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물에 밥 말아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던 고등학생의 삶

920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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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고등학생인 내가 어렸을 적을 떠올릴 겸 과거의 삶을 적어 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는 잘 살았던 것 같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장 비싼 집에서 살았었고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었다.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무슨 이유로 우리가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른다.


대충 봤을 때 동생이 태어난 후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빠가 다쳐서인지 아니면 아빠의 직장에서 보수를 안 줘서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빠는 실업자가 되었다.


그 후 이사만 두세 번 간 것 같다.


처음 이사한 곳은 외지고 시골풍이 더욱 잘 느껴지는 곳으로 갔었지만, 전 집보다 더 넓고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 저학년 쯤이었던 때였고 엄마와 아빠는 불화가 자주 일어나 아빠는 항상 집을 나가 있었다.


외할머니 또한 엄마랑 불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이사를 간 이후 외할머니는 얼마 안 지나서 집을 나가셨고 집에는 나와 엄마 동생만이 주로 있었던 것 같다.


그 집에 살았을 적 자주 먹었던 식사는 날계란 노른자에 밥을 비벼 먹는 것.


그리고 어디엔가에 있는 시래기를 엄마가 자주 캐와서 시래기죽을 먹었다.


산에 가서 나물을 캐서 나물무침도 먹었다.


이것 말고 먹었던 건 짜장면 직접 만들어서 먹은 적은, 라면으로 만든 전, 백숙 한 번 먹었던 적만 기억나고 나머진 무얼 먹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집에 살면서 기억나는 일 중 한 번은 전기세를 못 내서 전기가 끊긴 것.


그래서 촛불을 키고 생활했던 것.


그 당시에는 정말 슬펐던 일이 하나 있는데 엄마는 백숙 한 마리를 준비하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나서 아빠는 늘 그랬듯이 집을 나갔는데 아빠는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팠을 거라 나는 아빠를 잡으러 따라나갔는데 아빠는 이미 차를 타고 가버렸던 것.


그때는 그게 너무 슬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해서 먹었다. 그러나 나는 돈이 없었기에 친구가 돈을 빌려 준다고 알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친구한테 500원 빌렸다고 했을 때 아빠는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울었고, 엄마는 10원 50원 100원 등을 합해서 500원을 만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아빠가 집주인에게 돈을 받았다.


돈을 준 것도 아니고 받은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만 원짜리 돈 뭉치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또 이사를 갔다.


그때는 그게 원룸인지 몰랐다.


그곳에서도 불화는 지속되었고 그 집에 온 후로부터 나는 아빠한테 자주 맞고 자주 혼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어이없는 일로도 많이 맞았다.


그 집에서 주로 먹었던 식사는 밥에 물말아서 고추장에 찍어 먹은 것.


그게 주식이었다.


동생은 유치원을 갈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지 못 했다.


엄마는 신문을 보면서 알바를 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알바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 같은데 한참 뒤에 생각하게 된 건데 엄마가 불륜을 하는 것도 같았다. 물론 심증만 있다.


어쨌든 원룸에 이사오고 나서 이번에는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히는 못 들어왔다.


알바가 끝나고 저녁 늦게 엄마가 초인종을 누르면 아빠는 텔레비전 소리를 일부러 크게 틀고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말라하였다.


나는 그때는 문을 열었다간 또 맞을 것 같아서 못 열었다.


그런 경우가 자주 있었고 결국 엄마는 짐을 싸서 울며 나갔다.


이렇게 불화가 일어나면서 정말 또렷하게 기억나는 아빠의 행동 중 하나는
아빠가 엄마에게 죽인다는 식으로 말하다가 엄마는 그럼 죽이라는 식으로 말했었는데
아빠가 그 말을 듣고 바로 식칼을 들고 엄마를 찌르려고 했던 것.


그리고 나서 엄마는 바로 나와 동생에게 청심환을 먹였다.


엄마가 나가고 나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아빠에게 빵 하나 사러간다고 하고 엄마를 보러가려 했지만 결국 나갈 수 없었고 그렇게 나는 엄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를 가려고 길을 걸었다.


그런데 엄마가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엄마 말을 들어보니 찜질방에서 자고 왔다고 하였다.


다음 날에도 엄마가 있겠지 하는 마음에 등교를 하였을 땐 엄마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는 못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고모와 고모부, 엄마가 함께 집을 찾아왔다.


여태껏 있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고 엄마는 말하면서 울었다.


기억나는 이야기는
엄마는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경마장 가서 도박한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였고,
아빠는 딸이 소풍 가는데 김밥 한 번을 싸 준 적이 없고 김밥천국에서 한 줄 사서 소풍 보낸다 라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고모는 엄마에게 자기는 아들 키울 때 도시락을 안 싸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딸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아빠는 더 크게 혼났던 것 같다.


고모가 왔을 때는 너무 행복했다.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었고, 그냥 혼내는 게 너무 좋았다.


고모에게 꾸중이 난 후, 불화는 잠잠해진 것 같았다.


그 후로 엄마는 소풍을 갈 때마다 나에게 도시락을 싸 주었다.


못 쌀 경우에는 호일에 김밥 한 줄이 아닌, 적어도 도시락통에 김밥을 옮겨 담는.
그런 작은 성의를 보여 주었다.


엄마는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아빠는 주로 집안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되게 서툴렀다.


아빠는 요리를 할 때마다 손을 베는 것은 기본이었다.


집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었다.


인터넷 요금을 안 냈기에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등을 할 수 없어서 아빠폰으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동생과 인형놀이를 하는 등 매일을 보냈다.


동생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고, 나는 어린이집 차가 집앞에 오면 동생을 데리러 나가야 했다.


그러나 집에서 할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나는 깜빡 잠 들어 동생을 못 데리러 갈 때가 많았다.


그래서 6시에 데리러 가야 되는 동생을 8시에 데리러 가는 경우가 몇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동생 혼자 집에 올라오면 되는 일이었는데


나는 엄마에게 인터넷 요금 좀 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였고, 엄마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내주었다.


여태까지 나는 학원을 3번 다녀 봤는데
처음 다니던 곳은 이사간 이후 학원차를 운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만 두었고, 두 번째는 보습학원을 다니다 학원비를 못 내, 그만 다니게 되었다.


마지막은 태권도 학원인데, 나는 태권도를 다니면서 품띠를 따본 적이 없고, 빨간띠로만 몇 개월을 살았다.
품띠를 따기 위해서는 10만 원 가량의 돈을 내야 했는데 그 돈을 내지 못 해, 나는 계속 빨간띠로 살았다.


그리고 학원비도 내지 못했다. 꼬박꼬박 내다가 6개월 정도가 밀렸던 것 같다.


그러나 학원선생님께선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라는 말도, 그만다니라는 말도. 내 사정을 이해해 주신 걸까.


집 월세도 못 냈다.


집주인은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고, 아빠는 항상 전화로 죄송하다고 다음 달에 내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집주인이 정말 방을 빼라고 하자 부모님은 여태까지에 사정을 다 말하는 것 같았다.


집주인은 자기도 젊었을 적엔 그랬던 때가 있다면서 한 번 더 용서해 주셨고, 그 후론 월세를 잘 내는 것 같았다.


동생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교육비를 내라며 자주 찾아왔고, 전화도 자주 왔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 번도 이런 삶에 대해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우리 딸은 편식을 안 한다고. 밥에 물 말아서 고추장만 줘도 투정 안 하고 잘 먹는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해서 그런가 편식을 안 하려고 다짐했었다.


또 어느 날 친구들을 만나서 내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집에 있던 아빠가 크게 화내면서 친구를 보내라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면 안 되는지.


한참 후, 조금 자란 동생도 친구를 집에 데려오려 했고, 엄마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곤 이런 집에 친구를 데려오기엔 창피하잖아 라는 식으로 내게 말했었다.


내 친구 중 한 명도 그런 의도로 말한 건지는 몰라도 너 원룸 살잖아 라는 식으로 말한 이후, 친구들에게 어디를 산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가장 창피했던 건 매년 새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자기소개겸 항상 부모님이 하시는 일, 장래희망, 하고 싶은 말 등 쓰는 종이를 나누어 주셨는데 나는 그걸 쓰는 게 제일 싫었다.


아빠를 백수라고 쓰기도 뭐 하고 사는 곳도 밝히기 싫어서.


그래서 엄마는 항상 아빠 직업칸은 회사원으로 썼다.


그 종이를 보고 매년 새학년 선생님들마다 나보고 교육비 같은 돈을 내는 거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기분이 살짝 나빴었다.


그 원룸에서 5년 이상을 살았고 우리는 최근에 또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는 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이사를 가기 전, 아빠는 대출을 받을 거라는 식으로 나에게 말을 했었고, 나는 빚지는 게 싫다. 못 갚으면 어떡하냐. 빌리지 마라. 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엄마에게도 대출 받는 건 싫다고 말했었고, 아빠가 쓸데없는 걸 말했다며 안 받는다고 하였다.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사실 예전부터 돈을 모으고 있었다고 나에게 말했고 나는 믿는 척 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다 아빠의 문자와 카톡을 보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대출을 받은 게 맞았다.


900을 대출 받았고 5년간 갚아야 한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에게 나한테 쓸데없는 거 말하지 말라고.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식으로 얘기한 걸 보았다.


한 가지 다행인 건 1000이 안 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900도 큰 돈이지만 900보다 더 높은 돈이었다면 정말 슬펐을 것 같다.


어쨌든 아빠는 대략 일 년 전에 취직을 하였고, 고모가 아빠에게 혼낸 뒤로 나를 때리는 것이 확 줄었으며, 근 1-2년 동안은 맞은 적이 없다.


처음에 아빠가 취직한다고 하였을 땐 되게 걱정하였다.


별로 다니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기대도 않았지만 꾸준히 다니는 걸 보아 걱정은 놓이지만 대출이 걱정이다...


아빠는 백수가 되고 난 후, 지금 다니는 일을 다니기 전에 총 2번의 일을 했었는데 하나는 일반 회사고 하나는 대리운전이었다.


아빠는 엄마랑은 아직도 티격태격한다.
걱정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별 문제 안 되는 거로 엄마가 일방적으로 화낸다.
그리곤 막상 문제되는 거에는 별 말 안 한다...


어쨌든 이사를 온 후 내 방이 생겼고, 엄마가 더 깔끔해졌다.
전 집에선 안 했던 것들을 자주한다.
인테리어나 청소나 요리 등


원룸에 살았을 때는 가전제품들도 좋지 않았다.


세탁기는 망가진지 오래라 빨래는 빨래방에서 하면서 썼고, 냉장고도 냉동이 전혀 되지 않았으며, 가스레인지도 불을 못 켰다.
밥솥도 밥이 안 될 때가 가끔 있었고, TV도 화면이 나갔다.
청소기도 망가져서 이사하기 몇 달 전부터 청소기를 못 돌렸다.


그리고 노트북을 알아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컴퓨터도 사양이 되게 안 좋았다.
요즘은 윈도우 10인데 그 컴퓨터는 윈도우 xp였으니


모든 가전제품이 다 10년 이상 된 거라고 했다.
물론 이사오면서 TV를 제외하고 다 새로 샀다.
TV는 일주일에 한 번 볼까말까 라서 그냥 설치를 안 하려고 하였지만,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 그냥 가져왔다.


사는 게 힘들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지원을 되게 잘해 주셨다.
용돈도 폐륜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받았고 친구들과 놀 때도 항상 돈을 더 주셨다.


지금까지도 제일 궁금한 건 엄마의 친척들은 잘 살고 계실까이다.
원룸으로 이사 가기 전부터 외할머니나 삼촌 등의 근황을 들은 적이 없다.
한참 예전에 할머니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라고 들은 적이 있었고, 잘못 들은 거일 수도 있겠지만 돌아가셨다고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엄마에게 물어보기엔 엄마쪽 친척들과 엄마의 사이가 매우 안 좋은 것 같아서 못 물어보겠다.


예전에는 이혼하자는 얘기를 밥 먹듯이 했었다.
그럴 때마다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장난인지는 몰라도 요즘에도 엄마가 나에게 이혼하는 거 어떻냐는 얘기를 한다. 물론 작년 쯤에 들었던 말이지만.
이혼가정 혜택이 어떻냐는 등하면서.


그런데 뭔가 이혼하면 아빠랑 엄마랑 정말 남이 될 것 같아서 그럴 때마다 싫다고 하였다.


나눠서 쓰다 보니 있었던 일이 되게 많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어쨌든 이렇게 종결났다.






혹시라도 부모님 욕은 하지 말아 주세요.
어디에 퍼가지도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