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숨었어요.
원룸 월세를 달라는 주인아주머니와 부모님이 입씨름 하는동안 이불 속에서, 학원비를 달라고 나를 찾는 학원원장선생님을 피해 화장실 속에서, 급식비를 안냈으니 행정실로 찾아가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학교 계단 구석에서.
이불 속에 숨던 9살 짜리 꼬마가, 화장실에 숨어있던 초등학생이, 계단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등학생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오늘 제 조그만한 방에 숨어있는 25살이 되었습니다.
저희집은 가난합니다. 평생을 생산직으로 일한 아버지가 있지만 남은건 월세집이고, 한 번의 파산과 곧 있을 회생절차. 사업이 실패했다거나 보증을 섰다거나 누군가의 빚을 떠안았다거나..차라리 이런 이유면 나을까요. 모든 이유는 신용카드에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올해 겨울 대학을 마쳤습니다. 국가장학금을 받고, 성적장학금을 받고, 근로학생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대부분 이렇게 대학생활을 보내니 뭐 특별한건 없네요.
취직도 했습니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인턴활동을 하던 곳에서 저를 좋게 봐주시어 졸업하자마자 일자리제의를 하셨고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받는 형식으로 꽤 받은 돈을 받고있습니다. 업계 특성상 일이 매우 많고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대학원을 다닐 예정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분야가 기본 석박사에 학벌을 많이 따지는 곳이라 대학원 진학은 거의 필수이고 저도 제 출신 대학에 그리 만족하지 못하는 편이라 제 의지이기도 합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영대학원에 이미 합격통지도 받았습니다. 등록금이 걸리긴 하지만, 조금 무리하면 제 월급에서 커버할 수 있을거고 부족하면 학자금대출을 받으려고 합니다.
다들 축하한다고 하는데,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하고 대학원도 합격했으니 다들 축하한다고 하는데, 저는 제 작은 방 안에 숨어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비지원을 받았어요. 수업료와 점심급식비 지원을 받았는데 저녁급식비는 납부했어야 했어요. 저희학교는 급식실에 학생증 바코드를 찍고 입장하는 형식이었는데 급식비를 내지않은 사람은 바코드를 찍는 순간 남들과는 다른 소리가 났습니다. 영양사 선생님이 준 종이에 학년반번호 이름도 적어야 했구요. 이런 방식이 제가 3학년 때부터 도입이 되었는데, 저는 거의 일년동안 남들과는 다른 바코드 찍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영양사선생님이 제 이름을 외우고 계시더라구요.
외동딸 급식비도 못 내줄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빠의 월급날은 10일이었고 급식비 납부는 매달 말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매달 말에 저희집은 돈이 없었어요. 그럼 미리 돈을 빼놓으면 되는거 아니냐, 하시겠죠. 저도 엄마한테 묻고 싶어요. 대체 왜 그러지 못했냐고.
고3 때 제 소원은 수능 잘보는게 아니라 급식벨이 안울리는 거였어요. 그렇다고 석식을 빼거나 야자를 빼진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럴걸 그랬어요. 하루 한끼 굶은게 뭐 대수라고 꾸역꾸역 급식실에 가서 아직도 그 기억으로 저를 괴롭히게 하는지.
수능을 봤고, 만족하진 못했지만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첫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통학이 왕복 세시간이라 학기 중 알바는 못하겠더라구요. 핸드폰 조립공장이었는데, 한달 동안 일했습니다. 일주일치 주급을 미리 받고, 나머지 삼 주치 급여로 90만원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70만원을 달라고 했어요.
1학년 겨울방학은 집에서 공부를 했어요. 당시 편입 준비를 한다고 했거든요. 결국 포기하긴 했지만. 개강 3일 전 3일짜리 알바를 해서 전공책 살 돈을 마련했습니다.
2학년 여름방학 때도 알바를 했어요. 무슨 전자공장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2학년 겨울방학 때는 대학원에서 하루 4시간 씩 국가근로을 했습니다.
3학년 여름방학 때는 하루 8시간씩 국가근로을 했습니다. 방학과 동시에 시작하고 개강 전 주까지 근로를 해야해서 방학이 의미가 없었지만 시급이 높아서 좋았습니다.
3학년 겨울방학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4학년 1학기 학기 중에는 과사무실에서 국가근로를 했습니다.
4학년 여름방학 때는 인턴활동을 했습니다.
다른 애들도 이렇게 해요. 자취하는데 월세가 필요하다, 등록금 벌어야 한다, 용돈 벌어야 한다, 여행 갈거다...
저는 제가 했던 알바와 근로 급여의 80% 정도를 늘 엄마께 드려야했습니다. 딱 한 번 제가 노트북 산다고 했을 때는 빼고요.
필요하다고 하니까, 카드값 갚아야 한다고 하니까, 곧 나한테 갚을거라고 하니까...물론 돌려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1월에 취직을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기본급만 알려드렸습니다. 기본급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에요. 인센티브가 쎄구요. 다 뺏기기는 싫었어요. 엄마는 매달 제 월급에서 70만원 정도를 제외한 금액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젠 저도 주기 싫었어요.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아빠 월급날, 본인이 돈 받는 날(요양병원에서 가끔 일하심니다). 안 줄거냐거 합니다, 약 먹고 죽을거라고 해요. 저는 지쳐서 그냥 엄마가 말한 금액을 이체합니다.
아빠는 꾸준히 일하시고, 엄마 본인도 요양병원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하는데 왜 매달 돈이 필요하다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모르는 인센티브로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했어요. 갖고싶았던 태블릿 pc를 샀고, 운동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pt를 끊었고, 최근엔 일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원을 다니기로 한 이후로, 조금 빠듯하게 살려고 합니다. 가뜩이나 회사일로 야근이 많은데(1주에 하루는 야근, 하루는 밤샘,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한두시간정도 더 작업을 요합니다) 평일 이틀은 야간수업, 주말 하루 수업. 여기에 집까지 왕복 세시간이 걸리다 보니 도저히 현재 집에서 대학원을 다니기가 힘들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너무 힘들거든요. 기숙사든 고시원이든, 원룸이든 구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어김없이 월급 하루 전인 오늘, 엄마가 도와달라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지난 달부터 저는 계속 말해왔습니다. 대학원 등록금만 학기당 600에, 이번에는 입학금까지 700이 필요하다. 내 월급으로도 빠듯하긴 한데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 하지만 더이상 엄마한테 돈은 못주겠다. 제 말은 듣지도 않았겠죠. 아니면 들었어도 신경쓰지 않는다든가. 대출 받아 다니면 되잖아? 대출은 나중에 갚아줄게. 돌아온 대답은 그거였습니다. 저는 또 화가 나서 구구절절 말했습니다. 그동안 나한테 돈 갚은 적 있느냐. 이번 달부터는 돈 주기 힘들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느냐. 엄마아삐가 지금까지 고생한거 알고 감사하지만 이러는건 내게 버겁다. ‘말 진짜 많네.’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쌓인게 많았습니다. 옆에 회사 직원분들 있는거 뻔히 알면서 통화 중 큰소리로 ‘또 술쳐먹어?’라고 해서 말 좀 조심하라고 했더니 ‘그럼 쳐잡순시다할걸 그랬나?’ 라고 하더군요.
얼마 전엔 제가 좀 아팠어요.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느라 거의 일주일동안 잠을 못잤더니 고열에 몸살이 나더군요.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 ‘네가 방 지저분하게 하고 제대로 안씻고 그렇게 사니까 아프지’... 이때누정밀 서럽고 화나서 집에 가서 씩씩댔더니 아무래도 좀 당황한 모양인지, 저것보라고, 따박따박 말하는거 보라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핼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데,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비슷한 체형을 가지신 분들을 보면 다짜고짜 화가 났어요. 진짜 정신병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집에 왔습니다. 얼마 전 제 방 의자가 고장나서 주문을 했는데, 그거가지고 엄마가 뭐라 그러더군요. 왜 그런걸 샀냐고. 솔직히 전 엄마가 바꿔줄 줄 일았어요. 새벽에 일하는거 빤히 알면서, 등받이가 부러진 의자를 뻔히 보고도 일주일을 방치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제가 산거에요. 여러가지로 짜증나고 서운해서 한마디했습니다. 이거 사는데 돈도 안보태줬으면서.
한마디를 지는 법이 없다, 꼬박꼬박 말대답한다, 고분고분한 맛이 없다. 이어지는 말에 저도 짜증나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원하는건 고분고분 입금하는거겠지. 꼴도 보기싫다고 했고 방에 들어가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다음학기부터 기숙사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아빠가 들어왔습니다. 넌 돈 좀 번다고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냐고.
사실 아빠는 자세한 상황은 잘 몰라요. 본인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겠지만, 그게 싫은거겠죠.
집인 형편이 어려운데 좀 도울 수 있지, 그거 가지고 속상한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그딴식으로 말하냐고. 그럼 이제 앞으로 네가 벌은 돈 네가 알아서 쓰라고.
전 잘 모르겠습니다. 창피하니까 제발 급식비 좀 내달라고하던 딸의 애원을, 한두달만이라도 수학학원 좀 보내주면 안될까하던 딸의 부탁을 한 번도 들어준 적 없는데. 전 과연 그동안 가족의 울타리 안에 보호 받은게 맞는지, 엄마아빠는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지, 딸로서 사랑하는지.
그냥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싶었어요. 친구든 회사사람이든 아무도 제 사정은 모르고, 그들에게 이런 것을 말하는 건 제 자존심상 허락은 못하기에. 그런데 가슴이 꽉 막혀서.
이불 속에 숨던, 화장실에 숨어있던, 계단에 몸을 숨기던 그 트라우마와 함께 오늘 제 방에 숨어있는 기억이 또다른 트라우마가 될까봐.
회사 옆의 정신과를 용기 내 찾아가는 것 대신, 제 방의 행거에 목을 달고, 가끔 올라가는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릴까봐.
저도 잘 알아요. 이곳에서 벗어나면 된다는거.
그런데 이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오늘 밤의 기억은 아무 것도 아닐거라고. 넌 앞으로 괜찮을거라고.
괜찮을거라 말해주세요
저는 숨었어요.
원룸 월세를 달라는 주인아주머니와 부모님이 입씨름 하는동안 이불 속에서, 학원비를 달라고 나를 찾는 학원원장선생님을 피해 화장실 속에서, 급식비를 안냈으니 행정실로 찾아가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학교 계단 구석에서.
이불 속에 숨던 9살 짜리 꼬마가, 화장실에 숨어있던 초등학생이, 계단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등학생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오늘 제 조그만한 방에 숨어있는 25살이 되었습니다.
저희집은 가난합니다. 평생을 생산직으로 일한 아버지가 있지만 남은건 월세집이고, 한 번의 파산과 곧 있을 회생절차. 사업이 실패했다거나 보증을 섰다거나 누군가의 빚을 떠안았다거나..차라리 이런 이유면 나을까요. 모든 이유는 신용카드에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올해 겨울 대학을 마쳤습니다. 국가장학금을 받고, 성적장학금을 받고, 근로학생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대부분 이렇게 대학생활을 보내니 뭐 특별한건 없네요.
취직도 했습니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인턴활동을 하던 곳에서 저를 좋게 봐주시어 졸업하자마자 일자리제의를 하셨고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받는 형식으로 꽤 받은 돈을 받고있습니다. 업계 특성상 일이 매우 많고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대학원을 다닐 예정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분야가 기본 석박사에 학벌을 많이 따지는 곳이라 대학원 진학은 거의 필수이고 저도 제 출신 대학에 그리 만족하지 못하는 편이라 제 의지이기도 합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영대학원에 이미 합격통지도 받았습니다. 등록금이 걸리긴 하지만, 조금 무리하면 제 월급에서 커버할 수 있을거고 부족하면 학자금대출을 받으려고 합니다.
다들 축하한다고 하는데,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하고 대학원도 합격했으니 다들 축하한다고 하는데, 저는 제 작은 방 안에 숨어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비지원을 받았어요. 수업료와 점심급식비 지원을 받았는데 저녁급식비는 납부했어야 했어요. 저희학교는 급식실에 학생증 바코드를 찍고 입장하는 형식이었는데 급식비를 내지않은 사람은 바코드를 찍는 순간 남들과는 다른 소리가 났습니다. 영양사 선생님이 준 종이에 학년반번호 이름도 적어야 했구요. 이런 방식이 제가 3학년 때부터 도입이 되었는데, 저는 거의 일년동안 남들과는 다른 바코드 찍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영양사선생님이 제 이름을 외우고 계시더라구요.
외동딸 급식비도 못 내줄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빠의 월급날은 10일이었고 급식비 납부는 매달 말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매달 말에 저희집은 돈이 없었어요. 그럼 미리 돈을 빼놓으면 되는거 아니냐, 하시겠죠. 저도 엄마한테 묻고 싶어요. 대체 왜 그러지 못했냐고.
고3 때 제 소원은 수능 잘보는게 아니라 급식벨이 안울리는 거였어요. 그렇다고 석식을 빼거나 야자를 빼진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럴걸 그랬어요. 하루 한끼 굶은게 뭐 대수라고 꾸역꾸역 급식실에 가서 아직도 그 기억으로 저를 괴롭히게 하는지.
수능을 봤고, 만족하진 못했지만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첫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통학이 왕복 세시간이라 학기 중 알바는 못하겠더라구요. 핸드폰 조립공장이었는데, 한달 동안 일했습니다. 일주일치 주급을 미리 받고, 나머지 삼 주치 급여로 90만원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70만원을 달라고 했어요.
1학년 겨울방학은 집에서 공부를 했어요. 당시 편입 준비를 한다고 했거든요. 결국 포기하긴 했지만. 개강 3일 전 3일짜리 알바를 해서 전공책 살 돈을 마련했습니다.
2학년 여름방학 때도 알바를 했어요. 무슨 전자공장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2학년 겨울방학 때는 대학원에서 하루 4시간 씩 국가근로을 했습니다.
3학년 여름방학 때는 하루 8시간씩 국가근로을 했습니다. 방학과 동시에 시작하고 개강 전 주까지 근로를 해야해서 방학이 의미가 없었지만 시급이 높아서 좋았습니다.
3학년 겨울방학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4학년 1학기 학기 중에는 과사무실에서 국가근로를 했습니다.
4학년 여름방학 때는 인턴활동을 했습니다.
다른 애들도 이렇게 해요. 자취하는데 월세가 필요하다, 등록금 벌어야 한다, 용돈 벌어야 한다, 여행 갈거다...
저는 제가 했던 알바와 근로 급여의 80% 정도를 늘 엄마께 드려야했습니다. 딱 한 번 제가 노트북 산다고 했을 때는 빼고요.
필요하다고 하니까, 카드값 갚아야 한다고 하니까, 곧 나한테 갚을거라고 하니까...물론 돌려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1월에 취직을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기본급만 알려드렸습니다. 기본급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에요. 인센티브가 쎄구요. 다 뺏기기는 싫었어요. 엄마는 매달 제 월급에서 70만원 정도를 제외한 금액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젠 저도 주기 싫었어요.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아빠 월급날, 본인이 돈 받는 날(요양병원에서 가끔 일하심니다). 안 줄거냐거 합니다, 약 먹고 죽을거라고 해요. 저는 지쳐서 그냥 엄마가 말한 금액을 이체합니다.
아빠는 꾸준히 일하시고, 엄마 본인도 요양병원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하는데 왜 매달 돈이 필요하다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모르는 인센티브로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했어요. 갖고싶았던 태블릿 pc를 샀고, 운동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pt를 끊었고, 최근엔 일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원을 다니기로 한 이후로, 조금 빠듯하게 살려고 합니다. 가뜩이나 회사일로 야근이 많은데(1주에 하루는 야근, 하루는 밤샘,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한두시간정도 더 작업을 요합니다) 평일 이틀은 야간수업, 주말 하루 수업. 여기에 집까지 왕복 세시간이 걸리다 보니 도저히 현재 집에서 대학원을 다니기가 힘들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너무 힘들거든요. 기숙사든 고시원이든, 원룸이든 구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어김없이 월급 하루 전인 오늘, 엄마가 도와달라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지난 달부터 저는 계속 말해왔습니다. 대학원 등록금만 학기당 600에, 이번에는 입학금까지 700이 필요하다. 내 월급으로도 빠듯하긴 한데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 하지만 더이상 엄마한테 돈은 못주겠다. 제 말은 듣지도 않았겠죠. 아니면 들었어도 신경쓰지 않는다든가. 대출 받아 다니면 되잖아? 대출은 나중에 갚아줄게. 돌아온 대답은 그거였습니다. 저는 또 화가 나서 구구절절 말했습니다. 그동안 나한테 돈 갚은 적 있느냐. 이번 달부터는 돈 주기 힘들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느냐. 엄마아삐가 지금까지 고생한거 알고 감사하지만 이러는건 내게 버겁다. ‘말 진짜 많네.’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쌓인게 많았습니다. 옆에 회사 직원분들 있는거 뻔히 알면서 통화 중 큰소리로 ‘또 술쳐먹어?’라고 해서 말 좀 조심하라고 했더니 ‘그럼 쳐잡순시다할걸 그랬나?’ 라고 하더군요.
얼마 전엔 제가 좀 아팠어요.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느라 거의 일주일동안 잠을 못잤더니 고열에 몸살이 나더군요.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 ‘네가 방 지저분하게 하고 제대로 안씻고 그렇게 사니까 아프지’... 이때누정밀 서럽고 화나서 집에 가서 씩씩댔더니 아무래도 좀 당황한 모양인지, 저것보라고, 따박따박 말하는거 보라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핼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데,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비슷한 체형을 가지신 분들을 보면 다짜고짜 화가 났어요. 진짜 정신병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집에 왔습니다. 얼마 전 제 방 의자가 고장나서 주문을 했는데, 그거가지고 엄마가 뭐라 그러더군요. 왜 그런걸 샀냐고. 솔직히 전 엄마가 바꿔줄 줄 일았어요. 새벽에 일하는거 빤히 알면서, 등받이가 부러진 의자를 뻔히 보고도 일주일을 방치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제가 산거에요. 여러가지로 짜증나고 서운해서 한마디했습니다. 이거 사는데 돈도 안보태줬으면서.
한마디를 지는 법이 없다, 꼬박꼬박 말대답한다, 고분고분한 맛이 없다. 이어지는 말에 저도 짜증나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원하는건 고분고분 입금하는거겠지. 꼴도 보기싫다고 했고 방에 들어가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다음학기부터 기숙사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아빠가 들어왔습니다. 넌 돈 좀 번다고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냐고.
사실 아빠는 자세한 상황은 잘 몰라요. 본인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겠지만, 그게 싫은거겠죠.
집인 형편이 어려운데 좀 도울 수 있지, 그거 가지고 속상한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그딴식으로 말하냐고. 그럼 이제 앞으로 네가 벌은 돈 네가 알아서 쓰라고.
전 잘 모르겠습니다. 창피하니까 제발 급식비 좀 내달라고하던 딸의 애원을, 한두달만이라도 수학학원 좀 보내주면 안될까하던 딸의 부탁을 한 번도 들어준 적 없는데. 전 과연 그동안 가족의 울타리 안에 보호 받은게 맞는지, 엄마아빠는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지, 딸로서 사랑하는지.
그냥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싶었어요. 친구든 회사사람이든 아무도 제 사정은 모르고, 그들에게 이런 것을 말하는 건 제 자존심상 허락은 못하기에. 그런데 가슴이 꽉 막혀서.
이불 속에 숨던, 화장실에 숨어있던, 계단에 몸을 숨기던 그 트라우마와 함께 오늘 제 방에 숨어있는 기억이 또다른 트라우마가 될까봐.
회사 옆의 정신과를 용기 내 찾아가는 것 대신, 제 방의 행거에 목을 달고, 가끔 올라가는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릴까봐.
저도 잘 알아요. 이곳에서 벗어나면 된다는거.
그런데 이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오늘 밤의 기억은 아무 것도 아닐거라고. 넌 앞으로 괜찮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