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보고싶고 그리운...

에휴2019.08.08
조회421
안녕하세요. 경기도에 사는 30살 여성입니다.
어디에가서도, 친한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도 하지 못할 말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음... 벌써부터 눈물이 날것 같지만.. 먼저 제 어린시절에 대해 써볼게요.누구나 아픔과 슬픔은 간직하고 살다시피 저 또한 어린시절이 그닥 좋지만은 않았어요.그 좋지 않은 환경에서 저희 할머니가 계셨기에 이만큼 잘 살고 있겠지만요..
저희 아버지는 제 어린시절 아주 큰 기업에 다니셨어요. 아직도 사람들에게 말만 하면 다 알만큼 업적이 꽤 많이 남아있으신 일을 하시어서 그당시엔 아버지덕에 남들보다는 조금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어요. 물론 엄마가 그렇게 집을 나가기 전까진요.
제 나이 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까요.어느날부터 엄마가 이상했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도 설마하며 이상한 눈치가 생기더군요.늘 잦은 출장으로 바쁜 아빠가 어쩐일인지 집에 매일매일 일찍 들어오시는게 처음엔 좋았어요. 뭣도모르고.그런데 집에만 들어오면 엄마와 고성이 오갔고 가까운 큰 이모댁에 오빠와 저를 보내곤 하셨어요.돌아오면 늘 난장판이 된 집과 멍이 들어있는 엄마..그때는 그런 엄마가 불쌍했어요.어느날 문닫고 자려는데 아빠의 통화 하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전업주부였던 엄마가 심심하다고 집앞에 공장에 아르바이트 하러 갔다가 젊은 총각이랑 바람이 났던거죠.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외박하기 일수였고,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오빠와  초등학생인 저만 남아 매일같이 엄마가 만원씩 주고 간 돈으로 치킨만 시켜먹고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어요.늘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고, 또 방에 들어가면 널부러진 소주병..여느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에 친구 만난다고 나간 엄마가 그뒤론 안들들어오시더군요.그렇게 지금.. 약 20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엄마를 본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헤어지고.. 아빠는 엄마덕에 빚더미에 앉아 사채까지 쓰시고 결국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셨어요. 그래서 제 유년기에는 아빠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네요.. 생사만 알 정도로 어렵고 가난하게 살았거든요.
당시 간병인으로 일하시던 저희 할머니는 저희를 돌보기 위해 멀리서 서울에 오셨어요.그당시에도 할머니의 형제들.. 저에겐 이모할머니들이 되겠네요.돈도없고 가난한데 뭣하러 애들을 봐주냐는.. 고아원에 보내라는 그 분들의 말을 무시한채 저희를 거둬주셨어요.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고 오빠와 할머니와 셋이서 늘 사채업자들이 집앞을 맴돌며 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어렵게 살아 보셨던 분들은 아실거에요.. 그 없는것에 대한 서러움과 어려움과, 멸시당하는 그 기분들요.. 그런데도 저희 할머니는 밖에 나가서 없는 애 티 안낸다고 늘 깨끗한 교복에 깨끗한 운동화에.. 몰랐어요 그때는. 우리할머니가 지갑에 가진돈 20원밖에 없어서 혼자 우셨던것도, 우울증에 혼자 자살하겠다 한강에 갔던것도요.
처음부터 할머니를 달래 드리지 못한것이 아직도 후회가 돼요.조금 더 안아드릴걸..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 드릴걸.. 왜 사춘기때 난 조금 더 철이 일찍 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이제는 다 소용 없겠죠.
그렇게 15년이 지났을까요. 오빠와 할머니와 셋이 한지 15년째 되고, 이제 막 아빠와 왕래하며 매일 연락하며 지낸지 몇년안된... 그런때였어요.그 사이에 새엄마도 생겼구요. 물론 저희 지금 엄마는 정말 천사같고 좋은 분이에요. 저를 친 딸처럼 여겨주시고, 항상 안쓰럽게 여기시죠..날 낳아준 그런 상종도 하기 싫은 여자와는 비교 할 수도 없을만큼 심성도 곱고 여린분이에요.
그때가 4년전쯤이었나요. 제 나이 26살쯤.. 오빠가 결혼을 하게 됐어요.오빠가 결혼 하기 며칠 전이었나봐요. 할머니가 주무시다가 침대에서 떨어지셨어요.근데 허리뼈가 부숴지신거죠.. 그렇게 오빠 결혼식을 치르고 할머니는 결국 입원하셨어요.수술밖에 방법이 없으신지라 수술을 하신 뒤.. 그때부터 이상하셨어요.병원에서 파킨슨 진단을 받고.. 그당시엔 집 형편이 여전히 어려웠던지라 간병인을 쓸수가없어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매일24시간을 간병해 드렸어요.그땐 그렇게 회복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실줄 알았거든요.
저 또한 오빠가 결혼해 집을 나가고, 할머니께서도 병원에 계시고.. 혼자 살수가 없어 어색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이사 가 살게 됐습니다.근데.. 유년기와 제 어린시절을 함께 보내지 않은 탓일까요. 모든게 다 어색하고 불편하고 트러블만 생겨 결국엔 혼자 독립을 하게 됐어요.. 남보다도 더 불편할 사이가 된달까요..
그렇게 할머니도 병세가 완화되시지 않고, 그 와중에 뇌혈관에도 문제가 생기시고.. 풍도 오고.. 여러모로 안좋아 지셔서 결국 아버지 댁 근처에 요양병원에 모시게 됐어요.
그렇게 저는 직장생활하며 주기적으로 할머니가 드시고 싶으시다는 것들 사다드리며 가끔씩 찾아뵈었죠.. 그러다가 점점 날이 갈수록 식사도 잘 못하시고 말도 어눌해 지시고.. 말라가고.. 치매도 오고.. 그 와중에도 저를 유난히 어릴때부터 예뻐하셨던지라 저만 기억을 하셨어요.
또 그렇게 몇년이 흘렀을까요. 병세가 악화 되시며 그간 몇번씩 응급실을 다니시기도.. 큰병원에 입원을 하시기도 반복하시다가 올해 들어 정말 상태가 악화되셨어요.반복되는 고열에.. 복통에.. 큰병원을 모시고 가도 원인을 알수가없고.. 결국엔 대학병원까지 모시고 가 담석증으로 쓸개를 제거 해야만 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렵게 수술을 결정했어요..
고령에 병세가 있으시니 저희는 그 간단한 전신마취의 내시경시술도 못견디실거라 생각하고 걱정했는데, 할머니께선 잘 깨어나신 뒤 배고프다며 이거저거 이도 없으신데 잘 드셨어요.
우리 할머니는 그때가 저를 본 마지막 날이란걸 아시고 그렇게 우셨을까요.수술전날 할머니를 찾아뵌날.. 평소엔 말씀도 잘 못하시던 분이 왠일인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보시며 우셨어요. 할머니는 당신이 수술하시는것도 모르셨거든요.근데도 이상하리만치 저를 보고 그렇게 우셨어요.. 언제 이렇게 컸냐며 시집은 갔냐고..저만보면 불쌍해서 눈물이 나신다면서요..마지막에 그렇게 할머니와 가족들이 사진도 찍고.. 근데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어요.
그렇게 또 2주정도 지났을까요?저는 올 초에 타 지역에 발령받아 오느라 본가와 거리가 멀어져서 쉽게 갈수가 없게 됐어요.그래서 모처럼 회사에 휴무도 붙여 달라고 해서 할머니한테 가려고 날도 잡아 놨던날 정기 검진 해야 할 게 있어서 검사 받고 할머니한테 가야겠다 싶었어요.그런데 그날따라 평소 꿈도 안꾸던 제가 고양이한테 물리는 꿈을 꿨어요. 아직도 이 꿈이 무슨 꿈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렇게 꿈에서 깼는데 아빠한테 전화가 와있었어요.
느낌이 이상해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할머니 며칠 전부터 숨을 헐떡거리시며 잘 못쉬셔서 요양병원측에 검사좀 해달라 상태좀 봐달라 해도 산소포화도가 정상이라며 아무런 조치도 안해주길래 모시고 수술하신 병원 다시 가야겠다 하던 찰나.. 아침일찍 요양병원에서 할머니가 숨을 못쉰다 연락이 와서 바로 뛰어 가보니 이미 눈이 돌아가 흰자만 보이는 상태셨던거죠.
응급실로 부리나케 엠뷸런스타고 갔더니 의사선생님은 지금 보내드릴거냐.. 라는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시고, 당장 보내드릴 수 없는 저희 입장에선 당연히 할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해달라고만 말씀드렸죠.
그렇게 할머니를 보러 들어갔는데 산소통들에 수혈주머니에 기도삽관을 한 흔적들 그리고 호스들.. 이게 다 뭘까요. 그렇게 호랑이같던 여장부같던 우리 할머니는 어디가고.. 시원하게 욕 잘하시던, 무섭게 호통치시던 그런 우리할머니는 도대체 어디있고 저기 시체라 해도 다름없을 모습으로 누워있는 모습에 다리 힘이 풀리더군요....눈감고 계시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할머니한테 이게 다 뭐냐며 할머니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네요.
그냥 너무 불쌍한거 있죠. 그 모습이
저희 할머니는 재일교포셨어요. 증조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마도로스 였는데, 물에 빠진 선원을 구하시겠다고 물속에 들어가 모터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바람에 바다에서 돌아가시고 시체도 건지지 못했다고 들었어요.그렇게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형제분들은 한국이 광복되기 며칠전 어머니의 고향이셨다는 증평으로 넘어와 살게 되셨죠.모든 옛날분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저희 할머니도 형제들을 먹여살리겠다고 서울에 가셔서 어려서부터 남대문에서 미제장사에 뭐에 고생을 엄청 하셨는데.. 한국에 와서도 일찌감치 시집갔지만 아버지를 임신한채로 할아버지가 바람이 나 버림받고.. 그렇게 장사하기 시작하고 가족들 먹여살리려 고생 하셨어요. 그렇게 외동인 아버지 또한 이집 저집에 맡겨지며 매일같이 내쫓기는 서러운 시절을 오래 보내셨어요... 그게 위에 말씀드린 이모할머니라는 작자네 집안 식구들이구요.
일본에서 왔음에도 당시에는 한국말을 잘 못하던 어린 소녀가 동네빨갱이 라는 작자들한테 윤간도 당하고 고문도 많이 당했다고 하시는데도, 그래도 고향 땅은 밟고 죽고 싶다고 늘 그러셨어요.바다만 보면 할머니 아버지가 생각나신다며 물만보면 그렇게 우셨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돈많이 벌고 승진하면 꼭 모시고 간다고 약속했는데.. 
승진하고 돈벌고 나니까 해드릴수 있는건 할머니 병원비랑 장례식 비용이네요.
이제는 병원에서 이번주를 넘기기 힘드시다고, 패혈증이 너무 심하셔서 더이상은 쓸 수 있는 어떤 약도 없다고... 신장 투석까지 하셔서.. 신장투석이면 이제 끝난거라 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저희 가족들은 어떤것도 할수가 없었어요. 그저 울수밖에.
저도 저지만, 저희 아버지 또한 자식들 맡기고 고생만 시켜드렸는데.. 이제야 사업이 조금 먹고 살만해져서 이제 뭣좀 해드릴만 하니까 가신다고.. 지나가는 휠체어 타신 노인분들만 봐도 왜이리 부럽냐고..
중환자실에서도 격리실에 혼자 계신데, 그걸 볼때마다 우리할머니가 저중에서 가장 먼저 돌아가실것 같아 저기 계신가 싶기도 하고.. 이제 하루하루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이 멎을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수없다는 주치의말에 그저 어린시절의 모든것들이 하나하나 스쳐가고 떠오르네요...
저에게 할머니는 그저 푸근한, 감사한, 보고싶은 그런존재가 아닌 저에게 엄마, 아빠, 친구 같은 그런 존재셨어요.
할머니와 제대로 대화를 할수 없었어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어도 그래도 언제나 늘 그자리에 병상일지언정 찾아가면 늘 계셨었는데.. 이젠 그런 할머니가 안계실거라고 생각하니까 앞으로 어찌 사나 싶고.. 나에게 그늘이 없어지는 기분이랄까요?
모든 시간을 다 돌리고 싶고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고, 모든게 다 후회되고.... 그저 왜 어릴때 투정을 부렸을까, 왜 그렇게 없는 형편에 이거 갖고싶다 저거 갖고싶다 졸라댔을까...
그저 모든게 다 후회스러워요... 이걸 읽으시는 여러분도 그러신가요?원래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드리는게... 이렇게나 어렵고 힘든가요?극복이 되나요? 어떻게 살아가죠...?저는 이별할 시간이 다가온다는게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데 그저 생각만해도 왜이렇게 눈물만 흐를까요... 왜 내가 상조를 알아보고 있는건지, 이게 현실인지, 꿈은 아니었는지. 아직도 혼자 곰곰히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우리 할머니한테 효도하려고 악착같이 승진하려 발버둥쳤는데... 그래서 그렇게 어떤 욕을 먹고 어떤 설움을 당해도 이악물고 참고 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모든게 다 허무하기도 하고... 더 잘해드리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도 나고... 한번쯤이라도 더 찾아 뵐 수 있었는데 난 왜 내 시간을 위해 그러지 않았는지..할머니가 우리를 케어 해 주시고 키우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남들처럼 잘 걸어다니시고 웃으며 같이 대화 하셨을건데.. 
워낙 정정하셨기에..그리고 똑똑하셨고 당당하셨어서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 저도 할머니의 성향을 많이 닮아 늘 밝고 어딜가던 가난하다고 주눅들지 않았어요.초등학생때엔 할머니따라 남대문이고 어디고 손잡고 돌아다니면 늦둥이냐는 소리도 많이 들을만큼 동안이시고, 저도 많이 닮았었거든요..
그냥.. 모든게 다 그립네요.
혈액 순환도 안되시고 소변도 안나오셔서 신장투석까지 하시는데 그 퉁퉁부은 팔과 다리를 보니..우리 할머니가 너무 불쌍한거있죠. 너무 안쓰럽고..저 큰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노년은 나를 위해 다 희생하셨다는 생각에 너무나 안쓰럽네요.. 이젠 더이상 의식을 차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눈감고 계신 모습을 보면, 예전에 절 보며 웃어주시던 모습이 떠올라 당장이라도 눈을 뜨실 것 같은데.. 그 차가워진 손을 잡고 있으려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할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네요..나 이만큼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시집가는건 못봐도 눈이라도 뜨고 손녀딸 한번만 보고 가라고 했네요... 
보고있어도 보고싶고, 벌써부터 그립고 .. 어쩌죠...
두서없이 쓴 긴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그냥.. 있을때 잘 해드리는게... 가장 최고의 선물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도 나중엔 후회밖에 안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