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데 가난하고 싶지않다.
유년시절 학창시절 20대 꽃다운 청춘 기억속에
행복한날이 있었나 묻고 답 할 수 없다.
어릴땐 멋모르고 남들보다 부족했다 생각했고
생각이 어느정도 자리 잡았을땐 한 없이 부족해 보였다
학비는 물론 급식비 조차 제때 한번을 내 본적이 없던
나는 그때 내가 남들과 다른줄 알았고 그때서야
거울 앞 내모습이 남들보다 더 꼬질한걸 알았다.
운동화는 빗물이 새도 바꿀수 없으며 빚쟁이들 문두드리는 소리에 잠들수 없고 발자국소리에 한없이 작아지며
두려움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어린 내기억속에 어머니는 매일 우는 얼굴 아버지는
술주정에 흘러가는 시간속에 하염없이 집을 지키는
만년 백수에 입으로 재료 없이 요리하며 자재없이 집을 지을 사람이였다.
내 나이 16살에 결국 빚에 못이겨 도망치는 부모님은
날 내버려둔체 떠났고 방황하던 형은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래도 학교는 갔다 가고 졸업식도 했다.
울지도 않았다 그게 불행인지도 몰랐다.
부끄러운지도 몰랐으며 두려움도 없었다.
매일이 그랬고 내일이 또 그럴 것이기 때문에
혼자인 집에 김치하나와 밥으로 버티고 라면으로 버텼다
어느날 빚쟁이 여자가 찾아와 부모님 소식을 묻는다.
대답 하지 못하고 모른다고 했다.
사실... 진짜로 몰랐으니깐...;;;
그 여자가 날 너무 딱하게 쳐다보던 그 얼굴이 1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봤던 그 여자 아니 그 분은 나에게 밥은 먹었냐
물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한참 먹을나이 였을텐데 난 너무
약해 보였겠지...;;;
그 여자분이 밥을 시켜주며 나에게 아무말 없이 먹으라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 집을 나갔다.
너무 나쁜사람 아닌가... 우리 부모님 말이다.
어찌보면 피같은 자기돈 빌려주고 못받는 그 사람들이
도망친 부모님들 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한달정도 지났을 무렵에 어머니가 집으로 왔다.
날 데리고 어디론가 가더니 한달에 10만원 쪽방촌에
들어섰다.
할말이 없었다... 그때 제대로 알았다.
티비에서 보던 가난한 집들이 내가 살곳이니깐 말이다.
사실 한해동안 왜 사는지 모르는 외톨이 바보처럼
방에 썩어서 나오질 않았다.
어느날 어머니가 무슨일로 고기 반찬에 따뜻한 밥을주며 물었다. 우리 그만 할까...???
그만 살고 싶다며 너무 힘들다고 부모 잘못만나 고생시킨다면서... 나도 같이 울었다.
사실 저녁 늦게까지 얼굴이 쌔까맣게 그을리고 힘들게
일하고 오면서 내색하지 않았겠지 설마 또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부모님만 기다렸는데 진짜 끝인가
싶어서 태어나 제일 서럽게 울었다.
살고 싶었다 그냥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 악물고 또 학교를 가고 졸업했다.
한살많다고 놀리는 쪽팔림도 감수하고 당연히 밀리고 밀린 학비 급식비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3년을 버티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1살 늦은나이 성인이 되었다.
머리가 커지니 돌파구라도 마련해야 겠다 싶에 무작정
일을 했고 대학은 입학했지만 거짓말하고 돈을 벌었다.
첫 월급은 어머니께 봉투 그대로 드렸다.
나는 따뜻한 밥과 반찬이면 좋았다.
열심히 벌어 생활비를 보테고 나름 괜찮은 10평정도
주택으로 이사를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
매일 집에 있으며 술을 마시고 사업이라고 하는 비지니스는 대출 안내 상담원과 상담 말고는 없다.
나는 계속 일했고 직장에 술취한채 찾아와 도와 달라는
아버지를 마다하지 못해 대출빚 이자 어머니 병원비
모두들 내 몫이였다.
하루 12시간 주1회 휴무 주말없 평일에 쉬다보니
멀어진 친구들과 업무에 찌들은 직장내 몇없는 동료들은
위안삼아 맥주 한 잔하기 힘든 사람들이였다.
늘 혼자였던거 같은데 그래도 일했고 힘든 어머니를 도왔다.
형이 있지만 한쪽눈이 안보이는 형은 이미 자기 앞길도
막막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입영 통지서가 집 앞으로 도착했다.
홀로 경제력이 없는 두 남자를 감당 해야할 어머니가
걱정됐고 6개월 정도 월급을 모아 500만원을 드렸다.
군대 가기전 집에 가족사진 하나 없이 가기 마음이 아파
사진을 찍고 입대를 했다.
마지막에 꼬깃꼬깃 주시던 종이에는 어머니의 편지가 있었다.
사랑하고 미안한 막내야ㅎㅎㅎㅎㅎㅎ
세상 찌질하게 울었다.(무사히 전역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맡겨 놓았던 통장에 돈도
술먹고 시비가 붙어 아버지 벌금으로 다 날렸다고 했다.
25늦게 제대를 하고 또 일을 했다.
하루12시간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쉬었던 주말은 군대가 유일하고 가장 편안했다.
그렇게 일만하다보니 몸과 정신이 지칠때 모든걸 포기하고 싶을때 백수 아버지 한쪽눈이 안좋은건 알지만 게임하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철없는 형이 미웠다.
싸우고 욕하며 사정하고 빌어도 달리지는게 없었다.
20살에서29 쉼없이 일했고 열심히 갖다 바쳤다.
나는 아버지에게 욕을한 폐륜아며 어머니에게 대못을 박았다.(어머니를 이 구렁텅이에서 지켜줄 마지막 발악이였다) 지금도 아버지와는 길에서 마주쳐도 집에서 만나도 아는척 하지 않는다.
29살에 하루 12시간 하루4회 휴무 월급240만원 4대 보험을 제 하고 생활비 보험비 등등
제하고 나면 정말 담배값만 남았었다.(최저시급 요식업 이다보니 박봉이였습니다.)
너무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다.
돈이 너무많이 필요해서 이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곳에서 악착같이 일했다.
1년동안 주말은 당연히 반납 공휴일 반납 휴가때 명절때 절대 쉬지 않았다.(특근 수당의 매력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연봉은 작년에 두배가까이 올라버렸다.
여유가 있어지다보니 돈은 자동으로 벌리고
일만 하다보니 통장에 잔액은 쌓여만 갔다.
지금 내나이 30살 아직 어리지만 어리지못한 나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악착같이 살고있다.
회사에 형들이 한번씩 나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일하냐고...
사실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살아오다보니 그래도 한번은 가난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그런다고
그냥 웃으며 넘기지만 맥주 한캔 사서 티비에 나와 비슷한 나이에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취미 생활하는 그모습을 보면 코 끝이 찡하고 눈끝에 눈물이 고이지만,
과거가 너무나 화려해 미래는 안락하고 싶다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한번씩 이런 과거가 밉고 힘들고 스스로 괴롭혀 오지만
이겨 내보고 싶다.
태어나 아직 누구 앞에서도 이야기 해보지 않았던 이야기지만 힘들어서 위안 받고싶어서 쓴글이였지만
쓰다보니 스스로 다시 가다듬어 봅니다.
가난한데 가난하고 싶지않다.
유년시절 학창시절 20대 꽃다운 청춘 기억속에
행복한날이 있었나 묻고 답 할 수 없다.
어릴땐 멋모르고 남들보다 부족했다 생각했고
생각이 어느정도 자리 잡았을땐 한 없이 부족해 보였다
학비는 물론 급식비 조차 제때 한번을 내 본적이 없던
나는 그때 내가 남들과 다른줄 알았고 그때서야
거울 앞 내모습이 남들보다 더 꼬질한걸 알았다.
운동화는 빗물이 새도 바꿀수 없으며 빚쟁이들 문두드리는 소리에 잠들수 없고 발자국소리에 한없이 작아지며
두려움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어린 내기억속에 어머니는 매일 우는 얼굴 아버지는
술주정에 흘러가는 시간속에 하염없이 집을 지키는
만년 백수에 입으로 재료 없이 요리하며 자재없이 집을 지을 사람이였다.
내 나이 16살에 결국 빚에 못이겨 도망치는 부모님은
날 내버려둔체 떠났고 방황하던 형은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래도 학교는 갔다 가고 졸업식도 했다.
울지도 않았다 그게 불행인지도 몰랐다.
부끄러운지도 몰랐으며 두려움도 없었다.
매일이 그랬고 내일이 또 그럴 것이기 때문에
혼자인 집에 김치하나와 밥으로 버티고 라면으로 버텼다
어느날 빚쟁이 여자가 찾아와 부모님 소식을 묻는다.
대답 하지 못하고 모른다고 했다.
사실... 진짜로 몰랐으니깐...;;;
그 여자가 날 너무 딱하게 쳐다보던 그 얼굴이 1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봤던 그 여자 아니 그 분은 나에게 밥은 먹었냐
물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한참 먹을나이 였을텐데 난 너무
약해 보였겠지...;;;
그 여자분이 밥을 시켜주며 나에게 아무말 없이 먹으라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 집을 나갔다.
너무 나쁜사람 아닌가... 우리 부모님 말이다.
어찌보면 피같은 자기돈 빌려주고 못받는 그 사람들이
도망친 부모님들 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한달정도 지났을 무렵에 어머니가 집으로 왔다.
날 데리고 어디론가 가더니 한달에 10만원 쪽방촌에
들어섰다.
할말이 없었다... 그때 제대로 알았다.
티비에서 보던 가난한 집들이 내가 살곳이니깐 말이다.
사실 한해동안 왜 사는지 모르는 외톨이 바보처럼
방에 썩어서 나오질 않았다.
어느날 어머니가 무슨일로 고기 반찬에 따뜻한 밥을주며 물었다. 우리 그만 할까...???
그만 살고 싶다며 너무 힘들다고 부모 잘못만나 고생시킨다면서... 나도 같이 울었다.
사실 저녁 늦게까지 얼굴이 쌔까맣게 그을리고 힘들게
일하고 오면서 내색하지 않았겠지 설마 또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부모님만 기다렸는데 진짜 끝인가
싶어서 태어나 제일 서럽게 울었다.
살고 싶었다 그냥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 악물고 또 학교를 가고 졸업했다.
한살많다고 놀리는 쪽팔림도 감수하고 당연히 밀리고 밀린 학비 급식비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3년을 버티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1살 늦은나이 성인이 되었다.
머리가 커지니 돌파구라도 마련해야 겠다 싶에 무작정
일을 했고 대학은 입학했지만 거짓말하고 돈을 벌었다.
첫 월급은 어머니께 봉투 그대로 드렸다.
나는 따뜻한 밥과 반찬이면 좋았다.
열심히 벌어 생활비를 보테고 나름 괜찮은 10평정도
주택으로 이사를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
매일 집에 있으며 술을 마시고 사업이라고 하는 비지니스는 대출 안내 상담원과 상담 말고는 없다.
나는 계속 일했고 직장에 술취한채 찾아와 도와 달라는
아버지를 마다하지 못해 대출빚 이자 어머니 병원비
모두들 내 몫이였다.
하루 12시간 주1회 휴무 주말없 평일에 쉬다보니
멀어진 친구들과 업무에 찌들은 직장내 몇없는 동료들은
위안삼아 맥주 한 잔하기 힘든 사람들이였다.
늘 혼자였던거 같은데 그래도 일했고 힘든 어머니를 도왔다.
형이 있지만 한쪽눈이 안보이는 형은 이미 자기 앞길도
막막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입영 통지서가 집 앞으로 도착했다.
홀로 경제력이 없는 두 남자를 감당 해야할 어머니가
걱정됐고 6개월 정도 월급을 모아 500만원을 드렸다.
군대 가기전 집에 가족사진 하나 없이 가기 마음이 아파
사진을 찍고 입대를 했다.
마지막에 꼬깃꼬깃 주시던 종이에는 어머니의 편지가 있었다.
사랑하고 미안한 막내야ㅎㅎㅎㅎㅎㅎ
세상 찌질하게 울었다.(무사히 전역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맡겨 놓았던 통장에 돈도
술먹고 시비가 붙어 아버지 벌금으로 다 날렸다고 했다.
25늦게 제대를 하고 또 일을 했다.
하루12시간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쉬었던 주말은 군대가 유일하고 가장 편안했다.
그렇게 일만하다보니 몸과 정신이 지칠때 모든걸 포기하고 싶을때 백수 아버지 한쪽눈이 안좋은건 알지만 게임하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철없는 형이 미웠다.
싸우고 욕하며 사정하고 빌어도 달리지는게 없었다.
20살에서29 쉼없이 일했고 열심히 갖다 바쳤다.
나는 아버지에게 욕을한 폐륜아며 어머니에게 대못을 박았다.(어머니를 이 구렁텅이에서 지켜줄 마지막 발악이였다) 지금도 아버지와는 길에서 마주쳐도 집에서 만나도 아는척 하지 않는다.
29살에 하루 12시간 하루4회 휴무 월급240만원 4대 보험을 제 하고 생활비 보험비 등등
제하고 나면 정말 담배값만 남았었다.(최저시급 요식업 이다보니 박봉이였습니다.)
너무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다.
돈이 너무많이 필요해서 이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곳에서 악착같이 일했다.
1년동안 주말은 당연히 반납 공휴일 반납 휴가때 명절때 절대 쉬지 않았다.(특근 수당의 매력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연봉은 작년에 두배가까이 올라버렸다.
여유가 있어지다보니 돈은 자동으로 벌리고
일만 하다보니 통장에 잔액은 쌓여만 갔다.
지금 내나이 30살 아직 어리지만 어리지못한 나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악착같이 살고있다.
회사에 형들이 한번씩 나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일하냐고...
사실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살아오다보니 그래도 한번은 가난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그런다고
그냥 웃으며 넘기지만 맥주 한캔 사서 티비에 나와 비슷한 나이에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취미 생활하는 그모습을 보면 코 끝이 찡하고 눈끝에 눈물이 고이지만,
과거가 너무나 화려해 미래는 안락하고 싶다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한번씩 이런 과거가 밉고 힘들고 스스로 괴롭혀 오지만
이겨 내보고 싶다.
태어나 아직 누구 앞에서도 이야기 해보지 않았던 이야기지만 힘들어서 위안 받고싶어서 쓴글이였지만
쓰다보니 스스로 다시 가다듬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