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이 후에 어찌 지냈는지 궁금해 하신분들이 계셔서..
대댓글로 알려드리려다가 추가해요.
저랑 같이 엄마한테 보내졌는데 저는 기숙사에서
남동생은 엄마쪽 재혼가정에서 컸어요.
그래서 돈없다 앓는소리하면 돈보내줬던게
화근이었고 100씩 모아준다는 말 믿고 보냈던 돈도
생활비로 다 썼다고 해도 그냥 식구 하나 더 늘었으니
그랬겠구나 한것도 지금 생각하니 문제였네요.
저 고3말에 취업하고 엄마한테 보내면서 시집갈때 보태줘라는
명목으로 500주고 저한테는 공증받아간거구요.
동생 앞으로만 양육비로 매달 30씩 보내준걸로 알고있어요.
물론 제돈 500은 받지못했어요 엄마한테..
그 후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으나 다 나열하기 힘들어서
간략하자면 동생 고등학교 2학년때 부터 저 결혼전까지
함께 살았어요. 그리고 정말 아주 바르게 컸어요.
그래서 때로는 동생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파요
저보다 더 힘들었을텐데 내색을 안해서요.
지금은 여자친구도 만나고 회사 생활도 잘하고
앞에도 말한 것 처럼 신랑이 못오면 동생이라도 꼭 와서
도와줍니다. 적고보니 저도 꽤나 행복한 사람이네요..
더이상 추가는 진짜 안하려합니다.
이렇게까지 많은분들이 관심주실줄 몰라서 당황스럽고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되는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겨주시는 댓글들 시간될때마다 읽고있어요.
저랑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분도 계시고 더 힘들게
커온 분들도 계신걸보며 참 세상에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다는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감사한 마음 고마운 마음 다 답변드리고 싶지만
아이보며 일일이 답 하기에는 벅차서..
시간될때 읽고 소심하게 추천하고 갈께요.
제 불안한 마음에 얼른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안녕히 계세요!
추가)
자고일어나 아이 이유식 먹이고 간식주고
낮잠재우고 들어왔는데.
그냥 푸념이나 하자고 끄적인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동감하고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작,소설이라는 댓글을 봤어요.
그렇게 보이나요? 저도 제가 살아온 환경이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였음 좋겠어요.
그 누구보다 간절히요. 제가 겪은일 모두 쓰자면
끝이 없을것같아 매일밤 떠올라 눈물나게 하는일들만
몇가지 적은거고 겪지않은일을 겪었다고 쓰지않았구요..
저 글 재주도없고 상상력도 좋지못해요.
자작이라 생각이 들면 그냥 지나가주세요.
그리고 남동생은 같은 지역에서 살아요.
아주 반듯하게 컸구요 일도 열심히다니고있어요.
조카도 보러 집에오고 만나서 밥도 먹고
누나 힘든일있으면 달려와주는 착하고 오빠같은 동생입니다.
아빠는 고향으로 다시내려와서 딱 두번봤어요.
동생통해 연락이 닿았는데 신랑 보여드릴때 한번
아이낳고 집에서 한번이요. 그 뒤론 연락안해요.
같은 동네 살아서 혹여 그아줌마 마주쳐서 자기한테
난리칠까 무서워하거든요. 이상하죠?
자기자식버리고 남의자식 키우면서 무슨 눈치를 그리보는지..
그렇다고 돈못벌어다주고 그런거 아닌데 ..
대기업 생산직 다녀서 돈 잘벌어요 제 나이만큼 회사다녀서
직급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 이해하고 싶지않고
더는 상처받기싫어서 먼저 연락안해요.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제이야기에 본인일처럼 화내주시고
마음아파해주신 모든분들 감사합니다.
위로 받고 용기 얻어가요.
부모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적이 없어서
이게 맞는건가 이렇게 해주면 되는건가
긴가민가 하지만 저희 부부 방식대로 사랑하며 사랑주며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그리고 제 빚 신랑이 갚아준거 아니에요.
다시 읽어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싶어
수정했구요.
돌잔치는 그저 저희딸이 많은 분들 모인곳에서
축하받고 사랑 받았으면..하는 생각에 적었던건데
돌상 알아봐서 셋이서라도 소박하게 사진남길께요.
글지울까 고민했는데.. 힘든날 들어와서
댓글보며 다시 용기낼수있게 그냥 두려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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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이 재워 놓고 어린시절의 기억에 갇혀
매일밤 우는 한 아이엄마에요.
오늘은 가만 아이 재워놓고 옆에 누워있는데
어디에라도 말하지않으면 제 심장이 터질것같아서
누구라도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끄적여요.
저는 12살, 남동생 9살 봄에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학교갔다가 집에 오는데 저 멀리서 엄마가 보이고
너무 반가워서 엄마!!!! 하고 부르며 뛰어갔는데
엄마가 저보고 미안하고 동생 잘 챙겨주라고 하더니
꼭 안아주고선 집에 들어가보래요.
근데요 저 엄마한테 왜? 어디가?이런 얘기도 안하고
그냥 울면서 손만 흔들고 계속 뒤돌았다가 다시 걸었다
반복했던 제가 잊혀지질 않아요.
그리고 동생하고 저 할머니댁에서 2년반 살다가
아빠 재혼해서 다시 집에왔는데 새아줌마의 이유없는
폭력, 아빠는 알고도 묵인함
한 겨울에 비닐잠바입고
엄마와 찍은 사진앨범을 꼭 끌어안고 제가 다니던
중학교 교문에 초등학생이던 제 동생이 도망나와서
버스로 30분거리를 용돈이 있을리 만무하니
칼바람 맞으며 걸어왔을텐데...온몸에 피멍투성이에
두피는 피딱지가 져서 저보자마자 누나..하고
엉엉 울던 그 장면이 생각이 나고..
친구엄마 통해서 아동학대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데
아빠가 친권포기를 하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상황이었고 주변 시선이 무서워 친권포기못한다는 아빠말에
동생이 전봇대를 끌어안고 집에 가기싫다고 울부짖는 그장면..
겨우차에 타서 아빠가 한다는 얘기가 잘못한거없어도
집에가면 아줌마한테 싹싹 빌으라던 그 기억,
집 비밀번호도 알려주지않아서 벨 누르고 기다리고
없으면 집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우리, 냉장고도 마음대로
열수없고 티비도 볼수없고.. 갔다오면 티비봤는지 안봤는지
티비에 손대보고 열기가 남아있으면 개잡듯 잡던 그 아줌마.
동생 수학여행가던날 보내기싫다는 그아줌마, 그래도
수학여행은 보내야지 않겠냐는 아빠..
싸우고나서 천원짜리 김밥한줄 발로밟아서 동생한테 던지던
그 순간 김치에 찬밥주고 자기가 데리고온 딸은 찌개에 고기 건져주던,동생 잠안재우고 순간 졸면 와서 귀싸대기 갈기던 그 순간
동생한테 겨울에 찬물로 화장실 문열고 샤워하라던,
동생방에서부터 빨개벗고 화장실까지 걸어가라고 때리던 그순간
자기들은 외식가고 우리는 그당시 5000원주고 김밥전문점에서
사먹으라고 선심쓰던.. 그게 좋아서 동생 손잡고 김밥에 라면시켜
나눠먹던 그 시간들..
폭력에 못이겨 엄마가 나가기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라디오에 공 테이프로 폭력을 휘두르던순간 녹음해서 믿었던
친할머니 가져다주니 자기 아들 살아야 한다고 숨겨버리고
묵인하던.. 그 시간들
버티고 버티다 가출 감행했고 청소년쉼터에서 고등학교다니는데
쉼터에서 8개월 생활하는동안 한번을 안오던 아빠가 귤한박스를 들고 왔더라구요.
그래도 아빠라고 좋아서 왜왔냐 했더니 너네엄마가 문란했고 그래서 주변에서 너 아빠랑 안닮았다는 얘길 많이해서 서울가는 비행기표 줄테니 유전자 검사를 하고 오던지 머리카락만 좀 달라고 얘기하던 그순간 그공기 그냄새 그시간.
그와중에 아빠딸 아니면 나 이제 영영 버릴거냐고 울던 18살의
내가 머리쥐어뜯으며 어차피 버린거나 마찬가지니 가지고 가세요 아저씨라고 되받아치니 왜 아빠딸 아닐까봐 무섭냐고 되묻던 아빠의 태연한 얼굴.. 누가봐도 아빠판박이인데ㅎㅎ..
거울보기싫을정도로..ㅎㅎ
결국 유전자검사는 안했지만 엄마 찾았다고 돈 500줄테니 다시 아빠한테 오지않겠다는 공증이 뭔지도 모르는 딸한테 공증서에 지장 찍으라고 가지고와서 찍게하더니 내쫓기듯 엄마한테 가게된19살의 나.
회사 기숙사에서 150벌면 100은 엄마가 모아준다는말에
매달 꼬박 꼬박 보냈는데 알고보니 생활비로 탕진.
돈빌려달라고 죽는소리 앓는소리해서 대부업체에서
100,200, 빌리다보니 어느새 그게 4600만원
남들은 병신이 따로없다 하겠지만 안해주면 엄마한테
또 버림받을까봐 해준 20살의 나.
180벌면 이자로 180나가던 그시절이 힘들어 회생신청하고
엄마가 갚고있다는 말 철썩같이 믿었는데 다 미납해서
회생폐지. 다시 처음부터 시작 장작 8년의 기간이 지나고
30살 내생일날 개인회생끝..
결혼전에 엄마가 그랬거든요. 너도 결혼해서 애낳아보면
그때의 엄마선택을 이해할거라고..
근데 작년에 첫 딸아이 낳고나서 더 이해를 못하겠어요..
뭘 이해를 해야할까요? 어떤것을 이해해야될까요?..
저는 제딸 너무이쁘고 너무 애틋해서 잠시도 못떨어지겠는데
어찌 버리고 갈수있었을까요.
내생일에, 동생 생일에 우리 생각이나 했을런지..
발을 뻗고 잠은잤을런지,. 어느 한날은 엄마가
남동생은 아픈손가락이고 저는 안아픈손가락이래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도대체 전 왜 안아픈 손가락일까요..
6년만에 엄마한테가니 바람났던 그 아저씨랑 재혼해서
동생 둘이 있는데 5월5일에 엄마랑 새아저씨랑 동생둘이랑 동물원에서환하게 웃는 사진이 있었더라구요.
옛날 아날로그 사진에 날짜직히잖아요 왜ㅎㅎ
머리에 뭐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데..
저랑 동생은 엄마아빠 이혼후로 5월5일은 그냥 평범한
날이었거든요..
졸업식 입학식 운동회 소풍 너무 싫었구요.
방학은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학교라도 가야 새아줌마가 덜 때릴텐데
학교라도 가야 밥을 먹을텐데 하면서요..
뒤죽박죽인데 여튼 이렇게 살았어요
얼마전에 들은 소식인데 그아줌마가 데리고온
딸은 대학교도 갔어요ㅎㅎ 저보고는 아빠회사에서 100프로
지원해주는데도 니돈벌어 니가 가라더니
그 딸은 유아교육과? 들어가서 어린이집 다니나보던데
참 아동학대하는 엄마를 둔 자식이 어린이집 교사라니ㅎㅎ
웃기지도않고 그냥 밉네요 그아이는 잘못한건 없지만..
여튼 전 제딸 결혼식에 신랑 손 꼭잡고
행진했으면 좋겠어요 제 결혼식엔 아무도 안왔거든요.
같이 손잡고 영화도보고 쇼핑도 해보고싶고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학예회 무조건 참석할거고
소풍때는 도시락도 이쁘게 싸서 보내줄거고
계절에 맞는 옷 입혀보낼거고 또...또., 크리스마스,
생일도 다챙겨줄거고 방학은 생각없이 친구들하고 가족하고
노는 기간이었으면 좋겠구요..
그냥 제가 못해본거 다해주고 싶어요
딸은 엄마 팔자닮는다는 소리 너무 듣고 자라서
아니라는거 꼭 보여주고싶어요..
제딸은 따뜻한 친정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입덧하면 먹고싶은거 해주고싶고 산부인과도 같이 가주고싶고
아이낳는다 연락오면 그게 밤늦은시간이든 새벽이든 뜬눈으로
분만실 또는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내새끼 많이아팠지?
라고 따뜻한말 전해주는 뭐 그런거있잖아요ㅎㅎ 소소한거..
근데 매일 매일 이 기억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벗어나질
못해서 제자신이 참 미련하고 답답해요..
저도 행복해질수있겠죠?
저랑 비슷한 신랑만나서 시댁하고 별 왕래 없구요
제 빚갚느라 모아둔돈 없이 이래저래 결혼하고
결혼해서도 좋은환경 만들어주고싶어 열심히 사는데
언젠간 저희도 돈 한푼두푼 모아서 집도 살수있는 날이 왔으면..아무걱정없이 살아봤으면..
제딸은 여느집 딸들처럼 그렇게 커줬으면 싶어요
양가부모님들과 왕래도 없고 저희도 인맥이 넓지않아서
다음달에 딸 돌인데 돌잔치 못해준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조동들 돌잔치 준비가 그저부럽기만 하네요..
우리딸 사진은 남겨줘야할텐데 나중에커서 엄마 나는
돌때 뭐잡았어? 물어볼까봐 사서 걱정이네요ㅎㅎㅎ
답답해서 보다가 끄적인거라 맞춤법, 띄어쓰기 엉망이어도
이해해 주세요..속은 후련한데 끝마무리 어찌해야할지ㅎㅎ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 읽어주신분들 항상 온 힘 다해서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