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서른이 넘었고,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남자의 인생에서폭력을 당했던 경험은정말 평생의 수치와 절망감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도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그 시절 주먹 한 번 뻗어보지 못한 어린 내가 저주스럽고
그런 녀석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대위 계급장을 달면서 지금은 나라를 지킵네 하는 것이가끔은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납니다. 그 친구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괴롭힘 당하던 내 어린시절 나이만큼 성장했을 때납치해버릴까 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습니다. 네,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지요.그런데, 그만큼의 분노까지도 생기더군요.
------------- 그 친구와 저는 시골 초등학교에서 만났습니다.5,6학년 때 같은 반이었죠. 그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엄청나게 컸습니다.힘도 무지막지하게 셌죠. 흔히 말하는 짱이었습니다.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내두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심지어 한 학년 위의 어리버리한 형들에게도반말로 욕을하며 낄낄 거렸으니까요. 5학년쯤부터 저에게 폭행을 시작했고,제가 가장 크게 기억나는 폭행은 청소 분담을 이야기하다가 기분이 나쁘다며 얼굴에 주먹질을 한 것,아침 조회 나가기 전에 기분을 나쁘게 했다며저를 하도 심하게 때려서 제가 너무 무서워 그채로 집으로 피신해부모님이 놀라서 나를 다독여주셨던 것 음악시간에 한 명씩 노래를 부르는 실습이 있었는데본인이 노래한 후에 제가 자신을 비웃었다며 (그 친구 노래를 많이 못한다는 컴플렉스가 있습니다.)수업 도중에 싸대기를 때렸습니다.당시 무능한 늙은 담임은 그것을 보고만 있었죠. 직접 폭행이 아니라 폭행을 알선하기 까지 했습니다.저처럼 힘 없는 친구 다른 한 명을 놓고 서로 싸우고 때리게 했으니까요. 폭행 뿐만 아니라 금품 갈취까지 심했습니다.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서 '억지 내기'를 만들었고그 내기에 졌으니 얼른 돈을 가져 오란 식이었습니다. 나날이 요구하는 금액은 높아져갔고저는 그 요구에 맞추기 위해 어머니의 지갑에 손을 댔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교회의 회계 업무를 보시는 집사님이었고제가 손댔던 지갑은 교회의 돈을 모아놓는 지갑이었습니다. 저는 이 친구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점점 더 많은 돈을 손 대었고부모님은 그 돈을 자신의 실수로 착각하시고 메꾸셨습니다. 이 일은 지금 떠올라도 제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습니다. -----------------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벗어나지 못해운동을 쉬지 못합니다. 복싱을 10년간 꾸준히 했습니다.그 어린 시절의 내가 너무 한스럽고 화가 나서요.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건그 친구가 이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 일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평생을 죄책감을 느끼다저에게 찾아와서 사과를 한다면저는 아마 받아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실수니까요. 그런데, 내 가슴에 꽂혀진 비수는 너무나 선명한데그 녀석에게는 술자리 안줏거리에도 오르내리지 않는 일일까봐그것이 저를 가장 분노하게 합니다. 맞은 사람은 평생을 괴로워하고때린 사람은 기억도 하지 않는다는 이 슬픈 대비는 참 역겹네요. 어쩌면, 그 친구는 저를 친한 친구로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 시절의 명칭대로 저를 '꼬봉'으로 데리고 다녔으니까요. 누군가에겐 역겨운 기억이 누군가에겐 즐거운 추억일 수도 있겠네요.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면서그 시절 피눈물을 삼키셨을 부모님의 마음이 자꾸 떠오릅니다.혹여 2차 가해가 이루어질까 말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으셨을 그 속은 대체 어떠셨을까요. 만약에 지금 제 아이에게 누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저는 주저 하지 않고 살인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오늘도 인스타그램에자신의 계급장을 뽐내며 술을 마시고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삶이 부러운 것은 아닙니다.저도 제 삶을 잘 살았고, 제법 인정받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그 친구가 저리 멀쩡히 살고 있고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한다는 것이너무 화가 나고 열받습니다.
나에게 학폭을 가했던 친구가 현재 육군 대위라니..
그런데도 남자의 인생에서폭력을 당했던 경험은정말 평생의 수치와 절망감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도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그 시절 주먹 한 번 뻗어보지 못한 어린 내가 저주스럽고
그런 녀석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대위 계급장을 달면서 지금은 나라를 지킵네 하는 것이가끔은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납니다.
그 친구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괴롭힘 당하던 내 어린시절 나이만큼 성장했을 때납치해버릴까 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습니다.
네,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지요.그런데, 그만큼의 분노까지도 생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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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와 저는 시골 초등학교에서 만났습니다.5,6학년 때 같은 반이었죠.
그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엄청나게 컸습니다.힘도 무지막지하게 셌죠. 흔히 말하는 짱이었습니다.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내두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심지어 한 학년 위의 어리버리한 형들에게도반말로 욕을하며 낄낄 거렸으니까요.
5학년쯤부터 저에게 폭행을 시작했고,제가 가장 크게 기억나는 폭행은
청소 분담을 이야기하다가 기분이 나쁘다며 얼굴에 주먹질을 한 것,아침 조회 나가기 전에 기분을 나쁘게 했다며저를 하도 심하게 때려서 제가 너무 무서워 그채로 집으로 피신해부모님이 놀라서 나를 다독여주셨던 것
음악시간에 한 명씩 노래를 부르는 실습이 있었는데본인이 노래한 후에 제가 자신을 비웃었다며 (그 친구 노래를 많이 못한다는 컴플렉스가 있습니다.)수업 도중에 싸대기를 때렸습니다.당시 무능한 늙은 담임은 그것을 보고만 있었죠.
직접 폭행이 아니라 폭행을 알선하기 까지 했습니다.저처럼 힘 없는 친구 다른 한 명을 놓고 서로 싸우고 때리게 했으니까요.
폭행 뿐만 아니라 금품 갈취까지 심했습니다.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서 '억지 내기'를 만들었고그 내기에 졌으니 얼른 돈을 가져 오란 식이었습니다.
나날이 요구하는 금액은 높아져갔고저는 그 요구에 맞추기 위해 어머니의 지갑에 손을 댔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교회의 회계 업무를 보시는 집사님이었고제가 손댔던 지갑은 교회의 돈을 모아놓는 지갑이었습니다.
저는 이 친구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점점 더 많은 돈을 손 대었고부모님은 그 돈을 자신의 실수로 착각하시고 메꾸셨습니다.
이 일은 지금 떠올라도 제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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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벗어나지 못해운동을 쉬지 못합니다.
복싱을 10년간 꾸준히 했습니다.그 어린 시절의 내가 너무 한스럽고 화가 나서요.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건그 친구가 이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 일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평생을 죄책감을 느끼다저에게 찾아와서 사과를 한다면저는 아마 받아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실수니까요.
그런데, 내 가슴에 꽂혀진 비수는 너무나 선명한데그 녀석에게는 술자리 안줏거리에도 오르내리지 않는 일일까봐그것이 저를 가장 분노하게 합니다.
맞은 사람은 평생을 괴로워하고때린 사람은 기억도 하지 않는다는 이 슬픈 대비는 참 역겹네요.
어쩌면, 그 친구는 저를 친한 친구로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 시절의 명칭대로 저를 '꼬봉'으로 데리고 다녔으니까요.
누군가에겐 역겨운 기억이 누군가에겐 즐거운 추억일 수도 있겠네요.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면서그 시절 피눈물을 삼키셨을 부모님의 마음이 자꾸 떠오릅니다.혹여 2차 가해가 이루어질까 말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으셨을 그 속은 대체 어떠셨을까요.
만약에 지금 제 아이에게 누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저는 주저 하지 않고 살인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오늘도 인스타그램에자신의 계급장을 뽐내며 술을 마시고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삶이 부러운 것은 아닙니다.저도 제 삶을 잘 살았고, 제법 인정받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그 친구가 저리 멀쩡히 살고 있고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한다는 것이너무 화가 나고 열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