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청년시절에 교회 부흥회에 간적이 있었어요. 방언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던 부흥강사의 말에 귀가 솔깃 했죠.. 방언은 왠지 하나님과 어떤 신령한 소통 같았거든요. 아무도 모르게 나만 하나님과 소통하는 하는 것 같고, 남들보다 조큼 특별한 존재? 그래서 기도 응답도 더 잘 받는 것 같은. 그런 특권처럼 보였어요. 방언한다고 하면 ‘와~ 부럽’ 이런 느낌이었으니까요.
부흥 강사가 방언을 하고 싶은 사람은 성가대석으로 나와 앉으라고 했어요. 부푼 기대감으로 모르는 사람옆에 어색하게 앉았죠. 자~ 부흥강사님이 이쪽으로 걸어 오셔요. 그리고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귀에 뭔가를 속삭이시네요. 뭐지? 잔뜩 궁금해졌죠. 방언하는 큰 비법을 알려 주시는 듯했어요. 이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했죠.
몇 사람만 지나면 나도 방언 할 수 있다. 지나온 사람들은 방언을 시작했어요. ‘랄랄랄라’ ‘룰룰룰루’... 옆사람까지 왔어요. 옆사람 쭈뼛거리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뭔지 알수 없는 소리를 내요. 성공했나봐요. 와~ 드디어 내 차례에요. 부흥강사가 내 귀에 뭐라고 속삭이네요.
“할렐루야 빨리 하세요.” “네??” “할렐루야 빨리하라고~” 왠지 안하면 안 될 것같아요.
"더 빨리"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할..루..할..루루루루....."
오마이 갓!! 다시는 교회에 안 나오리라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가대석으로 나갔던 다른 청년에게 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죠. 자기는 랄랄라 방언을 했다고. 그 청년에겐 ‘코.카.콜.라’ 주문이 들어왔다네요.
이런 웃픈 일은 없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잘못된 방언을 믿는데는 성경의 그 한 구절에만 매어있기 때문인데요.
고전14:2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문 외우듯 한것이지요. 예수님도 제자들도 선지자들도 그런 주술적인 방언을 한 기록은 없어요. 다만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한 방언은 각자 다른 나라 말로 한 것이라고 행2장에 말씀하셨어요.
또, 방언을 한 목적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랍니다.(고전14:22)
정리하자면, 방언은 각 나라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을 보여 전도하기 위함이었던 거에요. 일 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전하는 다섯 마디가 더 낫다고도 얘기 하신걸 보면 방언에 집착 할 필요는 없는 거죠. 방언과 예언은 부분적인 것이고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폐한다고 하셨어요. (고전 13장) 방언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해서 천국비밀을 알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의 때는 온전한 것이 나타나나는 때인데 방언의 은사를 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히려 시대를 거스르는 신앙이고, 시대에 발맞춰 가지 못한 신앙은 늘 심판 받아왔어요. 지금 우리가 구해야 할 은사는 말씀을 온전히 알게 해 달라는 말씀의 은사를 구해야 할 때에요.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하늘로부터 직접 보고들은 자만 증거 할 수 있는 계시 말씀 말이죠.(계10:)
내가 알아야 아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방언,
아주 오래전 청년시절에 교회 부흥회에 간적이 있었어요. 방언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던 부흥강사의 말에 귀가 솔깃 했죠.. 방언은 왠지 하나님과 어떤 신령한 소통 같았거든요. 아무도 모르게 나만 하나님과 소통하는 하는 것 같고, 남들보다 조큼 특별한 존재? 그래서 기도 응답도 더 잘 받는 것 같은. 그런 특권처럼 보였어요. 방언한다고 하면 ‘와~ 부럽’ 이런 느낌이었으니까요.
부흥 강사가 방언을 하고 싶은 사람은 성가대석으로 나와 앉으라고 했어요. 부푼 기대감으로 모르는 사람옆에 어색하게 앉았죠. 자~ 부흥강사님이 이쪽으로 걸어 오셔요. 그리고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귀에 뭔가를 속삭이시네요. 뭐지? 잔뜩 궁금해졌죠. 방언하는 큰 비법을 알려 주시는 듯했어요. 이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했죠.
몇 사람만 지나면 나도 방언 할 수 있다. 지나온 사람들은 방언을 시작했어요. ‘랄랄랄라’ ‘룰룰룰루’... 옆사람까지 왔어요. 옆사람 쭈뼛거리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뭔지 알수 없는 소리를 내요. 성공했나봐요. 와~ 드디어 내 차례에요. 부흥강사가 내 귀에 뭐라고 속삭이네요.
“할렐루야 빨리 하세요.” “네??” “할렐루야 빨리하라고~” 왠지 안하면 안 될 것같아요.
"더 빨리"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할..루..할..루루루루....."
오마이 갓!! 다시는 교회에 안 나오리라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가대석으로 나갔던 다른 청년에게 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죠. 자기는 랄랄라 방언을 했다고. 그 청년에겐 ‘코.카.콜.라’ 주문이 들어왔다네요.
이런 웃픈 일은 없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잘못된 방언을 믿는데는 성경의 그 한 구절에만 매어있기 때문인데요.
고전14:2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문 외우듯 한것이지요. 예수님도 제자들도 선지자들도 그런 주술적인 방언을 한 기록은 없어요. 다만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한 방언은 각자 다른 나라 말로 한 것이라고 행2장에 말씀하셨어요.
또, 방언을 한 목적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랍니다.(고전14:22)
정리하자면, 방언은 각 나라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을 보여 전도하기 위함이었던 거에요. 일 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전하는 다섯 마디가 더 낫다고도 얘기 하신걸 보면 방언에 집착 할 필요는 없는 거죠. 방언과 예언은 부분적인 것이고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폐한다고 하셨어요. (고전 13장) 방언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해서 천국비밀을 알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의 때는 온전한 것이 나타나나는 때인데 방언의 은사를 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히려 시대를 거스르는 신앙이고, 시대에 발맞춰 가지 못한 신앙은 늘 심판 받아왔어요. 지금 우리가 구해야 할 은사는 말씀을 온전히 알게 해 달라는 말씀의 은사를 구해야 할 때에요.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하늘로부터 직접 보고들은 자만 증거 할 수 있는 계시 말씀 말이죠.(계10:)
신천지에서는 부분적인 방언을 구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하늘의 열린 책을 받은 목자가 계시고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합니다.
교리비교를 통해 한기총 목사님들과 신천지 계시말씀을 비교 해 보세요.
듣고 완전한 데로 나아오세요.
♧클릭
http://www.eduzion.org/ref/36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