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고 주저리 쓴 글이었는데 많은 분들의 공감 받아서 깜짝 놀랐어요. 다들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각나서 이겠죠? 조금 부끄럽네요 ㅎㅎ 언니한테 이 글은 보여주지 않을 거예요. 언니와 달리 저는 보통 사람이라 좀 낯 뜨거울 거 같거든요 ㅋㅋㅋㅋㅋㅋ 언니한테 잘 할게요. 언니가 거의 성인급이 아니었다면 저와 언니도 보통의 평범한 자매처럼 그랬을 거예요. 조카 태어나면 있는 힘껏 예뻐해줄래요. ㅋㅋㅋㅋ 아, 그리고 저 정말 친구들 안 괴롭혔어요 ㅠㅠ 그냥 친구들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그랬던 거 정도... ㅋㅋㅋㅋ 학교 분위기가 좋아서 왕따 이런 거 없구 두루두루 잘 지냈었어요. 제가 몰랐던 부분도 있겠지만요 ㅠ 여튼 모두들 감사합니다. 여러분 곁에도 말로 표현 안할 뿐, 좋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각자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눈물 짓는 거겠죠. 취뽀 할게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극적인 제목 죄송합니다.
어디다가 얘기 할 곳도 없고 그래서 이곳에 그냥 써봐요. 술 한잔 했거든요 ㅎㅎ
제목에서도 보셨다시피 저희 언니 얘기에요. 저희 언니랑 저는 6살 차이 나는 자매입니다.
언니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조금 안좋게 태어났어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많이 아팠다고 합니다. 수술도 많이 받았구요. 그래서 지금도 가슴 중앙에 흉터가 있어요.
저는 언니가 마지막 수술을 받은 후? 아마 그쯤? 한 1년 후에 태어났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계획된 건 아니었을거라 생각되는데 ㅋㅋㅋ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이차이가 꽤 나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언니와는 달리 저는 타고난 건강체질로 감기? 전염병? 그런 것 없이 흙먹으면서 자랐습니다. (과장 아니고 어렸을 때 놀이터에 데리고 가면 그렇게 흙을 파먹었다 하네요;; 물론 커서는 안 먹었습니다 ㅋㅋㅋㅋ)
다행히 집이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었고 언니도 어렸을 때 이후로 잔병치레는 조금 있었지만 큰 병 없이 자라준 덕에 저희는 잘 살진 않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이 컸다 생각해요.
근데 언니는 어려서부터 저한테 마음의 빚 같은게 있었나봐요. 아무래도 언니가 몸이 조금 약했다보니 부모님께선 언니의 가벼운 감기에도 노심초사하고 그러셨죠.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조금 제한 하셨구요. 저는 그런 언니를 보며 부러움은 개뿔, 아이고 여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데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언니는 아니었나봐요. 한참 어린 동생이, 주변만 봐도 동생이 있는 집은 다들 동생한테로 관심이 쏟아진다던데 우리집은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적에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셨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한테 손이 가는건 당연하잖아요. 뭐, 이 생각도 언니가 제게 베풀어 준 사랑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겠죠?
그래서 언니는 제 호구를 자처했습니다. 칠푼이, 덜렁이라는 별명에 맞게 준비물을 챙겨놓고도 까먹고 가는 저를 위해 항상 아침마다! 저보다 등교시간이 빠른데도! 본인 고3때도! 초딩 준비물을 꼭 꼭 체크해줬어요. 별 것 아니지만 귀찮은 거 아시죠? 바빠 죽겠는 아침 시간에 다른 사람 챙기는 거... 저희 어머니께선 잘 챙겨줘도 빼먹고 가는 저를 그냥 넌 학교 가서 혼나라. 이렇게 두셨어요 ㅋㅋㅋ 제대로 한번 혼구녕 나야 정신 차리고 다닌다고
여튼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동네 방네 자전거 타고 남자 애들과 정글짐에서 시간을 보낼 때 저희 언니는 아주 착실히 공부를 했더라구요.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 턱! 합격했습니다.
부모님 뿐 아니라 어린 제가 보기에도 언니 대단해보이더라구요. 그땐 제가 그 학교, 저도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갓 중딩의 패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는 스무살 되자마자 과외 알바를 시작했어요. 등록금이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니 자신이 쓸 돈은 자신이 마련하겠다구요. 그동안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다 하는데 저는 그때 참, 언니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께서 대학 보내주시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었거든요. ㅋㅋㅋ 철 없는 질풍노도의 중딩...
여튼 그렇게 언니는 대학 생활과 알바를 병행하며 바쁘게 살았고 자연스럽게 저와 언니는 조금 멀어졌어요. 그 사이에 제게 사춘기가 왔죠.
어려서부터 친구들이 많았던 덕택...?에 우르르 몰려 다니며 공부도 안하고 맨날 노래방에 술도 조금 먹어보고 담배도 조금 피워보고 그랬습니다. 그게 뭐라고, 진짜 철 없죠. 어머니께선 혼도 내시고 하시다가 제 반항에 니 살길 니가 찾으라며, 그렇게 두손 두발 드셨죠. 애들 때리고 돈 뺏고 하는 짓은 안했지만 진짜 좀 막살았었어요. 왜 그랬는지...
그러다가 어느 날은 친구네 집에서 술마신다고 모자란 술을 사오라 했는데 집에서 돈도 끊겼지, 살 곳도 없지, 술은 마시고 싶고 못된 마음에 한병 슬쩍 했어요. 평소에 잘 알던 구멍 가게에서... 나오다가 긴장감에 술병을 떨궈버렸고 와장창 깨지자 마자 정신이 번뜩 들더라구요.
이상하게 그 때 저희 언니가 평소에 하던 말이 떠올랐어요. 세상에 악인은 없다, 나쁜 상황과 잘못된 선택만 있을 뿐이다. 근데 저는 그때 제가 악인 같은 거예요. 주인 할아버지가 나오셨고 벌벌 떠는 저를 추궁해 부모님을 부르셨죠. 그 와중에도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집에 전화했더니 하필 저희 언니가 받더라구요. 저는 태어나서 언니가 그렇게까지 화난 모습 처음 봤어요. 진짜 10분도 안걸렸을거에요. 택시 타고 도착한 언니가 오자 마자 제 등 허리를 굽히면서 사과하고 언니도 계속 사과하더라구요. 그래봤자 언니도 20대 초반인데... 주인 할아버지는 화나셔서 너네 말고 부모님 부르라 하셨고 언니는 정말 죄송하다. 부모님이 지금은 바쁘시다. 할아버지도 저희 부모님 아시지 않냐, 제가 데리고 가서 잘 타이르겠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겠다 하면서 울었어요. 술 값은 물론 장사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따로 보상금도 드린 것 같구요.
아직도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떠올라요. 저는 뒤에서 삐죽삐죽 나오는 눈물을 훔치면서 걸었고 언니는 말없이 앞만 보면서 걸었어요. 집에 오는 길에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언니가 생각나요. 집에 돌아와선 언니가 앉혀서 밥을 차려 주더라구요. 밥은 먹었냐고... 간간히 피시방에서 라면으로 때우다가 오랜만에 밥을 보니 또 그와중에 그건 들어가더라구요. 밥 먹고 나니까 언니가 왜 그랬냐고 묻더라구요. 그 때부터 눈물이 막 쏟아져 나왔어요. 미안하다고, 그냥 내가 잠시 미쳤나보다고... 놀다보니 재밌었고 다른 애들이 안하는 걸 하니까 내가 뭔가가 된 것 같았다고...
언니가 한숨을 푹 쉬더니 그러대요. 오늘 자기가 고개를 숙인 건 아무것도 아니래요. 오늘 제가 가장 잘못한 건 제 자신이래요. 가장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할 자기 자신한테 큰 죄를 지었다고. 오늘 일로 인해서 항상 그 자리를 지나쳐 갈 때마다 떳떳하지 않을거고, 이건 몇 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을 거래요. 그렇게 하나 둘씩, 잘못한게 쌓여 갈때마다 저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고 그랬어요. 제 자신을 그렇게 부끄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싶냐고... 그런 식으로 말했어요.
저는 엉엉 울면서 아니라고 내가 진짜 잘못했다고 나 이제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산다고 막 오열을 하면서 그랬어요. 그랬더니 언니가 정신 차리면 내일 언니랑 할아버지께 가서 다시 사과드리고 오자고 하더라구요. 오늘은 언니가 사과한거고 잘못한 당사자가 죄송하다 해야하는 거라고. 그렇게 사과드리고 그 날 이후로 짧았던 제 사춘기는 모두 끝났어요. 잠깐 멀어졌던 저희 사이는 언니가 제 공부를 봐주면서 다시 가까워졌구요. 형제지간에 뭐 배우면 안된다던데 공부 잘하는 사람은 다른가봐요. 언니가 공부 봐주고 부모님께서 과외 붙여주시면서 성적도 꽤 올라서 인서울 4년제 겨우겨우 턱걸이로 문 닫고 들어왔답니다.
제가 대학 입학 때 쯤 아버지께서 조금 갑작스레 정년 퇴임을 하셨어요. 몸이 조금 안좋아지시기도 하셨고 마침 때도 돼서... 자연스레 등록금 지원도 없어졌죠. 어머니는 아직 일 하고 계셨지만 갑자기 큰 현금을 마련하기엔 조금 힘들기도 했죠. 턱걸이로 들어온 만큼 장학금은 물 건너갔고 다음번은 어떨지 몰라도 첫해 등록금은 제 돈으로 내야하는데 대출을 받아야하나, 그러고 있었죠. 근데 언니가 갑자기 500만원을 주더라구요. 정확히는 490만원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때의 황당함은...
이게 뭐냐 했더니 제 등록금이래요. 그래서 제가 언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내 등록금을 주냐, 언니는 말 그대로 언니다. 내 부모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성인이다 언니 이제 나한테 그만 해줘라. 이렇게 말했었죠. 미안함이 컸어요. 졸업 후에 바로 취직이 됐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사회 초년생이잖아요. 모은 돈이 어딨겠어요. 근데 언니가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아버지 회사에서 등록금 나온 덕분에 그런 걱정 없이 다녔다. 내가 수혜를 받은 게 있으니 자신도 저한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자기 돈 잘벌고 대학교 때부터 저금 해온거라 자기 지금 적금 드는 거에는 상관 없대요...
이 바보 호구가... 진짜 눈물이 나더라구요. 언니가 과외를 몇탕 뛰었는지 아는데... 그 빡센 학교에서도 학교 공부하랴 학생들 과외 준비하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데 그게 제 등록금 모으려고 그랬대요. 자기처럼 걱정 없이 학교 다니게 해주고 싶어서...
진짜 이 정도면 우리 언니 상 호구 아닌가요?
네, 그래서 전 언니 돈으로 대출 없이 첫 학기 등록을 마쳤어요. 친구들 20살의 낭만이다 뭐다 할때 언니 생각하니까 놀 수 없겠더라구요. 죽어라 공부해서 나머지 학기는 언니 도움 없이 장학금으로 졸업했습니다.
뭐 이렇게 긴 글을 쓴 이유는... 우리 호구가 드디어 시집을 간답니다.
오늘 형부 인사왔어요. 호구 남편 아니랄까봐 형부도 순딩이에요. 배웅 하는데 처제, 취업 준비하느라 힘들지? 맛있는 거 사먹어~ 이러면서 언니 몰래 제 주머니에 용돈 찔러넣어주더라구요.
진짜 부부가 쌍으로 호구에요. 나 이거 다 어떻게 갚으라고...
언니는 형부랑 형부네 집에서 잔다고 갔고 괜히 빈 언니 방을 보니까 쓸쓸해져서 우리 호구 방에서 술한잔 하고 글 써요.
언니야 그동안 많이 고마웠다. 언니가 나 키운거라 해도 과언 아니다. 괜히 언니 시집 보낼라니까 왜 내가 눈물이 줄줄 나냐... 이제 결혼하면 자주 보지도 못하고 그럴텐데 나 이제 어떻게 사냐. 같이 영화 볼 사람도 술먹고 빌빌 댈 사람도 없고 남자친구 헤어졌다고 같이 울어줄 사람도 없는데 무슨 재미로 사냐...
그래도 잘 살아라. 우리 호구 행복하게 다른데선 호구 잡히지 말고 잘 살아라. 내가 언니 다른 놈들이 호구 안잡게 잘 막을게. 고마웠다 참...
우리언니가 호구잡혔어요!
(추가글)
술 먹고 주저리 쓴 글이었는데 많은 분들의 공감 받아서 깜짝 놀랐어요. 다들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각나서 이겠죠? 조금 부끄럽네요 ㅎㅎ 언니한테 이 글은 보여주지 않을 거예요. 언니와 달리 저는 보통 사람이라 좀 낯 뜨거울 거 같거든요 ㅋㅋㅋㅋㅋㅋ 언니한테 잘 할게요. 언니가 거의 성인급이 아니었다면 저와 언니도 보통의 평범한 자매처럼 그랬을 거예요. 조카 태어나면 있는 힘껏 예뻐해줄래요. ㅋㅋㅋㅋ 아, 그리고 저 정말 친구들 안 괴롭혔어요 ㅠㅠ 그냥 친구들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그랬던 거 정도... ㅋㅋㅋㅋ 학교 분위기가 좋아서 왕따 이런 거 없구 두루두루 잘 지냈었어요. 제가 몰랐던 부분도 있겠지만요 ㅠ 여튼 모두들 감사합니다. 여러분 곁에도 말로 표현 안할 뿐, 좋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각자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눈물 짓는 거겠죠. 취뽀 할게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극적인 제목 죄송합니다.
어디다가 얘기 할 곳도 없고 그래서 이곳에 그냥 써봐요. 술 한잔 했거든요 ㅎㅎ
제목에서도 보셨다시피 저희 언니 얘기에요. 저희 언니랑 저는 6살 차이 나는 자매입니다.
언니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조금 안좋게 태어났어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많이 아팠다고 합니다. 수술도 많이 받았구요. 그래서 지금도 가슴 중앙에 흉터가 있어요.
저는 언니가 마지막 수술을 받은 후? 아마 그쯤? 한 1년 후에 태어났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계획된 건 아니었을거라 생각되는데 ㅋㅋㅋ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이차이가 꽤 나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언니와는 달리 저는 타고난 건강체질로 감기? 전염병? 그런 것 없이 흙먹으면서 자랐습니다. (과장 아니고 어렸을 때 놀이터에 데리고 가면 그렇게 흙을 파먹었다 하네요;; 물론 커서는 안 먹었습니다 ㅋㅋㅋㅋ)
다행히 집이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었고 언니도 어렸을 때 이후로 잔병치레는 조금 있었지만 큰 병 없이 자라준 덕에 저희는 잘 살진 않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이 컸다 생각해요.
근데 언니는 어려서부터 저한테 마음의 빚 같은게 있었나봐요. 아무래도 언니가 몸이 조금 약했다보니 부모님께선 언니의 가벼운 감기에도 노심초사하고 그러셨죠.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조금 제한 하셨구요. 저는 그런 언니를 보며 부러움은 개뿔, 아이고 여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데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언니는 아니었나봐요. 한참 어린 동생이, 주변만 봐도 동생이 있는 집은 다들 동생한테로 관심이 쏟아진다던데 우리집은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적에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셨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한테 손이 가는건 당연하잖아요. 뭐, 이 생각도 언니가 제게 베풀어 준 사랑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겠죠?
그래서 언니는 제 호구를 자처했습니다. 칠푼이, 덜렁이라는 별명에 맞게 준비물을 챙겨놓고도 까먹고 가는 저를 위해 항상 아침마다! 저보다 등교시간이 빠른데도! 본인 고3때도! 초딩 준비물을 꼭 꼭 체크해줬어요. 별 것 아니지만 귀찮은 거 아시죠? 바빠 죽겠는 아침 시간에 다른 사람 챙기는 거... 저희 어머니께선 잘 챙겨줘도 빼먹고 가는 저를 그냥 넌 학교 가서 혼나라. 이렇게 두셨어요 ㅋㅋㅋ 제대로 한번 혼구녕 나야 정신 차리고 다닌다고
여튼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동네 방네 자전거 타고 남자 애들과 정글짐에서 시간을 보낼 때 저희 언니는 아주 착실히 공부를 했더라구요.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 턱! 합격했습니다.
부모님 뿐 아니라 어린 제가 보기에도 언니 대단해보이더라구요. 그땐 제가 그 학교, 저도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갓 중딩의 패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는 스무살 되자마자 과외 알바를 시작했어요. 등록금이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니 자신이 쓸 돈은 자신이 마련하겠다구요. 그동안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다 하는데 저는 그때 참, 언니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께서 대학 보내주시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었거든요. ㅋㅋㅋ 철 없는 질풍노도의 중딩...
여튼 그렇게 언니는 대학 생활과 알바를 병행하며 바쁘게 살았고 자연스럽게 저와 언니는 조금 멀어졌어요. 그 사이에 제게 사춘기가 왔죠.
어려서부터 친구들이 많았던 덕택...?에 우르르 몰려 다니며 공부도 안하고 맨날 노래방에 술도 조금 먹어보고 담배도 조금 피워보고 그랬습니다. 그게 뭐라고, 진짜 철 없죠. 어머니께선 혼도 내시고 하시다가 제 반항에 니 살길 니가 찾으라며, 그렇게 두손 두발 드셨죠. 애들 때리고 돈 뺏고 하는 짓은 안했지만 진짜 좀 막살았었어요. 왜 그랬는지...
그러다가 어느 날은 친구네 집에서 술마신다고 모자란 술을 사오라 했는데 집에서 돈도 끊겼지, 살 곳도 없지, 술은 마시고 싶고 못된 마음에 한병 슬쩍 했어요. 평소에 잘 알던 구멍 가게에서... 나오다가 긴장감에 술병을 떨궈버렸고 와장창 깨지자 마자 정신이 번뜩 들더라구요.
이상하게 그 때 저희 언니가 평소에 하던 말이 떠올랐어요. 세상에 악인은 없다, 나쁜 상황과 잘못된 선택만 있을 뿐이다. 근데 저는 그때 제가 악인 같은 거예요. 주인 할아버지가 나오셨고 벌벌 떠는 저를 추궁해 부모님을 부르셨죠. 그 와중에도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집에 전화했더니 하필 저희 언니가 받더라구요. 저는 태어나서 언니가 그렇게까지 화난 모습 처음 봤어요. 진짜 10분도 안걸렸을거에요. 택시 타고 도착한 언니가 오자 마자 제 등 허리를 굽히면서 사과하고 언니도 계속 사과하더라구요. 그래봤자 언니도 20대 초반인데... 주인 할아버지는 화나셔서 너네 말고 부모님 부르라 하셨고 언니는 정말 죄송하다. 부모님이 지금은 바쁘시다. 할아버지도 저희 부모님 아시지 않냐, 제가 데리고 가서 잘 타이르겠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겠다 하면서 울었어요. 술 값은 물론 장사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따로 보상금도 드린 것 같구요.
아직도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떠올라요. 저는 뒤에서 삐죽삐죽 나오는 눈물을 훔치면서 걸었고 언니는 말없이 앞만 보면서 걸었어요. 집에 오는 길에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언니가 생각나요. 집에 돌아와선 언니가 앉혀서 밥을 차려 주더라구요. 밥은 먹었냐고... 간간히 피시방에서 라면으로 때우다가 오랜만에 밥을 보니 또 그와중에 그건 들어가더라구요. 밥 먹고 나니까 언니가 왜 그랬냐고 묻더라구요. 그 때부터 눈물이 막 쏟아져 나왔어요. 미안하다고, 그냥 내가 잠시 미쳤나보다고... 놀다보니 재밌었고 다른 애들이 안하는 걸 하니까 내가 뭔가가 된 것 같았다고...
언니가 한숨을 푹 쉬더니 그러대요. 오늘 자기가 고개를 숙인 건 아무것도 아니래요. 오늘 제가 가장 잘못한 건 제 자신이래요. 가장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할 자기 자신한테 큰 죄를 지었다고. 오늘 일로 인해서 항상 그 자리를 지나쳐 갈 때마다 떳떳하지 않을거고, 이건 몇 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을 거래요. 그렇게 하나 둘씩, 잘못한게 쌓여 갈때마다 저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고 그랬어요. 제 자신을 그렇게 부끄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싶냐고... 그런 식으로 말했어요.
저는 엉엉 울면서 아니라고 내가 진짜 잘못했다고 나 이제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산다고 막 오열을 하면서 그랬어요. 그랬더니 언니가 정신 차리면 내일 언니랑 할아버지께 가서 다시 사과드리고 오자고 하더라구요. 오늘은 언니가 사과한거고 잘못한 당사자가 죄송하다 해야하는 거라고. 그렇게 사과드리고 그 날 이후로 짧았던 제 사춘기는 모두 끝났어요. 잠깐 멀어졌던 저희 사이는 언니가 제 공부를 봐주면서 다시 가까워졌구요. 형제지간에 뭐 배우면 안된다던데 공부 잘하는 사람은 다른가봐요. 언니가 공부 봐주고 부모님께서 과외 붙여주시면서 성적도 꽤 올라서 인서울 4년제 겨우겨우 턱걸이로 문 닫고 들어왔답니다.
제가 대학 입학 때 쯤 아버지께서 조금 갑작스레 정년 퇴임을 하셨어요. 몸이 조금 안좋아지시기도 하셨고 마침 때도 돼서... 자연스레 등록금 지원도 없어졌죠. 어머니는 아직 일 하고 계셨지만 갑자기 큰 현금을 마련하기엔 조금 힘들기도 했죠. 턱걸이로 들어온 만큼 장학금은 물 건너갔고 다음번은 어떨지 몰라도 첫해 등록금은 제 돈으로 내야하는데 대출을 받아야하나, 그러고 있었죠. 근데 언니가 갑자기 500만원을 주더라구요. 정확히는 490만원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때의 황당함은...
이게 뭐냐 했더니 제 등록금이래요. 그래서 제가 언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내 등록금을 주냐, 언니는 말 그대로 언니다. 내 부모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성인이다 언니 이제 나한테 그만 해줘라. 이렇게 말했었죠. 미안함이 컸어요. 졸업 후에 바로 취직이 됐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사회 초년생이잖아요. 모은 돈이 어딨겠어요. 근데 언니가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아버지 회사에서 등록금 나온 덕분에 그런 걱정 없이 다녔다. 내가 수혜를 받은 게 있으니 자신도 저한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자기 돈 잘벌고 대학교 때부터 저금 해온거라 자기 지금 적금 드는 거에는 상관 없대요...
이 바보 호구가... 진짜 눈물이 나더라구요. 언니가 과외를 몇탕 뛰었는지 아는데... 그 빡센 학교에서도 학교 공부하랴 학생들 과외 준비하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데 그게 제 등록금 모으려고 그랬대요. 자기처럼 걱정 없이 학교 다니게 해주고 싶어서...
진짜 이 정도면 우리 언니 상 호구 아닌가요?
네, 그래서 전 언니 돈으로 대출 없이 첫 학기 등록을 마쳤어요. 친구들 20살의 낭만이다 뭐다 할때 언니 생각하니까 놀 수 없겠더라구요. 죽어라 공부해서 나머지 학기는 언니 도움 없이 장학금으로 졸업했습니다.
뭐 이렇게 긴 글을 쓴 이유는... 우리 호구가 드디어 시집을 간답니다.
오늘 형부 인사왔어요. 호구 남편 아니랄까봐 형부도 순딩이에요. 배웅 하는데 처제, 취업 준비하느라 힘들지? 맛있는 거 사먹어~ 이러면서 언니 몰래 제 주머니에 용돈 찔러넣어주더라구요.
진짜 부부가 쌍으로 호구에요. 나 이거 다 어떻게 갚으라고...
언니는 형부랑 형부네 집에서 잔다고 갔고 괜히 빈 언니 방을 보니까 쓸쓸해져서 우리 호구 방에서 술한잔 하고 글 써요.
언니야 그동안 많이 고마웠다. 언니가 나 키운거라 해도 과언 아니다. 괜히 언니 시집 보낼라니까 왜 내가 눈물이 줄줄 나냐... 이제 결혼하면 자주 보지도 못하고 그럴텐데 나 이제 어떻게 사냐. 같이 영화 볼 사람도 술먹고 빌빌 댈 사람도 없고 남자친구 헤어졌다고 같이 울어줄 사람도 없는데 무슨 재미로 사냐...
그래도 잘 살아라. 우리 호구 행복하게 다른데선 호구 잡히지 말고 잘 살아라. 내가 언니 다른 놈들이 호구 안잡게 잘 막을게. 고마웠다 참...
신부입장 할 땐 안울게. 조카 낳으면 내가 그 조카 호구 될거니까 언니는 방해 말아라.
많이 고마웠고 사랑한다 내 호구 언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