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안가는 아들

에구2019.11.06
조회12,066
전 딸만둘 낳아 둘 다 시집을 보냈고 언니에게는 금쪽같은 아들이 하나 있지요.
저보다 늦게 시집간 언니가 어렵게 낳은 집안에 유일한 외아들이기에, 온집안이 귀한대접으로 옥동자로 생각해온 아이지요.
사실 그 조카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데가 있기도 했습니다.
사내아이 답지 않게 말썽 한번 안 피웠고 어려서부터 여자애처럼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좋았는 점은 자연히 공부를 잘했고,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명문대를 알아서 들어가더군요.
인물도 훤하고 누가 봐도 바른생활청년이던 그 아이를 이모, 숙모 할 것 없이 다들 기특하고 대견해 했었지요.
삼십대 중반인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며 성실히 생활하고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출중하고 나무랄 데 없는 아들조카 때문에 요즘 제 언니가 속이 말이 아니랍니다.
대견한 아들과 자상한 남편을 가진 언니이지만 유독 재복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이십년 동안은 능력안되는 월급장이 남편에게서 쥐꼬리만한 생활비 받아서 생활했었지요.
그러다 이제 좀 살만해지려나 싶으니까, 형부가 사표를 쓰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을 벌이더니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서 재산을 거의 다 날려버리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가 마침 조카 대학 입학 무렵이었습니다.
캠퍼스 생활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현실적인 고민을 떠안게 됐지요.
조카는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부모 원망 안 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취직까지 하기에 이제는 언니부부의 고생도 끝나고 호강하나보다 했지요.
언니 역시 그렇게 믿고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그런데 며칠 전 언니가 가방 하나만 챙겨 들고 저희 집으로 왔네요.
형부가 너무 미워서 한집에 못 있겠답니다.
여기서 살꺼라고 남편하고 저에게 울먹이다싶이 하네요.
새삼스레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언니가 통곡을 합니다.
조카 나이가 서른 다섯이나 먹었는데, 아직 미혼입니다.
사귀는 사람도 없는 눈치고, 결혼하려는 노력도 안 해서 저를 귀히여겨온 어른들 속을 태워왔죠.
주말이 되어도 약속이 없는 아들이 안타까워서, 언니가 아들을 작심하고 불러앉혔답니다.
결혼에 대한 네 솔직한 생각을 좀 들어보자고요.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감춰두는 거냐, 아니면 아예 결혼이 싫은 거냐.
그런 말 들을 때마다 꿀먹은 벙어리 시늉을 하던 조카가 이번엔 입을 열더라네요.
결혼은 그냥 안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요.
우리 집 형편에 남의 집 귀한 딸 데려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랍니다.
그 한 마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기에 언니가 마음이 너무 속상했다네요.
아들이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이고, 부모님에게는 빚밖에 없는 형편,
한마디로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결혼에 큰 걸림돌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언니가 그랬답니다. 네가 결혼해서 이 집에 살고 우리 부부는 시골로 내려가겠다고요.
그렇게 하면 생활비도 절반으로 줄이고 아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조카는 싫다고 한답니다.
서울 토박이인 부모님을 그렇게 멀리 보내면서까지 장가들고 싶지는 않다고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구석에 가면 엄마 우울증 걸립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여자가 필요하지도 않아요. 그냥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아요, 하더라네요.
여자 필요 없다는 아들...
그러고보니 언니에게는 떠오르는 기억이 있답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사귄 아들이 몇 년이나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명문 여대 다니던 참한 여학생이었는데, 취직하면 결혼까지 하려나 했지만, 오히려 취직과 동시에 헤어져 버리고 말았지요.
매매한 아파트를 원하는 신부측에 들어줄수없는 언니네 집안 형편이 문제가 되어서 일이 틀어지고 만 걸로 알거든요.
그 때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인지......
언니 마음에는 아들이 차라리 부모를 나몰라라 하고 제 갈 길로 가버렸으면 좋겠다네요.
그런데 이 녀석은 부모에게 소홀해지는 것도 싫고,
남의 집 딸을 사탕발림으로 데려와 고생시키는 것도 양심상 절대로 용납을 못 한답니다.
아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나니, 언니는 무능한 형부가 꼴도 보기 싫게 미워진답니다.
마누라와 아들은 써보지도 못한 돈, 사기 당해서 다 날리고, 앞날이 창창한 아들에게 멍에를 씌운 장본인인 거 같아서요.
우울증 올 거 같다며 하소연하는 언니를 보며,
저는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정말 대한민국 아가씨들은 다 똑같은가요?
사람이 아무리 반듯하고 똑똑해도 부모가 능력이 없으면 신랑감으로 고려조차 안 하나요?
솔직히 저는 안 그랬거든요.
속이 알찬 사람과 맺어져서 피땀어린 노력으로 가정을 꾸리려는 마음이 없다면, 요즘 젊은이들 헛똑똑이들 아닐까요?
부자시댁이 아니더라도 시댁에 늘 잘해라 챙겨드려라 말하곤 합니다.
언니에게 이런 말은 아무런 위안이 안 되네요.
너 같은 사람이 세상에는 잘 없더라고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여러분들한테 딸이 있다면 어떠하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