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화전용 시 2편/조향순 시

까마귀dalcho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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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장미

 

  조향순

 

아무래도 마음이

떠났다 

골목 바깥으로 고개를 돌린 지 며칠 되었다

 

참 재미없는 집, 

골목 바깥에는 허공이 기다리고 있지만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젊은 날, 나도 그랬다

 

 

 

 

풀벌레 소리  

 

조향순

 

 

밤새도록 쓰고 있네.

 

아주 가는 촉으로

새벽까지 쓰고 있네.

 

가만 들어보니,

아아 무서워라

이름 하나만 쓰고 있네.

 

 

 

 

*

선생님의 시집을 세 번째 접하게 되었다. 어제는 평소보다 퇴근이 이른 덕분이기도 하고 무의식중에 내 마음이 선생님의 시집으로 향한 까닭이리라 본다.

 

한 눈에 풍경이 시에서 다 보인다 하여도 시를 속단하는 건 경솔한 자세다. 사람들은 선생님의 시가 쉽다고 하지만, 한 눈에 드러난 활자 뒤에 숨겨진 모습들은 엄청난 것이기도 하다. 그 엄청남의 비밀은 한 가지 이름만 쓰고 한 가지 울음을 우는 풀벌레다. 밤이면 더 또렷하고 큰 소리로 우는 풀벌레는 얼마나 무한 겹의 풍경이 숨겨져 있는가. 밤이 그렇고 캄캄하지만 거대한 우주가 그렇고 풀과 별들의 눈과 그런 소리를 향해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수억 개의 귀가 그렇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아가는 방향이 하나라고 시인은 말한다.

 

나는 여기서 무릎을 치고 혼자 맞장구를 쳤다. 아시는 분의 시집이나 생면부지의 시집도 독자의 자리에서 보면 내용과 제목과 풍경의 색깔만 그때그때 달라질 뿐 시인이 쓰고 나아가는 방향은 한 방향이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아니면 당신은 아직 그것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시를 쓰는가. 한 권의 책이라 할지라도 주제는 하나다. 우리 선생님의 주제도 하나다. 뭐냐고 물으신다면 답을 드릴 수도 있지만 묻지 마시고 『풀리는 강가에서』를 읽어 보시면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이다. 답이란 스스로 구할 때 입 속에 단 맛으로 고이는 체험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의식이 한층 더 성장을 해 나가는 것이다. 최소한 한 작가의 작품을 공유하려면 세 번 이상은 그 책을 읽어보는 성실한 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름 하나만 쓰는 풀벌레에게 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 보련다.

첫 번째 한 가지란 이름의 대상에 다가가기 위한 출발점이고

두 번째 한 가지란 이름의 탄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함이고

세 번째 한 가지란 내게 온 이름을 버리지 못하는 것 이 세 가지에 의해 우리는 시, 또는 글을 쓴다.

매번 반복을 하면서도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것은 한 가지 속에는 어린아이가 주먹을 꼭 쥔 순수처럼 옹당거리고 있는 까닭이다.

살아서는 죽지 않는 촉으로 풀벌레처럼 울음을 우는, 시를 쓰는 것은 소리 없는 울음을 그려내는 작업이지 않나 싶다.

닿을 수 없는 곳에 가기 위해 날개를 달아주는 자유의지에 의해서 말이다.

선생님의 풀벌레 소리를 다시 감상하면서 아아, 나는 한 가지 소리로 촉을 갈면서 한 이름을 쓰기 위해 울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전서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