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 등이 이끄는 30만 5천명의 수군(隨軍) 별동대(別動隊)는 평양성(平壤城)으로 직공하라는 양제(煬帝)의 특별명령을 받고 새로운 각오로 요동을 출발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진군하는 도중 고구려군의 완강한 차단작전(遮斷作戰)에 시달려야 했다. 우중문의 부대는 평양으로 향하는 아래쪽 길인 낙랑도(樂浪道)로 진출하여 지금의 요령성 수암현에 있는 오골성(烏骨城)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중문은 약한 군마 수천 기를 맨 끝에 세우고 앞에는 정기(精騎)를 거느렸다. 고구려 군사들이 후방에서 기습하며 치중대(輜重隊)를 습격하자 우중문은 정기를 돌려 고구려의 유격대를 물리쳤다. 우중문의 부대는 치중대에 손상을 입었지만 다른 군단에서는 이미 더 많은 타격을 입었다.
백일치의 식량과 무기, 군수장비와 천막까지 합치면 병사 하나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곡식 3석과 맞먹었다. 더운 여름에 이런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몇 천리를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고된 행군이었다. 병사들은 무게를 견디다 못해 몰래 식량을 버렸다. 앞으로 찾아올 굶주림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장 짓누르고 있는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우중문을 비롯한 장수들은 이를 막기 위해 군량을 버리면 참수형(斬首刑)에 처한다는 엄격한 군령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군이 압록강에 닿을 때쯤에는 그들의 식량은 보름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심각한 군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에서 먹을거리를 찾았지만, 이미 을지문덕의 명령에 의해서 백성들이 깊은 산이나 성으로 피산하면서 식량이 될만한 것은 곡식 한 톨조차도 거두어 간 이후였다. 아무리 용맹스러운 군사들이라고 해도 식량이 떨어지면 싸울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었다. 이처럼 사기가 떨어진 상태라면 앞으로 벌어질 전투의 결과는 뻔했다.
군사들이 취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문술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우중문의 막사에 들어갔다. 우중문은 밤새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는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장군, 이제 식량이 보름 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고르고 고른 삼십만의 정예 군사를 이끌고 와서 아무런 전과없이 돌아간다면 폐하의 노여움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소? 차라리 이곳에서 칼을 물고 자결하는 것이 나으리다.”
우중문의 말이 격하게 튀어나왔다. 그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한번 싸워 보지도 않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제 압록수만 건너면 평양성이 그리 멀지 않소이다. 단숨에 달려가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그들이 비축해 둔 식량을 빼앗으면 군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소이다.”
우중문은 애써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문술은 상황을 그리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현재 고구려군의 중심에는 을지문덕이 있지 않은가? 그의 신출귀몰한 지략은 이미 수국의 조정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문술로서는 그의 존재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믿었던 내호아의 수군이 평양성 전투에서 패하여, 해포로 물러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평양성의 방비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때 내호아는 주법상의 도움으로 간신히 평양성에서 탈출한 뒤, 해포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이는 내호아가 성급하게 굴다가 고구려인들의 계책에 넘어갔기 때문이요. 더는 왈가왈부하지 맙시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대나 나나 모두 죽는 목숨이오.”
우중문의 비장한 한마디에 우문술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고구려군과 맞붙어 싸우는 것이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정오가 되자, 우중문은 자신의 막사로 장수들을 소집했다.
“내일까지는 군사들을 충분히 쉬게 하시오. 모래 날이 밝으면 압록수를 건너 평양성으로 진군합시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풍요로운 평양성에서 마음껏 약탈을 즐길 수 있다고 군사들을 독려해 주시오. 절대 군사들 앞에서 불안한 내색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오.”
장수들은 자못 비장하게 명을 받았다. 우문술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눈을 내리깔고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호위병이 뛰어 들어오더니 아뢰었다.
“지금 진영 앞에 자신을 고구려의 병마원수 을지문덕이라고 칭(稱)하는 자가 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좌중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고구려의 막리지(莫離支)이자 병마원수(兵馬元帥)로서 고구려 백성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호랑이 소굴이나 다름 없는 수군 진영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우중문 역시 전혀 뜻밖의 일에 의심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적정(敵情)을 살피기 위해서 을지문덕을 가장한 인물을 보냈을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이리 위험한 곳에 제 발로 나타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짜든 진짜든 확인을 해 볼 필요는 있었다.
우중문은 호위병에게 명해 을지문덕이라 칭하는 자를 데리고 오라 했다. 잠시 후 기품과 영민함이 느껴지는 고구려의 장수 하나가 들어왔다. 투구 아래 단아한 콧날과 어우러지는 수염, 그리고 깊고 흡인력이 있는 눈은 그가 을지문덕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을지문덕이 앞으로 나서면서, 철린으로 된 갑옷이 출렁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그는 적진 한 가운데에서도 조금도 주눅 든 빛이 없이 태연했다.
“그대가 을지문덕이오?”
우중문은 여전히 미심쩍었다.
“그렇소. 내가 바로 고구려의 병마원수 을지문덕이오.”
우중문은 앞에 서 있는 을지문덕을 보며 양제의 당부를 떠올렸다.
“이번 전쟁에서 고구려의 국왕과 을지문덕 두 사람만 잡는다면 우리의 승리는 따 논 당상이다”
그만큼 을지문덕이란 이름은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이었고, 수국(隨國)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자가 정말 을지문덕이라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대가 을지문덕이 분명하다면 그냥 둘 수 없다. 여봐라, 당장 저 자를 포박하라!”
우중문의 명령을 듣고 호위병들이 다가서자 을지문덕은 오히려 태연함을 잃지 않으며 준엄하게 호통쳤다.
“나는 대고구려 태왕 폐하의 어명을 받고 왔으니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마라.”
을지문덕을 묶으려고 밧줄로 옭아매려던 수군 병사들은 그의 기백에 눌려 주춤 물러섰다.
“귀국은 어찌하여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우리 나라를 침범했는가? 비록 지난날 양국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이후로 화친을 맺고 선린관계를 유지해온 사이가 아닌가? 이번 사태는 심히 유감스럽지만 우리 폐하께서는 아직도 수나라와의 화목한 관계를 깨뜨리고 싶어 하지 않으시오. 그런 뜻에서 공격을 받아도 방어에만 전념하고 일체 반격을 하지 마라 명하셨소. 그러니 지금이라도 군사를 물려서 돌아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도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소이다. 부디 요하와 평양성에서 당했던 불행한 일들을 잊지 말고 현명하게 처신하시구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을지문덕은 이성에 대한 호소로 시작해서 불행한 사태를 자초하지 말라는 경고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우중문도 그리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고구려가 죄가 없다니, 그런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어디있소? 고구려는 돌궐을 부추겨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소? 이번에는 결코 당하지 않겠소.”
“우리가 돌궐과 연합하여 수국을 공격하려 했다니 말도 안 되오. 이 모두가 서로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니 이쯤에서 체면을 지키고 돌아가시오. 우리 태왕 폐하께서는 귀국이 이대로 군사를 물린다면 이제까지의 잘못을 불문에 부치겠다고 하셨소. 또한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귀국을 방문하실 의향이 있음을 전하라 하셨소이다.”
을지문덕의 말은 단호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정말 고구려의 국왕께서 직접 장안으로 와서 우리 폐하를 알현하시겠다고 하셨소?”
우중문은 을지문덕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처럼 고구려가 고개를 숙인다면 구태여 싸움을 계속할 필요는 없었다. 고구려군의 전력으로 볼 때 수국(隨國)이 꼭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고, 만일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나라의 뿌리까지 흔들릴 수 있었다.
“수군이 국경 밖으로 물러난 것이 확인되면 바로 수국의 도성으로 가실 것이오.”
을지문덕의 확신에 찬 대답은 우중문에게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렇다면 양국의 화평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봅시다.”
우중문은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듯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럼 내 그리 알고 돌아가겠소. 다시 볼 때는 서로 웃을 수 있기를 바라겠소.”
을지문덕이 예를 갖추고 돌아가려 하자, 우문술이 칼을 뽑아 들고 가로 막아섰다.
“폐하의 명령을 벌써 잊었던 말입니까? 내 이 자리에서 저 자를 베지 않는다면 어찌 폐하를 다시 뵐 수 있겠소?”
우문술의 반대가 거세자 우중문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주춤했다.
그때 위무사(慰撫使) 유사룡(劉士龍)이 나섰다.
“자고로 사자(使者)의 목숨은 뺐지 않는 것이 전장에서의 관례입니다. 신의를 버리고 사신을 죽여서 대국의 명성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폐하의 명령이라 하지 않았소?”
“지금은 전시(戰時)입니다. 전시에는 누구보다도 지휘관의 판단이 우선입니다. 만일 을지문덕을 벤다면 모처럼 고구려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게 됩니다.”
양제의 측근인 유사룡의 말이었으므로 우중문은 우문술의 반대를 물리치고 을지문덕을 보내 주었다.
우문술은 진영을 떠나는 을지문덕의 뒷모습을 보며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장(亞將)인 동상포(董相飽)에게 명령해 군사를 거느리고 을지문덕을 추격하게 했다. 이미 이를 예상하고 있던 을지문덕은 진영을 나서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를 수행하던 십여명의 부하들도 후방을 경계하며 뒤를 따랐다. 동상포의 추격병들이 을지문덕 일행을 뒤쫓아 압록수에 도착했을 때 을지문덕은 벌써 강가에 닿아 배에 올라탄 후였다.
동상포는 언덕에 올라 을지문덕에게 황급히 외쳤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원수께서는 잠시 멈추십시오. 우중문 장군께서 고구려의 국왕께 보내는 선물이 있습니다. 돌아오셔서 받아 가시지요.”
그러자 을지문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곧 군사를 이끌고 직접 받으러 갈 것이니 우 장군께는 기다리시라 전하게.”
동상포는 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을지문덕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동상포의 보고를 받은 우문술은 가슴이 답답했다. 을지문덕에게 보기 좋게 우롱을 당한 것이었다. 을지문덕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다니 땅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 통탄할 일이었다.
만약 양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두 죽는 목숨이었다. 이제 유일한 살 길은 한시라도 빨리 압록수를 건너 평양성을 함락시키는 것뿐이었다. 우문술은 짙푸른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 강을 건너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한편 수군의 진영을 살피고 백마산성(白馬山城)으로 돌아온 을지문덕은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저들은 지금 오랜 행군으로 인한 피로와 식량 부족에 따른 굶주림으로 매우 지친 상태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우중문이나 우문술을 비롯한 장수들은 실전경험이 풍부한 용장이고, 삼십만이나 되는 대군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우리로서는 감당해 내기 어렵다. 우리가 이기려면 최대한 적군의 기운을 빼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군을 속일 계첵이 필요하다. 앞으로 저들과 맞붙게 되면 절대 싸움에 이겨서는 안 된다.”
을지문덕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대형(大兄) 이갑정(李岬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저들에게 일부러 져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나는 그들을 평양성의 만찬에 초대하려 한다. 그러려면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필요하겠지. 고이중 장군은 즉시 오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식성으로 떠나라.”
대모달(大模達) 고이중(高利重)은 이미 언질을 받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떠났다. 하지만 다른 장수들은 을지문덕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고이중은 을지문덕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인 만큼 그에게 맡겨진 임무가 중요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저들이 살수(薩水)를 건넌 후에는 맞아 싸우다가 적당한 때를 노려 패배한 척 후퇴하라. 그러면 수군은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금방이라도 우리를 굴복시킬 기세로 평양성으로 달려올 것이다. 때가 되면 그들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을지문덕은 장수들을 하나씩 불러 일일이 지령을 내렸다. 장수들은 명령을 받고 제각기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제 남은 것은 마상창술(馬上槍術)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장수인 모달(模達) 임유(林裕)뿐이었다.
“저에게는 아무 일도 안 주십니까?”
임유가 볼멘소리로 을지문덕에게 물었다.
을지문덕은 은근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임유 장군은 삼천의 군사를 이끌고 살수 상류로 올라가서 통나무와 진흙, 바위, 소가죽 등을 이용해서 제방을 쌓아라. 제방의 중앙에는 통나무로 수문(水門)을 만들고 그 둘레에 소가죽을 대도록 해야 한다. 수군이 평양성에서 후퇴하게 되면 이틀 후에는 살수에 닿을 것이다. 수군 병사들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수문을 파괴하라. 그러면 그놈들을 수장(水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임유가 을지문덕에게 다시 물었다.
“수문을 터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나 물이 미쳐 도달하기 전에 수군이 강을 건너게 되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수국의 군사들이 살수를 건너려면 족히 한두시간은 걸리겠지만 제방을 터트린 후 강물이 수나라 군사들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까지는 반 시간이면 족하다. 장군은 제방을 터트린 다음 강을 따라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을 건너 오는 수군을 각궁으로 사살하라. 한 놈도 살려보내서는 안된다.”
임유는 군사 삼천을 이끌고 살수 상류로 출발했다. 을지문덕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수국의 삼십만 별동대는 무사히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었다.
우문술과 우중문이 이끄는 수국의 삼십만 별동대는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압록수를 건넜다. 강변에 오르자, 백마산성이 눈에 들어왔다. 백마산 골짜기에 의지해서 지어진 둘레가 오 리쯤 되는 작은 산성이었다.
우중문은 몇 천의 군사를 파견해서 성을 치게 했다. 그런데 성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우중문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백마산성을 뒤로하고 남으로 행군을 재촉했다.
수군은 압록수를 건넌 지 이틀 만에 박천을 지나 살수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고구려 군사들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시퍼런 물이 넘실대는 살수를 바라보며 우중문이 말문을 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고구려 군사들은 한 놈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된 듯하오. 혹시 우리가 을지문덕의 함정에 빠진 거나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우문술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살수를 건너면 고구려 군사들이 보일 겁니다”
우중문은 우문술의 말을 듣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군사들에게 뗏목과 부교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수군 병사들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된 행군에 지칠 대로 지친데다가 압록수를 건넌 이후부터는 식사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허기진 상태였다.
장수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군사들을 채찍으로 휘갈겼다. 군사들은 그제야 마지못해 일어나 툴툴거리며 나무를 베고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를 허비했는데도 겨우 이백 척 정도의 뗏목을 만들었을 뿐이였다. 우중문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군사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군사들은 들어라! 이 강만 건너면 산해진미와 금은보화가 가득한 평양성이 보일 것이다. 그러니 어서 힘을 내서 강을 건널 준비를 하자.”
그제야 수군 병사들은 분발하여 뗏목을 띄우고 부교를 가설했다.
수군이 살수를 건너자 고구려 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양성으로 돌아온 을지문덕은 이제 수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군사들을 보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고구려는 국내 사정이 안정되어 있었기에 국경 이외의 성에는 많은 군사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식성 같은 규모가 큰 성에도 군사가 삼천을 넘지 않았다. 비록 을지문덕 휘하의 정예군 사만이 가세하기는 했지만 수국의 대군을 정면으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고이중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30만의 수군 별동대에게 일부러 싸움을 걸었다가 전세가 불리해지면 퇴각하는 유인전(誘引戰)을 거듭하면서 적병들을 평양성 쪽으로 끌어들였다. 식성을 시작으로 청룡산성에 이르기까지 예닐곱 개의 성이 차례로 수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고구려군과 일곱 차례의 교전을 벌여 모두 승리한 우중문은 더 이상 고구려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제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을지문덕은 물론 영양태왕까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을지문덕에게 자신을 기만한 일의 대가가 얼마나 컸던가를 일깨워줄 생각이었다.
거듭되는 승전으로 인해 자만심에 사로잡힌 우중문은 거침없이 진격하여 평양성에서 삼십여리 떨어진 대성산(大成山)의 북쪽 편에 진을 쳤다. 평양성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대성산을 넘어야 하는데, 산이 매우 험할 뿐 아니라 산등성이에는 북쪽에서 침입해 오는 적을 막기 위한 산성이 쌓여져 있었다.
수군(隨軍)은 있는 힘을 다해서 대성산성을 공격했다. 하지만 지형이 험준하고 성곽이 견고해서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그동안 승리의 단물에 취해 있던 수군 병사들은 대성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을지문덕 휘하의 고구려군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많은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 했다. 성이 함락되지 않고 장기전(長期戰)으로 흐를 기미가 보이자, 우중문을 비롯한 수장(隨將)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이미 식량이 바닥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수군은 압록수를 건넌 후 줄곧 승전을 해왔으나 고구려군은 급히 달아나면서도 식량만은 반드시 챙겨갔기에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한나절 동안 줄기차게 산성을 공격했지만 사상자만 늘어날 뿐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게다가 제대로 먹지 못한 군사들은 결국 전의(戰意)를 상실하여 그냥 놓아둬도 제 풀에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를 보다 못한 우문술이 우중문에게 이렇게 권했다.
“더 이상 싸우는 건 무리입니다. 비록 평양성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는 것이 아쉽지만 자칫하면 모두 굶어 죽을 수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좌둔위장군(左屯衛將軍) 신세웅(辛世雄)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쏟으면 성을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까? 물론 아군의 식량난이 심각하지만 조금만 참고 버티면 반드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우후위장군(右侯衛將軍) 왕인공(王仁恭)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압록수를 건넌 이후 아군은 너무도 순조롭게 이곳까지 달려왔습니다. 비록 몇 차례 고구려군의 저항이 있었지만 대성산성(大成山城)을 지키고 있는 고구려군의 강인함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물러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처럼 장수들의 의견이 분분하니 우중문으로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번을 서고 있던 유사룡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고구려 진영에서 사자(使者)를 보내왔습니다.”
좌중이 일순 술렁겨렸다.
우중문은 혹시 항복이라도 청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며 사자를 들이도록 했다.
을지문덕의 명령을 받고 수군 진영으로 온 고구려의 사자는 소형(小兄) 고우총(高于寵)이었다. 그는 막사로 들어와 우중문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저희 병마원수께서 우 장군께 긴히 전하라는 서찰(書札)이 있습니다.”
고우총이 건네주는 봉투를 받아 든 우중문은 곧 봉투를 뜯고 서찰을 펼쳐 보았다. 을지문덕이 직접 쓴 한 편의 시(詩)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神策究天文 신통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에 닿았고 妙算窮地理 신묘한 책략은 땅의 이치마저 통달했네. 戰勝功旣高 싸움에 이겨 공로가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이제 그만 돌아감이 어떠하리요."
언뜻 보면 우중문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그 뜻을 헤아리면 다분히 조롱의 뜻이 담겨 있었다. 우중문은 그 정도 행간(行間)을 읽지 못할 정도로 우둔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찰을 읽고 나서야 그동안 수군(隨軍)이 승승장구(乘勝長驅)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의 뛰어난 통솔력 때문이 아니라 을지문덕의 계책에 놀아난 결과였다. 우중문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다가 마음이 좀 진정된 후, 자신의 군대가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답장을 받아 오라 하시던가?”
우중문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태연한 척 물었다.
“아닙니다. 다만 선물을 함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을지문덕이 보낸 사자인 고우총은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막사 안으로 궤짝 하나를 운반하도록 했다.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우중문을 비롯한 수군 장수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궤짝을 바라보았다.
우중문의 명령을 받은 군사 하나가 궤짝을 열었다. 안을 들여다본 군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군사는 얼굴이 새하얄게 질리고 이를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안에는 마치 살아 있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의 머리와 반듯이 개어 놓은 붉은 깃발이 있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외쳤다.
“저건 내호아(來護兒)의 부장(副長)인 장현욱(蔣鉉旭)이잖아.”
수군(隨軍)에서도 완력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장수였다.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본 수군 장수들은 새삼 고구려군의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용기 있는 군사 하나가 궤짝에 있는 깃발을 펼쳐드니 우익위대장군(右翊衛大將軍) 내호아(來護兒)의 이름과 직책이 씌여 있었다. 그것은 수(隨)의 수군총관(水軍總管)인 내호아의 대장기(大將旗)였던 것이다. 대장기를 빼앗겼다는 것은 완패를 의미했다. 내호아의 패배가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라고 여겼던 수군 장수들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이는 고구려군의 전력이 막강함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계속 이대로 버티다가는 궤짝 안에 있는 장현욱의 꼴이 될 것이라는 무언(無言)의 경고였다. 이제 식량도 없는 처지에, 그것도 적지에서, 감추었던 실력을 비로소 발휘하겠다는 강적(强敵)과 싸우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구려의 사자인 고우총이 떠나자, 우중문은 그 자리에서 전군의 철수를 명령했다. 다른 장수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대성산성에 설치된 유막(惟幕) 안에 있던 을지문덕은 정탐꾼으로부터 수군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전군은 전투를 준비하라. 지금 당장 성문을 열고 나가 우중문의 본진을 때린다!”
병마원수 을지문덕 자신은 정면 공격을 맡고 대모달 고이중은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떠나 적군의 퇴로를 끊고 도망치는 적군을 쳐부순다는 전략을 세웠다.
“자, 숨 돌릴 틈도 주지 말고 들이쳐서 적군을 짓밟아야 한다. 모두 나를 따르라!”
마침내 을지문덕은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2만명의 군사를 인솔하여 계곡 밑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우중문은 왕인공의 군사들을 후위에 남겨 고구려군의 추격을 저지하도록 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형원항(荊元恒)의 부대를 필두로 후퇴하도록 했다. 수군으로서는 시간을 끌수록 불리했기 때문에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정예군인 고구려의 기마병들은 후퇴하는 수군의 후위를 순식간에 뒤쫓아 창과 칼로 찌르고 베어 나갔다. 왕인공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면서 군사들을 규합하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우중문과 우문술을 찾아 목을 베어라!”
선두에 선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사자(獅子)처럼 울부짖으며 장검(長劍)을 휘둘렀다. 그는 적진을 무인지경(無人之境)처럼 누비면서 닥치는 대로 수병(隨兵)들을 무찔렀다. 왕인공은 을지문덕을 알아보고 참사검(斬邪劍)을 높이 쳐들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이 배짱도 좋구나! 내 오늘 반드시 고구려의 병마원수 을지문덕을 베어 무공(武功)을 세우리라.”
을지문덕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며 왕인공을 조롱했다.
“너 따위는 죽여봤자 공연히 칼만 더럽힐 따름이니 어서 길을 비켜라! 나는 오로지 우중문의 수급(首級)을 원한다.”
그러자 왕인공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칼날을 세워 덤벼들었다. 을지문덕은 피묻은 장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왕인공을 밀어붙였다. 10여합을 싸우고 나자 왕인공은 자신의 무예(武藝)가 을지문덕에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당황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앞서 후퇴하던 우중문의 본대도 전방에 나타난 고구려군(高句麗軍)에게 기습을 당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고이중(高利重)이 거느린 고구려 군사들은 수군의 퇴로를 막고 을지문덕의 추격군과 함께 앞뒤에서 수군의 목을 조이며 협공을 펼쳤다.
고구려의 기마병들은 화살을 날리고 장창을 내지르며 도망치는 수병(隨兵)들을 참살했다. 수군 병사들은 고구려의 기마병들을 피해 산으로 달아났다. 이를 발견한 고구려의 도부수(刀斧手)들이 그들의 뒤를 쫓아가 도끼로 머리를 내리쳤다. 여기저기에서 수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고구려군의 집요한 추격에 쫓긴 수군은 어느덧 살수(薩水)에 이르렀다. 우중문은 살수 도하(渡河)를 위해 군사들의 대오를 정비했다. 장마가 끝나도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강물의 수량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건너올 때 만들어 두었던 부교(浮橋)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비바람에 떠내려간 듯합니다.”
우문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당장이라도 고구려군이 추격해올지 모르는 판에 한가하게 부교를 만들고 있을 수도 없잖소?”
우중문은 난감한 얼굴로 강물을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강물이 그리 깊지 않은 것 같소. 얕은 곳을 골라 걸어서 강을 건너도록 합시다.”
“자칫하면 물살에 휩쓸려 가기 십상입니다. 비록 적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군사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부교를 만들어서 건너야 합니다.”
우중문은 우문술의 고지식한 대답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우문술의 말을 듣지 않아서 지금과 같은 난처한 입장에 놓였기 때문에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우문술은 후위의 군사들에게 경계를 철저히 시킨 후에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부교에 쓰일 뗏목을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를 구하러 갔다.
그때 우중문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을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일곱 명 정도 되는 승려들이었다. 승려들은 망설이지 않고 승복(僧服)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러더니 동네 앞개울을 지나듯이 사뿐히 강을 건넜다. 우중문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했다. 언제 고구려군이 나타날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있던 차에 이처럼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길을 발견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중문은 곧 전군에 명해서 승려들이 지나간 쪽으로 강을 건너도록 했다.
먼저 형원항과 왕인공의 부대가 나아가고, 그 뒤를 우중문의 본대가 따랐다. 그 다음에 장근(張瑾)과 신세웅(辛世雄)의 군대가 뒤따랐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 우문술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수군 병사들이 살수를 절반이나 건너가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우문술이 황급히 뛰어가서 말리려고 했지만 닥쳐올 재앙을 막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갑자기 하늘이 뒤집히고 대지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태산을 덮을 만한 물결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오로지 구원의 저편만을 바라보며 몸을 재게 놀리던 수군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교차했다. 경악에 찬 외침이 채 꼬리를 거둘 틈도 없이 잔인한 물살은 그들의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와 놀라서 날뛰는 말들, 수레와 짐들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삶에 대한 집요한 집착조차도 탐욕스런 물살 앞에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수군 병사들은 마지막 남은 힘까지 끌어내어 물살을 헤치고 나오려 애썼다. 하지만 냉정한 물살은 그들의 발목을 잡아채어 아래로 끌어내렸다. 발버둥치던 병사 하나가 마지막 숨을 몰아 내쉬며 사라진 자리 위로 새로운 물결이 덮쳐 왔다. 군마들조차도 헤엄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쓸려 내려갔다. 수병들을 잔뜩 삼킨 강물은 어느새 마른 땅까지 범람하고 있었다. 나무 등걸처럼 떠내려가는 군사들 중에 아직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의 절규가 건너편 언덕까지 메아리쳤다. 요행히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강가 언덕으로 기어오른 군사들은 뒤에서 들리는 참혹한 울부짖음이 자신들을 다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지나 않을까 두려워 떨었다. 그들은 그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이미 탈진해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평양성부터 수군을 뒤쫓아온 고구려 군사들은 살수 남안(南岸)에 도착했다. 그들은 수공작전(水攻作戰)에 참혹하게 죽어가는 수군 병사들을 지켜보았다. 강가에는 미처 강을 건너지 못한 수군 병사들이 어쩔 줄을 모른 채 서성이고 있었다. 고구려 군사들은 부채꼴 모양으로 수군을 포위하면서 궁시(弓矢)를 쏘았다. 엉거주츰했던 수병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가 된 수병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화살 공격이 끝나자 고구려 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아직 남아있는 수군 병사들에게 달려갔다. 수병들은 이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살기 위해 범람하는 강에 뛰어들었지만 악착같이 따라온 고구려군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푸르던 살수는 수병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갔다.
요행히 살수를 건너 강의 북안(北岸)에 안착한 우중문은 참담한 심정으로 무릎을 꺾고 앉았다. 흠뻑 젖은 갑옷에서 쉴 새 없이 물이 떨어졌다. 그때 좌둔위장군 신세웅이 살아남은 휘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우중문에게 다가왔다. 그 역시 몰골이 처참했다. 투구는 온데간데없고 바위에 부딪쳤는지 얼굴에 찢어지고 멍든 상처투성이였다.
“대장군, 지금 이곳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고구려군이 어디서 습격을 해올지 모릅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우중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신세웅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났다. 신세웅은 자신이 끌고 온 말에 우중문을 태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북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언덕 위에서 화살이 소나기처럼 내렸다. 미리 강의 북안에 매복하고 있었던 고구려군이 쏘아대는 화살이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안도하던 수군 병사들은 마치 가시나무처럼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져 갔다. 강물이 덮치기 전에 재빨리 강을 건너 목숨을 부지했던 신세웅의 군사들도 화살 세례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북쪽 강변에 있던 수군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한 고구려군의 지휘관은 바로 임유(林裕)였다. 임유는 을지문덕의 명령에 따라 살수 상류에 만들어 놓은 제방을 무너뜨린 후 군사를 거느리고 강의 북안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임유의 호령이 떨어지자 고구려 군사들은 먹이를 발견한 굶주린 늑대 떼처럼 수군 병사들을 에워싸고 쳐죽이기 시작했다.
임유는 혼전(混戰) 중에 우중문의 대장기를 보더니 군사들을 가로질러 우중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이를 본 신세웅이 전체 길이가 일곱 자나 되는 협도(挾刀)를 비껴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임유는 허공을 향해 장창(長槍)을 휘두르고 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구려의 장수 임유다. 수장(隨將) 우중문(于仲文)은 순순히 말에서 내려 내 창끝 아래 목을 드리우도록 해라.”
신세웅은 비웃으며 받아쳤다.
“어찌 너 따위 무명소졸(無名小卒)이 무엄하게 우리 상장(上將)을 해(害)하려 한단 말이냐? 내 너를 응징하여 예의가 땅에 떨어진 작금의 현실을 바로 잡겠다.”
임유는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적장은 죽게 된 마당에도 끝까지 입만 살아 있었다. 이런 한심한 인물이라면 굳이 긴장하고 싸울 필요도 없었다.
임유의 장창이 바람을 갈랐다. 그러나 신세웅의 협도가 더 빨랐다. 신세웅이 임유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며 저항하는 틈을 타서 우중문은 고구려 군사들 사이를 뚫고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좌우에서 창과 칼이 날았지만 우중문은 조금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파해 나갔다. 그의 뒤로는 아장 두어 명이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임유는 도망치는 우중문을 뒤쫓고 싶었지만 신세웅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바람에 그를 대적하느라 우중문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신세웅은 필사적으로 임유를 가로막으며 그의 머리를 향해 협도를 내리쳤다. 그러나 임유는 신속한 동작으로 창대를 세워 신세웅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반격해 나갔다. 임유의 마상창술(馬上槍術)은 기(奇)와 묘(妙)에 있어서 최상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의 장창은 얇게 찌르는 듯하면 어느새 깊게 찔러 오고, 머리를 내리치는 듯하더니 금방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신세웅은 임유가 마상창술에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싸워 보니 아주 무서운 고수(高手)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마상창술은 단순히 창만 잘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뛰어난 기마술(騎馬術)이 필요했다. 고구려의 무사는 어릴 때부터 말을 달리는 일에 익숙했다. 경당(敬堂)이나 태학(太學)에서 배우는 무예 수업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도 바로 기마술이었다.
임유는 마방감(馬房監)인 아버지로 인해 어릴 때부터 말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그래서 말이 마치 자신의 일부와 같아서 걷는 것보다 말을 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말 위에서 어떤 자세도 가능했다. 말이 달리는 중에 말 배 밑으로 내려가 반대편으로 돌아서 나온다거나, 달리는 말에서 뛰어 다른 말로 옮겨 타는 등의 신기(神技)를 보여 주어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듣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말은 벗이자, 동반자이고 신체의 일부였다.
신세웅이 그런 임유의 능력을 알 턱이 없었다. 그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저돌적인 공격으로 일관했다. 신세웅은 협도를 옆으로 비스듬히 세워 양손으로 꼬나 잡은 후 임유의 오른편을 파고들었다. 임유는 순간 창걸이에 창을 걸고 몸을 수그려 말의 왼쪽 옆구리에 붙어서 이를 피한 후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환도(環刀)가 들려 있었다. 신세웅이 피할 사이도 없이 임유의 칼날은 정확하게 신세웅의 목을 베었다.
신세웅은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저 섬뜩한 기운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목 언저리에 그어진 선을 따라 피가 스며나더니 울대뼈부터 피가 솟구쳐 올라 주변으로 퍼져 갔다. 마치 피기둥의 행렬처럼 보였다. 신세웅은 피를 보고서야 공포에 휩싸였다. 차츰 그의 몸이 옆으로 쏠리더니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거구가 떨어지자, 대지에 흙먼지가 무성하게 피어올랐다.
임유는 대지에 안겨 몸을 끄덕이고 있는 적장을 돌아보았다. 그의 몸은 이제 날짐승과 들짐승들의 성찬으로 변할 터였다. 먼 타국에 있는 짐승들에게까지 육신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장수(將帥)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임유는 비애감인지 회한(悔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떨쳐 버리기 위해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달렸다. 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병들의 시체가 강북의 벌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살수에서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우중문은 수풀이 우거진 백마산 기슭에 이르러 패잔병을 수습한 우문술과 형원항을 만나 가까스로 탁 트인 강가에 도착했다. 우문술의 부장인 조효재(曺孝材)가 압록수 근방을 샅샅이 수색한 끝에 어디서 빼앗았는지 거룻배 세 척을 구해 강안으로 끌고 왔다. 장수고 군졸이고 가릴 여유가 없이 천방지축(天方地軸) 앞을 다투어 배 위에 올랐다. 하지만 강을 건넌 후에도 요동으로의 귀환길 역시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이미 식량이 바닥난 수군은 풀뿌리를 캐어 먹거나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연명을 해야 했다. 게다가 이제는 고구려의 성들을 피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올 때보다 더욱 어려운 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고구려 군사들은 굶주림과 무리한 강행군에 지친 수국 군사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수군 병사들은 목숨을 건지고자 장수들의 눈을 피해 진영을 이탈해 나갔다. 처음에는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행군이 계속될수록 그 인원이 늘어났다. 나중에는 장수들을 포함해서 부대원들이 모두 이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우중문의 군대가 궁장령을 넘어 요동의 육합궁에 당도했을 때는 남아있는 인원이 겨우 2천 7백여명에 불과했다. 30만이 넘는 수군 병사들이 죽거나 포로가 된 것이었다. 전쟁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참패였다.
양제는 패배하고 돌아온 장수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분기가 탱천한 양제는 을지문덕을 놓아준 유사룡을 당장 처형하였고 우중문과 우문술 두 장수의 목에 칼을 씌우고 쇠사슬로 온몸을 꽁꽁 묶어서 감옥에 처넣었다. 도읍인 장안으로 돌아간 다음 그 죄를 물을 작정이었다.
1812년 6월 나폴레옹 1세(Napoleon Bonaparte)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러시아를 침략했을 때 러시아군의 총사령관인 쿠투조프(Mikhail lllarionovich, Knyaz Kutuzov)는 프랑스군을 러시아 내륙 깊숙이 끌어들여 보급선을 차단하고 말로야슬로베츠 전투(Battle of Maloyaroslavets)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승리를 거두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역시 우중문이 이끄는 수의 대군을 평양성 근처까지 유인하여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을지문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적군을 끌어들여 전과를 올린 매우 뛰어난 전략가였다.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의『동사강목(東史綱目)』은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살수대첩(薩水大捷)에 대해 이렇게 칭송했다.
‘예로부터 전쟁의 승패는 군병력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수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여 그 강성한 군사력과 부강한 국력이 고금을 통하여 제일이었으나, 을지문덕 장군이 기회를 틈타 전력을 다해 적을 공격하기를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분지르고 썩은 나무 등걸을 뽑아 제치듯 하여 그들을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외적들이 후세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를 함부로 침범하지 못한 것은 을지문덕 장군이 남긴 공적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의『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은 그의 탁월한 용병술(用兵術)과 위대한 전공(戰功)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무릇 동서고금(東西古今)에 각국의 사기(史記)와 항간의 이야기들은 그 수가 극히 많아서 그것을 기록해 놓은 책들을 운반하는 소가 땀을 흘리고, 그 책들을 한곳에 쌓아놓으면 천장에 닿을 정도이지만, 그 속에 나오는 수많은 전쟁에 관한 기록과 이야기들 중에서 적은 수의 군사로써 많은 군사들을 격퇴하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약한 군사로써 강한 군사를 대적하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일국의 대신으로서 일백만 명 군사의 적진에 출입하여 정탐하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 있던가?
약한 군사로써 외롭게 떨어져 있는 성을 지키면서 사면에서 쳐들어오는 강한 적들을 막아 홀로 우뚝 서서 능히 굴복하지 않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여러 번이나 강한 적들을 그림자 하나도 돌아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어린 아이는 그 이름을 듣고 울음을 그치고, 초목(草木)들조차 그 이름을 알고 있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안으로는 정치와 교화(敎化)에 힘쓰고 밖으로는 적국의 침략을 막음으로써, 하나의 몸으로 장수(將帥)와 재상(宰相)의 직책을 겸임하였으되 그 행동이 편안하고 한가하여 음성과 안색에 변함없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땅도 좁고 인구도 적은 나라로서 여러 차례 전쟁을 하면서도 백성들의 마음이 감복하여 원망하고 배반하는 자 하나 나오지 않고, 모두들 자기 한 몸의 뼈와 살과 피를 우리 상공(相公)께서 계획하시는 일에 바치겠다고 하게 만들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그 후세 사람들이 만약 그의 머리털 하나만큼만 닮더라도 그 나라의 독립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한두 마디의 말만 잘 거두어 간직하더라도 그 나라의 역사를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니, 을지문덕이란 사람은 우리 대동국(大東國) 4천년 역사에서 유일한 위인(偉人)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전세계 각국에도 그 짝이 드물도다.’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에는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인 우재(吁齋) 조준(趙浚)이 명사(明使) 축맹(祝盟)을 데리고 안주(安州)에 있는 백상루(白相樓)에 올라가 청천강(淸川江)을 굽어보며 이런 시(詩)를 읊었다는 기록이 있다.
"薩水湯湯庭碧虛 살수의 강물 출렁출렁 푸른 하늘 잠겼는데 隋兵百萬化爲魚 아직도 나무꾼과 어부들 사이에는 전해오는 말이 있다오. 至今留得漁樵語 일백만의 수나라 군사들 물고기 밥 되어 不滿征夫一等餘 우리에게는 비웃음거리밖에 안 되네"
『고구려 막리지 을지문덕 원수 평전』 ⑾
● 전쟁사(戰爭史)에 길이 빛날 살수대첩(薩水大捷)
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 등이 이끄는 30만 5천명의 수군(隨軍) 별동대(別動隊)는 평양성(平壤城)으로 직공하라는 양제(煬帝)의 특별명령을 받고 새로운 각오로 요동을 출발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진군하는 도중 고구려군의 완강한 차단작전(遮斷作戰)에 시달려야 했다. 우중문의 부대는 평양으로 향하는 아래쪽 길인 낙랑도(樂浪道)로 진출하여 지금의 요령성 수암현에 있는 오골성(烏骨城)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중문은 약한 군마 수천 기를 맨 끝에 세우고 앞에는 정기(精騎)를 거느렸다. 고구려 군사들이 후방에서 기습하며 치중대(輜重隊)를 습격하자 우중문은 정기를 돌려 고구려의 유격대를 물리쳤다. 우중문의 부대는 치중대에 손상을 입었지만 다른 군단에서는 이미 더 많은 타격을 입었다.
백일치의 식량과 무기, 군수장비와 천막까지 합치면 병사 하나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곡식 3석과 맞먹었다. 더운 여름에 이런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몇 천리를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고된 행군이었다. 병사들은 무게를 견디다 못해 몰래 식량을 버렸다. 앞으로 찾아올 굶주림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장 짓누르고 있는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우중문을 비롯한 장수들은 이를 막기 위해 군량을 버리면 참수형(斬首刑)에 처한다는 엄격한 군령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군이 압록강에 닿을 때쯤에는 그들의 식량은 보름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심각한 군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에서 먹을거리를 찾았지만, 이미 을지문덕의 명령에 의해서 백성들이 깊은 산이나 성으로 피산하면서 식량이 될만한 것은 곡식 한 톨조차도 거두어 간 이후였다. 아무리 용맹스러운 군사들이라고 해도 식량이 떨어지면 싸울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었다. 이처럼 사기가 떨어진 상태라면 앞으로 벌어질 전투의 결과는 뻔했다.
군사들이 취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문술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우중문의 막사에 들어갔다. 우중문은 밤새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는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장군, 이제 식량이 보름 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고르고 고른 삼십만의 정예 군사를 이끌고 와서 아무런 전과없이 돌아간다면 폐하의 노여움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소? 차라리 이곳에서 칼을 물고 자결하는 것이 나으리다.”
우중문의 말이 격하게 튀어나왔다. 그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한번 싸워 보지도 않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제 압록수만 건너면 평양성이 그리 멀지 않소이다. 단숨에 달려가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그들이 비축해 둔 식량을 빼앗으면 군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소이다.”
우중문은 애써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문술은 상황을 그리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현재 고구려군의 중심에는 을지문덕이 있지 않은가? 그의 신출귀몰한 지략은 이미 수국의 조정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문술로서는 그의 존재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믿었던 내호아의 수군이 평양성 전투에서 패하여, 해포로 물러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평양성의 방비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때 내호아는 주법상의 도움으로 간신히 평양성에서 탈출한 뒤, 해포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이는 내호아가 성급하게 굴다가 고구려인들의 계책에 넘어갔기 때문이요. 더는 왈가왈부하지 맙시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대나 나나 모두 죽는 목숨이오.”
우중문의 비장한 한마디에 우문술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고구려군과 맞붙어 싸우는 것이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정오가 되자, 우중문은 자신의 막사로 장수들을 소집했다.
“내일까지는 군사들을 충분히 쉬게 하시오. 모래 날이 밝으면 압록수를 건너 평양성으로 진군합시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풍요로운 평양성에서 마음껏 약탈을 즐길 수 있다고 군사들을 독려해 주시오. 절대 군사들 앞에서 불안한 내색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오.”
장수들은 자못 비장하게 명을 받았다. 우문술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눈을 내리깔고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호위병이 뛰어 들어오더니 아뢰었다.
“지금 진영 앞에 자신을 고구려의 병마원수 을지문덕이라고 칭(稱)하는 자가 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좌중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고구려의 막리지(莫離支)이자 병마원수(兵馬元帥)로서 고구려 백성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호랑이 소굴이나 다름 없는 수군 진영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우중문 역시 전혀 뜻밖의 일에 의심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적정(敵情)을 살피기 위해서 을지문덕을 가장한 인물을 보냈을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이리 위험한 곳에 제 발로 나타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짜든 진짜든 확인을 해 볼 필요는 있었다.
우중문은 호위병에게 명해 을지문덕이라 칭하는 자를 데리고 오라 했다. 잠시 후 기품과 영민함이 느껴지는 고구려의 장수 하나가 들어왔다. 투구 아래 단아한 콧날과 어우러지는 수염, 그리고 깊고 흡인력이 있는 눈은 그가 을지문덕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을지문덕이 앞으로 나서면서, 철린으로 된 갑옷이 출렁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그는 적진 한 가운데에서도 조금도 주눅 든 빛이 없이 태연했다.
“그대가 을지문덕이오?”
우중문은 여전히 미심쩍었다.
“그렇소. 내가 바로 고구려의 병마원수 을지문덕이오.”
우중문은 앞에 서 있는 을지문덕을 보며 양제의 당부를 떠올렸다.
“이번 전쟁에서 고구려의 국왕과 을지문덕 두 사람만 잡는다면 우리의 승리는 따 논 당상이다”
그만큼 을지문덕이란 이름은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이었고, 수국(隨國)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자가 정말 을지문덕이라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대가 을지문덕이 분명하다면 그냥 둘 수 없다. 여봐라, 당장 저 자를 포박하라!”
우중문의 명령을 듣고 호위병들이 다가서자 을지문덕은 오히려 태연함을 잃지 않으며 준엄하게 호통쳤다.
“나는 대고구려 태왕 폐하의 어명을 받고 왔으니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마라.”
을지문덕을 묶으려고 밧줄로 옭아매려던 수군 병사들은 그의 기백에 눌려 주춤 물러섰다.
“귀국은 어찌하여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우리 나라를 침범했는가? 비록 지난날 양국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이후로 화친을 맺고 선린관계를 유지해온 사이가 아닌가? 이번 사태는 심히 유감스럽지만 우리 폐하께서는 아직도 수나라와의 화목한 관계를 깨뜨리고 싶어 하지 않으시오. 그런 뜻에서 공격을 받아도 방어에만 전념하고 일체 반격을 하지 마라 명하셨소. 그러니 지금이라도 군사를 물려서 돌아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도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소이다. 부디 요하와 평양성에서 당했던 불행한 일들을 잊지 말고 현명하게 처신하시구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을지문덕은 이성에 대한 호소로 시작해서 불행한 사태를 자초하지 말라는 경고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우중문도 그리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고구려가 죄가 없다니, 그런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어디있소? 고구려는 돌궐을 부추겨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소? 이번에는 결코 당하지 않겠소.”
“우리가 돌궐과 연합하여 수국을 공격하려 했다니 말도 안 되오. 이 모두가 서로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니 이쯤에서 체면을 지키고 돌아가시오. 우리 태왕 폐하께서는 귀국이 이대로 군사를 물린다면 이제까지의 잘못을 불문에 부치겠다고 하셨소. 또한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귀국을 방문하실 의향이 있음을 전하라 하셨소이다.”
을지문덕의 말은 단호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정말 고구려의 국왕께서 직접 장안으로 와서 우리 폐하를 알현하시겠다고 하셨소?”
우중문은 을지문덕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처럼 고구려가 고개를 숙인다면 구태여 싸움을 계속할 필요는 없었다. 고구려군의 전력으로 볼 때 수국(隨國)이 꼭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고, 만일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나라의 뿌리까지 흔들릴 수 있었다.
“수군이 국경 밖으로 물러난 것이 확인되면 바로 수국의 도성으로 가실 것이오.”
을지문덕의 확신에 찬 대답은 우중문에게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렇다면 양국의 화평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봅시다.”
우중문은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듯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럼 내 그리 알고 돌아가겠소. 다시 볼 때는 서로 웃을 수 있기를 바라겠소.”
을지문덕이 예를 갖추고 돌아가려 하자, 우문술이 칼을 뽑아 들고 가로 막아섰다.
“폐하의 명령을 벌써 잊었던 말입니까? 내 이 자리에서 저 자를 베지 않는다면 어찌 폐하를 다시 뵐 수 있겠소?”
우문술의 반대가 거세자 우중문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주춤했다.
그때 위무사(慰撫使) 유사룡(劉士龍)이 나섰다.
“자고로 사자(使者)의 목숨은 뺐지 않는 것이 전장에서의 관례입니다. 신의를 버리고 사신을 죽여서 대국의 명성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폐하의 명령이라 하지 않았소?”
“지금은 전시(戰時)입니다. 전시에는 누구보다도 지휘관의 판단이 우선입니다. 만일 을지문덕을 벤다면 모처럼 고구려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게 됩니다.”
양제의 측근인 유사룡의 말이었으므로 우중문은 우문술의 반대를 물리치고 을지문덕을 보내 주었다.
우문술은 진영을 떠나는 을지문덕의 뒷모습을 보며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장(亞將)인 동상포(董相飽)에게 명령해 군사를 거느리고 을지문덕을 추격하게 했다. 이미 이를 예상하고 있던 을지문덕은 진영을 나서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를 수행하던 십여명의 부하들도 후방을 경계하며 뒤를 따랐다. 동상포의 추격병들이 을지문덕 일행을 뒤쫓아 압록수에 도착했을 때 을지문덕은 벌써 강가에 닿아 배에 올라탄 후였다.
동상포는 언덕에 올라 을지문덕에게 황급히 외쳤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원수께서는 잠시 멈추십시오. 우중문 장군께서 고구려의 국왕께 보내는 선물이 있습니다. 돌아오셔서 받아 가시지요.”
그러자 을지문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곧 군사를 이끌고 직접 받으러 갈 것이니 우 장군께는 기다리시라 전하게.”
동상포는 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을지문덕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동상포의 보고를 받은 우문술은 가슴이 답답했다. 을지문덕에게 보기 좋게 우롱을 당한 것이었다. 을지문덕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다니 땅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 통탄할 일이었다.
만약 양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두 죽는 목숨이었다. 이제 유일한 살 길은 한시라도 빨리 압록수를 건너 평양성을 함락시키는 것뿐이었다. 우문술은 짙푸른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 강을 건너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한편 수군의 진영을 살피고 백마산성(白馬山城)으로 돌아온 을지문덕은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저들은 지금 오랜 행군으로 인한 피로와 식량 부족에 따른 굶주림으로 매우 지친 상태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우중문이나 우문술을 비롯한 장수들은 실전경험이 풍부한 용장이고, 삼십만이나 되는 대군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우리로서는 감당해 내기 어렵다. 우리가 이기려면 최대한 적군의 기운을 빼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군을 속일 계첵이 필요하다. 앞으로 저들과 맞붙게 되면 절대 싸움에 이겨서는 안 된다.”
을지문덕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대형(大兄) 이갑정(李岬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저들에게 일부러 져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나는 그들을 평양성의 만찬에 초대하려 한다. 그러려면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필요하겠지. 고이중 장군은 즉시 오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식성으로 떠나라.”
대모달(大模達) 고이중(高利重)은 이미 언질을 받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떠났다. 하지만 다른 장수들은 을지문덕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고이중은 을지문덕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인 만큼 그에게 맡겨진 임무가 중요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저들이 살수(薩水)를 건넌 후에는 맞아 싸우다가 적당한 때를 노려 패배한 척 후퇴하라. 그러면 수군은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금방이라도 우리를 굴복시킬 기세로 평양성으로 달려올 것이다. 때가 되면 그들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을지문덕은 장수들을 하나씩 불러 일일이 지령을 내렸다. 장수들은 명령을 받고 제각기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제 남은 것은 마상창술(馬上槍術)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장수인 모달(模達) 임유(林裕)뿐이었다.
“저에게는 아무 일도 안 주십니까?”
임유가 볼멘소리로 을지문덕에게 물었다.
을지문덕은 은근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임유 장군은 삼천의 군사를 이끌고 살수 상류로 올라가서 통나무와 진흙, 바위, 소가죽 등을 이용해서 제방을 쌓아라. 제방의 중앙에는 통나무로 수문(水門)을 만들고 그 둘레에 소가죽을 대도록 해야 한다. 수군이 평양성에서 후퇴하게 되면 이틀 후에는 살수에 닿을 것이다. 수군 병사들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수문을 파괴하라. 그러면 그놈들을 수장(水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임유가 을지문덕에게 다시 물었다.
“수문을 터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나 물이 미쳐 도달하기 전에 수군이 강을 건너게 되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수국의 군사들이 살수를 건너려면 족히 한두시간은 걸리겠지만 제방을 터트린 후 강물이 수나라 군사들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까지는 반 시간이면 족하다. 장군은 제방을 터트린 다음 강을 따라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을 건너 오는 수군을 각궁으로 사살하라. 한 놈도 살려보내서는 안된다.”
임유는 군사 삼천을 이끌고 살수 상류로 출발했다. 을지문덕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수국의 삼십만 별동대는 무사히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었다.
우문술과 우중문이 이끄는 수국의 삼십만 별동대는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압록수를 건넜다. 강변에 오르자, 백마산성이 눈에 들어왔다. 백마산 골짜기에 의지해서 지어진 둘레가 오 리쯤 되는 작은 산성이었다.
우중문은 몇 천의 군사를 파견해서 성을 치게 했다. 그런데 성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우중문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백마산성을 뒤로하고 남으로 행군을 재촉했다.
수군은 압록수를 건넌 지 이틀 만에 박천을 지나 살수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고구려 군사들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시퍼런 물이 넘실대는 살수를 바라보며 우중문이 말문을 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고구려 군사들은 한 놈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된 듯하오. 혹시 우리가 을지문덕의 함정에 빠진 거나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우문술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살수를 건너면 고구려 군사들이 보일 겁니다”
우중문은 우문술의 말을 듣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군사들에게 뗏목과 부교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수군 병사들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된 행군에 지칠 대로 지친데다가 압록수를 건넌 이후부터는 식사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허기진 상태였다.
장수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군사들을 채찍으로 휘갈겼다. 군사들은 그제야 마지못해 일어나 툴툴거리며 나무를 베고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를 허비했는데도 겨우 이백 척 정도의 뗏목을 만들었을 뿐이였다. 우중문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군사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군사들은 들어라! 이 강만 건너면 산해진미와 금은보화가 가득한 평양성이 보일 것이다. 그러니 어서 힘을 내서 강을 건널 준비를 하자.”
그제야 수군 병사들은 분발하여 뗏목을 띄우고 부교를 가설했다.
수군이 살수를 건너자 고구려 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양성으로 돌아온 을지문덕은 이제 수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군사들을 보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고구려는 국내 사정이 안정되어 있었기에 국경 이외의 성에는 많은 군사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식성 같은 규모가 큰 성에도 군사가 삼천을 넘지 않았다. 비록 을지문덕 휘하의 정예군 사만이 가세하기는 했지만 수국의 대군을 정면으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고이중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30만의 수군 별동대에게 일부러 싸움을 걸었다가 전세가 불리해지면 퇴각하는 유인전(誘引戰)을 거듭하면서 적병들을 평양성 쪽으로 끌어들였다. 식성을 시작으로 청룡산성에 이르기까지 예닐곱 개의 성이 차례로 수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고구려군과 일곱 차례의 교전을 벌여 모두 승리한 우중문은 더 이상 고구려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제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을지문덕은 물론 영양태왕까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을지문덕에게 자신을 기만한 일의 대가가 얼마나 컸던가를 일깨워줄 생각이었다.
거듭되는 승전으로 인해 자만심에 사로잡힌 우중문은 거침없이 진격하여 평양성에서 삼십여리 떨어진 대성산(大成山)의 북쪽 편에 진을 쳤다. 평양성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대성산을 넘어야 하는데, 산이 매우 험할 뿐 아니라 산등성이에는 북쪽에서 침입해 오는 적을 막기 위한 산성이 쌓여져 있었다.
수군(隨軍)은 있는 힘을 다해서 대성산성을 공격했다. 하지만 지형이 험준하고 성곽이 견고해서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그동안 승리의 단물에 취해 있던 수군 병사들은 대성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을지문덕 휘하의 고구려군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많은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 했다. 성이 함락되지 않고 장기전(長期戰)으로 흐를 기미가 보이자, 우중문을 비롯한 수장(隨將)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이미 식량이 바닥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수군은 압록수를 건넌 후 줄곧 승전을 해왔으나 고구려군은 급히 달아나면서도 식량만은 반드시 챙겨갔기에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한나절 동안 줄기차게 산성을 공격했지만 사상자만 늘어날 뿐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게다가 제대로 먹지 못한 군사들은 결국 전의(戰意)를 상실하여 그냥 놓아둬도 제 풀에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를 보다 못한 우문술이 우중문에게 이렇게 권했다.
“더 이상 싸우는 건 무리입니다. 비록 평양성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는 것이 아쉽지만 자칫하면 모두 굶어 죽을 수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좌둔위장군(左屯衛將軍) 신세웅(辛世雄)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쏟으면 성을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까? 물론 아군의 식량난이 심각하지만 조금만 참고 버티면 반드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우후위장군(右侯衛將軍) 왕인공(王仁恭)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압록수를 건넌 이후 아군은 너무도 순조롭게 이곳까지 달려왔습니다. 비록 몇 차례 고구려군의 저항이 있었지만 대성산성(大成山城)을 지키고 있는 고구려군의 강인함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물러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처럼 장수들의 의견이 분분하니 우중문으로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번을 서고 있던 유사룡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고구려 진영에서 사자(使者)를 보내왔습니다.”
좌중이 일순 술렁겨렸다.
우중문은 혹시 항복이라도 청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며 사자를 들이도록 했다.
을지문덕의 명령을 받고 수군 진영으로 온 고구려의 사자는 소형(小兄) 고우총(高于寵)이었다. 그는 막사로 들어와 우중문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저희 병마원수께서 우 장군께 긴히 전하라는 서찰(書札)이 있습니다.”
고우총이 건네주는 봉투를 받아 든 우중문은 곧 봉투를 뜯고 서찰을 펼쳐 보았다. 을지문덕이 직접 쓴 한 편의 시(詩)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神策究天文 신통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에 닿았고
妙算窮地理 신묘한 책략은 땅의 이치마저 통달했네.
戰勝功旣高 싸움에 이겨 공로가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이제 그만 돌아감이 어떠하리요."
언뜻 보면 우중문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그 뜻을 헤아리면 다분히 조롱의 뜻이 담겨 있었다. 우중문은 그 정도 행간(行間)을 읽지 못할 정도로 우둔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찰을 읽고 나서야 그동안 수군(隨軍)이 승승장구(乘勝長驅)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의 뛰어난 통솔력 때문이 아니라 을지문덕의 계책에 놀아난 결과였다. 우중문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다가 마음이 좀 진정된 후, 자신의 군대가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답장을 받아 오라 하시던가?”
우중문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태연한 척 물었다.
“아닙니다. 다만 선물을 함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을지문덕이 보낸 사자인 고우총은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막사 안으로 궤짝 하나를 운반하도록 했다.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우중문을 비롯한 수군 장수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궤짝을 바라보았다.
우중문의 명령을 받은 군사 하나가 궤짝을 열었다. 안을 들여다본 군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군사는 얼굴이 새하얄게 질리고 이를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안에는 마치 살아 있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의 머리와 반듯이 개어 놓은 붉은 깃발이 있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외쳤다.
“저건 내호아(來護兒)의 부장(副長)인 장현욱(蔣鉉旭)이잖아.”
수군(隨軍)에서도 완력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장수였다.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본 수군 장수들은 새삼 고구려군의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용기 있는 군사 하나가 궤짝에 있는 깃발을 펼쳐드니 우익위대장군(右翊衛大將軍) 내호아(來護兒)의 이름과 직책이 씌여 있었다. 그것은 수(隨)의 수군총관(水軍總管)인 내호아의 대장기(大將旗)였던 것이다. 대장기를 빼앗겼다는 것은 완패를 의미했다. 내호아의 패배가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라고 여겼던 수군 장수들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이는 고구려군의 전력이 막강함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계속 이대로 버티다가는 궤짝 안에 있는 장현욱의 꼴이 될 것이라는 무언(無言)의 경고였다. 이제 식량도 없는 처지에, 그것도 적지에서, 감추었던 실력을 비로소 발휘하겠다는 강적(强敵)과 싸우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구려의 사자인 고우총이 떠나자, 우중문은 그 자리에서 전군의 철수를 명령했다. 다른 장수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대성산성에 설치된 유막(惟幕) 안에 있던 을지문덕은 정탐꾼으로부터 수군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전군은 전투를 준비하라. 지금 당장 성문을 열고 나가 우중문의 본진을 때린다!”
병마원수 을지문덕 자신은 정면 공격을 맡고 대모달 고이중은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떠나 적군의 퇴로를 끊고 도망치는 적군을 쳐부순다는 전략을 세웠다.
“자, 숨 돌릴 틈도 주지 말고 들이쳐서 적군을 짓밟아야 한다. 모두 나를 따르라!”
마침내 을지문덕은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2만명의 군사를 인솔하여 계곡 밑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우중문은 왕인공의 군사들을 후위에 남겨 고구려군의 추격을 저지하도록 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형원항(荊元恒)의 부대를 필두로 후퇴하도록 했다. 수군으로서는 시간을 끌수록 불리했기 때문에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정예군인 고구려의 기마병들은 후퇴하는 수군의 후위를 순식간에 뒤쫓아 창과 칼로 찌르고 베어 나갔다. 왕인공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면서 군사들을 규합하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우중문과 우문술을 찾아 목을 베어라!”
선두에 선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사자(獅子)처럼 울부짖으며 장검(長劍)을 휘둘렀다. 그는 적진을 무인지경(無人之境)처럼 누비면서 닥치는 대로 수병(隨兵)들을 무찔렀다. 왕인공은 을지문덕을 알아보고 참사검(斬邪劍)을 높이 쳐들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이 배짱도 좋구나! 내 오늘 반드시 고구려의 병마원수 을지문덕을 베어 무공(武功)을 세우리라.”
을지문덕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며 왕인공을 조롱했다.
“너 따위는 죽여봤자 공연히 칼만 더럽힐 따름이니 어서 길을 비켜라! 나는 오로지 우중문의 수급(首級)을 원한다.”
그러자 왕인공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칼날을 세워 덤벼들었다. 을지문덕은 피묻은 장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왕인공을 밀어붙였다. 10여합을 싸우고 나자 왕인공은 자신의 무예(武藝)가 을지문덕에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당황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앞서 후퇴하던 우중문의 본대도 전방에 나타난 고구려군(高句麗軍)에게 기습을 당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고이중(高利重)이 거느린 고구려 군사들은 수군의 퇴로를 막고 을지문덕의 추격군과 함께 앞뒤에서 수군의 목을 조이며 협공을 펼쳤다.
고구려의 기마병들은 화살을 날리고 장창을 내지르며 도망치는 수병(隨兵)들을 참살했다. 수군 병사들은 고구려의 기마병들을 피해 산으로 달아났다. 이를 발견한 고구려의 도부수(刀斧手)들이 그들의 뒤를 쫓아가 도끼로 머리를 내리쳤다. 여기저기에서 수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고구려군의 집요한 추격에 쫓긴 수군은 어느덧 살수(薩水)에 이르렀다. 우중문은 살수 도하(渡河)를 위해 군사들의 대오를 정비했다. 장마가 끝나도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강물의 수량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건너올 때 만들어 두었던 부교(浮橋)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비바람에 떠내려간 듯합니다.”
우문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당장이라도 고구려군이 추격해올지 모르는 판에 한가하게 부교를 만들고 있을 수도 없잖소?”
우중문은 난감한 얼굴로 강물을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강물이 그리 깊지 않은 것 같소. 얕은 곳을 골라 걸어서 강을 건너도록 합시다.”
“자칫하면 물살에 휩쓸려 가기 십상입니다. 비록 적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군사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부교를 만들어서 건너야 합니다.”
우중문은 우문술의 고지식한 대답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우문술의 말을 듣지 않아서 지금과 같은 난처한 입장에 놓였기 때문에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우문술은 후위의 군사들에게 경계를 철저히 시킨 후에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부교에 쓰일 뗏목을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를 구하러 갔다.
그때 우중문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을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일곱 명 정도 되는 승려들이었다. 승려들은 망설이지 않고 승복(僧服)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러더니 동네 앞개울을 지나듯이 사뿐히 강을 건넜다. 우중문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했다. 언제 고구려군이 나타날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있던 차에 이처럼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길을 발견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중문은 곧 전군에 명해서 승려들이 지나간 쪽으로 강을 건너도록 했다.
먼저 형원항과 왕인공의 부대가 나아가고, 그 뒤를 우중문의 본대가 따랐다. 그 다음에 장근(張瑾)과 신세웅(辛世雄)의 군대가 뒤따랐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 우문술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수군 병사들이 살수를 절반이나 건너가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우문술이 황급히 뛰어가서 말리려고 했지만 닥쳐올 재앙을 막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갑자기 하늘이 뒤집히고 대지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태산을 덮을 만한 물결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오로지 구원의 저편만을 바라보며 몸을 재게 놀리던 수군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교차했다. 경악에 찬 외침이 채 꼬리를 거둘 틈도 없이 잔인한 물살은 그들의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와 놀라서 날뛰는 말들, 수레와 짐들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삶에 대한 집요한 집착조차도 탐욕스런 물살 앞에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수군 병사들은 마지막 남은 힘까지 끌어내어 물살을 헤치고 나오려 애썼다. 하지만 냉정한 물살은 그들의 발목을 잡아채어 아래로 끌어내렸다. 발버둥치던 병사 하나가 마지막 숨을 몰아 내쉬며 사라진 자리 위로 새로운 물결이 덮쳐 왔다. 군마들조차도 헤엄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쓸려 내려갔다. 수병들을 잔뜩 삼킨 강물은 어느새 마른 땅까지 범람하고 있었다. 나무 등걸처럼 떠내려가는 군사들 중에 아직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의 절규가 건너편 언덕까지 메아리쳤다. 요행히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강가 언덕으로 기어오른 군사들은 뒤에서 들리는 참혹한 울부짖음이 자신들을 다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지나 않을까 두려워 떨었다. 그들은 그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이미 탈진해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평양성부터 수군을 뒤쫓아온 고구려 군사들은 살수 남안(南岸)에 도착했다. 그들은 수공작전(水攻作戰)에 참혹하게 죽어가는 수군 병사들을 지켜보았다. 강가에는 미처 강을 건너지 못한 수군 병사들이 어쩔 줄을 모른 채 서성이고 있었다. 고구려 군사들은 부채꼴 모양으로 수군을 포위하면서 궁시(弓矢)를 쏘았다. 엉거주츰했던 수병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가 된 수병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화살 공격이 끝나자 고구려 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아직 남아있는 수군 병사들에게 달려갔다. 수병들은 이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살기 위해 범람하는 강에 뛰어들었지만 악착같이 따라온 고구려군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푸르던 살수는 수병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갔다.
요행히 살수를 건너 강의 북안(北岸)에 안착한 우중문은 참담한 심정으로 무릎을 꺾고 앉았다. 흠뻑 젖은 갑옷에서 쉴 새 없이 물이 떨어졌다. 그때 좌둔위장군 신세웅이 살아남은 휘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우중문에게 다가왔다. 그 역시 몰골이 처참했다. 투구는 온데간데없고 바위에 부딪쳤는지 얼굴에 찢어지고 멍든 상처투성이였다.
“대장군, 지금 이곳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고구려군이 어디서 습격을 해올지 모릅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우중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신세웅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났다. 신세웅은 자신이 끌고 온 말에 우중문을 태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북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언덕 위에서 화살이 소나기처럼 내렸다. 미리 강의 북안에 매복하고 있었던 고구려군이 쏘아대는 화살이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안도하던 수군 병사들은 마치 가시나무처럼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져 갔다. 강물이 덮치기 전에 재빨리 강을 건너 목숨을 부지했던 신세웅의 군사들도 화살 세례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북쪽 강변에 있던 수군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한 고구려군의 지휘관은 바로 임유(林裕)였다. 임유는 을지문덕의 명령에 따라 살수 상류에 만들어 놓은 제방을 무너뜨린 후 군사를 거느리고 강의 북안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임유의 호령이 떨어지자 고구려 군사들은 먹이를 발견한 굶주린 늑대 떼처럼 수군 병사들을 에워싸고 쳐죽이기 시작했다.
임유는 혼전(混戰) 중에 우중문의 대장기를 보더니 군사들을 가로질러 우중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이를 본 신세웅이 전체 길이가 일곱 자나 되는 협도(挾刀)를 비껴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임유는 허공을 향해 장창(長槍)을 휘두르고 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구려의 장수 임유다. 수장(隨將) 우중문(于仲文)은 순순히 말에서 내려 내 창끝 아래 목을 드리우도록 해라.”
신세웅은 비웃으며 받아쳤다.
“어찌 너 따위 무명소졸(無名小卒)이 무엄하게 우리 상장(上將)을 해(害)하려 한단 말이냐? 내 너를 응징하여 예의가 땅에 떨어진 작금의 현실을 바로 잡겠다.”
임유는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적장은 죽게 된 마당에도 끝까지 입만 살아 있었다. 이런 한심한 인물이라면 굳이 긴장하고 싸울 필요도 없었다.
신세웅이 우중문을 돌아보며 외쳤다.
“제가 저 자를 막을 테니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우중문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애송이가 천지를 분간 못하고 날뛰는구나. 관(棺)을 보아야 곡(哭)을 한단 말이냐? 어리석은 놈!”
임유의 장창이 바람을 갈랐다. 그러나 신세웅의 협도가 더 빨랐다. 신세웅이 임유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며 저항하는 틈을 타서 우중문은 고구려 군사들 사이를 뚫고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좌우에서 창과 칼이 날았지만 우중문은 조금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파해 나갔다. 그의 뒤로는 아장 두어 명이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임유는 도망치는 우중문을 뒤쫓고 싶었지만 신세웅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바람에 그를 대적하느라 우중문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신세웅은 필사적으로 임유를 가로막으며 그의 머리를 향해 협도를 내리쳤다. 그러나 임유는 신속한 동작으로 창대를 세워 신세웅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반격해 나갔다. 임유의 마상창술(馬上槍術)은 기(奇)와 묘(妙)에 있어서 최상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의 장창은 얇게 찌르는 듯하면 어느새 깊게 찔러 오고, 머리를 내리치는 듯하더니 금방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신세웅은 임유가 마상창술에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싸워 보니 아주 무서운 고수(高手)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마상창술은 단순히 창만 잘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뛰어난 기마술(騎馬術)이 필요했다. 고구려의 무사는 어릴 때부터 말을 달리는 일에 익숙했다. 경당(敬堂)이나 태학(太學)에서 배우는 무예 수업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도 바로 기마술이었다.
임유는 마방감(馬房監)인 아버지로 인해 어릴 때부터 말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그래서 말이 마치 자신의 일부와 같아서 걷는 것보다 말을 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말 위에서 어떤 자세도 가능했다. 말이 달리는 중에 말 배 밑으로 내려가 반대편으로 돌아서 나온다거나, 달리는 말에서 뛰어 다른 말로 옮겨 타는 등의 신기(神技)를 보여 주어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듣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말은 벗이자, 동반자이고 신체의 일부였다.
신세웅이 그런 임유의 능력을 알 턱이 없었다. 그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저돌적인 공격으로 일관했다. 신세웅은 협도를 옆으로 비스듬히 세워 양손으로 꼬나 잡은 후 임유의 오른편을 파고들었다. 임유는 순간 창걸이에 창을 걸고 몸을 수그려 말의 왼쪽 옆구리에 붙어서 이를 피한 후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환도(環刀)가 들려 있었다. 신세웅이 피할 사이도 없이 임유의 칼날은 정확하게 신세웅의 목을 베었다.
신세웅은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저 섬뜩한 기운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목 언저리에 그어진 선을 따라 피가 스며나더니 울대뼈부터 피가 솟구쳐 올라 주변으로 퍼져 갔다. 마치 피기둥의 행렬처럼 보였다. 신세웅은 피를 보고서야 공포에 휩싸였다. 차츰 그의 몸이 옆으로 쏠리더니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거구가 떨어지자, 대지에 흙먼지가 무성하게 피어올랐다.
임유는 대지에 안겨 몸을 끄덕이고 있는 적장을 돌아보았다. 그의 몸은 이제 날짐승과 들짐승들의 성찬으로 변할 터였다. 먼 타국에 있는 짐승들에게까지 육신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장수(將帥)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임유는 비애감인지 회한(悔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떨쳐 버리기 위해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달렸다. 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병들의 시체가 강북의 벌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살수에서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우중문은 수풀이 우거진 백마산 기슭에 이르러 패잔병을 수습한 우문술과 형원항을 만나 가까스로 탁 트인 강가에 도착했다. 우문술의 부장인 조효재(曺孝材)가 압록수 근방을 샅샅이 수색한 끝에 어디서 빼앗았는지 거룻배 세 척을 구해 강안으로 끌고 왔다. 장수고 군졸이고 가릴 여유가 없이 천방지축(天方地軸) 앞을 다투어 배 위에 올랐다. 하지만 강을 건넌 후에도 요동으로의 귀환길 역시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이미 식량이 바닥난 수군은 풀뿌리를 캐어 먹거나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연명을 해야 했다. 게다가 이제는 고구려의 성들을 피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올 때보다 더욱 어려운 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고구려 군사들은 굶주림과 무리한 강행군에 지친 수국 군사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수군 병사들은 목숨을 건지고자 장수들의 눈을 피해 진영을 이탈해 나갔다. 처음에는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행군이 계속될수록 그 인원이 늘어났다. 나중에는 장수들을 포함해서 부대원들이 모두 이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우중문의 군대가 궁장령을 넘어 요동의 육합궁에 당도했을 때는 남아있는 인원이 겨우 2천 7백여명에 불과했다. 30만이 넘는 수군 병사들이 죽거나 포로가 된 것이었다. 전쟁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참패였다.
양제는 패배하고 돌아온 장수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분기가 탱천한 양제는 을지문덕을 놓아준 유사룡을 당장 처형하였고 우중문과 우문술 두 장수의 목에 칼을 씌우고 쇠사슬로 온몸을 꽁꽁 묶어서 감옥에 처넣었다. 도읍인 장안으로 돌아간 다음 그 죄를 물을 작정이었다.
1812년 6월 나폴레옹 1세(Napoleon Bonaparte)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러시아를 침략했을 때 러시아군의 총사령관인 쿠투조프(Mikhail lllarionovich, Knyaz Kutuzov)는 프랑스군을 러시아 내륙 깊숙이 끌어들여 보급선을 차단하고 말로야슬로베츠 전투(Battle of Maloyaroslavets)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승리를 거두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역시 우중문이 이끄는 수의 대군을 평양성 근처까지 유인하여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을지문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적군을 끌어들여 전과를 올린 매우 뛰어난 전략가였다.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의『동사강목(東史綱目)』은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살수대첩(薩水大捷)에 대해 이렇게 칭송했다.
‘예로부터 전쟁의 승패는 군병력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수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여 그 강성한 군사력과 부강한 국력이 고금을 통하여 제일이었으나, 을지문덕 장군이 기회를 틈타 전력을 다해 적을 공격하기를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분지르고 썩은 나무 등걸을 뽑아 제치듯 하여 그들을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외적들이 후세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를 함부로 침범하지 못한 것은 을지문덕 장군이 남긴 공적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의『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은 그의 탁월한 용병술(用兵術)과 위대한 전공(戰功)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무릇 동서고금(東西古今)에 각국의 사기(史記)와 항간의 이야기들은 그 수가 극히 많아서 그것을 기록해 놓은 책들을 운반하는 소가 땀을 흘리고, 그 책들을 한곳에 쌓아놓으면 천장에 닿을 정도이지만, 그 속에 나오는 수많은 전쟁에 관한 기록과 이야기들 중에서 적은 수의 군사로써 많은 군사들을 격퇴하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약한 군사로써 강한 군사를 대적하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일국의 대신으로서 일백만 명 군사의 적진에 출입하여 정탐하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 있던가?
약한 군사로써 외롭게 떨어져 있는 성을 지키면서 사면에서 쳐들어오는 강한 적들을 막아 홀로 우뚝 서서 능히 굴복하지 않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여러 번이나 강한 적들을 그림자 하나도 돌아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어린 아이는 그 이름을 듣고 울음을 그치고, 초목(草木)들조차 그 이름을 알고 있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안으로는 정치와 교화(敎化)에 힘쓰고 밖으로는 적국의 침략을 막음으로써, 하나의 몸으로 장수(將帥)와 재상(宰相)의 직책을 겸임하였으되 그 행동이 편안하고 한가하여 음성과 안색에 변함없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땅도 좁고 인구도 적은 나라로서 여러 차례 전쟁을 하면서도 백성들의 마음이 감복하여 원망하고 배반하는 자 하나 나오지 않고, 모두들 자기 한 몸의 뼈와 살과 피를 우리 상공(相公)께서 계획하시는 일에 바치겠다고 하게 만들기를 을지문덕처럼 한 자가 있던가?
그 후세 사람들이 만약 그의 머리털 하나만큼만 닮더라도 그 나라의 독립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한두 마디의 말만 잘 거두어 간직하더라도 그 나라의 역사를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니, 을지문덕이란 사람은 우리 대동국(大東國) 4천년 역사에서 유일한 위인(偉人)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전세계 각국에도 그 짝이 드물도다.’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에는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인 우재(吁齋) 조준(趙浚)이 명사(明使) 축맹(祝盟)을 데리고 안주(安州)에 있는 백상루(白相樓)에 올라가 청천강(淸川江)을 굽어보며 이런 시(詩)를 읊었다는 기록이 있다.
"薩水湯湯庭碧虛 살수의 강물 출렁출렁 푸른 하늘 잠겼는데
隋兵百萬化爲魚 아직도 나무꾼과 어부들 사이에는 전해오는 말이 있다오.
至今留得漁樵語 일백만의 수나라 군사들 물고기 밥 되어
不滿征夫一等餘 우리에게는 비웃음거리밖에 안 되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