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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진 “축구광 아버지 손에 이끌려 초등 1학년 때 입문”
▲'영광의 무대' 월드컵 그라운드에 선 조재진. 조재진은 "프랑스와 경기를 앞두고 잠을 못 잘 정도로 걱정을 했는데 막상 프랑스 수비수들과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jes 장치혁.임현동]
백지영 누나 요즘 편하게 만나요
“아유. 이젠 지겨워서 대꾸도 잘 안해요. 알아서 생각하라고 하세요.”
2006 독일 월드컵을 통해 실력과 인기 면에서 가장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기록한 조재진(25·시미즈)은 요즘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사인회에서 접하는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게다가 가수 백지영과 열애설로 구설에 오르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잘생긴 얼굴에는 강인함까지 스며 있어 수많은 여성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 그라운드 안팎에서 한국 축구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라고 인생의 굴곡이 없었으랴. 그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본다.
■ 백지영과는 어떻게 된 거?
스타들의 열애설은 아무리 해명을 들어도 자꾸 묻고 싶어지기 마련. 그래서 백지영과 ‘열애설’의 진위를 직접 본인의 입으로 들어 봤다.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한마디로 “마음대로 하세요”였다.
“하도 질문을 받아 이제는 해명하기도 지쳤었요. 친한 누나와 동생 사이일 뿐인데 과장된 게 많아요. 연예계라는 게 원래 말이 많은 동네가 아닙니까?. 이제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니 요즘은 오히려 편하게 만납니다. 숨어서 만날 필요도 없게 됐어요.”
■ 축구광 아버지가 이끈 축구의 길
그의 축구 인생은 아버지 조희경씨의 축구 사랑에서 시작된다. 경기도 파주 지역의 조기축구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조씨는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의 손을 이끌고 축구의 세계로 인도했다.
처음부터 축구가 내뿜는 매력에 빨려든 그는 밥 먹는 것보다 공을 갖고 놀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식 축구 선수가 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5~6학년이 되면서 수도권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며 서울로 입성했다.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서울 숭신초등학교로 스카우트된 것이다. 본격적 축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축구 선수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축구 명문 대신중·고를 거치며 고교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3학년 시절이던 1999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득점왕에 올랐고. 서울시 교육감배 대회에서는 최우수선수상을 탔다.
■ 프로의 벽은 높았다
고교 때부터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은 그는 2000년 축구 선수들의 선망의 구단인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그는 훈련 첫날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렸다.
“훈련을 마치고 사우나에서 샤워를 하는데 박건하 선배가 프로 훈련이 어떠냐고 물어 왔어요. 해 볼 만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씨익 웃더라고요. 그 뒤에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았죠. 프로는 아마추어가 하루 이틀에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당시 수원에는 황선홍 선배. 샤샤 같은 선수들이 터를 잡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자리도 없었죠.”
■ 군대에서 사람(?)됐다
2001시즌까지 두 시즌 동안 8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한 그는 일찌감치 상무로 입단했다. 만 스무 살 나이에 이등병이 된 것이다. “어차피 주전 경쟁에서 뒤처져 있으니 시간을 가지고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면서 군대 문제도 빨리 해결하라”는 김호 전 수원 감독의 충고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프로 무대에서 좌절감이 컸어요. 새로운 공간에서. 그것도 군대라는 곳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했어요.”
■ ‘숏다리’였다
헌칠한 조재진의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작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의 고향 선배이자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는 한재원씨에 따르면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키 작은 미드필더였다. 지금은 최전방에서 제공권 다툼을 하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발재간을 부리며 패스 능력이 좋았던 미드필더로 주목받았다.
170㎝도 채 안되던 그는 고 1이 끝나 갈 무렵부터 키가 쑥쑥 자라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트라이커 자리를 맡게 됐다. 조재진의 플레이 스타일이 활동 반경이 넓고 스트라이커답지 않게 피딩 능력이 좋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기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최강 산왕공고의 센터 신현철이 어릴 적 키가 작아 가드와 포워드를 거치면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 것과 비슷한 경우다.
■ 하루도 못 간 선수단 이탈
운동 선수라면 학창 시절 한두 번의 숙소 이탈을 훈장처럼 가지고 있다. 물론 그도 예외는 아니다. 대신고 1학년 시절. 딱 한 번 선수단을 벗어난 적이 있다. 당시 학원 스포츠에서 일상적이었던 선배들의 구타에 반발한 축구부 1학년들이 작당을 하고 지금 인천공항이 자리한 영종도의 을왕리해수욕장으로 도망을 갔다.
하지만 일탈은 하루도 가지 못했다. “원래 단체로 도망을 가면 꼭 부모님이나 감독님과 연락을 하는 녀석이 나오게 되요. 그때도 한 명이 부모님하고 연락을 하게 돼 감독님한테 위치가 발각됐죠. 뭐 그 다음 결말은 뻔하죠. 선배들한테 ‘빳다’ 좀 맞고 넘어갔죠.”
■ 독일에서 흘린 눈물이 …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스위스전에서 0-2로 패하던 순간 그는 한참을 울었다. 진정이 안돼 선배들이 위로를 해 줄 정도였다. 그만큼 서럽고 아쉬웠다.
그렇지만 독일 월드컵은 그에게 엄청난 기회였다.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유럽 클럽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후보 신세를 면치 못하던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다졌다. 독일에서 흘린 눈물은 이제 환희의 웃음으로 바뀌고 있다.
■ 조재진은 누구?
▲생일: 1981년 7월 9일
▲출생지: 경기도 파주
▲신체 조건: 185㎝·81㎏
▲혈액형: a형
▲가족관계: 조희경-우학자씨의 1남 2녀 중 장남
▲출신 학교: 서울 숭신초-대신중-대신고
▲a매치 데뷔: 2003년 6월 8일 우루과이전
▲주요 경력: u-20 청소년 대표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
2006 독일 월드컵 대표
2000 수원 삼성 입단
2002 광주 상무 입단
2005 시미즈 s. 펄스 이적
■ 하지정맥류 수술은 은퇴 이후에
잘 빚어 놓은 조각상 같은 조재진의 얼굴을 보다 보면 울퉁불퉁한 핏줄이 불거진 왼쪽 다리는 과연 조재진의 다리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다. 잘 알려진 대로 조재진은 3년 전부터 하지정맥류로 고생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격렬한 운동을 해야 하는 그는 이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피로감을 빨리 느낀다.
하지만 수술에는 조심스럽다. 조재진의 대리인 한재원씨는 “쉽사리 수술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한창 경기에 나서야 할 때라 수술 후 빚어질 최악의 사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은퇴 후 수술을 하는 쪽이 나을 듯하다”라고 전했다.
- 하지정맥류란?
다리의 혈액 순환 이상으로 정맥이 늘어나 푸르거나 검붉은 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다리 피부를 통해 튀어나오는 일종의 혈관 기형이다. 다리에서 심장으로 피를 보내는 정맥 내 판막 문제가 주요 원인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며 조금만 걸어도 잘 붓고 무겁고 뻐근한 느낌을 주는 증상이 나타난다.
장치혁 기자 jangta@jesnews.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esnews.co.kr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 - 저작권자 ⓒjes,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조재진 “축구광 아버지 손에 이끌려 초등 1학년 때 입문”
▲'영광의 무대' 월드컵 그라운드에 선 조재진. 조재진은 "프랑스와 경기를 앞두고 잠을 못 잘 정도로 걱정을 했는데 막상 프랑스 수비수들과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jes 장치혁.임현동] 백지영 누나 요즘 편하게 만나요 “아유. 이젠 지겨워서 대꾸도 잘 안해요. 알아서 생각하라고 하세요.” 2006 독일 월드컵을 통해 실력과 인기 면에서 가장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기록한 조재진(25·시미즈)은 요즘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사인회에서 접하는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게다가 가수 백지영과 열애설로 구설에 오르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잘생긴 얼굴에는 강인함까지 스며 있어 수많은 여성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 그라운드 안팎에서 한국 축구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라고 인생의 굴곡이 없었으랴. 그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본다. ■ 백지영과는 어떻게 된 거? 스타들의 열애설은 아무리 해명을 들어도 자꾸 묻고 싶어지기 마련. 그래서 백지영과 ‘열애설’의 진위를 직접 본인의 입으로 들어 봤다.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한마디로 “마음대로 하세요”였다. “하도 질문을 받아 이제는 해명하기도 지쳤었요. 친한 누나와 동생 사이일 뿐인데 과장된 게 많아요. 연예계라는 게 원래 말이 많은 동네가 아닙니까?. 이제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니 요즘은 오히려 편하게 만납니다. 숨어서 만날 필요도 없게 됐어요.” ■ 축구광 아버지가 이끈 축구의 길 그의 축구 인생은 아버지 조희경씨의 축구 사랑에서 시작된다. 경기도 파주 지역의 조기축구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조씨는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의 손을 이끌고 축구의 세계로 인도했다. 처음부터 축구가 내뿜는 매력에 빨려든 그는 밥 먹는 것보다 공을 갖고 놀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식 축구 선수가 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5~6학년이 되면서 수도권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며 서울로 입성했다.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서울 숭신초등학교로 스카우트된 것이다. 본격적 축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축구 선수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축구 명문 대신중·고를 거치며 고교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3학년 시절이던 1999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득점왕에 올랐고. 서울시 교육감배 대회에서는 최우수선수상을 탔다. ■ 프로의 벽은 높았다 고교 때부터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은 그는 2000년 축구 선수들의 선망의 구단인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그는 훈련 첫날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렸다. “훈련을 마치고 사우나에서 샤워를 하는데 박건하 선배가 프로 훈련이 어떠냐고 물어 왔어요. 해 볼 만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씨익 웃더라고요. 그 뒤에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았죠. 프로는 아마추어가 하루 이틀에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당시 수원에는 황선홍 선배. 샤샤 같은 선수들이 터를 잡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자리도 없었죠.” ■ 군대에서 사람(?)됐다 2001시즌까지 두 시즌 동안 8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한 그는 일찌감치 상무로 입단했다. 만 스무 살 나이에 이등병이 된 것이다. “어차피 주전 경쟁에서 뒤처져 있으니 시간을 가지고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면서 군대 문제도 빨리 해결하라”는 김호 전 수원 감독의 충고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프로 무대에서 좌절감이 컸어요. 새로운 공간에서. 그것도 군대라는 곳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했어요.” ■ ‘숏다리’였다 헌칠한 조재진의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작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의 고향 선배이자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는 한재원씨에 따르면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키 작은 미드필더였다. 지금은 최전방에서 제공권 다툼을 하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발재간을 부리며 패스 능력이 좋았던 미드필더로 주목받았다. 170㎝도 채 안되던 그는 고 1이 끝나 갈 무렵부터 키가 쑥쑥 자라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트라이커 자리를 맡게 됐다. 조재진의 플레이 스타일이 활동 반경이 넓고 스트라이커답지 않게 피딩 능력이 좋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기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최강 산왕공고의 센터 신현철이 어릴 적 키가 작아 가드와 포워드를 거치면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 것과 비슷한 경우다. ■ 하루도 못 간 선수단 이탈 운동 선수라면 학창 시절 한두 번의 숙소 이탈을 훈장처럼 가지고 있다. 물론 그도 예외는 아니다. 대신고 1학년 시절. 딱 한 번 선수단을 벗어난 적이 있다. 당시 학원 스포츠에서 일상적이었던 선배들의 구타에 반발한 축구부 1학년들이 작당을 하고 지금 인천공항이 자리한 영종도의 을왕리해수욕장으로 도망을 갔다. 하지만 일탈은 하루도 가지 못했다. “원래 단체로 도망을 가면 꼭 부모님이나 감독님과 연락을 하는 녀석이 나오게 되요. 그때도 한 명이 부모님하고 연락을 하게 돼 감독님한테 위치가 발각됐죠. 뭐 그 다음 결말은 뻔하죠. 선배들한테 ‘빳다’ 좀 맞고 넘어갔죠.” ■ 독일에서 흘린 눈물이 …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스위스전에서 0-2로 패하던 순간 그는 한참을 울었다. 진정이 안돼 선배들이 위로를 해 줄 정도였다. 그만큼 서럽고 아쉬웠다. 그렇지만 독일 월드컵은 그에게 엄청난 기회였다.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유럽 클럽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후보 신세를 면치 못하던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다졌다. 독일에서 흘린 눈물은 이제 환희의 웃음으로 바뀌고 있다. ■ 조재진은 누구? ▲생일: 1981년 7월 9일 ▲출생지: 경기도 파주 ▲신체 조건: 185㎝·81㎏ ▲혈액형: a형 ▲가족관계: 조희경-우학자씨의 1남 2녀 중 장남 ▲출신 학교: 서울 숭신초-대신중-대신고 ▲a매치 데뷔: 2003년 6월 8일 우루과이전 ▲주요 경력: u-20 청소년 대표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 2006 독일 월드컵 대표 2000 수원 삼성 입단 2002 광주 상무 입단 2005 시미즈 s. 펄스 이적 ■ 하지정맥류 수술은 은퇴 이후에 잘 빚어 놓은 조각상 같은 조재진의 얼굴을 보다 보면 울퉁불퉁한 핏줄이 불거진 왼쪽 다리는 과연 조재진의 다리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다. 잘 알려진 대로 조재진은 3년 전부터 하지정맥류로 고생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격렬한 운동을 해야 하는 그는 이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피로감을 빨리 느낀다. 하지만 수술에는 조심스럽다. 조재진의 대리인 한재원씨는 “쉽사리 수술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한창 경기에 나서야 할 때라 수술 후 빚어질 최악의 사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은퇴 후 수술을 하는 쪽이 나을 듯하다”라고 전했다. - 하지정맥류란? 다리의 혈액 순환 이상으로 정맥이 늘어나 푸르거나 검붉은 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다리 피부를 통해 튀어나오는 일종의 혈관 기형이다. 다리에서 심장으로 피를 보내는 정맥 내 판막 문제가 주요 원인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며 조금만 걸어도 잘 붓고 무겁고 뻐근한 느낌을 주는 증상이 나타난다.
장치혁 기자 jangta@jesnews.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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