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짝사랑 썰

ㅇㅇ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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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실화 레전드

좋아하는 남자애가 학교는 물론이고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모범생이었어. 그런데 여기서 모범생이란 게 애어른할 거 없이 모두에게 평판이 좋은 애라는 거.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계속 반장하면서 공부도 잘하고, 세 남매 중 장남인데 동생들도 잘 챙기고 예의범절 몸에 배어 있고, 정말 멋지다 느꼈던 게 그냥 겉치레로 예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뭐라 설명하기 힘든 품위라는 게 느껴진달까? 내가 반하게 된 것도 반 아이들 살뜰히 챙기면서도 한번 성깔 나면 언성도 안 높이고 상대방 멘탈을 조용히 털어놓으며 결국 자기한테 승복하게 만드는 .... 그만의 점잖은 카리스마가 있었어. 그래서 여자애들한테 인기도 많고. 남자애들한테도 인기 많은 친구였다. 게다가 노래도 잘 부르고 악기도 기타랑 드럼 침. 복싱 배워서 몸매도 날렵하고. 얼굴은 실제로 연예인이었음 한마디로 사기캐였어. ㅠ 그렇게 모두의 동경과 싫든 좋든 관심을 받던 그애였는데, 나는 그 흔한 발렌타인 초콜릿 한 번 줘보지 못하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갑자기 내가 코피가 났어. 그래서 양호실 갔는데 거기에 그애가 침대에 누워 있음. (중2때부터 짝사랑했는데 그때가 고1. 중 2때 같은 반인데 고1땐 그애랑은 다른 반이었고.) 거기에 그애가 누워서 무슨 소설책 같은 거 읽고 있는데 심멎하는 줄. 양호 선생님이 나도 코피 멈출 때까지 누워 있으라고 해서 그애 옆옆 침대에 누웠거든. 침대가 세 갠데 걔가 창가쪽에 눕고 난 그 바로 옆에 누우면 티날까 봐 가운데 침대 비워두고 벽쪽에 누움. 양호샘이 반듯이 누우라고 해서 그렇게 있는데... 옆눈으로 걔 얼굴 보고 싶은 거 꾹 참고 눈을 꾹 감았어. 사락사락 걔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으면서 속으로 콩닥거리고 있었는데 양호쌤이 "잠깐 나갔다 올게" 라고 하고 나가신 거야. 그랬는데 그애가 갑자기 "너 왜 나 아는 척 안 하냐."라고 함. ㄷㄷㄷ
나는 눈 감고 있던 김에 그냥 자는 척해버리려고 대답을 안 했는데, "김OO, 왜 나 아는 척 안 하냐고."라고 내 이름 정확히 부르면서 다시 묻는 거야. ㅠㅠㅠㅠ 안 자는 거 안다는 듯이 ㅠ 그래서 자다 깬 척하면서 "으응?" 하며 걔쪽으로 슬그머니 눈을 떴는데, 걔는 소설책에서 눈도 안 뗀 채로 피식 웃고 있음. 여기서 다시 심멎ㅜㅜ 근데 내가 볍신같은 게 그때 한다는 말이 "아, 안녕....?" 이랬음 ㅋㅋㅋ 근데 걔가 심드렁하니 뱉듯이 이러는 거야. "넌 왜 걸핏하면 코피 터지냐." 그 말투가 꼭 딱하단 듯이 오빠가 챙겨주는 말투 있잖아. '에그~ 칠칠치 못하게 맨날 코피나 나고~'라고 하면서 코피 닦아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ㅠㅠ 거기에 감동 받은 게. 중2 때 같은 반일 적에 교실에서 두 번 정도 코피 난 적 있거든. 그중 한 번은 반장이었던 걔가 양호실 데려다줬었고. 그걸 걔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근데 여기서 내가 2차 볍신미가 터져. "넌 왜 걸핏하면 코피 터지냐"하는데 그때 걔한테 신세진 게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아 미안." 이래버림 ㅠㅠㅠㅠㅠ 그랬더니 걔가 읽던 책을 덮더니 날 보더라. 그러더니 "누가 주먹으로 때린 건 아니지?" 이러는데 누가 봐도 농담인데 꼭 진담 같은 말투에 진지한 얼굴로 묻는 거야. (다시 쓰면서도 심장 엄청 나댄다 ㅋㅋ) 그래서 내가 "아하하... 그건 아니지... "라고 얼굴 빨개진 게 나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로 말 더듬었어. 제발 이제 말 좀 그만 시켜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감당 못할 정도로 설레 있는데, 그애가 갑자기 일어나더니만 내 옆 침대(그러니까 걔랑 나 사이에 있던 중간 침대)의 베개를 살짝 아래 방향으로 끌어내리더니 침대 툭툭 치면서 "이리 와서 누워" 이럼 ㅠㅠㅠ
이 무슨 전개인가 싶을 정도로 막 가슴 뛰고 쿵덕쿵덕거리고. 심장이 너무 뛰어서 누구한테든 나 좀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음. 몸은 굳고 심장은 나대고 말로는 "왜. 왜 그래. 시...싫어."라고 가까스로 의사표시를 함. 그랬더니 걔가 "나도 환잔데, 거기까지 출장 가야 하냐."라는 거야.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침대 텅텅 두드림. 어서 와서 누우란 듯이. ㅠㅠ (근데 거기까지라고 해봐야 침대 하나만 더 지나쳐 오면 되는 거리 ;;)
그래서 뭔가 그런 야리꾸리한 이상한 분위긴 아니구나 직감하고(꿈깨고서 ㅋㅋ) 엉거주춤 일어나서 그 침대 쪽으로 갔거든? 그랬더니 다시 베개 위치 매만지더니 "자, 여기서 베개를 머리로 베지 말고 목으로 벤다는 느낌으로 누워봐."라고 하는 거야. 이쯤 되니까 거의 나도 모르게 그애 말에 따라 몸이 움직여짐. 그애가 하란 대로 우선은 위치 잡고 앉았는데. 근데 그러면서도.. 누우려니까 왠지 되게 신경 쓰이는 거야. 베개를 목으로 벤다는 느낌으로 누우면 얼굴이 더 이상하게 일그러지는 것 같잖아. ㅠㅠ 그애앞에서 그런다는 게.;;; 게다가 한쪽 코는 막은 채로 말야. 너무 혐스러울 것 같잖아.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걔가 또 픽 웃어. 그러면서 "안 쳐다볼게, 편히 누워."라고 하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커튼 쳐버림 ㅋㅋㅋ 그렇게 우리 사이엔 커튼이 쳐지고, 나는 누웠고. 커튼 너머로는 또 사락사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내가 진짜 용기 내서 말 걸었다? "어디... 아퍼?"라고 물었어. 내가 걔한테.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넌 어디가 아파서 양호실 와 있어?"라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저렇게 물음) 그랬더니 걔가 "일찍도 물어본다."라고 좀 퉁명스럽게 말함. 그러곤 잠깐 정적이 흘렀는데 이상하게 그애가 화난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근데 그애가 되게 진지한 투로 "몸조리 잘해. 반 달라졌으니까 이제 나처럼 착한 반장이 챙겨줄 일도 없을 거고. 네 몸 네가 알아서 챙겨야지." 라고 말하는데 '착한 반장'이라고 자기를 미화해서 말하는 것도 왠지 밉지가 않고, 영감님처럼 챙겨주는 말을 하는 게 진짜 마음 따뜻해지더라.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나 자신이 진짜 원망스러운 게 소설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같았으면 "그러는 넌 왜 네 몸 못 챙겨서 양호실 오냐?"라는 식으로 톡 쏴줬을 텐데. 그때의 난 너무 바보같이 그냥 "응." 하고 말았어.
만화 캔디에 보면 캔디가 테리우스 뒤에서 끌어안으면서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이라고 하잖아. 난 "이대로 영원히 코피가 멎지 않기를." 속으로 진짜 간절히 원하게 되더라. 그렇게 커튼을 사이에 두고 그애랑 나란히 누워서 가끔씩 들려오는 그애 목소리를 듣는 설렘, 그리고 그렇게 툭툭 챙겨주는 말이 너무 좋았어. 그런데 곧 양호 샘이 들어오시고 ㅠㅠㅠ (쓰다가 잠깐 울컥해져서 ... 좀 쉬었다가 이어서 쓸게요. 생각보다 길어지기도 했고. ;;)
아. 양호 선생님 들어오시기 전에 걔가 그런 말 했어. "나 사실 꾀병이야.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이니까 선생님한테 이르지 마라."라고. 난 알았다고 했고. 얘같은 범생이도 이렇게 땡땡이를 치나? 싶어서 속으로 또 다른 매력이다 하고 풉 웃기도 했지. 그러고 나서 양호샘이 들어오시자 그애가 "선생님, 저 조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는데 연기가 너무 천연덕스러운 거야. 그런데 선생님은 또 거기에 호응해서 "아, 많이 안 좋니?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이러시고. 역시 평소 하도 잘하다 보니 누구도 의심 않는구나 싶었지. 양호샘이 조퇴계 써주신다고 하고, 그애는 "감사합니다." 깍듯이 인사하는 소리 다 들리고. 이제 가겠구나, 싶어서 아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쪽 커튼이 젖혀지면서 그애가 "또 보자" 함. 환하게 웃으면서. ㅠㅠ 그때 진심으로 심장 정지가 0.1초 옴. 그렇게 그애는 가고 ㅠㅠㅠㅠ 발랑거리는 심장을 다스리느라고 좀더 누워 있었어. 양호샘이 "넌 코피 아직 안 멈췄니?"하는 소리 듣고 그제야 비실비실 일어났는데, 문득 그애가 무슨 핑계 대고 양호실 왔나 궁금한 거야. 그래서 걱정하는 척하면서 샘한테 "근데 쟤는 어디가 아프대요?"라고 물었어. 그랬더니 샘이 말하시길 "기흉이라서 수술했어." 이러시는 거임!! 완전 놀래가지고 언제요? 하고 벌컥 물었더니 지난 방학 때 발병해서 수술했었다고. 그 뒤로 예후가 나쁘면 재발할 수 있는데 그래서 가슴 통증 생길 때 잘 살펴보고 일시적인 거 아니고 지속되면 곧바로 병원 가봐야 하는 거래. 오늘은 통증이 심해서 왔는데 좀 누워 있다가 괜찮아지지 않으면 병원 가기로 하고 온 거라고. ㅠㅠ... 난 순간 혼란스러웠지. 뭐가 거짓말일까 하고. 꾀병이랬는데 기흉 수술 받은 거 핑계대고 아픈 척한 걸까 아니면 진짜 아팠던 걸까. 수술 받은 거 자체를 거짓말할 순 없잖아 ㅠ 그래서 어질어질하면서 교실 들어갔고, 그 다음날 일부러 걔네 반 쪽으로 가봤는데... 역시나 그애 결석했더라고. ㅠㅠㅠ 꾀병 아니었던 거야. ㅠㅠ 그제사 알았어. 아팠는데 그거 감추고 나한테 장난친 거구나...라고. ㅠ 나중에 '기흉'으로 검색했더니 그 통증이 재발하면 숨 쉬는 것도 힘들고 하여간 사람이 참기 힘든 고통이래 ㅠㅠㅠㅠㅠ 그걸 알고 나니까 내 가슴이 더 미어지는 것 같았어. 자기도 아픈데 나 코피 난 거 챙겨준 거잖아. 나랑 말도 해주고. 근데 난 꾀병이란 거 믿을 정도로 둔했던 거잖아.
그다음 날엔 그애가 다시 학교 나오긴 했지만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못하겠는 거야. 내가 좀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단 소리 듣고 나서는 더 좋아지고, 그래서 더 눈도 못 마주치겠고. 막 그런 거 있잖아. 많은 아이들을 챙기고 지켜주는 타입의 애였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병을 가지고 있고, 또 그걸 다른 애들한테 아프다고 내색도 잘 안 하고 그런 거 보니까 보호본능 돋으면서 ㅠㅠ 그러면서 내가 더 보호받고 싶어질 정도로 그애가 강해 보이고. ㅠ 그렇게 난 말 그대로 끙끙 앓았어. 그애에 대한 마음으로 내가 기흉 걸린 것처럼 가슴앓이가 심했지. 그렇게 지내전 어느 날 또. 복도에서 애들하고 깔깔거리며 음악실 쪽으로 가고 있는데, 그애랑 또 딱 마주침. 근데 그애가 애들 다 있는 앞에서 나한테 슥 다가오더니만 애들 다 들리게 귓속말로(몸 내 쪽으로 기울여서 비밀처럼 말하는데 다른 애들 다 들리게;;) "너 비밀 누설한 거 아니지?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 이럼. ㅠㅠ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다 보니까 어버버 하고 있는데... "말했으면 지금 실토해라. 3초 준다" 이러는 거야. 허허허...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정답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ㅠ 난 또 뇌정지 상태에서 "말 안 했어."라고 최악의 대답을 해버림;;;ㅋㅋㅋㅋ ㅠㅠ 그랬더니 걔가 좀 화난 표정 지으면서 이러는 거야. "근데 왜 나 피해."
하... 지금이라면, 아니 그때 뇌정지만 안 왔더라면 "너 왜 꾀병이라고 뻥쳤어!" 라고 따지는 게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텐데. 퓨... 근데 왜 그애 앞에만 서면 그렇게 지질해지는지 그땐 또 "안 피했어." 라고 또 무미건조한 답을 해버림 ㅠ. 그랬더니 걔가 "거짓말까지 하네?" 라더니 화난 표정을 짓는 거야. 근데 진짜 화난 게 아니라 지어낸 것처럼, 마치 어린애한테 하듯이 말야 ㅠㅠ... 같이 있던 내 친구들도 덩달아 어버버 어버버한 상태고. 그러고 보니까 거짓말은 그애가 했는데 왜 내가 혼나는 기분이 되어야 하는 건데?? 하여간 그렇게 복도에서 다른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말 걸면서 친한 척하고, 그러니까 너무나 당황스럽고. 같은 반일 때도 이렇게까지 확 다가온달까?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뭔가 특별해진 느낌. 특별대우 받는 느낌이 들어서 다리까지 후들거리더라. 최대한 냉랭하게 태연한 척하면서 "알았어. 다음부턴 아는 척할게."라는... 역시나 바보같은 말을 하고 지나가려는데 "고맙다." 라면서 또 씩 웃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