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에 내린눈물 ♧♧

단칼2004.02.11
조회189

..  아무래도 오늘도 난 취했나봅니다
이 공허한 도시의 회색빛 골목모퉁이에 오줌을 싸갈기듯 나의 이 한많은 인생을
소리치고 싶어 문득 여기에 나의 냄새나는 시궁창같은 인생을 내뱉기로 합니다

난 술에 취하면 서랍깊숙히 넣어두었던 나의 호적등본을 꺼내들고 하염없이 나의
인생을 되씹어보곤 합니다

본적 : 전라북도 **군 **면 **리 ***번지
출생 : 1964년 1월 *일
혼인 : 1986년 03월 31일
이혼 : 1988년 03월 08일
혼인 : 1989년 04월 28일
이혼 : 1991년 07월 12일
혼인 : 1996년 03월 20일
이혼 : 2000년 01월 28일

정말 지워버리고 찟어버리고 싶은 나의 호적등본 입니다
그러나 법이 .... 그놈의 법이 나의 이 지저분한 호적등본을 그냥 평생안고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이지구가 쪼개지는 날까지 남겨져야 한다는군요
마치 정신병자처럼 그위에 눈물을 흘려보지만 얼룩만 남을뿐 내마음의 상처는 지워
지지 않읍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고 죽고만 싶어 그 지독한 여름날 무더위에 농약도 마셔봤고
수면제도 먹어봤고 동맥도 잘라봤지만 이질긴 목숨은 오늘도 오염된 숨소리를
내뱉고 있읍니다

가난했지만 나이어린 동생들 셋을 부모대신 키우시며 나와 형제들을 낳아 키우시던
아버님은 농부였읍니다 어린시절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새벽이면 소를 앞세워
문밖으로 논갈러 나가시던 아버님의 큰기침소리와 아련히 멀어지던 지쳐버린
발자욱소리뿐 입니다

국민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난 아버님이 소팔아 장롱깊이 넣어두신 500원짜리 지폐
다발을 가방에 쑤셔넣고 무작정 상경을 했고 전국을 내집처럼 돌아다니기 시작
했읍니다 4학년 5학년 년중행사가 되어 버렸고 급기야 국민학교 5학년때 퇴학의
지경에 이르렀읍니다 그러나 교감으로 재직하시던 외삼촌의 배려로 난 전학을 했고
5학년 2학기에 다른 국민학교로 등교했읍니다
등교첫날 6학년을 제치고 전교짱이였던 범진이 대가리를 세멘바닥에 께뜨려주었고
그날부터 나의 주먹인생은 시작되었읍니다
당연히 중학생활 역시 엉망진창이였고 급기야 중학2년 난 또다시 퇴학처분을 당하고
말았읍니다 1년을 쉰뒤 읍내 중학교에 편입을 하였고 난 검은장갑 이라는 써클을
조직하여 읍내에 악명을 떨치게되었고 고등학교 써클조차 겁내는 아이가 되었읍니다
중3년 고교진학을 고민하게 되었고 난 가진게 힘뿐이였으니 전주시내 고교에 운동선수로 특별진학을 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당시엔 연합고사라는 장벽이 있었고 난 3달동안 시험공부에만 매달린덕에
가까스로 진학할수있게 되었읍니다 나를 알던 모든 사람들은 의아하게 바라보았으나 난 분명히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였읍니다
그러나 1학년을 난 마치지 못했읍니다 시내를 주름잡던 ***파의 일원으로 행동하게
되었고 이를 문제삼은 선생님과 맞장이란걸 뜨게되었고 입원을 시키고 말았읍니다
이로인해 난 또다시 퇴학을 당하게 되었읍니다

서울가는 비둘기호 열차에서 난 다짐을 했읍니다
무엇으로든 성공하기전엔 다신 하행선을 타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읍니다
서울에서의 생활 구로동에서 복덕방을 하시는 고모부님의 심부름으로 소일하던 제게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텍의 디제이는 선망의 대상이였고 난 몇달을 공부하고 노래를
익힌뒤 구로동에서 디제이로 활동하기 시작했읍니다
음악다방의 디제이 디스코텍의 디제이로 활동하면서 차츰 노래에 빠지게 되었고
나의 곁엔 항상 수많은 여자들이 끊임없이 다가왔읍니다
가수로 성공하겠노라고 신촌등 작곡가 사무실을 드나들었고 3류 가수생활을 시작
했읍니다 그때 나에게 다가온 여학생이 있었읍니다
고3 아직은 풋풋함으로 남아있어야할 그애는 너무나 성숙해있었고 난 그 성숙함에
정신을 가다듬을수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디제이와 가수를 접고 일상의 직업전선에 뛰어든 그애가 나에게 남기고떠난 상처는 영원히 여자를 불신하는 믿음 뿐이였읍니다
방황의 세월을 보내던중 고향에서 선배가 읍내에 음악다방을 개업하게 되었고
난 매인디제이로 초빙되어 내려가게 되었읍니다
6개월이 흐른뒤 난 한여인을 알게되었읍니다 다름아닌 누님의 친구인 여인을 말입니다 꿈같은 몇달이 흐른뒤 난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읍니다
다방디제이와 나이트 시간가수로 활동하던 내게 그날밤은 운명의 회오리를 일으키게
했읍니다 평소 그여인을 좋아하던 선배인 그가 노래하는 내게 맥주잔을 던졌고
난 마이크를 휘두르고 말았읍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머리가죽이 10센티미터나 벗겨진 그는 읍내에서 알아주던 주먹이였고 난 그밤으로 도주를해야 했읍니다
물론 그여인과 난 그길로 아직까지 얼굴한번 보지 못한채 끝이나고 말았읍니다
몇달뒤 난 기소중지자가 되어 선배의 당구장에 숨어살게되었고 밤에만 활동하는
불나방이 되어있었읍니다
그러던중 아버님이 49살의 나이로 간암으로 운명을 하시게 되었고 난 수갑찰 각오를
하고 장례식에 갔읍니다 그러나 담당형사였던 김형사님의 배려로 숨어살며 기소중지자 자수기간만을 기다리며 살게되었읍니다 그러던중 세들었던 집의 막내딸이 바로
나의 호적에 첫번째 잉크를 발랐던 아이들의 엄마 박 ** 이였읍니다
반년을 가족들 몰래 만나 사귀던중 난 자수를 하게되었고 두달후 집행유에처분을
받고 출감을 했읍니다 그러나 **이의 집안의 완강한 반대에 우리는 몸뚱이만을
열차에 싣고 서울로 서울로 발길을 움직여야했읍니다....

(아까 흘린눈물이 너무 많았나봅니다 눈이 아프네요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