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으며
울컥하기도 하고 공감가기도 하고
힘이 많이 되네요. 여러분들의 슬픔과 위안에 죄송한 마음까지 듭니다. 저보다 더 힘드신 분들도 계신 것 같아서..
부모님께 연락을 잘 못했는데 조금은 더 잘 챙겨보려고요. 제가 힘들고 우울하니 누굴 위로할 상황이 못된다 생각했어요. 또 저희집은 항상 아이들로 시끌벅적한데 제가 억지로 웃듯 부모님도 연락이 반가우시지만 복잡한 심경이 느껴져서 서로 배려처럼 휴식시간을 가지는 중이었어요.
아이들 보면서 더 많이 느낍니다. 어릴 때 형제가 24시간 함께하며 때론 친구이고 때론 부모고 공기처럼 자란다는 것을요. 사회생활, 결혼하면서 점점 자주 못보고 그러면서 이 시절 잊고 있었어요. 오빠가 항상 곁에 있어줘서 유년 시절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3살 차이나는 오빠는 6학년때까지 제 손을 잡고 등교를 했어요. 시골이라 30분은 걸리는 길이었죠. 오빠 주민등록증 나올때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기억이 나네요. 오빠가 벌써 어른이 되는 게 나랑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기분이었죠.
오빠 보내고 여기서 가장 많은 대화를 한 것 같아요.
혹시 댓글보며 저처럼 위로받는 분 계실까봐
글 지우지않을게요.
고맙습니다.
얼마전 자살한 여배우를 보며,
최진영 몇주기 기사를 보며,
형제의 죽음이 슬프긴 하겠지만 그 정도까지 할 문제인가 싶으시죠.
작년말 40대초반 오빠가 갑자기 쓰러져 수술했는데
못깨어나고 한달도 안돼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너무도 사랑했던 할머니 90세 다 돼 돌아가셨을 때도 참 힘들었는데 오빠의 죽음은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요. 부모님 힘들까봐 장례식장에서도 울지않고 마음을 다잡아왔지만 매순간 떠오릅니다.
정말 너무 힘이 드네요.
미안했던 일들, 조금 더 잘 챙겨줄 것을 후회도 되고요.
가장 미안한 건 자주 못만난 거예요.
오빠는 미혼이었는데 제가 결혼 후 아이들 키우느라 일년에 한번도 겨우 보고 살았어요. 지방이라서 편도 3시간 거리인 탓도 있지만.. 솔직히 항상 그 곳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어요.
반년이 더 자났는데도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자주 우네요.
예전엔 울면 속이 시원했는데 오빠 생각하면 그냥 멍해지네요.
살고싶지 않고 무기력하고 아무 의욕도 생기질 않아요.
정신 차려야지 아이들도 있는데 이러면서 버텨요.
부모님께도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아요 요즘엔. 얼마전엔 오빠 생일이었어요. 존재하지만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이름조차 꺼내지 못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 흔한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이 이렇게 당혹스러울 줄은 몰랐네요. 오빠가 너무 안쓰럽고 가슴 아파요. 저에게 평생 화 한번 내지 않았던 착한 오빠였는데..
(고맙습니다) 형제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모르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으며
울컥하기도 하고 공감가기도 하고
힘이 많이 되네요. 여러분들의 슬픔과 위안에 죄송한 마음까지 듭니다. 저보다 더 힘드신 분들도 계신 것 같아서..
부모님께 연락을 잘 못했는데 조금은 더 잘 챙겨보려고요. 제가 힘들고 우울하니 누굴 위로할 상황이 못된다 생각했어요. 또 저희집은 항상 아이들로 시끌벅적한데 제가 억지로 웃듯 부모님도 연락이 반가우시지만 복잡한 심경이 느껴져서 서로 배려처럼 휴식시간을 가지는 중이었어요.
아이들 보면서 더 많이 느낍니다. 어릴 때 형제가 24시간 함께하며 때론 친구이고 때론 부모고 공기처럼 자란다는 것을요. 사회생활, 결혼하면서 점점 자주 못보고 그러면서 이 시절 잊고 있었어요. 오빠가 항상 곁에 있어줘서 유년 시절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3살 차이나는 오빠는 6학년때까지 제 손을 잡고 등교를 했어요. 시골이라 30분은 걸리는 길이었죠. 오빠 주민등록증 나올때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기억이 나네요. 오빠가 벌써 어른이 되는 게 나랑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기분이었죠.
오빠 보내고 여기서 가장 많은 대화를 한 것 같아요.
혹시 댓글보며 저처럼 위로받는 분 계실까봐
글 지우지않을게요.
고맙습니다.
얼마전 자살한 여배우를 보며,
최진영 몇주기 기사를 보며,
형제의 죽음이 슬프긴 하겠지만 그 정도까지 할 문제인가 싶으시죠.
작년말 40대초반 오빠가 갑자기 쓰러져 수술했는데
못깨어나고 한달도 안돼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너무도 사랑했던 할머니 90세 다 돼 돌아가셨을 때도 참 힘들었는데 오빠의 죽음은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요. 부모님 힘들까봐 장례식장에서도 울지않고 마음을 다잡아왔지만 매순간 떠오릅니다.
정말 너무 힘이 드네요.
미안했던 일들, 조금 더 잘 챙겨줄 것을 후회도 되고요.
가장 미안한 건 자주 못만난 거예요.
오빠는 미혼이었는데 제가 결혼 후 아이들 키우느라 일년에 한번도 겨우 보고 살았어요. 지방이라서 편도 3시간 거리인 탓도 있지만.. 솔직히 항상 그 곳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어요.
반년이 더 자났는데도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자주 우네요.
예전엔 울면 속이 시원했는데 오빠 생각하면 그냥 멍해지네요.
살고싶지 않고 무기력하고 아무 의욕도 생기질 않아요.
정신 차려야지 아이들도 있는데 이러면서 버텨요.
부모님께도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아요 요즘엔. 얼마전엔 오빠 생일이었어요. 존재하지만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이름조차 꺼내지 못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 흔한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이 이렇게 당혹스러울 줄은 몰랐네요. 오빠가 너무 안쓰럽고 가슴 아파요. 저에게 평생 화 한번 내지 않았던 착한 오빠였는데..
병원에 가봐야하나요. 사람이 죽고 사는 일 너무 많잖아요.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