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불매운동할 자격이 없는이유.

ㅇㅇ20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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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부터 8억달러 지원받은 내용 ----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한 배상 자금은 얼마이었나?


한일회담 14년, 이승만-장면 정권에서 9년간 협상했고, 박정희 정권 5년 만에 타결을 보았다.
타결액은 무상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상업차관 3억 달러, 총 8억 달러였다.
정부 부문 청구액 5억 달러는 66년부터 75년까지 10년에 걸쳐 나눠 받되,
매년 무상 3,000만달러, 유상 2,000만 달러 총 5,000만 달러 한도 내에서
양국 정부의 협의에 의해 받기로 했다.
유상 2억달러에 대해서는 산업시설과 기계류 등 공공차관의 형태로 7년 거치 13년 분할 상환하되 금리는 연 3.5%가 적용됐다.
이에 대해서는 마치 선진국들의 은행이 기업 프로젝트에 자금을 빌려준 후부터
자금 사용과정을 감시하듯이 일본 역시 빌려주는 돈을 받지 못 할까봐 사용과정을 감시했다.



박정희는 이 돈을 어디에 썼나?


76년 당시 경제기획원 발간 '청구권자금백서'에 따르면
전체 청구권 자금의 55.6%가 포항제철 건설 등 광공업 투자에 쓰였다.
유상 2억달러는 대부분 포항제철 등 기간산업과 경부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확충에 사용됐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도 전체 자금의 18%를 투입했다.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2,161만 달러).경부고속도로 건설(689만 달러).상수도 확장(409만 달러).한강철교 복구(89만 달러).
영동화력발전소 건설(178만 달러). 철도시설 개선(2,027만 달러) 등이 이때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농어민에게 돌아간 자금은 많지 않았다. 농림업에 7.8%, 수산업에 5.4% 등 농림어업에 총 13.2%를 배정했다.

이 중 포항종합제철 건설에만 무상자금 3,080만 달러와 유상자금 8,868만 달러 등 총 1억1948만 달러를 몰아줬다.
전체 청구권 자금의 23.9%에 이른다.
광공업용으로 도입된 원자재 1억3,282만 달러도 대부분 포철을 짓고 공장을 돌리는 데 썼다.
원자재까지 합치면 전체 청구권 자금의 절반 이상을 포철에 투자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썼나?


일본 정부로부터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은 나라는 아시아 5개국.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이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00년에 펴낸 ‘대일 청구권 자금의 활용사례 연구’에서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교수는 이들 5개국 중에서 한국이 청구자금을 최고로 잘 사용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상자금은 필리핀이 5억5,000만 달러로 제일 많았고,
한국이 3억 달러, 인도네시아 2억2,308만 달러, 미얀마 2억 달러, 베트남 3,900만 달러 순이었다.
일본이 차관 형태로 지원하는 유상자금과 민간이 자금을 지원하는 상업차관을 합칠 경우 한국과 필리핀이 각각 8억 달러로 제일 많았다.

 

 

 

------ 한일협정의 세부내용 (군함도 판결의 이해관계)-----

 

그러나 한일 회담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한국은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식민 지배의 피해에 대한 모든 배상을 포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1964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 회담 반대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특히 6월 3일에 ‘굴욕적 한일 회담 반대’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이를 진압했다. 그런 다음 1965년 마침내 한일 협정을 마무리 지었다.

심화

일제의 징용이나 징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면 일본은 한일 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의 협정 추진이 성급했다는 비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일 협정 - 한국과 일본이 다시 국교를 맺은 협정 (한국사 사전 1 - 유물과 유적·법과 제도,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박승범)

 

 

 

 

----- 일본의 역대 과거사 사죄내용들 -----

 

 

1965년부터 2010년 현재까지 일본의 과거사 반성 언급 사례는 다음과 같다.

 언급인사일시 및 계기언급요지

시나 에쓰사부로
(椎名 悦三郎)
외무대신

 

1965년 2월 20일
이동원-시나 공동성명

 

· 이 장관은 과거 어떤 기간에 걸쳐 양국간에 있었던 불행한 관계에서 연유하는 한국 국민의 대일(對日)감정을 설명
· 시나 에쓰사부로(椎名 悦三郎) 외무대신은 이 장관의 설명에 유념하고 그와 같은 과거관계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명하였으며, 깊이 반성하는 바라고 언급.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曽根 康弘) 총리

 

1983년 1월 11일
공식방한 계기 만찬사

 

· 한·일 양국간에 유감스럽게도 과거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서, 우리는 이것을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함.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曽根 康弘) 총리

 

1984년 8월 4일
한국 언론인
방일 시 회견

 

· 과거에 있어서 폐를 끼치고 참해(慘害)를 입힌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결의하고 있음.

히로히토(裕仁) 천황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 만찬사

 

· 회고해 보면 귀국(貴國)과 우리나라와는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인국(隣國)으로, 그간에는 옛날부터 여러 분야에 있어서 밀접한 교류가 행해져 왔음. … (중략) … 긴 역사에 걸쳐 양국은 깊은 이웃관계에 있었던 것임.
· 이와 같은 사이에도 불구하고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曽根 康弘) 총리

 

1984년 9월 7일
전두환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 오찬사

 

· 우리나라가 귀국(貴國)에 힘입은 바 많았던 한·일 교류사 가운데 유감스럽게도 금세기의 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귀국(貴國) 및 귀국(貴國) 국민에 대해 다대한 고난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음.
· 본인은 정부 및 우리 국민이 이 잘못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되새김과 아울러, 장래에 이런 일이 없도록 굳게 결의하고 있음을 표명하고자 함.
· 일본 정부 및 일본 국민은 전후 이러한 과거의 반성에 서서 성의를 갖고 새로운 양국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음. 작년 본인의 귀국(貴國) 방문도 마찬가지로 이 반성에 입각한 것으로, 일·한 양국간에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려는 국민의 소망에 발(發)하여 실행된 것임.

다케시타 노보루
(竹下 登) 총리

 

1989년 3월 30일
중의원 답변

 

·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과거에 큰 손해를 입힌 데 대하여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싶음.

우노 소스케
(宇野宗佑) 총리

 

1989년 6월 중의원 답변

 

·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자였던 것으로 믿고 있음.
· 일본 군국주의가 한국 등 인접국에 고통을 준 데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이들 국가가 관련된 어려운 역사에 대해 반성해야 함.

가이후 도시키
(海部 俊樹) 총리

 

1989년 10월 중의원 답변

 

·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인식은 1965년 한·일 공동성명, 1972년 일·중 공동성명에서 밝힌 바와 같으며, 그러한 인식에 변함이 없음.
· 과거에 일본이 이웃나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그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후 줄곧 평화국가의 길을 걸어 왔음.

나카야마 다로
(中山 太郞)
외무대신

 

1990년 4월 26일
중의원 답변/
1990년 4월 30일
한·일 외무장관회담

 

· 제2차 세계대전은 근린제국 및 국민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이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
· 한반도 국민의 심중에 응어리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마음으로부터 과거의 슬픈 침략의 문제를 겸허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됨.

아키히토
(明仁) 천황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 만찬사

 

·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貴國)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음.

가이후 도시키
(海部 俊樹) 총리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 정상회담

 

· 새로운 양국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한·일간에 불행한 과거를 엄숙히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함.
· 과거의 한 시기,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셨던 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함.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 喜一) 총리

 

1992년 1월 16일
공식방한 계기 만찬사

 

· 우리 일본 국민은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의 한 시기에 귀국(貴國) 국민들께서 일본의 행위로 말미암아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셨던 사실을 상기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임.
· 저는 총리로서 다시 한번 귀국(貴國) 국민께 반성과 사과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함.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 喜一) 총리

 

1992년 1월 17일
공식방한 계기 국회 연설

 

· 우리나라와 귀국(貴國)과의 관계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수천 년에 걸친 교류 속에서 역사상 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가해자이고 귀국(貴國)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임.
· 본인은 그간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체험했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마음으로부터 반성의 뜻과 사과의 기분을 표명함.
· 최근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바, 본인은 이러한 것은 정말로 마음 아픈 일로서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음. 더욱이 본인은,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시 살았던 사람으로 우리 세대의 잘못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21세기를 담당하는 다음 세대에 역사를 바르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고 있음. 이는 본인을 포함한 우리 세대의 책임임.
·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런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보급하는 데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생각임.
· 본인은 과거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경계심을 국민, 특히 청소년들에게 배양시켜 나갈 결의를 가지고 있음.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 護熙) 총리

 

1993년 8월 10일
기자회견

 

· 제2차 세계대전은 침략전쟁이었으며, 잘못된 전쟁이라고 인식하고 있음.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 護熙) 총리

 

1993년 8월 15일
전몰자추도식

 

· 아시아 이웃국가들을 비롯한 전세계 전쟁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해 국경을 초월해 애도의 뜻을 표함.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 護熙) 총리

 

1993년 8월 23일
국회 시정연설

 

· 과거 전쟁은 침략적 행위였으며, 인근 아시아제국에 대해 깊은 반성과 사과를 표시함.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 護熙) 총리

 

1993년 11월 6일
경주 실무방문 계기
정상회담

 

· 과거 우리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한반도의 여러분이, 예를 들어 모국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기고, 타국어의 사용을 강요당하고,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군대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는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한 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진사드리고자 함.

아키히토
(明仁) 천황

 

1994년 3월 24일
김영삼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 만찬사

 

·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께 크나큰 고난을 안겨준 한 시기가 있었음. 본인은 몇 해전 이 일에 대하여 본인의 깊은 슬픔을 표명한 바 있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심정을 간직하고 있음.
· 전후 우리 국민들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귀국(貴國) 국민과의 사이에 확고한 신뢰와 우정을 구축하고자 노력해왔음.

하타 쓰토무
(羽田 孜) 총리

 

1994년 5월 10일
소신표명 연설

 

· 내년은 태평양전쟁 종결 50주년에 해당하는 바, 일본이 과거에 행한 행위는 국민에 많은 희생을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인근제국 국민들에게 지금까지도 큰 상처를 남기고 있음.
· 일전의 각료 발언이 인근제국 국민에 준 슬픔과 분노는 이를 증명하는 것이며, 발언이 철회되었다고 하지만 이러한 사례에 달한 것은 실로 유감임.
· 이 기회에 일본의 침략행위 및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충과 슬픔을 주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를 후세에 전함과 동시에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평화의 창조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빛나는 미래 건설을 향해 노력해 나감이 향후 일본이 나가야 할 길임을 확신함.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 富市) 총리

 

1994년 7월 18일
소신표명 연설

 

· 전후 50주년을 앞두고 본인은 일본의 침략행위 및 식민지 지배 등이 동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난과 슬픔을 주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며,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부전(不戰)의 결의하에 세계 평화의 창조를 위해 노력할 것임.
· 이러한 견지에서 아시아 근린제국 등과의 과거 역사를 직시함과 동시에 차세대를 짊어질 사람들간의 교류 및 역사연구 분야를 포함한 각종 교류를 확충하는 등 상호이해 심화 필요성에 따라 금후 이의 구체화를 위해 서두를 것임.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 富市) 총리

 

1994년 8월 31일
총리 담화

 

· 명년(明年)의 일본 패전(敗戰) 5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사에 대한 깊은 반성과 부전(不戰)의 결의하에 아시아 인근제국과의 역사에 관한 올바른 인식 정립.
* 인근제국 국민과의 상호 이해 촉진 목적의 ‘평화우호교류계획’ 추진(동 ‘계획’은 역사연구 지원, 교류사업에 10년간 1000억 엔 투입).

중의원

 

1995년 6월 9일
중의원 부전(不戰) 결의

 

· 세계 근대사에 있어서 수많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행위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가 과거 행한 행위와 타국인, 특히 아시아 제(諸)국민에 안겨준 고통을 인식하고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 富市) 총리

 

1995년 8월 15일
전후(戰後) 50주년
특별담화

 

·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음.
· 역사의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렬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함.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 龍太郞) 총리

 

1996년 1월 22일
국회 개원시 시정연설

 

· 무거운 짐과 미래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 龍太郞) 총리

 

1996년 6월 23일
제주 방문시 정상회담

 

· 과거로부터의 무거운 짐과 미래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
* 창씨개명, 종군위안부 사과 표명.

아키히토
(明仁) 천황

 

1998년 10월 7일
김대중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 만찬사

 

· (전략) …… 밀접한 교류의 역사가 있는 반면,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음. 그것에 대한 깊은 슬픔은 항상 본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음.

오부치 게이조
(小淵 惠三) 총리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 공동선언 및 공동기자회견
모두 발언

 

·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함.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 純一郎) 총리

 

2001년 10월 15일
방한 계기
서대문독립공원 방문 후 연설

 

·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갖고, 지금 여러 전시·시설·고문의 흔적을 참관하였는 바, 이는 총리대신으로서라기보다는 한 명의 정치가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러한 고통과 희생을 강요당했던 분들의 원통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감안하고 또한 반성해 나가면서 이러한 고난의 역사를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서로 협력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통감함.

마치무라 노부타카
(町村 信孝)
외무대신

 

2004년 4월 13일
독도특위위원단 방일
계기 접견시

 

·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 富市) 담화, 1998년 한·일 파트너십(Partnership) 공동선언 등을 통해 이미 표명된 바와 같이 과거 식민지 지배 등 침략행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성한다는 일본측 입장에 변함없음.
* 이후 독도 및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기존 입장 표명.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 純一郎) 총리

 

2004년 4월 22일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연설

 

· 우리나라는 과거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음.
·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심정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일관되게 경제대국은 되어도 군사대국은 되지 않으며, 어떠한 문제도 무력에 의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을 견지해 왔음.
· 앞으로도 세계 각국과의 신뢰관계를 소중히 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해 가고자함을 재차 표명함.

아베 신조
(安倍 晋三) 총리

 

2007년 3월 11일
NHK ‘일요토론’ 출연

 

·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담화’를 계승해 나간다는 것이 일관된 자세임.
· 그리고 당시 위안부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와 대단한 고생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 전(前) 총리 및 하시모토 류타로(橋本 龍太郞) 전(前) 총리도 위안부 출신자들에 대해 (사죄의) 편지를 보낸 바 있으며, 그 마음은 본인도 전혀 변함이 없음.

아베 신조
(安倍 晋三) 총리

 

2007년 3월 26일
참의원 예산위

 

· 위안부 피해자들이 쓰라린 경험을 한 데 대해 동정의 마음을 표하며, 당시 그러한 처지에 놓인 것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표함.
·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총리로서 사죄의 마음을 표하고 있는 것이며,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담화’에서 말하고 있는 그대로임.

아베 신조
(安倍 晋三) 총리

 

2007년 4월 23일
관저출입기자단 인터뷰

 

· 총리로서 당시의 위안부가 놓여 있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진심으로 동정을 말씀드리며, 고초를 당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함.

아베 신조
(安倍 晋三) 총리

 

2007년 4월 27일
일·미 정상 공동기자회견

 

· 위안부 여성들이 극도의 고난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던 상황에 대해 가슴 깊이 애도를 느낌.
· 일본의 총리로서 나의 사과를 표명하고자 하며, 그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에 대한 사과를 표명함.

하토야마 유키오
(鳩山 由紀夫) 총리

 

2009년 10월 9일
방한 계기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 저는 항상 역사에 대해 전향적으로 올바르게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를 가져야 된다고 말씀드려 왔고, 그것은 새로운 정부에서도 중요한 생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
·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과거의 이른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 富市) 담화’의 마음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정부 혹은 국민이 중요한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함.

오카다 가쓰야
(岡田 克也)
외무대신

 

2010년 2월 10일
방한 계기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
· 금년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세기에 걸쳐 전환점(節目)이 되는 해임. 100년 전에 일어난 일과 관련,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나라를 빼앗겨 민족의 자긍심에 크게 상처를 입은 사건이었다고 생각함.
· 저는 일본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음. 그래서 나라를 빼앗겨 자긍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음. 저는 병합당한 측, 아픔을 기억하는 피해자측의 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 앞으로의 100년을 응시하면서 진정으로 미래지향의 우호관계를 강화해 가기를 희망함. 저의 금번 방한이 그러한 관계의 기조를 구축하기 위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계속해서 부단히 노력한다는 결의임.
(질의응답 시)
· 조금 전 말씀드렸다시피 금년은 한·일관계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 由紀夫) 총리도 자주 말씀하신 것이지만, 금년에 과거의 부(負)의 역사를 외면하는 일 없이 앞으로의 100년을 응시하면서 진정한 미래지향의 우호관계를 강화해 가고 싶음.

간 나오토
(菅 直人) 총리

 

2010년 8월 10일
강제병합 100년
내각총리대신 담화

 

· 금년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임. 정확히 100년 전 8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음.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음.
·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고자 생각함.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함. 또한,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임.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여기에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함.
· 이러한 인식하에 향후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해 갈 것임. 또한 지금까지 실시해 온 이른바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금후에도 성실히 실시해 갈 것임. 또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되어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반환하고자 함.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의 과거사 반성 언급 사례 (일본 개황, 2011.)





군함도 판결로 인해 경제보복이 시작된건데
군함도 판결자체가 한일협정 위반임.

3줄요약

1.한국은 이미 과거 한일협정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모든 피해를
베트남,미얀마,인도,필리핀,한국에게 제공한 대일청구권으로 보상받았고 대신 식민지배때 있었던
어떠한 일도 이젠 더이상 문제제기를 할수없음.

2.아베 총리는 위안부에대해 수차례 사죄해온인물임.
아베총리의 매춘부표현 또한 사실이 아님
아베는 그런말을 한적이없고
 사쿠라다 요시타카 라는 의원이 한말임.

3.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더이상 배상할 의무가 없음에도불구하고
1993년 배상금이라는 표현까지 피해가며
쓰구나이킹 즉, 속죄금이란 이름으로
1993년 당시, 위안부 피해자할머니들에게 
의약품및 의료지원 + 1인당 500만엔씩 지원하기로 결정함.
그러나
이걸 한국의 좌빨단체 정대협에서 정치적이유로 막아버림.




결국ㄱ 한국은 돈받을꺼 다 받아먹고 나중에가선 계속 딴소리하고있음.
베트남,필리핀,인도,미얀마는 일본과 협정이후 
과거사 문제를 더 제기하지않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