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굿바이, 백남준’

액터200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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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굿바이, 백남준’
지금쯤 하늘나라에서는 옛 예술의 동지들인 조제프 보이스(1921~1986), 존 케이지(1912~1992), 그리고 샬롯 무어맨이 벌이는 ‘백남준 환영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986년 백남준의 자전적 에세이 ‘보이스 복스(beuys vox)’에 스스로 고백한 글은 그의 삶과 예술을 단적으로 엿보게 한다.

“내 인생의 행운의 하나는 케이지가 완전 성공하기 전에, 보이즈가 거의 무명 때에 만나놓은 것이다. 따라서 금세기의 두 연장자와 역경시대의 동지로서 동등히 교우를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1932년 7월20일 종로구 서린동 45번지에서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태창방직을 운영한 거부 백낙승의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졸업을 1년 앞둔 1949년 홍콩을 경유해 일본으로 간 백씨는 상과를 진학하라는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고 미학·미술사학과에 진학했다.

졸업논문으로 쓰기도 했던 독일음악가 ‘아놀드 쇤베르크’에 경도되어 독일로 건너간 백씨는 이후 존 케이지, 조셉 보이스와 만났고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인 플럭서스(‘흐름’ ‘변화’를 뜻하는 라틴어로 1960~1970년대 다양한 예술분야를 포괄하는 국제적 예술운동)에 가세했다. 음악을 행위예술화시킨 정신적 스승 존 케이지, 그리고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조셉 보이스와의 만남은 백씨의 말대로 큰 행운이었다. 백씨는 피아노를 넘어뜨리는 충격적 퍼포먼스 ‘존 케이지를 추모함’(1959), 그리고 갓과 보이스의 펠트모자를 태우며 그의 넋을 기리던 ‘조셉 보이스 추모굿’(1990)을 통해 두 사람에게 예술적 경의를 표한 바 있다.

이어 1964년 뉴욕에 간 백씨는 전위적 여성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과 토플리스 차림으로 벌인 플럭서스 퍼포먼스로 인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때 무어맨과 연인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1977년 3월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일본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와 결혼했다.

1960년부터 tv작업을 시작한 백씨는 tv를 기술적으로 공부하는 한편 tv를 오브제로 간주한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자석에 의해 tv화면이 달라지는 ‘자석 tv’(1965), 한국적 미감과 비디오 아트를 결합한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1976), ‘tv 시계’(1982) 등을 거쳐 동양과 서양을 결정적으로 만나게 한 ‘tv 부처’(1974)는 백남준 예술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tv 로댕’ ‘로봇 가족’ ‘tv 정원’ 등의 시리즈가 연이어 탄생했다.

1984년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을 인공위성으로 연결해 kbs tv로 생중계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국내미술계에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계속하던 백씨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인공위성 프로젝트 ‘바이바이 키플링’, 1988년 서울올림픽 인공위성쇼 ‘세계는 하나’를 진행했고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그는 1999년 미국 마이애미 예술가상, 일본 교토 프라이즈상을 수상했고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을 열었으며, 같은해 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백씨가 직접 퍼포먼스를 펼친 것은 지난 2004년 10월6일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메타 9.11’을 직접 공연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김홍희 2006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은 “지난해 4월 백선생을 만났을 때 올해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와 2007년말 용인의 백남준 미술관 개관에 맞춰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밝혔다”며 “동양적 정서와 서양의 기술을 비디오 아트로 결합시킨 ‘글로칼리즘’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진정한 아방가르드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경기도는 2백89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10월 경기도 용인 기흥에 ‘백남준 미술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무경기자〉

-백남준이 걸어온 길-

◇1932년 7월20일(음력) 서울 생, 경기중·고 졸업 후 신재덕, 이건우로부터 음악 사사.

◇1956년 일본 도쿄대 미학미술사학과 졸업.

◇195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음악학교 수학. 존 케이지 만남.

◇1961년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인 요제프 보이스, 조지 메키어너스와 만남.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을 통해 비디오예술의 기원을 엶.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감.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 참가.

◇1978년 프랑스 파리미술관에서 ‘백남준전’ 개최. 독일 뒤셀도르프 주립미술아카데미 교수 임명.

◇1984년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오웰’ 전세계 방영. 베니스 비엔날레 초대.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인공위성 프로젝트 ‘바이바이 키플링’.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인공위성쇼 ‘세계는 하나’.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전.

◇1991년 스위스 취리히 현대미술관 ‘백남준 회고전’.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황금사자상) 수상.

◇1996년 호암예술상 수상. 독일 ‘포쿠스’지 선정 ‘올해의 100대 예술가’ 선정. 뇌줄중으로 몸의 왼쪽 신경 마비.

◇1999년 미국 마이애미 예술가상. 일본 교토프라이즈 수상.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현).

◇2000년 금관문화훈장 수상.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

◇2001년 영국그로브음악대사전 등재

◇2004년 투병 후 첫 피아노 퍼포먼스 ‘존 케이지에게 바침’.

◇2005년 ‘베를린에서 dmz까지’(서울올림픽미술관) 참가.

◇2006년 경기도 용인에 백남준 미술관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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