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같은 사랑은 다시 못할거야

ㅇㅇ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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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고 연애의 ㅇ도 구경 못할 거 같던 내가 18살 때 처음으로 만났던 애가 내 첫사랑이었어. 남자랑 그닥 친하지도 않았고, 연락하는 남자나 그 흔한 남사친도 0명에다가 얼굴도 그다지 예쁘지 않은 공부 잘하는 그저 그런 애였지.

그러다가 만난 게 작년 여름, 우연한 계기로 만났다가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두 번째 만난 날 바로 고백을 받았어. 담담하게 내 눈 바라보며 고백하던 걔의 떨리는 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괜찮은데, 사겨볼까? 가 아니었지. 무조건 얘여야만 한다는 간절함이었어. 그날 밤 나랑 사귄다는 게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다는 말이 날 행복하게 했었어.

걔의 사랑이 어땠냐면 말이야. 학교로부터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우리 집에 하루도 빠짐없이 날 데려다주곤 또 뒤돌아서 혼자 어두운 밤거리를 40분가량 지나 집으로 가곤 했었어. 전화를 할 때엔 1시간이 1분 같았고, 밤에 몰래 전화하면서 속닥거릴 땐 내가 왜 좋은지에 대해 담담하게 10분짜리 연설을 하곤 했어. 매일 저녁마다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고, 통금이 너무 일렀던 나를 위해 자기가 더 시간을 내서 아침에 만나러 왔어. 나 수학여행 가던 날은 8시에 일어나던 애가 7시까지 학교에 와서 날 보러 왔어. 멀리서 달려오면 껴안아줬고, 손을 잡아줬고, 눈을 맞췄지.

나 때문에 자기 꿈을 바꾸고, 포기했던 공부를 하루에 10시간씩 하며 시작하는 모습을 봤고, 그 애에게 희망이 생겼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갈피를 못 잡던 그 애는 나를 만나 안정을 얻었고,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어. 온몸이 떨리도록 추웠던 날 떠난 여행에서는 자기가 추운 것도 잊고 겉옷을 벗어줬고, 그런 와중에도 내가 차가운 바닥에 앉으면 안 된다며 여기저기 깔고 앉을 걸 구해다니는 애였어.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내가 함께 해줄 때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으면서 정말 정말 좋아한다고 행복한다고 말해줬었어.

싸운 날에는 그날 밤 잠 이루지 못하다가 어렸던 자기 생각을 반성하고 내게 돌아올 줄 아는 애였고, 사과하길 쑥스러워했던 애가 어느새 다음번에 만날 때 꽃 한 송이씩 사와서 사과 대신 건네던 게 습관이 됐더라. 이름 대신 애칭을 훨씬 많이 부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서 얼굴 보고서는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글씨 쓰길 싫어하던 애가 시도때도없이 꾹꾹 눌러쓴 편지를 세장이나 가져와 주고, 예쁘다고 지나가듯 말한 악세서리를 몰래 사와 놀래킨 적도 많아. 내가 예전에 왕따당했던 걸 고백했던 날에는 자기가 더 속상해하면서 왜 숨겼냐고, 자기는 항상 내 편이라고 그러니까 기죽지 말라고 항상 자기가 뒤에 있을 거라고 편지를 써 주더라. 비 오는 날이면 함께 우산을 썼지만 그 애의 오른쪽 몸이 축축했고, 눈이 오는 날이면 손 꼭 잡고 눈밭을 걸었어. 햇빛 쨍쨍한 날에는 빙수 나눠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하길 좋아했고, 바람 부는 날에는 건물 안에서 바람 피하다 몰래 입 맞추길 좋아했어.

나 사실 지금 좋은 사람 만나고 있어. 그 애처럼 게임 중독도 아니고, 연락도 꼬박 잘 되고, 자기 인생 멋대로 되라며 놀러다니는 애도 아니야. 과묵하고 자기 잘못 인정할 줄 알고 착하디 착한, 속 깊은 그런 애야.

그런데 난 왜 아직도 마음 한켠에 첫사랑 생각이 떠나질 않는 걸까. 헤어진 지도 이제 열 달이 넘어가는데, 걔랑 갔던 학교 앞 단골 분식집이 아직도 좋고, 손잡고 거닐던 단골 산책 코스 공원이 좋고, 우리만 아는 장난과 말버릇까지도 여전히 내 습관이야. 거울을 보며 웃을 땐 영락없이 걔와 닮은 웃음에 이따금씩 놀라곤 해. 그 애가 준 장미도, 편지도, 선물도 모조리 버려버렸는데, 휴대폰에 남아있지도 않은 같이 찍은 사진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

내가 다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