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간다.
8월의 마지막 하루를 남긴채.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한다. 덕분에
가을이 바로 코앞인 것같다.
면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최근 1,2년사이 자주 먹는 편이 되었다.
잔치국수
지난해 겨울 요리방송에서 어느 유명한 한식 셰프(이름 잊어버림...ㅜㅜ)가 아이들을 지도 하는 과정중 잔치국수를 해준 일이 있어 그때 기억한 레시피로 육수를 내봤다.
솜씨 없어도 재료만 듬성듬성 잘라 늦은 시간이라 빠르게 육수를 내고 싶어 재료들 크기를 그다지 크지 않게했다.
재료 : 무,양파, 대파,멸치, 다시마, 생표고버섯(또는 건조 버섯)
소금, 간장.
육수 냄비를 불에 올려 씻기전에 재료들을 손질해 물에 완전히 잠길정도의
물을 붓고 가스불을 켜놓고 씻고 나오니 육수 완성.
거기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하고 육수에 넣었던 건더기를 건져 토핑해 준다. 그리고 잘 익은 갓김치와 함께해 먹는다.
비빔라면
라면 스프만 사용하고 면만 남아 아까워서
매운게 먹고 싶기도 해서 비빔면을 했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재료 : 고추장50g, 설탕 또는 매실청 (취향)레몬즙 또는 식초(취향)케찹 살짝(내 취향, 넣고 싶은 만큼), 간장 조금
양념장을 잘 섞어놓고 면이 삶아지면 찬물에 벅벅 헹궈 전분기를 빼서 사리를 만들어 만들어 두었던 쌈무와 함께 세팅한다.
토마토 김치라면
집에 있는 한국라면 아무거나를
면 따로 삶는다. 면은 반정도만 삶고
면이 삶아 지는 동안 다른 냄비에는 라면 국물을 끓인다.
재료 : 라면스프, 토마토 몇 개, 익은 김치, 건조 고추
면이 반정도 삶아 지면 물을 버리고 찬물에 한번 씻어
라면 국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넣어 면이 익으면 불을 끄고
세팅한다. 면의 기름기를 어느 정도 뺀 김치라면이 내 입맛에는 나쁘지 않다.
늦은 시간 식사후 차를 내본다.
직접 건조하고 말려 볶은 우엉차.
이제 가을이라고 과자들도 옷을 갈아입는다.
계절 별로 분위기를 바꾸는 맥주처럼 잘먹는 킷켓 쵸코도
가을의 새로운 맛이 나왔다.
밤맛과 고구마 맛.
과자들이 올 가을 컨셉이 밤과 고구마 인가보다.
여러 회사들이 이 두가지로 기존의 것에 맛만
바꿔 새단장을 했다. 겨울이면 매년 그렇듯 딸기 컨셉이
기다려진다.
이러한 가을 분위기에 구수한 우엉차와 달달한 과자를 함께 해본다.
우엉차의 색이 따스하니 기분좋다.
예전 집의 창가
지금 사는 집에서 도보 10분거리에서 살 때 풀떼기들에 빠져 한 때 온집안을 정글로 만들었었다.
휴일의 나른하고 평화로운 아침,
한참이고 이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두, 세개 화분을 제외하고는 살아 남아 있는 녀석들이 없다....ㅜㅜ
역시 예전 집에서 처음 길러 본 튤립들.
일층에 살아서 현관앞 공간에 화분을 크게 두고 겨울에
묻어둔 튤립을 한여름이 될 때까지 감상했다.
19년전 어느날 23살의 나이로 집안의 모든 것에 떠밀려 독립했다.
어린 시절에 감당하지 못할 일도 많았것만 IMF가 터지자
부모가 사라졌다. 그동안 일하느라 집안에 신경쓰지 못한 사이에...
일 때문에 서류 제출할 일이 있어 등본을 떼어보니
집에 세대주가 나로 바뀌어 있었고 집에 관련된 모든 세금이 내앞으로 되어있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뭔가 아니지 싶었었다. 그후 몇 달뒤에 부모들이 나타났다.
지방 어느 곳에 새로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고.
고3수험생과 고1 동생을 나한테 떠 넘기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안나왔다.
그래... 자기네들도 어찌 됐던 살아보겠다고 그리 한것이니
이해하려 노력했다. 한달 생활비 꼴랑 10만원 거기서 애들 학비....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다.
전기세, 가스비만해도 그 돈이 훌쩍 넘는 걸....
어쩔 수없이 내가 벌어 생활비를 내고 집안 살림을 해야했다. 그 와중에 저 밖에 모르는 빌어먹을 장남자식, 저 입에 안맞는다고 밥상을 엎고 욕을 하는 은혜도 모르는 ㄴ, 나는 포기한 대학등록금까지 보태라 했을때 마음 먹었다.
훌훌 벗어 던지고 나도 사라지자고...
고3때부터 취업나와 2년 반동안 집안 빚갚는 거 도와 달라해서 군말없이 그리했고 나 시집갈 면목으로 적금들어 준다기에 통장 맡기고 용돈 10만원도 안되는 (교통비 식비 제외) 타쓰며 생활 했건만 지도새도 모르게 1년 적금 털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독립한다 선언하고 손에 현금 딸랑 50만원에 카드 한 장 들고 탈출했다.
가전은 중고로 모두 사고 서울 마포경찰서 뒤편 달동네에
화장실 공용인 단칸 월세방을 얻었다.
집 나올때 들은 말은 ‘ 다시는 집에 발 딛을 생각하지 말고 나가라’ 기에 흔쾌히 그러마하고 나왔다.
나올때 나의 기록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들고 나왔고 사진 한장 남겨 놓지 않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잘 한 것 같다.
삶은 그런것 같다.
이게 어디 비단 나 뿐이겠는가.
한국의 많은 딸들이 과거에도, 아직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각자의 사연만 조금씩 다를 뿐 크게 차이 없지 않을까 한다.
처음 집을 나와 6개월 동안은 정말 매일같이 삼겹살만 먹고 살았다. 일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허전했는지 하루 종일 허기가 지는 것 같고 머릿속엔 밥과 고기만 맴돌았다.
그래도 종일 발아프게 일을 하고 돌아와 씻고 조용히 혼자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밥상도 없어 의자에 놓고 먹던 그 밥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느 덧 혼자사는 것에 적응이 되고 밥상도 생기고
동네 변태아재 때문에 집도 옮겨야 했지만
혼자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수도가 얼어 냉방에서 보내던 겨울의 밥상들도 모두 헛된 것이 아닌 내삶의 일부라는 것을 지금도 교훈삼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의 밥상을 준비하고 세팅하며 나름의
취향까지 생긴것은 많은 실수와 재도전에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밥상은 늘 소중하다.
그 시절부터 꼬박꼬박 밖이 아닌 나의 작은 공간에서
없는 찬이라도 간장 한가지에 식사를 한다 해도 그것은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과 안심이었다.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눈치를 보며 먹던 밥상과는 전혀 다른 그 시간이 나는 참 고마웠다.
그렇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먹는다고 대충 떼우고 인스턴트를 쟁여 놓고 살지는 않는다.
아예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간단하게 떼울 때도 있다.
어릴적 간장과 식용유에 밥을 비벼 몇 달을 먹은 후로
비빈다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그러나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가끔 면이나 밥을 비벼 먹기도 한다.
독립하고 나선 라면이란걸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별미삼아 조금씩 먹던 것들이 요즘엔 더 늘었다.
이렇게 주절주절 하는 건 혼밥이라고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사연이야 각자의 삶이 다르니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겠지만 혼자 살게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하고, 쇼핑을 하고 이 모든 것이 타의가 아닌 내 자의로 선택한 것임을 받아들이면...어쩌면 외롭다는 생각보다 더 기운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밥상이 참 중요하다 생각한다.
나를 대접하는 밥상.
밥에 물말아 김치 한쪽 찢어 먹는 것도 진수성찬이고 그리운 음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혼밥)면이 먹고플 땐 거절말자.
8월의 마지막 하루를 남긴채.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한다. 덕분에
가을이 바로 코앞인 것같다.
면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최근 1,2년사이 자주 먹는 편이 되었다.
잔치국수
지난해 겨울 요리방송에서 어느 유명한 한식 셰프(이름 잊어버림...ㅜㅜ)가 아이들을 지도 하는 과정중 잔치국수를 해준 일이 있어 그때 기억한 레시피로 육수를 내봤다.
솜씨 없어도 재료만 듬성듬성 잘라 늦은 시간이라 빠르게 육수를 내고 싶어 재료들 크기를 그다지 크지 않게했다.
재료 : 무,양파, 대파,멸치, 다시마, 생표고버섯(또는 건조 버섯)
소금, 간장.
육수 냄비를 불에 올려 씻기전에 재료들을 손질해 물에 완전히 잠길정도의
물을 붓고 가스불을 켜놓고 씻고 나오니 육수 완성.
거기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하고 육수에 넣었던 건더기를 건져 토핑해 준다. 그리고 잘 익은 갓김치와 함께해 먹는다.
비빔라면
라면 스프만 사용하고 면만 남아 아까워서
매운게 먹고 싶기도 해서 비빔면을 했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재료 : 고추장50g, 설탕 또는 매실청 (취향)레몬즙 또는 식초(취향)케찹 살짝(내 취향, 넣고 싶은 만큼), 간장 조금
양념장을 잘 섞어놓고 면이 삶아지면 찬물에 벅벅 헹궈 전분기를 빼서 사리를 만들어 만들어 두었던 쌈무와 함께 세팅한다.
토마토 김치라면
집에 있는 한국라면 아무거나를
면 따로 삶는다. 면은 반정도만 삶고
면이 삶아 지는 동안 다른 냄비에는 라면 국물을 끓인다.
재료 : 라면스프, 토마토 몇 개, 익은 김치, 건조 고추
면이 반정도 삶아 지면 물을 버리고 찬물에 한번 씻어
라면 국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넣어 면이 익으면 불을 끄고
세팅한다. 면의 기름기를 어느 정도 뺀 김치라면이 내 입맛에는 나쁘지 않다.
늦은 시간 식사후 차를 내본다.
직접 건조하고 말려 볶은 우엉차.
이제 가을이라고 과자들도 옷을 갈아입는다.
계절 별로 분위기를 바꾸는 맥주처럼 잘먹는 킷켓 쵸코도
가을의 새로운 맛이 나왔다.
밤맛과 고구마 맛.
과자들이 올 가을 컨셉이 밤과 고구마 인가보다.
여러 회사들이 이 두가지로 기존의 것에 맛만
바꿔 새단장을 했다. 겨울이면 매년 그렇듯 딸기 컨셉이
기다려진다.
이러한 가을 분위기에 구수한 우엉차와 달달한 과자를 함께 해본다.
우엉차의 색이 따스하니 기분좋다.
예전 집의 창가
지금 사는 집에서 도보 10분거리에서 살 때 풀떼기들에 빠져 한 때 온집안을 정글로 만들었었다.
휴일의 나른하고 평화로운 아침,
한참이고 이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두, 세개 화분을 제외하고는 살아 남아 있는 녀석들이 없다....ㅜㅜ
역시 예전 집에서 처음 길러 본 튤립들.
일층에 살아서 현관앞 공간에 화분을 크게 두고 겨울에
묻어둔 튤립을 한여름이 될 때까지 감상했다.
19년전 어느날 23살의 나이로 집안의 모든 것에 떠밀려 독립했다.
어린 시절에 감당하지 못할 일도 많았것만 IMF가 터지자
부모가 사라졌다. 그동안 일하느라 집안에 신경쓰지 못한 사이에...
일 때문에 서류 제출할 일이 있어 등본을 떼어보니
집에 세대주가 나로 바뀌어 있었고 집에 관련된 모든 세금이 내앞으로 되어있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뭔가 아니지 싶었었다. 그후 몇 달뒤에 부모들이 나타났다.
지방 어느 곳에 새로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고.
고3수험생과 고1 동생을 나한테 떠 넘기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안나왔다.
그래... 자기네들도 어찌 됐던 살아보겠다고 그리 한것이니
이해하려 노력했다. 한달 생활비 꼴랑 10만원 거기서 애들 학비....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다.
전기세, 가스비만해도 그 돈이 훌쩍 넘는 걸....
어쩔 수없이 내가 벌어 생활비를 내고 집안 살림을 해야했다. 그 와중에 저 밖에 모르는 빌어먹을 장남자식, 저 입에 안맞는다고 밥상을 엎고 욕을 하는 은혜도 모르는 ㄴ, 나는 포기한 대학등록금까지 보태라 했을때 마음 먹었다.
훌훌 벗어 던지고 나도 사라지자고...
고3때부터 취업나와 2년 반동안 집안 빚갚는 거 도와 달라해서 군말없이 그리했고 나 시집갈 면목으로 적금들어 준다기에 통장 맡기고 용돈 10만원도 안되는 (교통비 식비 제외) 타쓰며 생활 했건만 지도새도 모르게 1년 적금 털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독립한다 선언하고 손에 현금 딸랑 50만원에 카드 한 장 들고 탈출했다.
가전은 중고로 모두 사고 서울 마포경찰서 뒤편 달동네에
화장실 공용인 단칸 월세방을 얻었다.
집 나올때 들은 말은 ‘ 다시는 집에 발 딛을 생각하지 말고 나가라’ 기에 흔쾌히 그러마하고 나왔다.
나올때 나의 기록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들고 나왔고 사진 한장 남겨 놓지 않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잘 한 것 같다.
삶은 그런것 같다.
이게 어디 비단 나 뿐이겠는가.
한국의 많은 딸들이 과거에도, 아직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각자의 사연만 조금씩 다를 뿐 크게 차이 없지 않을까 한다.
처음 집을 나와 6개월 동안은 정말 매일같이 삼겹살만 먹고 살았다. 일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허전했는지 하루 종일 허기가 지는 것 같고 머릿속엔 밥과 고기만 맴돌았다.
그래도 종일 발아프게 일을 하고 돌아와 씻고 조용히 혼자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밥상도 없어 의자에 놓고 먹던 그 밥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느 덧 혼자사는 것에 적응이 되고 밥상도 생기고
동네 변태아재 때문에 집도 옮겨야 했지만
혼자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수도가 얼어 냉방에서 보내던 겨울의 밥상들도 모두 헛된 것이 아닌 내삶의 일부라는 것을 지금도 교훈삼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의 밥상을 준비하고 세팅하며 나름의
취향까지 생긴것은 많은 실수와 재도전에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밥상은 늘 소중하다.
그 시절부터 꼬박꼬박 밖이 아닌 나의 작은 공간에서
없는 찬이라도 간장 한가지에 식사를 한다 해도 그것은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과 안심이었다.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눈치를 보며 먹던 밥상과는 전혀 다른 그 시간이 나는 참 고마웠다.
그렇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먹는다고 대충 떼우고 인스턴트를 쟁여 놓고 살지는 않는다.
아예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간단하게 떼울 때도 있다.
어릴적 간장과 식용유에 밥을 비벼 몇 달을 먹은 후로
비빈다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그러나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가끔 면이나 밥을 비벼 먹기도 한다.
독립하고 나선 라면이란걸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별미삼아 조금씩 먹던 것들이 요즘엔 더 늘었다.
이렇게 주절주절 하는 건 혼밥이라고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사연이야 각자의 삶이 다르니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겠지만 혼자 살게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하고, 쇼핑을 하고 이 모든 것이 타의가 아닌 내 자의로 선택한 것임을 받아들이면...어쩌면 외롭다는 생각보다 더 기운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밥상이 참 중요하다 생각한다.
나를 대접하는 밥상.
밥에 물말아 김치 한쪽 찢어 먹는 것도 진수성찬이고 그리운 음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먹는 밥도 인스턴트 밥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임을
몸소 체험해 보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