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쓰는 장문의 편지 (전하지는 못 해도 혼자 간직할게)

23b형남자2019.12.04
조회6,667
이제는 너 만나러
아니, 보러 안 갈게.
너한테 선물을 주지도 부담을 주지도,
마음을 주지도 뭘 주지도 않을게.
같이 있으려고도 안 할게.
뭘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을 거야.

물론 사소한 연락조차도 하지 않을게.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내가 너를 일방적으로
바보같이 너무 좋아해서, 너무 일찍부터
너무 깊이 빠져버려서,
돈도 시간도 감정도 쓸데없이 낭비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근데 난 그깟 돈 몇 푼보다도,
아무리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여도,
그런 것보다도 감정을 낭비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
아니, 낭비라기보다는 감정을 소모하고 다쳤어.
어차피 낭비할만한 감정도 없었고,
속은 이미 곪을대로 곪아서 메마른 감정에,
그마저도 있는 감정 없는 감정 다 끌어모아서
본의 아니게 너한테 쏟아부은 거니까.
내가 좀 미련하고 성급하긴 했었나 봐.
근데 어차피 돈을 써도 내가 좋아서 쓴 거고,
시간을 투자해도 내가 좋아서 그렇게 한 건데,
그게 아깝다고 한다면,
그건 그때의 나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다 주고 싶은 마음이였는데 분명히.
넌 나한테 다 주고 싶은 사람이었으까.
후회하면 뭐해.
돈이야 금방 다시 벌면 되고,
시간이야 앞으로 효율적으로 쓰면 되는 건데.


근데 다른 건 몰라도 감정이 상하면 나는
낫는데 좀 오래 걸리더라.
나아도 완전히 나아지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이건 좀 후회되네.
난 진심으로 너가 좋아서 그랬던 건데,
그냥 너한테 보여줬던 내 진심 그리고 정성,
마음 이런 게 아까워 난.
내가 너 생각하고 막 설레고 그랬다는 게.
어떻게든 너 마음에 들어보려고 했던 행동들이.
절대 너라는 사람이 부족하고 못 나서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가치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보잘것없다는 게 아니야.
내가 좋아했던 사람인데 근사하지 오히려.
눈이 부실 듯 했었고.
오죽했으면 살면서 처음으로 꿈에 나왔던
여자니까.
그것도 세번씩이나.
아무튼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 때문에
결국엔 이 지경이 된 거니까.
난 널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생각에 행복을 느꼈었어.
근데 이제는 이런 거 다시는 못 할 거 같네.


내가 그동안 너가 너무 좋아서
혼자 좋아하고 혼자 힘들어 하고,
이런 비슷한 일이 있어도
포기하기를 많이 주저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애써 부정하고 미루고 피했었어.
내심 헛된 바램, 기대 뭐 이런 것들도 많이 했고.
너의 생각이나 의도 이런 게 어찌 됐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어쩌면 남들이 보기엔 미련하고 한심하게 보일지라도,
내가 진심을 보여주면 언젠가는 너가 알아주겠지 생각했어.
그렇게라도 결국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난 너의 마음만 얻으면 된다고
그렇게 굳게 믿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젠 나도 슬슬 힘들고 솔직히 지쳐.
이제는 더 이상 마음 졸이는 게 너무 싫어.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게 너무 싫어.
놀아나는 게 너무 싫어.
그냥 난 순수하게 너가 좋았고,
너라는 사람이 좋았어.
너라는 사람이 궁금했어.
그런데 여기까지 오니까
좀 쓰기도 하고 아프고 그러네.


차라리 금방 잘라주지 그랬어.
그럼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금방 아무렇지 않은척할 수 있었을 텐데.
솔직하게 말해주지
왜 다 받아줬어.
그냥 그때 다시 연락 주지 말고,
먼저 연락 주지 말지
매번 왜 다시 연락했었어.
내가 잘 해주니까 아까워서 그런 건가?
그냥 밀어주지.
어차피 너가 밀면 난 그냥 밀렸을 텐데.
너도 알았잖아.
확실하게 밀어버리지
왜 마음이 이렇게 커져버렸을 때,
내가 이렇게 하게 만들었어.
물론 애초에 나한테 선택권은 없었겠지만.

근데 또 한편으로는
너 잘 못은 아닐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도 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니까.
너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게 죄는 아니니까.
꼭 좋아할 필요도 없는 거고,
거절 못 하고 받은 나도 잘 못이니까.
결국엔 이제 와서야
어쩌면 이게 다 내 잘 못일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너무 초라하고 내 자신이 싫더라.
너무 힘들더라.



그렇게 주저했었는데..
사람이 궁지에 몰리고 바로 뒤가 낭떠러지라고,
더 이상 내려갈 바닥도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드니까
신기하게도 의외로 답은 빨리 나오더라.
좀 쓰고 아프긴 한데,
이젠 이게 맞는 거 같아.
괴롭지만, 그건 내 잘 못이고 내 몫이니까.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어.
아니, 사실은 깨닫기가 싫었었어.

근데 있잖아.
사실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혹시나 1%의 확률로 기적 같은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고
바보 같은 생각도 들고 기대도 하게 돼.
근데 역시 그건 안 되겠지?
이제는 그냥 이 모든 걸 흔하디흔한
경험이라 치부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여야겠지.
그냥.. 요새 삶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와닿았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상하게 너만 생각하면 설레고,
많이 떨리더라.
너로 인해 사소한 것들조차 모든 게 다 이뻐 보이더라.
고마워.
너라는 사람을 좋아해서, 좋아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하루하루가 너무 달콤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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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너가 너무 보고 싶어.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나에겐 너가 세상이었어.
잠깐이나마 너라는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과분할 정도로 너무너무 행복했어.
너라는 꿈을 꾸게 해줘서 이제는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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