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THE MASK)-5

바람200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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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는 세사람이 대화를 할수록 자신과 막개에 관한 내용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동안 천하제일미를 조용히 빠져 나왔다.

 

"아. 큰일이군! 그들을 보니 착한 사람들 같진 않고..."

 

치우는 푹푹 빠지는 눈밭을 정신없이 뛰어갔다.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이 제대로 따라주는 것 같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오늘 따라 눈은 그칠 줄 모르게 계속해서 내렸다. 이렇게 내리다가

 온 세상을 덮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초개가 걱정이다. 모두 제발 잘 피했기를 바란다!'

 

태동로를 빠져 나와 외곽 숲으로 접어들었다. 비록 숲이라 험준하지만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급한 마음으로 달려서 그런지 눈밭에 자꾸 미끄러지고 넘어졌다.
내리막길은 거의 구르다시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일다경(15분) 쯤 달려서야 치우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하얀 눈에 의해 집 앞엔 눈이 가득 쌓였고, 지붕도 무너질 듯이 눈이 덮여있어
불안하게 보였다.

집으로 다가갈수록 치우는 불안했다.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했던 것이다.
너무 조용하여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길한 마음이 들어 불안했다.

 

치우는 조용히 대문으로 들어섰다.

사실 대문이라고 해 봐야 거의 떨어져나간 판자에 불과 했지만 오늘만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누어 놓은 듯 보였다.

 

치우는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머리를 흔들었다.

 

'아...제발!...제발!...'

 

열려있는 대문으로 조용히 들어가며 집안을 살피던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건 핏자국!'

 

핏자국이었다. 집안 곳곳 눈 위엔 피 꽃이 붉게 피어있었다.

 

'아...안..돼!!....초개야...'

 

치우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혹시라도 초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더욱 걱정되었다.

집안 곳곳에는 핏자국만 있지 사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치우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건물 뒤쪽으로 조용히 돌아간 치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나왔다.

 

"으악! 어떻게 이런일이..."

 

그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건 악몽이다!'

 

건물 뒤쪽은 지옥을 연상케 했다. 수 십 명의 사람이 죽어있었다.
목이 잘린 사람, 팔이 자린 사람, 가슴에 검을 맞은 사람등 모두가 시체였다.
그들에게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려 하얀 눈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어...어..."

 

말이 안나왔다.

이처럼 끔찍한 장면은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치우는 두려워 그대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그는 시체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초개와 막개가 그들 중에 있지는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사람 중에는 막개와 초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군! 휴!"

 

그가 한숨을 쉴 때 뒤쪽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린?"

 

자세히 들어보니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 같았다. 치우는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숲으로 들어선 치우는 다행스러움과 놀람으로 어떻해 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스러움은 막개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 놀란 것은 낮에 주점에서
본 그 세 명이 막개를 포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우는 아래쪽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저들이 이렇게 빨리 왔을까? 그리고 초개는 어디 있지?'

 

숲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치우는 초개를 찾았다.

아래쪽에는 주점에서 봤던 세명과 검은 옷을 걸친 사람들 네 명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집안에 죽어있던 자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일곱명에게 둘러싸인 막개는 무척 불리해 보였다.
 
백삼을 입고 있는 인물이 통해한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상천제 막개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겠지?"

 

막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청도삼괴(靑島三怪)가 이렇게 모두 모이다니 영광이구려"

 

 


 청도삼괴(靑島三怪)는 남청(南靑)의 수도 남원경에서 유명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0년 전의 태무전쟁(殆無戰爭) 때였다.
태무전쟁(殆無戰爭)은 남청과 북청이 손을 잡고 대동국을 침범한 전쟁이었다.
당시 대동국은 동대륙에서 가장 크고 강성한 국가 중 하나였다.


대동국은 대륙 전체가 바다에 둘러 쌓여 있어 해상 자원이 풍부했고 땅이
넓고 비옥하여 농작물과 가축을 키우기 좋은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삼묘국과 바이칼등 많은 변방지역의 국가들과
활발한 무역활동을 벌일 수 있었다. 대동국의 이러한 무역활동에 가장 불만이
큰 것은 북청(北靑)이었다. 그들은 대륙에 묶여 해상자원이 항상 부족했으며
북쪽에 위치해 있다보니 추운 날씨로 인해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무역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동국으로부터 비싼 물품들을 사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항상 무역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북청은 대동국의 비옥한 토지와 해상자원이 부러웠다.
북청의 이러한 불만은 끝내 전쟁을 준비하게 하였지만, 대동국은 너무나 강대한
국가였다. 그래서 자신들과 같은 생각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남청을 끌어들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북청과 남청은 같은 동족이었다. 언제부터 서로 갈라졌는지는
모르나 그 역사와 핏줄은 서로가 하나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러한 이유가
아니어도 남청은 북청과 손잡는 것을 꺼리지 않았을 것이다. 남청 또한 대동국에
막혀 자신들의 무역에 손해가 막심했다. 갈수록 해상에서의 세력이 약화되고
대륙간의 무역도 큰 이익을 낼 수 없었다. 그 모든 원인이 대동국에 있다고
남청은 굳게 믿고 있었다.

 

북청과 남청의 연합공격은 태무산맥(殆無山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태무산맥은 북청과 남청이 대동국에 접한 거대한 산맥으로 대륙간의 무역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였다.


아무 예고도 없이 청의 연합군 150만이 공격해 오자 대동국은 변변히 막아 보지도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산맥 남쪽에 위치한 대동시(大東市)에서의 싸움은
가장 치열하고 처참했다. 수십만의 병사들과 사람들이 죽어가서 그 피가 강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청의 연합군은 그 기세를 몰아 해상으로는 적출만을 함락시키고 육상으로는
하남(河南) 까지 차지하여 대동국의 반을 갈라놓았다.

당시 대동국은 태황 치율이 태황제에 등극해 있었는데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려
나라를 바르게 돌볼 수 없었다. 또한 중신들간의 세력싸움으로 인해 나라가
안정되어 있지 않아 쉽게 대륙의 반을 청의 연합군에게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불한강(佛漢江)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을 모두 빼앗기자 대동국도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미 사기가 꺾인 상태에서 잃어버린 지역을 찾아오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불한강 동쪽으로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것이 다행이었다.
당시 이 전쟁을 선두에서 지휘 한 것은 남청의 손백 장군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백 장군 보다도 청도삼괴를 더 두려워하였다. 청도삼괴는
언제나 전쟁의 선두에서 군을 이끌었는데 그 흉폭함과 잔인성 때문에 지옥의 삼제라
불릴 정도였다. 그들의 뛰어난 활약상이 없었다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후 전쟁이 잠시 휴전 상태로 들어간 지금도 청도삼괴는
두려움의 대상, 죽음의 그림자로 불린다. 그런 그들이 지금 막개 앞에 있는 것이다.

 

 

 

삼괴 중 첫째인 백괴(百怪) 갈마웅이 웃으며 말했다.

 

"오! 상천제 막개가 이렇게 안목이 높을 줄은 몰랐는걸."

그는 계속 말했다.

"그렇게 안목이 높으니 우리 형제가 왜 자넬 찾아왔는지도 알겠지?"

"글세"

 

막개의 대답에 삼괴중 가장 성질이 급한 추괴(序怪) 나찰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죽음을 재촉하는 구나!"

 

그의 웃음은 무척이나 껄끄럽게 들려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못생긴 얼굴에 목소리까지 추음(序音)이니 나찰 형도 참 살맛 않나겠소"

 

추괴 나찰은 자신의 얼굴에 관해 말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막개가 빈정대며 말하자 추괴 나찰의 눈에 진한 살기가 보였다.

 

"크크크. 어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보아라!"


나찰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붉은 빛이 번쩍하며 막개를 감쌌다.


그가 사용하는 무기는 적사철(赤沙鐵)로 가는 철사와 같았는데 붉은 색을 띠고
있어 한번 움직일 적마다 하늘에 혈사가 그어져 보였다.

 

핑! 피..핑!!

 

팽팽한 쇠줄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적사철(赤沙鐵)이 막개의 어깨 쪽에 있는
견정혈(肩井穴)을 공격하며 들어왔다. 마치 뱀의 혀처럼 감겨오는 적사철은
금새 막개를 두 동강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기괴하게 생기더니 무기도 괴상하구료!"

 

막개는 나찰의 화를 돋구며 보법을 전개하여 적사철의 괘적을 벗어났다.

 

그가 사용하는 보법은 칠성보(七星步)로 일곱가지 별자리와 팔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상승 보법이었다. 칠성보의 움직임은 좌로 도는 듯 우를 치고, 상을
치는 듯 하를 쳐 그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과 빠름이 가히 천하의 제일 보법이었다.

 

 추괴 나찰은 자신의 공격을 막개가 쉽게 피하자 화가 났다.

 

"어디 이것도 받아보아라!"

 

그는 막개를 향해 다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적사철은 처음 보다 더욱 붉게 변해 있었다. 그런 적사철(赤沙鐵)이 허공을 가를
적마다 붉은 빛이 하늘에 꽃을 수놓는 듯 보여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적사철은 빛이 붉고 가늘수록 더욱 위력적이었다.

 

 막개는 추괴 나찰의 적사철이 더욱 붉은 빛을 띠며 자신을 공격해 오자 방심할 수 없었다.
그는 어느새 손에 검을 뽑아들고 적사철을 맞이했다.

 

적사철이 붉은 그물 망을 쳐 고기를 잡으려는 듯 막개를 휘감아 왔다.
위에서부터 덮쳐오는 붉은 적사철은 막개의 머리와 어깨 쪽을 공격해 들어왔다.

 

"흥!"

 

막개는 검을 원형으로 돌리며 적사철을 튕겨냈다. 그리고는 빠르게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가며 추괴 나찰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다.

 

막개의 빠른 움직임에 추괴 나찰은 놀라 자신의 허리를 틀며 검을 피했다.

 

화가 나서 공격만 퍼붇던 나찰은 갑작스런 막개의 공격에 놀랐으나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붉은 적사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적룡쾌풍(赤龍快風)이란 수법을 전개하며 적사철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순간 추괴 나찰의 주위에 붉은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적사철을 빠르게 회전시킬수록 그 기운은 점점 더 붉고 강하게 퍼지기 시작했는데
강한 바람이 일어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피해야 할 정도였다.

그 기운은 마치 붉은 용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듯이 막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한 회오리바람과 더불어 붉은 기운이 덮쳐오자 막개는 뒤로 물러서며
검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무척 강하군!!'

 

그는 추괴 나찰에게서 퍼져나오는 기운을 막기 위해 단전 깊이 눌러놓았던
순양기(純陽氣)를 끌어올렸다.

 

"순양파천검(純陽破天劍)!!"

 

막개의 외침과 더불어 두 기운이 강하게 부딪혀 갔다.

 

쿠쿠쿠쿵!!

 

추괴 나찰의 붉은 기운과 막개의 하얀 기운이 충돌을 일으키자 거대한 소리와 함께
주위에 있던 나무들과 바위들이 사방으로 날아 가버렸다.


주위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분분히 뒤로 피하느라 정신없었다.

 쏟아지던 눈발도 그들이 부딪혔던 곳에는 내리지 못하고 그나마 내렸던 눈들도
모두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추괴 나찰은 막개의 강한 기운에 세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 난 뒤에도 기혈이
끓어서 주체할 수 없었다.

 

'가...가..강...하구나! 상천제 막개!'

 

추괴 나찰은 막개의 무공에 놀라며 기를 진정시키느라 정신없었다.

 

그때였다.

 

추괴 나찰은 자신의 왼쪽팔을 향해 강하게 들어오는 기운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이런!! 어느새...상천제 막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단 말인가!'

 

그는 더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아직도 단전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진정되지 않았으나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빼며 적사철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가 허리를 틀며 피할 때 이미 막개의 수장이 그의 등 쪽에 다가와 있었다.

 

"헛!!"

 

추괴 나찰은 깜짝 놀라며 손을 뒤로 돌려 막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컥!!"

 

추괴 나찰의 입에서 고통에 찬 소리와 함께 피가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