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에 관한 TMI.

ㅇㅇ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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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완용은 순종의 세자시절 스승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이완용이 죽기 직전까지도 매우 좋았다.
2. 이완용은 처음에 독립협회 회장이었다. 물론 그것은 단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한 협회였다.
3. 이완용은 명필로 유명했다. 독립문 현판도 그의 친필이다.
4. 처음에 친미파였던 이완용이 친미파가 된 계기는 미국 공사로 재직 당시, 미국인으로부터 "개돼지만도 못한 조선인"이라는 모욕을 들은 이후 부터라고 한다.
5. 아관파천 당시 이완용이 고종을 데리고 가려고 했던곳은 사실 러시아 공사관이 아닌 미국 공사관이었다.
6. 일설과 달리 이완용과 고종의 관계는 신뢰로 맺어진 사이였다. 을사늑약이후 이완용의 집이 성난 민중에 의해 불에타자 고종은 이완용에 남녕위궁을 하사했다.
7. 이완용은 명동에서 이재명의사에게 큰 부상을 당하고 난 이후 죽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순종이 보낸 일본인 주치의 키쿠치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난다.
8. 이완용은 죽기직전까지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하지만 영어는 유창했다고 한다.
9. 미국인 선교사이자 광혜원의 초대원장이었던 호러스 알렌은 이완용을 두고 "기계같은 사람"이라 말했다.
10.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모은 재산은 현재 환산 가치로 450억원 가량이라고 한다.
11. 이완용은 독실한 불교신자 였으나 현재 생전 그의 집터는 교회가 들어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