다. 군대 월급을 받고 집에 고기를 사가는데, 구워먹을 팬 하나도 없는 저희 집 모습이..저에게는 그저 눈물 뿐이였습니다...이혼을 하면서 호적은 누나와 저는 아버지에게 딸려있고, 어머니는 혼자가 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1인가구로 등록되어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서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이혼 후 나눈 돈으로 아버지께서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어머니께서는 제가 군대 제대 후 정부 지원을 받아 작은 아파트라도 들어가서 살자고 하셨습니다. 그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같이 살라고 하셔서, 대학교를 다니며, 아버지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때껏 주방에는 얼씬도 안하시던 아버지와 살라니,, 음식은 매일 썪어있고, 국같지도 않은 국을 먹고, 집안에는 쌀벌레가 날라다니고,, 아버지께서는 이혼 후 나뉜 재산으로 술을 드시고 다니고, 음주운전에 걸려 면허가 취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하루벌어 하루살아야 하기에 무면허로 또 운전하다가 음주운전에 또 걸리시고, 그래서 이혼 후 나뉜 돈을 벌금으로 2천만원 가량, 그리고 폐인이 되버린 아버지가 재산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벌금 2천..그것도 갚을 능력이 안되자 집에 처음으로 빨간 딱지란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그런 아버지와 도저히 못살겠어서 눈물을 훔치고, 어머니에게 도망쳐 나와버렸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작은 아파트를 구해서 대학교 생활을 그 아파트에서 지내며, 꾸준히 공부하여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으며 참 암울한 인생이였지만, 항상 밖에서는 웃고 다니고, 주위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리더십같은 게 있었는지, 과대도 2년을 하고, 집 바깥에서는 분위기 메이커로 밝게 자랐었습니다.그런 모습에 실업계 출신인 제가 공부도 열심히하고, 항상 밝게 다닌다며, 교수님들도 좋게 생각하시고 애제자로 키우셨습니다.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으로 매꾸며 대학교를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전공은 방사선과였고, 토익과 학교성적을 그동안 준비하여, 서울 Big5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취업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연고지의 사립대학병원 정규직 자리에 합격을 하게되었습니다. 합격문자를 받고, 어머니께 전화하여 한없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 엄마랑 나 행복하게살자고,,,
가출했던 누나는 제가 대학생때부터 어머니와 같이 자주 교류를 하며 지내다가 이때 즈음해서 대구에 시집을 갔습니다. 이혼 후 7년이 지나, 그동안 아버지도 많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해서 누나 결혼즈음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자주 연락을 하였고, 아버지는 그렇게 계속 외로이 혼자 지내셨습니다. 그동안 사회생활해서 모은 돈으로 집안에서 지원하나없이 누나는 결혼 하고, 저는 1%도 뚫기힘든 대학병원 정규직에 붙었다는 기쁨에 이제 우리 가족 다 잘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제 이름으로 중형차도 하나 장만하게 되고, 그동안 빌렸던 학자금 대출을 갚고, 어머니와 같이 살며 서른넷 쯤에 결혼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작년 11월즈음해서 가족톡에 아버지께서배가 많이 아프시고, 일도 못가고 5일동안 아무것도 못먹고 있다고 하여, 저희 병원에 모시고 왔습니다. 의료지식을 많이 갖게 된 저는 그저 장염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청천벽력같은 말을 같이 일하는 의사에게 듣습니다.. 대장암이라고 그것도 악성종양인 것 같으니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얘기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냥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때껏 저희 가족에게 잘해준 것도 하나도 없고, 그저 미움의 대상의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다니.. 더 미웠습니다....그냥 하늘이 준 천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제가 이 직업을 갖게 된 이유가 장애를 가지신 두분이 나중에 쇠약해지고 아파지고 하시면 나중에 이런 일이 있을때 어머니 아버지 내가 살려야 겠다는 사명으로 직업을 생각했고, 아버지가 아무리 미워도....그래도 내 아버지이고...그래도 살리라는 어머니말을 듣고, 돈적인 계산을 하니까 제가 갚을 정도의 능력이 되는 것 같아, 빚을 내어 수술비와 병원비 그동안 아버지가 살던 단칸방 아니 집같지도 않은 다락방같은 집을 정리하고 저희 병원앞에 주택을 구해서 암이 나을 때까지 저와 같이 살아야 겠다는 계획을 생각했습니다. 이혼 한지 8년이 지났고, 많은 미움이 없어졌을거라 생각하여, 어머니께 다같이 살자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아직 아버지가 안바뀌었고, 도저히 못살겠다고 하여 정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삼성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나오시는데 계속 눈물을 흘리시고 아들아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그동안 잘못했다 하시는데 그저 덤덤했습니다 저는...앞으로 빚 갚을 생각에 깝깝하기도하고 예전에 아버지와 지옥같이 살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수술지나 이제 좀 괜찮아 졌는지 게 아빠 차를 제네시스로 살라 그러는데 니 차를 그냥 나한테 줄래?이런 말을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그저 한숨밖에 안나왔습니다. 암은 완치판결이 나려면 5년이 소요됩니다. 저는 나이가 서른이고, 5년이면 제가 계획했던 34에 결혼하겠다는 모든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살집을 구해서 항암치료를 저희 병원으로 다녔습니다. 수술을 하고 좀 나아지셨는지 예전과 다르지 않은 반찬이지만, 그래도 매일 꼬박 꼬박 챙겨드시는 모습에 희망이 하나하나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항암 4차까지 마치고 추석에 외할머니댁에 가시던 아버지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몸이 이상하다고, 하여 제가 일 끝나고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병원에 가서 입원신청을 하여 입원을 하였는데, 다음날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가자,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져 모든 면역 체계가 떨어져 수치가 돌아오지 않으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격리실로 옮기게 되었고, 열흘간 금식을 하시며 피부가 거의 뼈가 보일만큼 야위시고, 머리가 다 빠지시고, 말 할 기운도 없어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진짜 돌아가실수도 있겠구나,,,,하며,,, 살려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의사분과 매일 만나며 아버지를 살릴 모든 약을 다 써간 결과 열흘 만에 수치가 돌아왔습니다.
좀 더 길었으면 돌아가실 뻔했죠...몸에 모든 면역체계가 떨어지자 아버지께서는 섬망 현상증세도 있고 하여 좀 더 지켜보고 입원한지 20일만에 퇴원을 하시고, 걱정하셨던 어머니께도 재활을 도우며 한달가량 집에 같이 계셔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쇠약해지셨을때 핸드폰을 보며, 아버지에게 1300만원 가량의 빚이 있음을 알게되었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깝깝했습니다...이대로 돌아가셔도 그 빚은 저에게 오는 것이고, 살려도 일을 못하셔서 갚을 능력이 안되시고...그냥 한숨만 나왔습니다.......이제 좀 필것 같은 제 인생이 또 발목을 잡히는 것 같아서...그렇게 돌아가실뻔 한지 3개월가량이 지났지만, 운동할 생각은 전혀없고 집에서 티비만 보고 계시며 하루 세끼 꼬박 챙겨드시고 계십니다. 또 사고 치지말고 제발 그러시기만을 바랬습니다...근데..조카를 보러 어머니와 대구를 간다시길래 네비를 쳐달라고 해서 차로 갔더니 차가 바껴있었습니다. 뉴ef소나타에서 그랜저hg로,,, 어디서 차를 구했냐 하니까 아버지 그동안 일했던 일용직 퇴직금이 500정도 있는데 그걸로 일단 사고, 나머지는 할부로 했다고, 아빠가 일하게 되면 아빠가 갚겠다고, 너한테 빚 안지겠다고,,,이런 속아지 없는 아버지가 또 어디있습니까.....수술하고 흘리던 눈물이 모두 거짓이였고, 그냥 연기였습니다. 사람은 바뀌지가 않는다하는데 진짜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안바뀌더군요.....그 퇴직금으로 노년대비나 하실 것이지 그 돈으로 차라니요.....그것도 또 빚을 내서......하......그랜저를 사신 이후부터 매일 어딜 나가시고 저녁 늦게 들어오시고, 그 퇴직금마저 지금 다 써버리고 일주일째 집에만 계십니다. 그러더니, 저한테 다음달 할부금 좀 내줄라고 말할라 했다고 합니다. 여유 혹시 되냐고.....절대 안된다 하니까 그럼 아빠 일자리 빨리 구해봐야 겠다고, 다시 일용직 공사판에 나가시겠다고 하시네요 암환자가...의사는 수술한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일을 하지 말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또 공사판에 나가면 암이 재발 할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그냥 또 이집을 뛰쳐 나가고만 싶습니다...그래도 가족이다 내 아버지니까 라는 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걸까요?암이 재발하면, 저도 더이상 빚을 낼 능력이 없을 뿐더러, 자꾸 사고를 치고 오시는 아버지때문에 제 인생도 망가지는 것 같습니다....
철없는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두 부모님께서 장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측 다리가 골수염으로 인해서 그때 당시 의료발전이 안되어 치료를 못하고 장애를 가지시게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어렸을적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한쪽팔을 무리하게 쓰시면 안되는 장애를 가지시게 되었습니다. 유년시절 할아버지께서는 성실히 돈을 모으셨고, 장남인 아버지의 아들인 저에게 모든 기대를 가지고 계셨었습니다. 여섯남매를 키우시던 할아버지께서 한명도 대학교를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손자인 저라도 대학교는 꼭 보내셔야 겠다고 저에게 공부 열심히하라시며 친가쪽에서는 모든 기대가 저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대학교를 나오지 못하시고, 건설업체에서 용접일을 하시다가 97년 IMF가 터지고,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직장을 잡아도 성질때문에 금방 그만 둬버리고, 경기 전남 광주 등 으로 여러번 이사를 다녔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아버지께서는 일용직일을 하시며, 저희 가족을 책임 지셨고, 어머니께서는 집안일을 하며 저희 가족을 돌보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회사를 그만둬버리고, 나라에서 지원을 받으며 살게되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어머니께서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공근로를 2년 정도 다니시며, 집에서 맨날 노는 아버지 대신 집안을 담당하셨었습니다. 다리가 아프셔도 일하시는 불쌍한 어머니를 보며 커서 효도 해야 겠다해야겠다 항상 생각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과음을 하시고 들어와서 일하시고 돌아온 어머니를 닦달하고, 집안 싸움이 잦았었습니다. 극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무서워 폭력을 쓰는 아버지를 보고도 무서워서 누나와 벌벌 떨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살기가 힘드셨었는지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종교적인 꼬임에 넘어가 대순진리회라는 종교를 믿기 시작하였고, 아버지는 종교때문에 자주 외박하는 어머니가 미쳤다며 자주 폭력을 휘드르곤 했습니다. 중학생이된 저는 그런 종교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찾아보며 알게 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서 많이 힘드시고 기댈데가 없으니 종교적인 믿음으로라도 기대시는 것을 바랬습니다. 아니면 어머니께서 모든걸 포기할 것만 같았습니다. 중학교 부터는 아버지께서 일용직을 다니시며 하루벌어 하루사는 가정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이 드시고, 치질비슷 한 병에 걸리셔서 혼자 살기가 힘들어져 저희 가족과 같이 살게되었고, 할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그동안 주택에 살던 저희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철이없던 아버지를 탐탁지 못한 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많이 기대셨고, 어머니는 공장에 다니시며, 일다니랴 종교 다니랴 할아버지 챙기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누나가 친구들을 잘못 만나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되었고, 가출을 하여,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 누나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저희집에 너무 싫었고, 학교에서도 나라에서 지원을 받고 다닌다는 프레임에 씌워져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구박하고, 못사는게 죄인것 마냥 벌을 세우고 하셨었습니다. 사춘기인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가난이 죄 인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걸 알게 되니 누나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누나가 가출을 하였지만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중학생인 저에게 용돈도 주고, 멀리서 자주 챙겨 주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고등학생이 되고, 아버지께서 또 술을 먹고 들어와 어머니와 싸우셨는데, 아파트 대출을 갚지 못할 것 같으니,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고, 어머니에게 집을 팔자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루벌어 하루살고, 저축이라는 것을 모르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아들딸에게 용돈 한푼 안주고, 옷 가방 한벌 안사주시고, 중학교때부터 아들딸을 아르바이트로 몰리게 하시던,,,아버지께서 바람을 피고, 할아버지께서 물려준 재산을 다 외간 여자에게 써버리고, 더이상 아파트 빚을 갚을수 없는 처지에 온 것이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중에 아파트를 제이름으로 하시라는 할아버지 말을 듣고, 절대 못팔겠다고 버티셨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일주일에 서너번을 어머니께 폭력을 휘둘르셨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안챙기고 맨날 종교를 간다, 더이상 집값을 갚을 능력이 안된다라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제 저도 못참겠어서, 누나와 엄마와 저와 상의를 해서 아버지와 이혼을 하시는게 어떻겠냐고 하였지만, 어머니께서는 안된다고 아버지가 아파트 못팔게 버텨야 된다시며,, 꿋꿋이 버티시다가 제가 군대를 간 2011년에 군대간 사이에 또 폭력을 휘둘러서 경찰이 오게 되고 누나에게 간 어머니를 보고 화가 난 누나가 이혼을 하시라고 하여, 2011년에 두분께서 이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작은아빠가 모시고 살겠다고 아버지와 크게 싸우시고 작은아빠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갔습니다. 그때 당시 4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이혼 즈음에 해서 정말 제 인생에 기댈곳이였던 여자친구를 떠나 보내게 된 저는 정말 이 세상에 남는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불쌍한 저희 어머니뿐이였습니다. 실업계에 다녔던 제가, 이런 제 인생에 불만을 가지고 공부도 잘 안하고, 시험날 학교도 안가버리고 많이 탈선을 저질렀었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이혼을 겪고, 사랑했던 여자친구도 떠나게 되자, 어머니와 저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는데, 이혼 당시 몸만 나오신 어머니께서 원룸에 살며, 아무 가구도 없고 식기도 없이 일을 다니시며 하나하나 장만 하셨습니다. 군대 월급을 받고 집에 고기를 사가는데, 구워먹을 팬 하나도 없는 저희 집 모습이..저에게는 그저 눈물 뿐이였습니다...이혼을 하면서 호적은 누나와 저는 아버지에게 딸려있고, 어머니는 혼자가 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1인가구로 등록되어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서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이혼 후 나눈 돈으로 아버지께서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어머니께서는 제가 군대 제대 후 정부 지원을 받아 작은 아파트라도 들어가서 살자고 하셨습니다. 그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같이 살라고 하셔서, 대학교를 다니며, 아버지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때껏 주방에는 얼씬도 안하시던 아버지와 살라니,, 음식은 매일 썪어있고, 국같지도 않은 국을 먹고, 집안에는 쌀벌레가 날라다니고,, 아버지께서는 이혼 후 나뉜 재산으로 술을 드시고 다니고, 음주운전에 걸려 면허가 취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하루벌어 하루살아야 하기에 무면허로 또 운전하다가 음주운전에 또 걸리시고, 그래서 이혼 후 나뉜 돈을 벌금으로 2천만원 가량, 그리고 폐인이 되버린 아버지가 재산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벌금 2천..그것도 갚을 능력이 안되자 집에 처음으로 빨간 딱지란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그런 아버지와 도저히 못살겠어서 눈물을 훔치고, 어머니에게 도망쳐 나와버렸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작은 아파트를 구해서 대학교 생활을 그 아파트에서 지내며, 꾸준히 공부하여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으며 참 암울한 인생이였지만, 항상 밖에서는 웃고 다니고, 주위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리더십같은 게 있었는지, 과대도 2년을 하고, 집 바깥에서는 분위기 메이커로 밝게 자랐었습니다.그런 모습에 실업계 출신인 제가 공부도 열심히하고, 항상 밝게 다닌다며, 교수님들도 좋게 생각하시고 애제자로 키우셨습니다.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으로 매꾸며 대학교를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전공은 방사선과였고, 토익과 학교성적을 그동안 준비하여, 서울 Big5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취업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연고지의 사립대학병원 정규직 자리에 합격을 하게되었습니다. 합격문자를 받고, 어머니께 전화하여 한없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 엄마랑 나 행복하게살자고,,,
가출했던 누나는 제가 대학생때부터 어머니와 같이 자주 교류를 하며 지내다가 이때 즈음해서 대구에 시집을 갔습니다. 이혼 후 7년이 지나, 그동안 아버지도 많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해서 누나 결혼즈음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자주 연락을 하였고, 아버지는 그렇게 계속 외로이 혼자 지내셨습니다. 그동안 사회생활해서 모은 돈으로 집안에서 지원하나없이 누나는 결혼 하고, 저는 1%도 뚫기힘든 대학병원 정규직에 붙었다는 기쁨에 이제 우리 가족 다 잘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제 이름으로 중형차도 하나 장만하게 되고, 그동안 빌렸던 학자금 대출을 갚고, 어머니와 같이 살며 서른넷 쯤에 결혼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작년 11월즈음해서 가족톡에 아버지께서배가 많이 아프시고, 일도 못가고 5일동안 아무것도 못먹고 있다고 하여, 저희 병원에 모시고 왔습니다. 의료지식을 많이 갖게 된 저는 그저 장염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청천벽력같은 말을 같이 일하는 의사에게 듣습니다.. 대장암이라고 그것도 악성종양인 것 같으니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얘기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냥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때껏 저희 가족에게 잘해준 것도 하나도 없고, 그저 미움의 대상의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다니.. 더 미웠습니다....그냥 하늘이 준 천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제가 이 직업을 갖게 된 이유가 장애를 가지신 두분이 나중에 쇠약해지고 아파지고 하시면 나중에 이런 일이 있을때 어머니 아버지 내가 살려야 겠다는 사명으로 직업을 생각했고, 아버지가 아무리 미워도....그래도 내 아버지이고...그래도 살리라는 어머니말을 듣고, 돈적인 계산을 하니까 제가 갚을 정도의 능력이 되는 것 같아, 빚을 내어 수술비와 병원비 그동안 아버지가 살던 단칸방 아니 집같지도 않은 다락방같은 집을 정리하고 저희 병원앞에 주택을 구해서 암이 나을 때까지 저와 같이 살아야 겠다는 계획을 생각했습니다. 이혼 한지 8년이 지났고, 많은 미움이 없어졌을거라 생각하여, 어머니께 다같이 살자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아직 아버지가 안바뀌었고, 도저히 못살겠다고 하여 정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삼성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나오시는데 계속 눈물을 흘리시고 아들아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그동안 잘못했다 하시는데 그저 덤덤했습니다 저는...앞으로 빚 갚을 생각에 깝깝하기도하고 예전에 아버지와 지옥같이 살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수술지나 이제 좀 괜찮아 졌는지 게 아빠 차를 제네시스로 살라 그러는데 니 차를 그냥 나한테 줄래?이런 말을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그저 한숨밖에 안나왔습니다. 암은 완치판결이 나려면 5년이 소요됩니다. 저는 나이가 서른이고, 5년이면 제가 계획했던 34에 결혼하겠다는 모든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살집을 구해서 항암치료를 저희 병원으로 다녔습니다. 수술을 하고 좀 나아지셨는지 예전과 다르지 않은 반찬이지만, 그래도 매일 꼬박 꼬박 챙겨드시는 모습에 희망이 하나하나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항암 4차까지 마치고 추석에 외할머니댁에 가시던 아버지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몸이 이상하다고, 하여 제가 일 끝나고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병원에 가서 입원신청을 하여 입원을 하였는데, 다음날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가자,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져 모든 면역 체계가 떨어져 수치가 돌아오지 않으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격리실로 옮기게 되었고, 열흘간 금식을 하시며 피부가 거의 뼈가 보일만큼 야위시고, 머리가 다 빠지시고, 말 할 기운도 없어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진짜 돌아가실수도 있겠구나,,,,하며,,, 살려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의사분과 매일 만나며 아버지를 살릴 모든 약을 다 써간 결과 열흘 만에 수치가 돌아왔습니다.
좀 더 길었으면 돌아가실 뻔했죠...몸에 모든 면역체계가 떨어지자 아버지께서는 섬망 현상증세도 있고 하여 좀 더 지켜보고 입원한지 20일만에 퇴원을 하시고, 걱정하셨던 어머니께도 재활을 도우며 한달가량 집에 같이 계셔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쇠약해지셨을때 핸드폰을 보며, 아버지에게 1300만원 가량의 빚이 있음을 알게되었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깝깝했습니다...이대로 돌아가셔도 그 빚은 저에게 오는 것이고, 살려도 일을 못하셔서 갚을 능력이 안되시고...그냥 한숨만 나왔습니다.......이제 좀 필것 같은 제 인생이 또 발목을 잡히는 것 같아서...그렇게 돌아가실뻔 한지 3개월가량이 지났지만, 운동할 생각은 전혀없고 집에서 티비만 보고 계시며 하루 세끼 꼬박 챙겨드시고 계십니다. 또 사고 치지말고 제발 그러시기만을 바랬습니다...근데..조카를 보러 어머니와 대구를 간다시길래 네비를 쳐달라고 해서 차로 갔더니 차가 바껴있었습니다. 뉴ef소나타에서 그랜저hg로,,, 어디서 차를 구했냐 하니까 아버지 그동안 일했던 일용직 퇴직금이 500정도 있는데 그걸로 일단 사고, 나머지는 할부로 했다고, 아빠가 일하게 되면 아빠가 갚겠다고, 너한테 빚 안지겠다고,,,이런 속아지 없는 아버지가 또 어디있습니까.....수술하고 흘리던 눈물이 모두 거짓이였고, 그냥 연기였습니다. 사람은 바뀌지가 않는다하는데 진짜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안바뀌더군요.....그 퇴직금으로 노년대비나 하실 것이지 그 돈으로 차라니요.....그것도 또 빚을 내서......하......그랜저를 사신 이후부터 매일 어딜 나가시고 저녁 늦게 들어오시고, 그 퇴직금마저 지금 다 써버리고 일주일째 집에만 계십니다. 그러더니, 저한테 다음달 할부금 좀 내줄라고 말할라 했다고 합니다. 여유 혹시 되냐고.....절대 안된다 하니까 그럼 아빠 일자리 빨리 구해봐야 겠다고, 다시 일용직 공사판에 나가시겠다고 하시네요 암환자가...의사는 수술한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일을 하지 말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또 공사판에 나가면 암이 재발 할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그냥 또 이집을 뛰쳐 나가고만 싶습니다...그래도 가족이다 내 아버지니까 라는 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걸까요?암이 재발하면, 저도 더이상 빚을 낼 능력이 없을 뿐더러, 자꾸 사고를 치고 오시는 아버지때문에 제 인생도 망가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