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풀이

o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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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단톡방 사이에서 최근에 이슈된 어떤 판 내용이 올라왔다. 다들 딸 편 들었지만, 난 그래도 키워준 부모 편 들었다.
그러자 네가 사람이냐며 효도충일 줄 몰랐다. 말하면서 내 말투를 꼬집으며 비꼬더라. 중재하는 친구가 나왔다만, 한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면 닥치라고 했다. 억울했다. 글쎄 뭐가 억울한 걸까. 효도충이라서? 아니면 반대의견이라고 닥치는 게?
난 닥쳤다. 다 소중한 친구들이기도 하고, 내 집안에 대해 자세하게 구구절절 말해가며 의견 피력하기도 그랬으니. 
70억 인구 70억 사정 거기에 반대의견 있다는 게 그렇게 큰 일이였나.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지만, 내 가정은 평범했다. 
물론 중학교 때 모든 가정사를 다 까발리고 털어놓긴 했다.
내 집안은 내가 기댈곳이 없었고, 유일한 탈출구는 친구였으므로. 
하지만 친구는 내가 진 큰 짐을 부담스러워했다. 그 이후론 내 집안에 대해 애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자세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바람둥이였다. 남들처럼 평범했다. 한국 가정 아빠들 바람 피는 게 한두번인가. 
심지어 우리 집 아비는 다른 집 살림까지 차렸지. 아버지는 늘 다른집에 돈 갖다 바치기 급급했으니 우리 집 가장은 엄마였다. 
엄마의 등골을 쭉쭉 빼먹고 큰 게 우리였다. 늘 우린 엄마한테 죄책감을 가졌다.
엄마는 늘 우선순위를 아빠로 뒀다. 보답받지 못할 짝사랑. 우리는 뒷전이였다. 그래 동생과 나에게 차별이랄게 없어서 다행이였지만, 중요한 건 아빠랑 차별을 두었다. 엄마는 아빠를 너무 사랑한 죄로 밤마다 우리 머리 맡에서 늘 울어야했다. 우리가 엄마의 감정 쓰레받이가 되어야했다. 엄마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미안하다며. 다 미안하다며. 너네들 밖에 없다며. 항상 머리를 껴안고는 밤새 울었다.

심지어 아빠는 가정폭력범. 이 또한 평범하다. 한국 가정 아빠들 가정폭력 저지른 게 한 두번인가. 
물론 나에게 직접적인 가해를 가한 적은 없다. 늘 폭력의 대상은 동생과 엄마였으니.

나는 집안 서열 2위였다. 왜일까. 중학교때까지 우등생이여서? 전교 30등안, 모범생, 교우관계원만, 선생님들까지 사랑한 재롱둥이. 거기다가 국회의사당에서 수기로 상까지 탄 인재. 그래, 인재여서일까.
아빠는 날 꽤나 예뻐했다. 동생보다 나은 생김새, 공부 머리,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만. 태어났을 때부터 동생과 차별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릴 때 내 사진은 많으나 동생 사진은 남은 게 없다고.
거기다가 상남자라 차마 딸을 못 때렸던 것 같고, 딸 자는 사이에 바지에 손 넣은 걸 보면 성적 호기심 대상으로도 본 죄책감 인것도 같고. 그래서일까. 어쨌든 화풀이 대상은 늘 동생이였다. 아빠가 수 틀릴때마다 동생은 맞았다. 아빠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엄마는 말리지 못했고, 엄마도 간간히 폭력의 대상이 됐다. 아빠는 엄마가 질척거리고 짜증난다는 이유로 때렸다. 그거조차 내가 말리자 엄마를 밖에서 집에 못 들어오게 문을 잠그고 벌을 세웠다. 

난 그 비정상적 집안에서 그나마 특혜를 받고 자랐다. 
아빠는 날 자랑스러워 했던 것 같다. 어딜가든 내 자랑을 한 걸보니. 아빠의 내연녀가 나를 보며 네가 국회의사당에서 상탄 애라며? 라고 아는 척하고 반가워했다. 
웃겼다. 그 수기에 뭐가 써져있는지 알고 반가워 하는가. 난 당신들의 욕을 쓰고, 당신들을 짓밟고 내 불행을 포장해서 썼다.
아버지의 외도, 폭력, 엄마의 비정상적인 사랑. 그 숨막힘에 대해 썼다. 

그 대회는 내가 불쌍해서 주는 상이였다. 사람들은 왜 예나 지금이나 역경을 이기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걸까. 
난 이렇게 저렇게 불행했지만 지금 역경을 이기고 모범생이 됐고, 교우관계도 원만하며, 긍정적으로 사노라. 나랑 같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노라 그래서 봉사활동 ㅇㅇ를 했노라. 이렇게만 썼는데, 그게 그들의 심금을 울린 걸까. 인간극장 나올 소재로 날 국회의사당에 초대를 하고 우수상을 줬으며 소정의 장학금을 줬다. 김미화씨가 축하사를 했으며 사진까지 찍었다. 그에 모자라 학교에서는 상을 다시 가져가더니 교장앞에서 또는 전교생 앞에서 난 또 그 상을 받았어야 했지. 난 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린 모범생이였다. 우스웠다. 저들은 내 수기를 읽어보긴 한걸까. 내 불행을 팔아서 받은 상이란 것을 알까. 날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괴물이 나오는 끔찍한 글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글의 주인공인 아버지까지 포함해서. 이 얼마나 웃긴가. 심지어 학교 선생은 날 따라 다니며 괴롭혔다. 학교신문에 내 수기를 싣고 싶다나. 내가 돌대가리도 아니고 미쳤나. 내 온갖 고통과 절규로 쓰인 글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까발리게.

물론 우리 집안은 평범했다. 편부모 가정도 많고, 더 힘든 가정도 많은데 우리는 그나마 평범 축에 속하지. 비정상적인 집안보다 정상적인 집안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 1000분의 1?
동생은 늘 맞았다. 공부에 바쁜 나와 가장인 엄마를 대신해 살림살이까지도 했다. 어느 날은 우유주머니에 열쇠가 없어졌다. 집 열쇠를 늘 거기에다가 두는데 누가 가져갔는 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아빠는 늘 그렇듯 동생을 의심하며 쥐어 팼다. 아니 그냥 없는 이유도 만들어내고 팰 사람이여서 특별할 건 없지만 그날은 달랐다. 내 또래들 보는 바로 앞에서 팼으니. 아빠는 어서 열쇠를 내놓으라며. 어디에다가 숨겼냐며. 소리를 지르곤 때렸다. 내 또래들 바로 앞에서..

앞 집과 옆 집은 내 또래들이 살았다. 그들은 밖에 나와 구경을 하며 내 동생 맞는 걸 고소해하며 지켜보았다.
허나 범인은 누구인지 아는 가. 옆집동생이였다. 이렇게 하면 내 동생이 쥐어 패듯 맞을 거 아니까 일부러 옆집 동생이 우리집 고추장 장독에 열쇠를 숨겨두고 모른 척한 거였다. 그것을 안 아빠는 늘 그렇듯 사과도 없이 들어갔다. 동생은 또래애들 앞에 맞은게 분한 지 자존심이 상했는 지 그 날은 밤이 새도록 울었던 것 같다. 엄마도 미안하다며 같이. 난 그 날 이를 갈았다. 현관 열쇠 숨긴 저 새끼나 아빠 새끼나 아구창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으면 하고 하늘에 대고 바랬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삐뚤어졌다. 노는 친구를 만나서 날개를 단 것도 있고, 일탈이 재밌었다. 네가 우리 가족의 살길이다.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우리가족을 일으켜 세워야한다. 네가 장녀다.. 아빠의 관심, 엄마의 부담. 이 모든 게 늘 나에겐 숨막혔다.
엄마의 감정의 쓰레받이 짓이 지긋지긋했다.
엄마는 늘 자기의 힘듦을 우리한테 돌렸다. 너네들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힘들어도 된다며. 자기는 할수 있다며 머리맡에 늘 울고 있으면 난 애원했다. 제발 엄마, 엄마의 인생을 살아.. 우리 상관 말고 제발 이혼해. 제발..
하지만 엄마는 이혼하면 편부모 가정이 폐가된다며 변명했다. 아빠를 아직도 사랑하는 거면서 안 통할 변명들을 그렇게도 늘어놨다. 동생을 때리면 감싸주지도 못하고 말리지도 못하는 우리 엄마. 늘 아빠가 있는 날에는 무어가 그리 예쁘다고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들로 바리바리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는 우리 엄마. 늘 아빠의 등을 바라보는 우리엄마. 이 모습을 보는데도 내가 자식들만 보며 살아간다는 말을 믿겠는가.
아빠가 엄마랑 이혼하고 싶어서 위장이혼이란 말을 꺼내도 반대하던 우리엄마. 헤어지고 싶지 않다며 자식들을 생각 해보라고 소리 지르던 우리 엄마.
그래 엄마한테 우리의 존재는 한낱 아버지를 붙잡을 인질아니면 감정의 쓰레받이 그 정도였다. 그걸 누가 모를 줄 알고.. 그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다 알고 있었다. 알았지만 엄마가 불쌍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짐이 너무 무거웠고, 그 짐들을 내려두고 탈출하고 싶었다.

학교를 안 나갔다. 병문서 위조를 하고 알바를 갔다.
혼이 났다. 민증을 위조해서 술과 담배를 했다.
가출을 했다. 3일만에 잡혀왔다.
감금 당했다. 반항한다고 손목을 그었다. 
엄마는 그때 내 손목을 붙잡고 떠나가라 울었다.
몸의 수분을 다 뽑아낼 듯이 우는 엄마를 보며 맨처음엔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을 했고, 동생은 부엌칼 말고 커터칼을 쥐어주며 다음엔 이걸로 긁어보라고 했다. 마치 내 불행을 공감한다는 듯.
정신병원에 갔다.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가 매달려서 울었으니 따라 갈수 밖에.
정신과 의사는 설문지를 쥐어주고 설문 작성을 하게 시켰으며, 서랍에 인형을 꺼내고 내 속을 인형한테 다 털어놓으라고 했다.
난 털어놓을게 없는데? 난 평범하게 일탈만 했을뿐인데, 사춘기에 철 없이 한 행동에 뭘 털어놓으라는 걸까. 아무것도 털어놓을 게 없었다. 털어 놓을 게 없다고 하니 원망하는 게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다 용서했다고 하니 의사는 되려 답답한 듯 화를 냈다. 난 거기서 의사의 행동에 비웃었다. 
우울증 약을 받았다. 내 행동은 얌전해졌다 충동욕구가 감소했다. 학교에서는 죽은듯이 잠만 잤다. 모든 감정이 말소되어 고장나고 삐걱거리는 인형처럼 행동했다. 손가락이 말라갔다. 종이를 짚을 수 없을 정도로. 나중엔 그래. 땀이 안 나니 정전기도 인 것같았다. 난 약먹고 난 후 그 메마른 손가락 느낌을 사랑했다. 엄마는 내가 약먹고 나자 밝아졌다. 사고도 안치고 얌전해진 딸이 반가운 것 같았다. 

온갖 비정상들 그 속의 곪은 나. 곪아버릴 대로 곪아서 차라리 썩어버리고 싶었다. 그냥 죽어 없어져 땅속의 영양분이 되어 살아가고 싶었다.

그 비정상 집안에서 그나마 정상으로 돌아간 건 언제일까.
우습게도 아빠의 사고 이후였다. 

아빠의 교통사고, 그리고 암. 
그깟 사고로 아빠의 옆에 있던 나쁜 친구들과 내연녀가 떠났다. 사람 관계란 참 우습지. 아빠가 고장나자 아빠의 1순위로 뒀던 사람은 떠나고, 아빠 인생에 내팽겨쳐뒀던 제일 밑순위인 사람들만 남았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는 지극정성 간호하고 일까지 도맡아했다. 진짜 가장이 되어서 무리하다가 그렇게 엄마도 허리디스크라는 병이 터졌다. 
의사는 엄마에게 수술을 권했고 엄마는 제대로 일어날 수 조차 없었다.
그땐 생각도 하기 싫다. 처절할 대로 흘러간 암흑기였으니.
돈 천원에 빌빌대는 삶. 남들에게 손을 벌려야하는 삶.
그 비참하고 구차한 삶. 

그 도중에 엄마는 우리로 안 됐는지 감정의 쓰레받이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제 하나뿐인 신, 남의 하나님이 있는 기독교로. 
기독교에서 받은 게 많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엄마를 치유의 능력을 가진 목사님이 오직 기도로 치료해줬다. 허리디스크가 나은 것이다. 병원에서는 기적이라며, 다른 사람들은 플라시보 효과라며 놀라워했다. 거기다 고기와 쌀도 줬다. 우리가 아빠 치료비에 잔고를 다 쏟아부어 허덕인다는 걸 알고..
엄마의 광적인 아빠에 대한 집착도 치료해줬다. 
제 1순위가 아빠가 아니고 하나로 바뀌었지만 그게 어딘가.
엄마는 광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사랑에 점철 되어갔지만
우린 차마 개독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받고 변화된 게 많다보니 이 정도의 변화에도 우린 행복해했다.

우리 집은 태초부터 경상도 뿌리에 친가 외가 다 불교집안이지만, 
엄마의 변화에 기독교는 개독에서 기독교로, 남의 하나에서 우리 하나로 격상되었다.
난 기독교가 아닌데 엄마의 강요에 교회도 몇번 출석했다. 오로지 엄마가 바뀐게 고마워서.. 하나님이 있다면 계속 엄마가 이렇게 살았으면 해서..
아직도 담배핀다는 이유로 등짝 맞고 담배를 분지르며 지옥간다고 저주하는 엄마지만 다 맞아줬다. 
감정의 쓰레받이에서 탈출된 게 너무 기뻐서.
그래서 남들이 다 개독이라고 할때 난 아직도 기독교 욕을 못하겠다. 진짜 하나님이 계실까봐, 이 자그마한 기적을 다시 뺏을까봐.

아빠는 3년동안 병상생활 하더니 나았다. 사업을 하던 사람이니 금세 안정기에 접어들어갔다.
뭐 아직도 옆집 아줌마랑 보지 자지 섹드립 문자 날리다가 걸려도, 사업차 룸싸롱 가도 
이제 집에 잘 들어오고 돈도 꼬박 가져다 준다.
사고 후 가정폭력은 더 이상 없으며, 엄마도 아빠를 구속 하지 않는다.
나름 남들처럼 평범하고 정상적인 집안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왔다는 말이 맞는 걸까 내 인생 처음인데..

정상적인 집안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삐걱 거리는 건 있다.

난 그 이후 손톱을 못 기르는 강박증이 생겼다. 손톱이 조금이라도 기르면 불안하고 다리가 덜덜 떨려서 늘 손톱깎이를 상시 들고 다닌다.
또한 감정에 무뎌졌다. 우울증 약에 대한 부작용인지, 아니면 내 인생이 그들보다 더 불행하다고 느꼈는지 몰라도
남들이 다 우는 웬만한 일, 슬픈 영화에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으며 불쌍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자극적인 감정만 찾는다. 섹스와 쾌락, 고어, 피튀기는 짜릿함에서 내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중독되기 까지했다. 나중엔 그것도 소름 끼쳐하며 남들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 유니세프에 후원을 하지만, 달라진 건 없더라.
또 뭐가 있을까. 대책없이 밝아졌다. 책임감에 약해지고 극 회피성성격으로 변했다. 늘 누가 나에게 짐을 지우려하면 난 늘 도망치는 걸로 대신했다. 그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손목에 상처가 남았다. 늘 시계나 팔찌로 가리고 다닌다. 그조차 힘들때는 그냥 고등학교때 장난치다 유리창 깨트렸다며 변명하곤 했다. 너무 상처가 정직해서 믿어줄 진 모르겠지만.

동생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나보다 등치가 큰 남자인 자기가 맞는 게 낫다며 위로해줄 정도로 착했는데, 집안 살림 도맡아할 정도로 착했는데.. 어릴때부터 착하게, 다 참아와서 그런지, 차별만 받는 삶이 힘들어서 그런지 늦게 사춘기가 왔다.
늘 아빠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잠에서 깨서 벌벌 떨어야했던 동생은 커서도 잠에 깊게 못 들고 발자국소리, 조용한 소음 소리에도 잠에서 깨야만했다.

개같은 가정폭력의 영향으로 끼잉끼잉.. 미야옹..망망.. 새끼동물 흉내도 냈다. 물론 다른사람말고 엄마랑 나한테 특정적으로만..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애정결핍에 의한 행동이라면서.
왜 동생은 연약하고 어리기만한 새끼동물흉내는 내는 걸까..

난 무해해요. 그러니 해치지마세요.. 사랑해주세요 제발..
동생은 새끼동물 흉내로 늘 엄마와 나에게 말했다. 나를 해치지 말아달라고. 아프다고. 힘들다고. 그게 아직도 이어져 와서 우린 새끼동물 흉내내는 괴상한 성인이 된 동생한테 차마 그만두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난 내가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깟 과거는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 이 정도 불행과 휴유증은 다른 사람도 늘 가지고 다니는 거다.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집안이 있는가. 내가 생각했을 땐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늘 밤에 내 머리맡에서 울며 속삭이던 엄마는 이웃집들에 대한 비밀스러운 사정까지 다 말해보이곤 했다.
열쇠를 숨겼던 이웃집 아이 부모는 아이 모르게 맞바람을 피고 새벽에 앉아 섹스한 사람의 후기를 공유했다. 밑의 집 아이는 엄마가 아빨 버리고 두집 살림을 했다. 그 얘기를 하며 엄마는 우린 적어도 행복한 거라고 위안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난 열쇠를 숨긴 옆집 아이한테 다 불고 싶었다. 너네 부모 맞바람 펴. 그걸 네가 자는 새벽 4시에 식탁에 앉아서 섹스한 사람 후기를 공유해. 미치지 않았니? 동생을 피눈물 나게 만든 그 여우새끼한테 처 말하고 싶어서 늘 입이 근질 거렸다.
그래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삐걱거림과 비정상을 달고 있을 것이다.

판에 있는 글도 그렇다. 내가 봤을 땐 남들과 같은 평범하지만 늘상 삐걱거리는 가정인 것 같은데 저렇게 칼을 들이 밀었어야 했을까. 저렇게 처리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세상에 차별 안 당하는 가족은 없다. 부모도 사람인 이상 깨물면 더 아픈 손가락이 있는 법이다. 거기다가 첫째라면 부모도 부모의 첫경험일텐데 실수를 하지말란 법은 없다. 
그걸 얘기했다. 난 그래서 부모 편이라고.

그런데 부정받았다. 그래 내가 내뱉는 의견은 한낱 질투일 수도 있겠다. 그 가정이나마 못 가진 자로서 부러워서 일수도 있겠다. 
동생은 늘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겠지만 칼은 들지 않았다. 나도 칼을 들어서 차마 가족으로 못 돌리고 내 쪽으로 돌렸다. 
그래서 내 입장에 봤을 땐 부모보단 딸을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딸이 아예 이해안가는 입장은 아니다. 남들이 봤을땐 상처가 가벼워 보일지라도 자기 입장이 되면 그거만큼 큰 상처도 없다. 거기다가 부모 한쪽 의견만 들었으니 내가 오해하는 걸 수도 있다.
그래 오죽했으면 집안 자체를 끊어냈을까.

그건 나도 안다 이런 의견 나눔을 원했는데
내 과거에 대해 말하지도 않고 꽁꽁 숨겨왔는데
대체 뭐가 억울해서 여기에 글을 쓰나.

효도충이 된 내가? 부모의 입장이 더 이해된다고 해서 닥쳐야했던 내가?
그래 70억 인구 70억 사정 이런 이유도 있고, 저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해야만했던 어린 아이가 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행동하기 나름이다. 그런데 왜 반대의 입장이라고 그렇게 비난 받고 억울해야 하나. 아니면 이제서야 내 지난 과거가 억울했나.
친구들은 말했다. 넌 직접적인 가해가 없었잖아. 맞다. 직접적인 가해는 없었다. 늘 동생과 엄마만 아파야했다. 그들을 보며 커야했다. 그래서 난 차별받는 대상이 아니였기에 이해 못한 걸수도 있다.
친구들한테는 차마 응어리가 진 이 말들을 내뱉지 못 했다. 
그냥 우리아빠가 바람만 핀 줄 알지. 이런 정확한 사정을 모른다. 물론 친구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라도 응어리진 내 과거, 친구한테도 못 다한 내 의견을 이렇게나마 표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