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돌아보며 회노애락이 가득한 나의 삶

돌자돌자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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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아왔던 과거를 돌아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행한 10대를 보냈습니다.

 

저희 엄마는 학폭으로 학교도 자퇴하고 말 안듣는 딸이 었다고 들었습니다.

얼굴은 예뻐서 남자들이 많이 좋아했다고 들었습니다.

 

20살이 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서는 저희 아빠를 만났고 임신이 되어서 살았습니다.

첫번째 임신한 아이는 유산 되었고 그 다음에 임신 되어서 태어난 애가 저였습니다.

5살 때까지의 기억은 행복했었습니다. 저를 많이 사랑해주셨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5살이후 아빠의 일 때문에 엄마가 친정으로 저희를 데려가면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주말 부부로 지내시면서 엄마는 밖에서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불륜 현장에 저와 동생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 둘이 모텔에서 했던 행동들이 기억이 납니다. 모텔에서 동생과 저에게 자라면서  둘이 침대에서 뒹굴던 모습.. 어떤 날은 그 불륜남이 침대에서 저를 만지면서 너는 누구 꺼니? 이랬던 거지같은 기억들..

 

결국 일이 터져서 엄마는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 했습니다. 아빠는 엄마와 3년 이상 동침 한적도 없는데 임신이 되었으니.. 집이 난리가 났겠죠.. 가족들 앞에서 엄마는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리고 난리도 아니였습니다. 같이 살던 이모들은 저희가 상처를 받을까 저희를 안고 울고 눈을 가리던 모습

그날 저는 어렸기에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엄마는 외갓집에서 식구들이 돌아가며 못나가게 감시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아빠와 그 아저씨는 결국 만나서 싸우게 되었고 그상황을 듣게 된 엄마는  갑자기 너희 아빠 큰일 난다고 내가 말리러 가야한다면서 나갈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할머니는 필사적으로 엄마를 잡았고 저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나가지마 하고 울었습니다.  엄마는 저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치며  나갔습니다. 알고보니 그 아저씨와 도망을 가려고 계획했던 것이였죠. 제 앞으로 되있던 통장 금반지등 돈이 되는 것은 다 들고 나가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저희 외할머니는 자신이 자식을 잘못 키운 죄라면서 자신이 저희를 돌보겠다고 아빠는 재혼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희 아빠는 부성애가 큰 사람이여서 재혼 하지않고 타지에서 외롭게 열심히 돈을 버셨습니다. 중간 중간 아빠를 좋아한 여자분들도 있었지만 저희 때문에 결국엔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정말 저희를 사랑으로 키워 주셨습니다.

시장에서  일하면서 비가오면 비를 맞으며 눈이오면 눈을 다 맞으며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셨습니다.  할머니는 밥 사먹는 돈이 아까워서 막걸리 한병으로 하루를 떼우셨습니다.

자기 밥 사먹을  돈이면 저희 간식 사준다면서...

인스턴트 먹으면 살찌고 아토피 생긴다면서 잠잘 시간 쪼개가며 자기 손으로 음식들 다 만들어서 먹이셨습니다. 심지어 떡도 본인이 만들어서 먹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피부는 건강하네요 ^^;;

 

다른 애들에게 부모랑 떨어져서 사는 애들이라는 티 날까봐 옷이며 신발이며 유행하는게 보이면 저희 입히고...당신 사고 싶은건 참고 참고 또 참고..저희 부족하지 않게 키우려고 엄청 노력 하셨고요.

사실 외할아버지가 알콜중독자여서 술만 먹으면 집을 뿌시고 때리고 난리 였지만 어떻게든 저희를 보호하였습니다.

 

한부모 가정 , 조손 가정 이런 환경이 성장하면서 저를  반항심이 있는 아이로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집을 나가고 안 좋은 애들이랑 어울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큰일 나겠다고 할머니에게 말하였고 할머니는 좋은 환경으로 데리고가야겠다면서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예를 들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

할머니가 그 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엉망진창으로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때 지냈던 애들의 지금 상황을 동창들에게 들어보면 교도소에 갔거나 술집여자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사가기 싫은데 억지로 이사오게 되었고 거기다가 사춘기 까지 와서 정말 중2병 아이처럼 할머니에게 반항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반항도 할머니는 항상 감싸주셨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고마운 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제가 무너지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게 해준 두 여인

저희 외할머니와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선생님은 참 스승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환경, 공부, 부 이런거 상관없이 아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열정이 너무 넘치셔서 중2병 저는 처음에 선생님과 많이 부딪혔고요

어느날은 반항심으로 선생님한테 18년아 이러거나 책을 던지거나 수업 중에 문을 닫고 나가는 똘아이 같은 행동을 많이 했었죠. 그래도 묵묵하게 받아 주셨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사랑이 부족하기에 자신이 사랑을 주려고 많이 노력 하셨고요 중학교3학년 쯤 되니 조금 정신을 차렸고 공부가 해보고는 싶은데 저는 양가집 규수 였습니다. 양가 양가 양가 가가가 ㅋㅋㅋ

선생님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하였고 선생님은 남아서 저에게 수학 과학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했고 3학년1학기에 반에서 2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못사는 애가 갑자기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괴롭히기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힘들긴 하였지만 그냥 잘 이겨 냈습니다. 좋은 할머니 , 동생,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무탈하게 인생을 사는 가 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2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게 되었고 기성회비를 낼 돈이 없어서 학교 게시판에 제이름이 계속 올라왔고.. 자퇴를 해야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고 암담하고..그 때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저 상황을 듣고  고등학교를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학생주임 선생님께 부탁하고 동사무소에 가서 부모는 있지만 엄마는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아빠는 사업이 망해서 돈이 없는 애라면서 도와달라면서 한 달을 동사무소에 출근하셨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후원자도 만나게 되었고 수급자가 되엇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나 싶었는데 수능 100일 쯤 할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지병도 없었고 그냥 평소 같이 티비를 보다가 갑자기 진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진짜 그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없는 삶은 제가 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중학교 선생님이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고생하신 할머니를 생각해보라고 네가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사느게 할머니는 기쁨이 실 거라고

힘들어도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겨내자고. 제나이 18살 19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며 독하게 살았습니다.

 

대학교는 사립대학이여서 힘들긴 했지만 졸업을 하면 취업은 보장 되기에 열심히 살았습니다. 학기 중에 알바를 2~3개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정말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그러더 군요 너는 잡초 같은 아이라고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도 버티고 버티고

그렇게 버티다보니..

 

지금은 좋은 직장 다니고 있습니다. 좋은 남편도 만났고요 저의 이러한 배경을 다 알면서도 사랑으로 감싸주는 남편과 시댁, 토끼같은 예쁜 아이들

 

정말 힘들긴 했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처럼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