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툴고 불안해 보였나요 그건 내가 진심이었단 증거입니다 소중하지 않았다면 왜 그토록 마음을 기울였겠어요 망설이고 비틀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황경신, 밤 열한시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나의 여름이 모든 색을 잃고 흑백이 되어도 좋습니다 내가 세상의 꽃들과 들풀, 숲의 색을 모두 훔쳐올테니 전부 그대의 것 하십시오 그러니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도둑이 든 여름, 서덕준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 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서안나, 모과 봄을 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름이 오면 잊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너는 여름이었나 이러다 네가 가을도 닮아있을까 겁나 하얀 겨울에도 니가 있을까 두려워 다시 봄이오면 너는 또 봄일까 백희다, 너는 또 봄일까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였다 그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숲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 소서 이상, 이런시 사랑은 또 올지 몰라 기회는 또 오겠지 하지만 네가 오는 게 아니잖아 그게 슬픈 거야, 난 김재식,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시골의 어느 공원묘지에 묻혔다. 이듬해 나는 방학을 이용해서 그 근처의 친척집엘 갔다 우리가 탄 차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시는 묘지 입구를 지날 때였다 할아버지와 나는 뒷좌석에 함께 앉아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우리가 아무도 안 보는 줄 아셨는지 창문에 얼굴을 대시고 우리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손을 흔드셨다. 그때 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깨달았다 이정하, 참사랑의 모습 죽고 싶어 환장했던 날들 그래 있었지 죽고 난 후엔 더 이상 읽을 시가 없어 쓸쓸해지도록 지상의 시들을 다 읽고 싶었지만 읽기도 전에 다시 쓰여지는 시들이라니 시들했다 살아서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내가 목매달지 못한 구름이 붉은 맨드라미를 안고 울었던가 그 여름 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때 그래 있었지 오전과 오후의 거리란 게 딱 이승과 저승의 거리와 같다고 중얼중얼 폐인처럼 저녁이 오기도 전에 그날도 오후 두시는 딱 죽기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울어 보았다 이승희, 그리운 맨드라미를 위하여 3
좋아하는 시 풀게!!
내가 서툴고 불안해 보였나요
그건 내가 진심이었단 증거입니다
소중하지 않았다면
왜 그토록 마음을 기울였겠어요
망설이고 비틀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황경신, 밤 열한시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나의 여름이 모든 색을 잃고
흑백이 되어도 좋습니다
내가 세상의 꽃들과 들풀,
숲의 색을 모두 훔쳐올테니
전부 그대의 것 하십시오
그러니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도둑이 든 여름, 서덕준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 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서안나, 모과
봄을 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름이 오면 잊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너는 여름이었나
이러다 네가 가을도 닮아있을까 겁나
하얀 겨울에도 니가 있을까 두려워
다시 봄이오면
너는 또 봄일까
백희다, 너는 또 봄일까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였다
그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숲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 소서
이상, 이런시
사랑은 또 올지 몰라
기회는 또 오겠지
하지만 네가 오는 게 아니잖아
그게 슬픈 거야, 난
김재식,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시골의 어느 공원묘지에 묻혔다.
이듬해 나는 방학을 이용해서
그 근처의 친척집엘 갔다
우리가 탄 차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시는 묘지 입구를 지날 때였다
할아버지와 나는 뒷좌석에 함께 앉아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우리가 아무도 안 보는 줄
아셨는지 창문에 얼굴을 대시고
우리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손을 흔드셨다.
그때 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깨달았다
이정하, 참사랑의 모습
죽고 싶어 환장했던 날들
그래 있었지
죽고 난 후엔 더 이상 읽을 시가 없어 쓸쓸해지도록
지상의 시들을 다 읽고 싶었지만
읽기도 전에 다시 쓰여지는 시들이라니
시들했다
살아서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내가 목매달지 못한 구름이
붉은 맨드라미를 안고 울었던가 그 여름
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때
그래 있었지
오전과 오후의 거리란 게
딱 이승과 저승의 거리와 같다고
중얼중얼
폐인처럼
저녁이 오기도 전에
그날도 오후 두시는 딱 죽기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울어 보았다
이승희, 그리운 맨드라미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