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지잡대인데, 학벌 때문에 남자친구를 무조건 반대하는 엄마를 어쩌면 좋을까요.

13일의금요일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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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곧 서른을 앞둔 평범한 여자입니다.
어디에도 도움받거나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조언을 듣고 싶은 마음에 
종종 눈팅만 하던 톡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서두가 많이 길어지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리며, 이는 현재 제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치달았나 하는 것을 최대한 가감없이 보여드리기 위함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저는 좋게 말하면 가부장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독재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국내 최고의 명문대 학력의 아버지는 교수직이시고,
어머니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명예와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삶의 목표이자 최고의 보람으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 자식인 저는 항상 두 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아이였습니다.정말 수많은 일이 있었고 모든 한마디 한마디가 뇌리에, 가슴속에 아직 박혀 있네요.



어릴 때 이것저것 재능이 있어 교내외 대회에서 종종 입상을 했었음에도,
엄마의 첫 마디는 늘,  잘했다는 칭찬이 아닌 '왜 금상은 못받고 은상이니?' 였습니다.
(뒤에 마지못하게나마 '잘했다'라고 한마디 칭찬을 하시긴 했습니다. 주위 친척들에게 어쨌거나 '상을 받았다'고 자랑도 하시곤 했구요)





지방에 살다가 중학교 때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교육열로, 온 가족이 서울에 올라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학군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그 교육 수준은 지방에서 풀이나 뜯으며 놀다 올라온 제게는 너무나도 높았습니다. 이 곳에서 선행학습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구요.







수학이 너무 어려워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졸라 수학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수포자 수준이었던 저는 맨 꼴찌 반에 들어가서 그래도 한 치의 거짓 없이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두 달 뒤 드디어 기초를 터득하고 성적이 조금씩 들썩여, 반을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자마자 저는 수학학원을 그만 둬야 했습니다.
두달 간 그대로였던 학원 성적표를 보시고, '넌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돈이 아깝다'라는 판결을 내리셔서입니다. 
이것만은 정말, 지금도 가슴 속 깊이 맺혀 있는 비참한 피멍입니다. 
(학원 강사할때, 과외할 때 어머니들이 정말 많이 묻습니다. 한 달, 두 달이 지났는데 애가 왜 점수가 똑같냐고....기초가 없는데 기초공사만 얼마나 걸리게요...이걸 보시는 그런 어머니가 계시다면 제발 인내심을 가져 주세요 저처럼 만들지 마시고...ㅜㅜ)


그 외에도 정말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고작 이까짓, 핑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성이신 부모님 아래 너무 미숙하고 여렸던 저는
고작 그런 작은 것들이 쌓이고 누적되어 곪아 들어갔습니다.
'명문대를 가야 한다''대학을 좋은 데를 가야 인생이 편하다''대학 간판이 곧 네 얼굴이다'
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나
'대학을 왜 가야 하는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찾는가?'
에 대해서 알려 주는 사람은 없었고, 저 또한 그 폐쇄적인 분위기와 외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 오늘 사과가 맛있네.""알았다. 공부나 해라."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캣츠 뮤지컬이 내한공연을 온대.""공부하고 보러 가라."
"엄마. 박태환이 금메달 땄어.""너도 제발 그런 성과를 좀 가져와. 공부하러 가라."

제가 하는 모든 말들과 소소한 대화 시도는 '공부하라'는 답으로 귀결되어 돌아왔고
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공부를 왜 하는지도 모르고 의욕도 찾지 못한 저는
'대학을 왜 가야 하지?'라는, 내 마음과 환경을 핑계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방구석 폐인이 되어갔습니다.



공부에 뜻을 두지 못하고, 재수 삼수를 거듭해도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엄마에게 버림받으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던 저는 감히 '공부하기 싫다'는 호소를 더는 하지 못했습니다.
맞는 것도 두려웠고, 경상도 특유의 무시무시한 폭언과 욕도 두려웠습니다.
대들었다가 정말로 쫓겨난다면? 상상만 해도 앞이 캄캄했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가 살 길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피와 '몰래'를 택했습니다.
하다못해 집 앞 친구를 만나는 것도 몰래, 떡볶이 하나 사먹을 용돈이 없어 단기알바를 몰래.
학창시절부터 수험생활까지 제 모든 생활은 '몰래'였습니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에도 불안했을 정도로, 단 한순간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생충같은 방구석 폐인이었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쓸모 없는 존재였습니다. 자존감이라는 건 제게 없었습니다.
하다 못해 중졸 후 곧바로 생산업에 취직해 힘들게 사는 친구도 '그래도 스스로 돈을 버니' 부러웠고
4수 5수를 하면서도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결국 5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갔던 친한 친구에게는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자괴감과 죄책감이 들더군요...지금도 정말 친한 친구고 좋아합니다)
부모님이 질색하는 '지잡대'를 먼저 들어간 제 사촌동생이 너무나도 부러웠고
꽃다운 차림새로 멋지게 전공책을 들고 다니는 제 또래 대학생들이 너무나도 눈부셔서
대학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던 자식이 어떻게 정신적으로 훌훌 독립할 수 있을까요. 
정신적인 독립이 대체 무엇인지 저는 알지도 못했고, 그걸 알려주는 인생선배 같은 건 없었습니다.
마음에 병이 들어 내 속이 썩어 문드러져 있는데 풀 수도, 방법조차 알지 못했으며
'그럼 부모님의 기대대로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지 그랬어?그럼 만사 오케이였잖아?'
라는 마음속의 합리적인 질책만 매일 24시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변명이자 자기합리화이기도 합니다. 그저 하라는 대로 잘 하고 , 목숨걸고 열심히 공부했다면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자식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상냥하고 따듯하신 분들이었다면 명문대를 갔겠느냐? 라는 자문에도 마찬가지의 답입니다.
이것만은 누구 탓을 할 것 없이 오로지 제 의지와 머리가 거기까지인 거니까요. 
원인이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 그런 지옥같은 집에서 이 악물고 벗어날 독한 결심을 하지 못한 의존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제 탓이니까요.



못 미더운 눈초리에 결국 부모님의 고향에 있는 머나먼 지방 4년제로 쫓겨나듯이 들어갔습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였는지, 장학금도 종종 받고 난생 처음 1등도 해보며 순탄하게 잠깐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허접한 학벌'로 인해서 부모님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는 일말의 죄책감은 늘 가슴 속에 품고 살았지만, 그 때는 처음으로 제 자신이 스스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그렇게 잠시 집에서 벗어나 '내 세상'을 누빌 무렵,
다른 지방에 사는 한 인연을 만났고, 5년째 조용히 잘 만나 오고 있습니다.
어떤 성품이고, 어떤 인격인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제 목소리를 들어 주고 응원해 준 덕분에 저는 부모님이 폄하하고 하찮게 여기는 소위 '지잡대'에서도
처음으로 '교직'이라는 뚜렷한 장래를 희망하여, 졸업 후 관련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정식 계약을 맺고 '조교'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별 거 아닌 하찮은 것이지만 이런 저한텐 큰 시도이자 변화였습니다.






객관적인 비교 조건을 나열하자면

제 학력은 '지잡대'. 대학원은 들어갔지만, 결국 임용을 합격해야 하는 허울만 좋은 문과 출신 사대. 그 사람은 여러분이 흔히 통용하고 계시는'지잡대'

저는 서른 다 된 나이에 이제사 대학원에 들어온 '백수'그 사람은 5~6년차 '공기업 정직원' (직책이 높습니다)

제 집안은 결혼 혼수조차 불투명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직접 대화한 바는 없으나, 집안 사정이 당장 통용할 수 있는 돈은 없는 걸로 압니다) '명예로운' 교수 집안. 소유 집은 있으나 본인이 훗날 받을 건 없습니다. 
그쪽 집안은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업에 종사하고 노후가 확실한 자본가, 본인도 저축자금과 본인 명의의 집 소유, 시골 쪽이라 학벌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시골 집안이라 시집살이에 대한 우려가 있을까봐 노파심에 더 적습니다. 농번기 때는 사람을 구해서 일하기 때문에 굳이 자식들이 도울 필요도 없고, 수확과 정리가 끝나면 두 분은 각자 자유로이 놀러다니시는 개방적인 분들이십니다. 자산이 있으신 분들이라 금전적으로 자식에게 부담을 지울 일도 없고, 제사도 없고 명절 행사도 전 몇개 부쳐 식사 한끼나 하고 헤어져서, 시집살이를 할 만한 건덕지가 별로 없습니다. 워낙 두 분 다 각자 놀러다니시는 걸 좋아하셔서요)




조건, 따져야지요. 다른 것도 아닌 내 인생 100세까지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할 사람인데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돈으로 행복에 가까워질 가능성은 높으니까요. 저도 누구 못지 않게 그 세속적인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수중에 돈 한푼 있기는 커녕 학자금까지 껴안고 있는 제가 그런 '금전적인'조건에서는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도요.
제가 그나마 내밀 수 있는 유일한 명함은
'부모님이 뭐 하시니?'라는 물음에 '교수십니다'라고 자랑스레 대답할 수 있다는 것.
부정할 수 없는 부모님의 훌륭한 업적이고,  알게 모르게 그 덕도 많이 받아 왔겠지요. 저도 알고 인정합니다. 부모 직업 때문에 무시당한 적은 여태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요.



학벌과 부모님의 직업이 제 결혼과 인생에 있어서 메리트는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무기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본론을 이제서야 적게 되네요.

얼마 전 처음으로 엄마께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용기내어 운을 뗐습니다.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의 그 동안은 독불장군이신 엄마께만은 숨겨 왔습니다. 제가 별 볼일 없는 인간이니 제가 만나는 사람도 그런 취급 당할까 두려워서요. 이제는 교직이라는 목표와,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일이 생겼으니, 이제는 한 사람으로서의 제 목소리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 어리석은 간과였습니다.

저를 보지도 않고 돌아오는 대답은
'어느 대학 나왔어?' 였습니다.
직업, 성품 그 어떤 것도 더 궁금해하지 않으셨습니다.
학교 하나만 듣고 불같이 화를 내셨기 때문입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그 사람에게는 죽어도 말할 수도 없는 폭언들을 쏟아내셨고
단지 학벌 하나로 그 사람은 엄마에게 '배운 것 없는 무식한 무능력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만약 직접 보고 나서도 반대하신다면 그건 제가 재고해 볼 수 있겠죠. 
저보다 더 긴 삶을 살아오신 현명한 분이시니까요. 반대하는 데에 이유가 있을 테죠.
하지만, 고작 학벌을 가지고. 더군다나 그렇다고 제가 명문대를 나온 훌륭한 규수도 아니구요. 
위에 길게 늘어놓은 설명으로 충분히 아셨겠지만, 제 개인은 그저 평범한 지잡대 출신 백수 아닌가요.




그 사람은 객관적인 스펙으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저에게 많이 아까운 사람이고 그래서 반드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해, 그 사람이 나온 대학교는 지역이 너무 달라 저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을 정도지만
제 전공 외에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저보다 똑똑하고,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고, 그러면서도 물같이 흐르는 인격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학벌과 명예가 중요할까요?
그런데도 저는 명문대 남자만 만나야 할까요?
명문대/지잡대 로 사람을 가르는 것 자체가 참 슬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갈라서 이야기한다면, 제 현실이 '명문대 남자'를 따질 수 있는 현실인가요?
물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 사람이 명문대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더 좋았겠지만
어쩌다가 만난 귀한 인연이 그 학교를 졸업한 것을 어떡할까요.
제가 정말로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라면 생각하는 바가 조금 달랐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제 현실에, 그리고 이 정도 사람에 지금 무슨 학벌을 따지겠다는 건지,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교직을 장래에 희망하는거지, 벌써 교사 딸내미인 것도 아닌데.
'교사 며느리는 사자 집안에 무조건 시집간다'는 엄마의 고리타분한, 그러면서도 굽히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너무 야속합니다. 임용을 치고 한 번에 붙는다고 해도, 졸업 즘이면 저는 서른 중반에 가까워져 있을 텐데요.
학벌과 스펙이 훌륭하신 아버지께 시집와서, 그 2세들을 비슷하게 키워 내려 그 삶을 투자하고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는 이해합니다. 실제로 덕분에 어쨌거나 우리는 등 따시고 배부르게 컸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딱 거기까지, 제가 차차 갚아야 할 문제고
 나머지 제 인생은 제가 선택하고 싶다는 제 욕심은 결국 불효일까요?
이제서라도 단 하나는 내가 택하고 싶다는 바람은 배은망덕한 바람일까요?
키워준 부모에 대한 배신이고 부끄러운 짓일까요?



'그딴 지잡대를 만나느니 차라리 혼자 살아라, 아니면 당장 짐 싸들고 나가서 그놈이랑 살아라' 라고, 몇 시간 내내 소리치시던 엄마를
제가 정말로 버리고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지옥같은 나날이었다지만
그래도 제 하나뿐인 울타리였던 부모를 버리고 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혹자는 당연히 '부모 연 끊고 가라'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만
저는 차마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제가 일말의 죄책감이 없이 살 수 있겠어요...

이것도 폭력에 길들여진 제 수동적인 면모일까요? 아니면 무조건 엄마의 말씀을 이번에도 들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엄마를 정신적으로도 완벽하게 독립하면서, 출가하게 될 때까지 설득하고 싶습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 강성에, 그 조선시대 가치관에, 더한 말들과 더한 폭언들이 쏟아지겠죠. 
그리고 저는 다시 쫄아들어 방구석에서 혼자 질질 짜겠죠. 어린 그 시절에서 한 살도 크지 않은, 아직도 부모 무서워하는 어린애인 제가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인연마저 포기한다면 저는 이제 더 이상 인생에 아무 의욕도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설렘에 기반한 풋풋한 연애로서의 객기가 아니라
정말 동반자로서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을 놓치게 된다면 
앞으로의 제 인생에 어떤 인연도 더 없을 것 같아요.





정말로, 멍청한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서른이 다 되어서도 중학생 때와 똑같이
아무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내 동생이다, 한 번만 생각하시고 도와주세요.
아무도 가르침을 주지 않았던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선배가 한 번만 되어주세요.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를 이길 수 있게, 한 번만 도와주세요.







글이 주절주절 길어져 읽는 데 힘드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마음을 익명의 힘을 빌려 털어놓다 보니 하고 싶은 말들이 전부 나와 버렸습니다.


읽느라 피곤하셨던 모든 분들께, 항상 행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행복하세요.