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성에서 왔다 6

ㅇㅇ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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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성에서 왔다 / 옴넥오넥  중에서..) 


 



금성은 환상의 나라와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상의 삶에다 비교해 볼 때, 진보한 일부 물질 행성들은 환상의 나라와 마찬가지이다. 금성의 삶은 아마도 한층 더 환상적이고 믿을 수 없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의 삶에는 아스트랄 차원적인 현실이 추가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금성에서 한 가지 책만을 읽고서 지구의 삶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때 역시 당신들은 오직 이 자서전만을 달랑 읽고 금성의 삶과 아스트랄계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난해한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룩한 아스트랄 차원으로 삶을 변형시키는 방법


 


금성인들이 아스트랄 차원으로 전환된 것을 이해하는 접근법중의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을 우리의 좋은 카르마, 즉 선업(善業)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정적인 “철의 시대(Iron Age)" 동안 서로 대립하여 갈등하고 전쟁을 하기보다는 조화롭게 사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수준에서의 다음 황금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보다 아름다운 레벨의 문화를 누리기 위해 우리의 의식을 끌어올렸던 것이다.




아스트랄 차원으로서의 금성은 <차원 대전환기>때의 물질행성으로서의 도시들과 지형, 풍경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테우토니아(금성의 도시)의 신전들은 각 분야의 마스터들에 의해 그 도시가 물질차원에 있을 때 설계되고 건조되었는데, 그것들은 아스트랄 차원으로 변형된 이후에 그대로 재건되었다. 우리 가정들의 요리 코스도 주민들의 미각이 변함에 따라 여러 해에 걸쳐 바뀌었다.


 


우리의 문명이 아스트랄 차원 내지는 아스트랄 세계로 진입했을 때, 우리는 주변의 색채들이 빛을 내고 있고 모든 측면에서 더욱 풍부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늘은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리 보였고, 바다색깔 역시 항상 변화했으며, 모든 것들이 번쩍이며 빛을 발했다. 산과 나무, 풀, 건물, 가구, 그리고 우리의 몸조차도 자체적인 고유의 속성에 따라 온화하고 다채로운 빛을 방출하고 있었다.


 


이제 기상(氣象)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사념에 의해서 조종되고 통제되었다. 결코 과거처럼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더운 것도 없었다. 또 지나치게 건조하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변화를 바랐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눈보라가 다른 이들의 집이 아닌 자기들 주택만을 에워싸고 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은 그들 대지 위의 하늘 색깔을 조종하는 것을 배웠고, 또한 “불간섭”이라는 영적인 법칙에 따라 다른 가족들이 그들의 자유의지대로 무엇이든 하도록 허용했다.




무엇보다도 살아있기 위해서 꼭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자유인가! 그리고 아스트랄체로 이루어지는 여행이 엄청난 속도였기 때문에 물리적 교통수단들은 쓸모없어졌고 자연히 폐기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목적지에 간단히 나타나는 방법을 선택했고, 아니면 자기의 상념에 의해 작동되는 승용물을 타고 이동하는 것을 즐겼다. 그럼에도 집과 주변을 걷는 것(또는 지면 위를 미끄러지듯 활주하는 것)은 한 곳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남았다.




제조업을 대신하는 물현(物現)시키기


 


에너지를 바로 물질로 전환시켜 어떤 사물들을 창조해낼 수 있는 삶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 어떤 것을 물리적으로 시간을 들여 제조하거나 건설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제조법을 배우기를 원하고 장인정신을 즐기기를 바라지 않은 한은 말이다.


 


한 인간이 영적으로 개화할 때, 그는 이전보다도 좀 더 독특하게 개성적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한 행성의 영적성장 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영적으로 유년기에 있는 지구는 대중들이 통제받고 있고, 그 교묘한 조종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습성이 광범위하게 만연된 행성이다.


 


금성이 점차 영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그곳의 주민들은 도시와 대량 생산된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떠났으며, 자립적인 마음에서 영위되는 보다 전원적(田園的)인 삶으로 돌아갔다. 개개의 사람들은 좀 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으로 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물품들을 공급하는 방법을 익혀나갔다.




창조적인 삶


 


영적으로 진보된 행성들은 자연히 자신의 개성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구성원들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대전환기> 이전부터 금성의 주민들은 대단히 예술에 몰두해 있었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창조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 목적이라고 간주되었다.


 


우리 문화의 개화 상태는 이미 아스트랄 수준까지 발전돼 있었기 때문에 금성문명의 아스트랄 차원으로의 전환이 그것을 그리 극적으로 바꿔놓지는 않았다. 우리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행위보다는 삶에서의 창조적 즐거움에다 훨씬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가족과 가정이 삶과 창조적 표현의 중심이 되어 계속 지속되었다.


 


<대전환> 이후에 금성의 각 가정들은 가정자체만의 고유한 것을 창조해내는 데 보다 많은 자유를 누렸다. 아스트랄 차원에서는 물질적인 소재나 물리적인 법칙에 따른 제한이 없었고, 상상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생각의 힘만으로 창조해낼 수 있었다. 공중에 뜬 2층 바닥이 딸린 돔(Dome) 형태의 우리 집을 지은 건축술을 기술자의 일솜씨가 아니라 창조적 설계에 의한 산물의 하나이다.


 


금성의 모든 건축양식은 둥근원과 타원형, 그리고 우아하게 구부러진 선들에 기초해 있다. 우리의 이웃에는 제각기 꼭대기에 앉아 있는 거품방울처럼 보이거나 지면을 따라 무리지어 배열돼 있는 주택들이 있었다. 돔 형태는 매우 일반적이다. 또 다른 많은 것들은 여러 가지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 경우에는 궁전이나 성곽처럼 화려하고도 대규모의 형태로 세세히 장식된 구조들도 있지만, 모든 단독 주택들은 나름대로 독특하고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지구의 건축가가 이를 본다면, 아마도 금성을 환상적 아이디어들이 실현된 천국(天國)내지는 낙원(Paradise)으로 부를 것이다.


 


다이아몬드와 루비, 에메랄드, 진주들로 온통 박아 넣은 견고한 황금주택이 채색된 벽돌주택만큼이나 쉽게 건축돼 있기도 하다. 물질 행성들에서는 단일의 거대한 다이아몬드나 루비를 조각해서 하나의 집을 만들어 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스트랄 차원의) 금성에서 그것은 단지 당신 마음속에서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며, 즉각적으로 그런 집을 물현시키고 있다. 무제한의 가능성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우리 금성의 주민들은 그럼에도 그들의 개인적인 미적 감각에 맞는 집들을 창조하고는 한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귀중한 보석이나 합금의 양이 아니라 아름다움인 것이다. 이처럼 여기서는 누구나 그가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것 모두를 가질 수가 있다.




금성의 가정들과 정원들


 


나는 테우토니아에서 초목이 울창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에 의해 둘러싸이지 않은 주택을 본 기억이 없다. 우리의 창조물들은 단지 우리의 상상력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이며, 그곳의 꽃과 나무, 관목들은 훨씬 더 매혹적이고 다채롭다. 만약 나의 이모가 3피트 높이의 흰 반점이 달린 버섯을 원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쉽게 창조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버섯은 물질 행성에 있는 버섯처럼 냄새, 맛, 촉감 등이 실제와 똑같을 것이다.


 


정성들여 설계한 우리의 정원들 도처에는 돌과 벽돌,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길들이 있었다. 아울러 우리의 정원들에는 분수, 조각상, 연못, 폭포가 완비되지 않은 곳은 없다. 또한 거기에는 대리석과 정교하게 세공된 금속으로 만들어진 벤치 또는 매혹적인 나무의자가 놓여 있고는 했다.


 


우리의 조각상들은 모든 종류의 존재들을 묘사했는데, 즉 그것은 영적인 마스터들, 천사들, 신화적인 인물들, 그리고 원소의 지배자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새기는 것은 직접 손으로 각 부분을 조각해서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가 관심 있는 대상이 그 밖의 다른 것이라면, 아마도 각 조각상을 마음으로 디자인해서 간단히 물현시켜 나타나게 할 것이다. 금성인들은 집과 마당 안에 많은 방들과 열린 공간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방들은 어지럽혀지거나지나치게 많은 가구를 비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을 꾸미기 위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어떤 유용한 목적에 도움을 준다.


 


물론 우리의 가구는 실제적인 이유 때문에 창조되었지만 그것은 항상 절묘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개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탁자는 그저 하나의 탁자일 수가 없고, 의자 역시 단순히 한 의자일 수는 없다. 즉 모든 것이 일종의 예술작업인 것이다.


 


어쩐 한 의자가 매우 아름답고 기품 있게 조각된 쿠션 있는 목제의자일 수 있지만, 그것에 관한 느낌은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다. 만약 그 의자를 창조한 사람이 깃털 위에 앉는 것 같은 느낌을 좋아했다면, 그때 의자는 그렇게 만들어져 그런 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


 


호화로운 카펫이 대리석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바닥이 대리석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이 그 위를 걸을 때 그것이 잔디나, 물, 또는 깃털, 기타 어떤 부드러운 소재처럼 느껴질 수가 있다. 이처럼 어떤 것이든 그 개인의 취향에 의해 한 가지 방식으로 보이거나 다른 식으로 느껴지도록 창조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방들은 그 가족의 개성과 인품, 관심사를 그대로 보여주며, 따라서 거기에는 반드시 거의 무한한 다양성이 있을 수가 있다. 예컨대 어떤 가족은 집 전체를 소리나 향기 같은 감각 중의 하나에다 치중한다. 혹은 집의 다른 방들을 소리, 조망, 향기, 촉감, 미각에다 중점을 둘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 다니면서 각자의 감각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소리에 주안점을 두고 꾸며놓은 방 안에는 모든 것이 소리에 반응하거나 그 자체적인 소리를 낸다. 카펫 위를 걷는 것은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반면에 그 위에 눕는 것은 같은 소리가 약간 변형된 음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그곳의 방석 위에 앉거나 단순히 방 주변을 거니는 것은 조화로운 소리들이 나도록 설비된 장치들이 일으키는 전체적인 진동 패턴을 촉발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수의 음악장치들이 또한 방문자들을 위해 연주되도록 설치돼 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음악에다 바친 사람은 자기 집에다가도 똑같은 취향의 장식을 할 수가 있다. 각각의 방은 다른 종류의 음악장비와 그 독특한 소리들로 설비돼 있게 될 것이다. 정원 내의 분수들은 폭포소리 같은 음악소리를 함께 내뿜을 것이고, 모든 나무와 꽃, 관목들은 함께 황홀한 자연의 교향곡을 창조해 연주할 것이다. 그곳의 정원은 에올리언 하프(바람을 맞으면 저절로 울리는 악기)가 완비되지 않은 곳은 없게 될 것인데, 이것은 바람을 받아 늘 변화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내는 하프인 것이다.




후각에 중점을 둔 방인 경우, 그곳의 모든 것은 그 고유의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융단을 밟게 되면 어떤 향기, 아마도 장미향기가 일어날 것이다. 나무나 작은 방석을 만지는 것 역시 그 창조자가 마음으로 거기에다 나타내고자 했던 어떤 향내를 촉발시킬 것이다. 시골 풍경을 그린 그림은 전원의 공기가 지닌 신선한 자연의 내음이나 차가운 산의 기류, 또는 들판의 백합꽃 향기를 훌륭히 내뿜을 수도 있다.


 


촉감에다 중점을 둔 방에는 들어가자마자 부드러운 파동이 사람을 에워쌀 수도 있다. 그곳의 벽에는 촉감이 멋지게 느껴지는 모피와 직물들이 걸려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방은 색깔에 치중해서 장식돼 있을 수도 있다. 그곳의 긴 의자나 커피 탁자는 색채가 붉은색에서 자색으로, 또 녹색이나 푸른색, 황색, 그리고 다시 붉은색으로 끊임없이 변할 것이고, 또는 그 변화가 변칙적일 수도 있다. 덧붙여 벽의 색깔이나 바닥, 혹은 방안의 조명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리와 결합됨으로써 노래에 의해 가구색깔의 다른 특성이 변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창조자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물론 감각기능이 처리할 수 있는 한도는 있으며, 너무 지나치게 많은 변화는 우리의 감각들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가구의 디자인이나 색채, 전반적인 실내장식 분야를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은 대개 가족 중의 여성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각자가 많은 방들 가운데 보통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고, 거기서 그 사람은 나름대로의 장식을 하게 된다.




어떻게 우리는 사물들을 나타나게 하는가?


 


이곳 지구상에서 우리는 집안 청소하는 데 하루를 보내지만, 금성의 주부들은 새 가구세트를 오후 내에 완전히 새로이 창조해 낼 수가 있다. 그곳에서는 이런 급속한 변화가 보편적인 삶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금성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


 


이처럼 사물을 마음의 힘으로 창조하여 물현시키는 것에는 반드시 엄청난 훈련과 책임이 함께 뒤따라야만 한다. 또한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균형과 조화의 법칙’이 엄격히 준수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그저 마음속의 명확하지 않은 막연한 이미지만으로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가 완전한 의자의 모습을 심상화하는 대신에 의자 그림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는 밋밋하고 엉성한 뭔가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자!”라고 단순히 발성만 함으로써 의자가 나타나도록 명령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스트랄적 삶이 시작된 초기에 사물을 창조해내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가 않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많은 자유를 부여받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상념체(Thought Form)를 적절히 사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른들 만큼의 동일한 수준의 주의력을 갖고 있지 않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따라 주의(注意)가 한 가지 사물에서 다른 것으로 금방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온갖 종류의 사물들을 물현시키기 시작하는 것은 아주 어린 나이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첫 장난감이나 옷가지들은 그들의 부모에 의해서 아이들을 위해 창조된 것들이다.


 


처음에 아이들은 아스트랄계에서 충분히 발육돼 있지 않다. 아이들에게는 거기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며, 또한 그들은 물질 행성들에서 아이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성의 아이들은 부모의 교육에 의해서 주의를 집중한 힘으로 자신의 생생한 상상력을 통제하는 훈련을 받는다.


 


에너지로부터 사물들을 바로 나타나게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제조업의 단계를 없애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개인에게든 마음으로 물현시키는 대상을 설계하는 것은 중요한 난관이었으며, 특히 개인적인 구현의 기술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러했다. 처음에 하는 마음의 디자인들은 불완전하고 균형이 잡혀있지 않거나, 주위 환경과 조화돼 있지 않다.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정확한 치수와 구성, 색깔, 그리고 아주 세부적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의 완전한 이미지를 마음속에다 그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혹시라도 정신적인 이미지 속에서 의자의 한 다리를 빠뜨렸다면, 실제 의자는 다리 한쪽이 없는 의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 만약 심상화(心像化) 과정에서 그 치수가 잘못 되었다면, 그 때 그 실제 의자는 어떤 식으로든 뒤틀려지거나 균형이 어긋나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색채와 재질, 그리고 형태가 균형 잡히고 그 방의 테마와 일치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부주의한 창조행위는 결국 폐물 덩어리들만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아스트랄 차원으로서의 금성은 사념의 힘으로 인해 혼란하거나 무질서한 세계가 아니다. 모든 것은 견고하며, 개개인들이 그것을 변화시키기까지는 모든 사물들이 있는 그대로인 채로 있다. 예컨대 나의 이모와 삼촌이 테우토니아를 몇 년 동안 떠나있을 경우, 그 집은 원래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 만든 창조물들에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창조된 물질은 쉽게 해체시켜 사라지게 할 수가 없다. 다만 그것은 디자인을 고쳐서 재설계될 수가 있는데,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조심성 있게 되고, 폐기물 덩어리를 만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방이 설계되어 창조되고 나면, 그것은 누군가 그것을 변화시킬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즉 향기를 내는 오렌지색의 소파에 앉는다면, 그 창조자가 소파를 변화시키기로 결정할 대까지 언제나 그것은 장미 향기를 방출할 것이다.


 


상당한 실험과 시도가 있은 후에, 마침내 한 가족이 집에 정착하여 그들을 만족시키고 그들에게 딱 맞는 스타일과 분위기의 세간들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한 번 나의 이모와 삼촌이 정말 원했던 집을 건조했다면, 매일 매일 그것을 고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끝없이 변화하는 삶속에서 안정적으로 사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거기에 익숙해 있고, 완전한 통제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과 수작업에 통달했다


 


한편 금성에서 개개인들은 다양한 기술과 창조적 활동들을 배운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라는 결과들을 간단히 물질화시키는 대신에 애써 손기술에 의해 사물을 만들어 내는 수고를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좀 더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의미가 있는 까닭이다.


 


금성인들은 수명이 수천 살에 달하는 만큼 수많은 예술과 기술들을 배우고 통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우리는 만약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실현하는 데 등한시 한다면, 삶이 매우 단조롭고 지루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도전과 성취의 방식으로 인생을 산다면, 그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인해 삶이 보다 활기차게 될 것이다.


 


아스트랄 세계에서 자발적인 마음으로 플롯을 연주하는 것 같은 재능에 숙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금성에서 이런 정도로는 게으르고 도전을 회피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우리는 물질계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것처럼 끝없는 노력과 연습을 통해 우리의 재능을 보다 높이 계발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한다. 집을 건축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손으로 하는 것처럼 가능한 한 직접 하려고 시도한다.


 


기본적인 자재로 가구를 제작하는 재능이 없거나 그렇게 하는 데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은 아마도 그것을 마음으로 물현시킬 것이다. 또 페인트칠하기 기술에 미숙하고 그것을 배우는 데 흥미가 없는 누군가는 자기 집을 채색하기 위해 처음에는 마음의 힘으로 그것이 나타나게 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많은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며, 오직 자신의 선택으로 그렇게 한다.


 


예술은 인간의 삶에서 대단히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며, 금성인들의 각 가정에는 영감을 자극하고 고무하는 예술표현 형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예술은 그 가족의 개성과 취향, 사랑을 그대로 반영한다. 예를 들어 목각사(木刻師)의 집은 손으로 만든 조각 작품들로 장식될 것이다. 그리고 직공의 가정은 벽과 가구 등을 자신의 창조물인 직물들로 꾸미고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예술적 재능들은 많은 세월에 걸쳐 계발되고 갈고 닦여질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까지 넘겨져 계속 이어진다.


 


선천적으로 특출한 재능을 타고나서 전 생애를 그 재능연마에만 바치는 경우, 그것은 대개 과거생에서 이미 그 영혼이 그 예술분야에 몰두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무용에 대한 관심은 이번 생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내가 고대 이집트에서 댄서였던 때부터 유래된 것이다.


 


금성에서 조각하기는 또 다른 대중적 예술이다. 우리 이웃 가정들 중의 어떤 집은 방 전체가 조각으로 장식된 방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모험적 시도였는데, 왜냐하면 테이블과 의자 및 벽에 걸린 선반까지도 모두 벽과 천장과 같은 소재로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여러분의 창조적 본성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들 중의 하나이다. 모든 금성인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을 작곡하며, 또 악기를 연주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성취감과 기쁨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노래를 하거나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작품을 창작할 수 있고, 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해 그것을 좀 더 아름답고 완전하게 나타낸다. 우리의 음악 속에서 감정의 요소는 가장 중요하다. 꾸밈이 없는 아름다운 소리들은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나는 테우토니아에서 적어도 악기 하나조차 연주할 줄 모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든 이들이 많은 다른 악기들을 공부하며, 또 그것에 통달하고는 한다. 우리의 수많은 음악적 도구들은 이곳 지구에 있는 것들과 매우 비슷하다. 현재 물질우주 내에서 사용되는 모든 악기들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그것들이 아스트랄계에서 먼저 창조된 다음에 물질계에서 악기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존재들을 위해 아스트랄 박물관(자료관)에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금성형 건반악기들 뿐만 아니라 플롯, 바이올린, 하프 등은 금성에서 가장 대중적인 악기들에 속한다. 또한 우리는 바람소리나 물 흐르는 소리, 바다의 격한 파도소리 등과 같은 자연의 소리들을 묘사하는 다양한 기기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음악에서 이따금씩 북소리나 심벌즈 울리는 소리 같은 것이 있기는 하나, 타악기가 사용되는 것은 좀 드물다. 조잡한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들 역시 대중적이지는 않다. 이러한 낮은 진동들과 타악기류는 밀도가 짙은 물질계나 하위 아스트랄계에나 적합한 것이다. 우리의 음악은 물이 흐르듯 유려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또 지구상의 록큰롤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의 고차원적 형태의 음악이 인간의 귀에는 낯설고 이국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 들었던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답다. 지구의 현대음악(서구세계) 가운데 ‘헤비 비트(Heavy Beat)’같은 것은 영적인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인간의 상위 에너지 센터보다는 하위 센터들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수준에 있는 개인들의 취향과 편의를 위해서는 많은 다른 종류의 음악들도 세상에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그러한 목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의 음악은 가정에서 즐기는 일종의 개인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자기 삶을 전적으로 음악에다 바친 예술가들에 의해 결성된 일부 관현악단이 존재한다. 우리가 가진 오케스트라는 금성에서 유명하며, 그것은 리츠시에 있는 “첼리(Chelli) 관현악단”이다.


 


춤추기와 노래하기는 우리 행성의 언어만큼이나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배어들어 있다. 금성인 가족 내의 모든 이들은 춤을 배우며, 삶 내내 가능한 한 예술의 형태로 감정을 표현하며 삶을 즐긴다. 금성인의 춤은 지구상에서 이른바 ‘창작무용’이라고 부르는 것과 가장 잘 비교될 수가 있다. 아스트랄 세계는 ‘감정의 세계’이고, 이는 우리 금성인들이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대단히 몰두해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바란다. 우리의 춤은 우리에게 창조적인 해방감을 제공해 준다.


 


지구에서 연기(演技)는 어느 정도 또 다른 형태의 예술로 생각될 수 있으나, 금성에서는 훨씬 더 그러하다. 개개인들은 날마다 자신이 낮은 세계들 속에 있는 삶이라는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행위가 영혼의 관점이 결여된 채 현실과 뒤섞여 혼동돼 있기는 하지만, 모든 행성들에서 이것은 진실이다.


 


대부분의 지구 주민들은 그들의 일상적 삶 속에 너무 깊이 빠져있다 보니, 영혼으로서 배후에 서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거의 없다.


 


연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타인들과 관계하면서 그들을 즐겁게 하거나, 주의를 끌기 위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실 연기인 것이다. 아이였을 때 나는 매일 아침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연기하는 놀이을 했으며, 그날 내가 연기하게 될 인물의 종류를 결정하고는 했다. 어떤 종류의 인격을 내가 가질 것인가 말이다. 그런 다음 그날 동안은 하루 내내 그런 성격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어른들도 역시 이런 놀이를 하는데, 왜냐하면 아스트랄계 사람들에게 권태로움은 실질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질의 소유물을 가진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되기를 원했던 어떤 존재가 된 것처럼 흉내 냄으로써 그런 경험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금성인들이 삶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놀이를 즐긴다.


 


한 부분만을 보고서 전체로서의 금성에서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용이하지가 않다. 우리 주민들은 분열된 삶을 보내지 않는다. 각 사람은 한 개체이며, 자신의 개성에 따른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전생의 경험들이 여러 가지 창조의 추구행위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비록 어떤 이가 글쓰기나 조각, 목공 등을 일부 택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전체적 삶은 그림그리기나 새로운 악기설계를 하는 데 바쳐질 수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플롯 연주뿐만 아니라 물리학과 과학 등에 매혹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이나 과학에 얼마나 흥미를 가지고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며,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이가 식물을 연구하는 데 전 생애를 보낼 수 있지만,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아는 그런 지점에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한 예로 지구인들이 오랫동안 식물들을 연구해왔기는 하나, 그럼에도 그들은 이제 막 식물들이 느낌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는 정도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행성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지구에서 이것은 일종의 위대한 발견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식물의 몸체 속에는 우리가 한때 그러했듯이, 영혼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금성의 과학


 


여러분이 살고 있는 행성이나 세계가 어떤 곳이냐와는 관계없이 거기에는 항상 배워야 할 새로운 무엇인가가 있다. 장구한 세월 내내 여러분이 물질세계에서 반복해 살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곳에는 이루어야할 일이 있고,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장 높은 의식 상태로 있는 최상의 존재조차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사후(死後)의 내세(來世)가 지구의 주민들에게 일종의 미스터리라고 해서 죽음이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무대배경의 전환일 뿐이며, 다른 수준에서의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창조신 자체가 날마다 모든 생명 형태들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 분야는 우리의 생명 일부만큼이나 중요한 기술들이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우주와 자연 및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고, 또 어떻게 우리가 우주대자연과 더불어 움직일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날마다 우리는 자연에 저항하고 억지고 그 흐름에 역행하기보다는 함께 융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는 것이 어렵고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자연을 사랑한다면, 그것 역시 사랑으로 우리에게 보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질세계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함께 분담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이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카르마를 청산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곳, 특히 지구 같은 행서의 주민들을 도움으로써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지구와 다른 물질 행성들에서 죽은 과학자들은 종종 상위계에서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그들의 연구 작업을 계속한다. 이처럼 그들의 재능과 지식이 많은 생애들을 통해 계속 추진되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물질세계로 들어와 지구에서 살기 위해 자신의 진동을 낮출 계획을 가진 우리중의 일부는 대개 유용한 여러 일들을 배운다. 오늘날 여러분의 지구에서 살고 있는 극소수의 금성인들은 아스트랄계로부터 왔으며, 거기서 그들은 방대한 지식을 습득한 바가 있다.


 


아스트랄 과학자들은 빈번하게 자신들의 연구를 물질계에서 계속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떤 지점에 도달한 이후에는 물질적 조건하에서 물리적 법칙들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아스트랄계에서 생각의 힘으로 잘 작동하는 장치는 일단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 되었다면, 또 물질세계에서 물리적으로도 잘 작동되도록 재설계돼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물질세계에서 행하는 실험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인 것이다.









옴넥 오넥 (Omnec Onec): 1955년 금성에서 UFO로 지구에 왔으며, 자신의 본래의 신분을 숨긴 채 미국에서 7세에 교통사로고 죽은 "쉴라(Sheila)"라는 여자아이의 이름을 대신 사용하여 살아왔다. 현재 인간남성과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이 있고, 현재는 세계 여러 나라들을 돌며 금성의 지혜와 정보를 전하고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